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덮친 입주난으로 강남선 3억 낮춰도 전세 안나간다.
중앙일보|함종선|2022.08.03.
재개발 투자를 통해 이달 말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강북 아파트 단지의 집주인이 된 김모씨(48)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금 사는 경기 남양주시의 아파트가 안 팔려 입주 예정 아파트를 전세로 내놨는데, 전셋집을 찾는 사람도 없어서다. 김씨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때문에 은행 대출이 다 막혀있어 잔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잔금을 치르려면 전셋값을 더 내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급 아파트 거래절벽 현상과 역대급 대출규제가 동시에 이어지면서 새 아파트 입주단지에서는 극심한 '입주난'이 벌어지고 있다. 집주인이 이사 못 오고 전셋집도 안 나가 입주 후에도 '불 꺼진 창'으로 있는 집들이 늘고 있고, 이전 계약가보다 크게 가격을 낮춘 '급전세'로 세입자를 구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입주 단지의 입주난은 주택 거래가 원활하지 않을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주거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에도 입주난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30일로 정식 입주 기간이 끝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센트럴아이파크(499가구)의 경우 아직 잔금을 못 내 연체이자를 내는 집주인들이 20%가량 된다.
인근에서 영업하는 공인중개사는 "요즘은 전세계약갱신청구권으로 인해 한 번 정해진 전셋값을 4년 동안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집주인들이 입주 예정 기간 내에 전셋값을 쉽사리 내리지 못했다"며 "하지만 '빈집' 상태가 길어지면서 요즘은 계약희망자만 있으면 전셋값을 조정할 수 있다고 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전용 59㎡의 경우 올 상반기에 14~15억원대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12억원대에 세입자를 찾는 물건이 나오고 있다.
이달 말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1048가구)는 두 달 전 9억원대에 계약되던 전용84㎡ 전셋값이 최근 7억원대로 낮아졌다. 인근의 공인중개사는 "전셋집을 찾는 세입자보다 전셋집을 내놓는 집주인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전셋값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5320가구나 되는 대단지인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e편한세상금빛그랑메종은 오는 11월 입주를 앞두고 집주인들 사이에 세입자 구하기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단지 전용 59㎡ 전셋값은 지난 6월 4~5억원대에서 최근 3억5000만원까지 급락했다. 단지 인근에서 영업하는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20평형대 아파트 전셋값이 한 달에 1억이나 내려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올해 6314가구의 새 아파트가 입주했거나 입주할 예정인 경기도 평택시에서는 전셋집을 찾는 수요가 적어 아파트 시세 대비 전세가율이 20~30%에 불과한 단지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전용 84㎡ 아파트가 시세는 10억원인데, 전셋값은 2억~3억원대인 경우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중도금 대출 9억 규제와 15억 아파트 대출규제, 그리고 DSR규제 등으로 매매는 물론 전세까지 '거래절벽'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새 아파트 입주 단지의 입주난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싸고 좋은 전셋집을 찾는 전세 수요자에게는 새 아파트 입주단지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