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 리마케팅
언제부터인지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마켓을 막론하고 세제 코너에는 본 상품 옆에 보충형 제품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본 상품을 한 번만 사면, 그 이후에는 보충형을 사서 부어 쓸 수 있도록 해놓았다. 보충형이 인기 있는 이유는 용기와 포장비가 비용에서 제외되므로 그만큼 가격이 저렴하다는 데 있다. 또 플라스틱인 포장 용기를 덜 사용함으로써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준다.
전문기자 김희연
보충, 수선, 보상으로 고객 잡기
용기 가격이 제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 거품 포장이 문제시됐던 화장품도 점차 보충형 제품이 늘어가고 있다. 파우더, 팩트, 파운데이션 같은 스킨 커버 제품이나 아이섀도, 립글로스 같은 색조 제품은 제품이 담겨 있는 틀만 갈아 끼우면 되기 때문에 일찍부터 보충형이 도입됐다. 요즘은 액체로 된 화장품에서도 보충형을 볼 수 있다. 대신 본 제품의 용기는 튼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보충형(리필, Refill) 제품 외에도 수선(리폼, Reform)이나 보상(리워드, Reward)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는 ‘리마케팅(Re-marketing)’이 인기다. 이러한 리마케팅은 우선 본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가격만 저렴해서는 그냥 할인 제품을 구입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리마케팅은 소비자가 보충, 수선, 보상 제품이 주는 적극적인 가치를 선택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공급자의 제품 개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저가 이상의 경쟁력을 보여 주고 있다.
유행이 지난 옷이나 가방을 수선해서 사용하는 리폼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비싼 옷의 낡은 부분을 덧대거나 잘라내던 예전과는 달리, 비싼 옷이든 싼 옷이든 더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 수선집을 찾는다. 평상복뿐 아니라 수영복에서부터 브래지어 같은 속옷까지 수선을 맡기는 일이 많아졌다. 재단하여 옷을 잘라내고 비즈를 붙이거나 수를 놓아 새 옷으로 디자인하다시피 하는 유명 수선집에는 대기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옷만이 아니다. 집안의 커튼, 소파, 벽 등도 리폼 대상이다. 레이스를 붙이거나 시트지를 바르면 가구나 인테리어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렇게 집안을 리폼하는 것은 확실히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옷 수선은 조금 다르다. 리폼에 맛을 들여 리폼할 싼 옷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흔하다. 리폼에 들이는 공과 돈을 생각하면, 차라리 제대로 된 새 옷을 한 벌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알뜰하게 나만의 옷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치는 새 기성복으로는 얻을 수 없다.
보충형 제품이나 수선과 아울러 보상판매도 활발하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대표적인 보상판매 상품이다. 중고제품을 가져오면 신상품을 할인해 구매할 수 있는 보상판매는 막상 할인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선택의 갈림길에 선 기존의 소비자에게는 좋은 미끼가 될 수 있다.
우량고객이여, 떠나지 말아요
보충, 수선, 보상은 모두 기존 고객의 재구매를 노린 마케팅 전략이다. 좀 더 범위를 넓혀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우량고객을 확대하려는 일련의 활동을 리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신규 고객을 무작위로 확보하기보다 우량고객에게 계속 선택받는 것이 매출과 수익 면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높아질수록 리마케팅은 활발해질 것이다.
이러한 리마케팅은 금융권에서 가장 눈에 띈다. 20%의 상위 고객이 80%의 수익을 가져온다는 인식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리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은 PB(Private Banking) 등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1차 금융권만이 아니다. 최근 신용카드 회사들의 광고만 보아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삼성카드 포인트 연구소’라는 가상의 장소를 둘러보며 혜택을 강조했던 삼성카드는 ‘마이 라이프, 마이 프라이드’라는 구호로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삼성카드는 프리미엄 회원을 상대로 전용 서비스와 이벤트를 제공하여 자사 카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카드도 놀라운 포인트 적립을 강조하고 있고, 체조까지 전파하며 현명한 카드 사용을 권고했던 비씨카드도 이탈 고객을 막고 사용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흥은행과 완전히 통합한 신한은행, 굿모닝신한증권과 연계한 신한카드도 ‘카드 사용의 비밀’이라며 잦은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주머니와 핸드백에서 뛰쳐나오려고 하는 KB카드 광고는 이제는 카드회사가 가입보다는 사용을 원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한편 리마케팅과 발음이 같은 리마케팅(Remarketing)이라는 용어는 이미 있는 제품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다시 수립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편의점의 삼각김밥이다. 10년가량 지지부진한 판매를 면치 못하던 삼각김밥은 맛과 종류를 다변화하는 리마케팅을 거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환타나 써니텐처럼 오래전 출시된 제품이 재미난 광고로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비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사례다. 바야흐로 마케팅에도 수선이 필요한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사랑받는 제품이 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