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인간의 삶을 지지하고 닦아옴에 그에 걸맞은 지적 풍요와 세상살이에 힘이 된다는 걸 어쩌면 우리는 모르고 산다. 문학으로 하여 내가 모르는 비좁은 세상의 이치와 앎의 지혜를 배우고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는 지혜의 샘이 곧 문학이 아닐까 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의 버팀목이 되는 현장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그러므로 나는 왜 정신적 고뇌와 고단한 일상을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잘 모르는 그 기억은 희미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전업이 아닌 취미이며, 노동을 마친 빈 공간의 시간을 할애하는 부단한 수고로서 남들이 할 수 없는 이고 진 생각의 짐을 덜기 위한 이해 불가와 도전의식이 감행하는 나만의 정신적 호재여서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어록에 힘입어 감히 발칙한 발상으로 내 육신을 고문하는 처연함의 모태일 것이다. 끝까지 억지를 쓰며 세상을 살기로 했다. 난무한 필서, 오늘도 쓰고 지우고 구겨가며 정신적 지주와 힘겨루기를 한다. 내일도 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는 오늘이며, 행복한 일상이다. 인생은 행복의 열반에 이르기 위한 자기 부정의 길이라고 티벳의 지도자 붓다, 그가 역설했다. 현실의 짐, 마음의 짐을 기꺼이 내려놓고 주어진 삶에 익숙할 때 그것이 자기 부정의 열반임을 자처하는 의미가 깊다. 그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는 인생 저마다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을 거라는 의미일 테고, 나 하고자 했던 일에 도취되어 최선을 다했을 때 얻어지는 성취감일 때 그것이 곧 그가 이른 행복의 열반이라는 뜻풀이가 아닐까 한다. 그릇이 큰 인물이 한 말씀을, 감히 무지한 내가 그 까닭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눈이 보배여서 보고 느끼며 살아온 삶의 연륜을 훔치기라도 해야 할 만큼의 시간에 청산의 한 줄기 빛이라도 보았어야 할 작금에 허망히 몸은 늙고, 삶은 기로에 서 있을 때 이것 또한 공적 열반에 속한다면 나도 붓다와 하나가 된다. 물씬 한 줄기 소나기에 땅이 패여 돌멩이 하나 흉물스럽게 드러나듯 나의 정체성이 붉어졌다. 표적과 궤적이 있다. 표적은 내 생각의 목표물이고, 쾌적은 목표로 달성했을 때를 이른다. 그 궤적에 맞춰 시위를 당긴다. 나에게 그 처연함이 있다. 내 안에 붓다가 있다.
<작가소개>
저자 허신
인천 서구 가좌동 출생
토박이 작가
[작가연보]
2013년 「꿈이 머문 슬픈 인형」
2014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24년 「이 시대의 자화상」, 「잊혀진 주소 168번지」
<한낮 허상을 꾸다>
한 편의 시네마에서 하나의 특별한 장면이 평생 기억에 남듯 몽롱한 나는 선잠 속에 기억이 생생한 허상의 판타지를 꿈꾼다. 아득히 들리는 해괴한 목소리 쉰 노파의 신음 같은 소리다. 몽블랑. 나는 파란 눈을 가진 늙은이야. 톱스타 배우가 늙어버렸어. 쭈굴쭈굴한 골 깊은 이마의 주름은 마치 출렁이는 바다의 파도 같아. 또 한 번 들리는 목소리는 가래가 찬, 거칠고 칙칙한 목소리였다. 아이를 갖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저 늙은이가 미쳤나? 뭔 애 타령을 하고 돌아다녀. 나는 노파를 힐난하며 노려본다. 그러나 허리 꾸부정한 노파의 배는 올챙이처럼 부풀 대로 부푼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였다. 오! 마이 갓. 이거 봐! 나는 평생에 아기를 가져보지 못했어. 두 번을 결혼했으나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소박맞고 쫓겨나 거리를 전전하다 우연히 노숙자 영감과 사랑을 나눴지. 하늘이 날 도운 게야. 젊어서도 안 생기던 애가 나이 80에 생긴 게야. 세상을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괴변도 생기드라구. 으흘흘흘 흘리는 노파의 음흉한 웃음에 내 팔과 다리에 우둘두둘 소름이 돋는다.
주책이거나 망녕이라구는 생각지 말어. 늙어 거무틱틱하지만 나는 샤방샤방한 미인이었어. 물론 젊을 때 소싯적 이야기지만, 세계적 미인이었다구. 클레오파트라보다도, 마돈나보다도 더 예뻤지. 그러면서 노파는 손거울을 들어 화장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나 좀 봐줘. 이쁘지? 예전만은 못하지만 말이야. 나는 헉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을 친다. 눈은 온전한 여우 눈이었다. 얼굴은 백색으로 창백하다 못해 푸른 빛이 났다. 짙게 이겨 바른 붉은색 루즈는 턱밑까지 녹아내려 온통 붉은 피 칠갑을 한 모양새였다. 히히 어때? 이쁘지? 히죽거리던 노파가 갑자기 나를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며 다가온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으악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나의 심신이 많이 지쳐 있나 보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엉터리 괴변의 꿈을 꾸다니 지겹고 난해했던 생활전선인 회사를 나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무료하겠구나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원하던, 하고 싶은 일이어서 책상 앞의 난 행복한 하루하루다. 그 재미에 잠자는 걸 잊으리만큼 열심이다 보니 심신이 지친 나머지 신경과민까지 겹친 과민성 콤플렉스가 주는 요주의 위험 신호가 아닐까. 어떤 하나의 사물에 신경을 곤두세워 그것에 탐닉할 때 정신적 허상이 보이듯이 내가 지금 그 일을 경험했던 거다. 머리가 지끈대고 어지럽다. 현실과 같은 생생한 판타지였다. 아직도 가슴이 뛴다.
<서평>
이 책은 저자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느낌, 눈에 보이고 거슬리는 세간의 비뚤어진 상식 이하 오만과 불신, 그 이상을 꼬집어 사회 경종을 자처하는 의미가 깊다. 일명 세상 풍자로 유머를 곁들인 독특함과 시적인 듯하지만 시적이지 않은 토막글 형식의 너스레 줄임글로 평범한 서민적 생각을 담은 지루하지 않은 미니 댓글임을 밝혀둔다. 설사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거룩한 로고, 사람 人(인)! 근엄한 척, 우아한 척, 지적인 척 인간 평면의 아우름이 있는 반면 만물의 영장류인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자기 부정의 불신이 도래한다. 마음에 숨어 있는 내숭과 비열, 아집과 독선, 음흉은 어쩌란 말이냐? 주어진 한평생을 사랑으로 살자고 했다. 당하고 견디고 인내하며 묻어두었던 가슴앓이가 이 글 속에 여우와 능구렁이가 되어 산다. 고로 인생 절반의 희나리, 이중의 탈을 쓴 인간 군상의 허물이 여기에 묻어 있다. 막돼먹은 이무기도 좋은 물을 만나면 용이 될 수 있단다. 그렇다. 인생은 행복의 열반에 이르기 위한 자기 부정을 최대한 이용하는 미완의 척추동물임을 어찌 부인하랴.
(허신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80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