[펀펀 사회교리] (73) 원수인 돈을 사랑하자 ⑦
중산층의 기준은?
‘재산’만 기준인 한국 중산층
외국은 사회 참여·개성 강조
나눌 줄 아는 마음이 필요
발행일2018-06-10
[제3098호, 4면]
“중산층이 뭘까요? 사전을 보면, ‘중류층-일반적으로 상류층들과 하류층들 사이에 있는 중간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이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재산 정도만으로 분류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산에 따른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을,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와 월 급여 500만 원 안팎, 1억 원 이상의 은행잔고와 중형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답니다. 어때요 베드로씨도 동의하십니까?”
“으휴~, 저는 중산층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습니다.”
“아이고, 너무 자기비하 하지 마십시오. 제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용기가 좀 날 겁니다. 사실 중산층의 절대적 기준은 없습니다. 단지 재산의 문제를 떠나서, 사회문화적 수준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자부심이 중요합니다. 미국 기준에서 보면, ‘자기주장이 당당해야 한다.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 불법과 부정에 저항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미국에 더하여 ‘페어플레이를 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외국어를 한 가지 정도해야 하며, 악기를 한 가지 다루며, 직접 참여하는 스포츠가 있으며, 남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선진국의 중산층 의미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죠? 돈 보다는 사회적 참여와 남들과 다른 개성 있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진국형 중산층 문화를 많이 닮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씨도 운동은 ‘어부’하잖습니까? 노래도 남 못지않게 잘 부르시고, 군대 시절 장교 식당 취사병 경력 때문에 요리도 꽤하지 않습니까?”
“하하, 신부님. 또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힘이 좀 납니다. 그렇습니다. 꼭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나라는 가난하지만 나눌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것인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나라와 돈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앨버트 놀런’ 신부님의 책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는 가난을 이상으로 삼지 않았다. 도리어 아무도 모자라는 사람이 없게 하려고 애썼다. 바로 이런 목적에서 예수는 물욕과 싸웠고 사람들로 하여금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소유를 나누어 가지라고 촉구했다’(96쪽)는 것입니다. 즉 돈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나누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돈이 많을수록, 나눌 수 있는 재물과 더 많은 기회가 생겨서 좋을 수도 있습니다. 거꾸로 ‘돈이 없어서 나누지 못하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줄어드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가난하면 구원도 멀리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은 돈뿐 아니라 기도와 희생, 작은 미소와 따뜻한 손길까지 너무나 풍부하게 있으니까요.”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산교구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