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은 온전히 자기 존재와 대화하는 행위이다. 그것도 정적에 잠긴 아름다운 원시의 풍경 속을 걷는다면 거룩한 성전에 앉아 기도하는 일처럼 경건해지는 시간이다. 육체와 영혼이 맑게 정화되는 어떤 순간이 길 위의 순례자로 우리를 불러 세우곤 한다.
일본 도후쿠 지방에 위치한 오제 습지는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비밀의 정원처럼 신비롭다. 화산폭발로 1500미터의 산중에 거대한 분화구가 만들어졌고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분화구로 모여들면서 수많은 여울과 호수가 생겨 마치 공작새가 화려한 꼬리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그리하여 공작새의 꼬리 같은 여울, 오제(尾瀨)라 부른다.
오제는 고산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10월이면 문을 닫는다. 서리 맞은 단풍잎이 투명한 햇살 아래 나신을 드러내고 발아래 핀 꽃들이 요정의 노래처럼 고개를 내밀 때 바람 소리는 벌써 허허로워지기 시작한다. 그때 가장 화려할 때 이별을 고하는 일처럼 창백해진 호숫가로 구름이 내려오고 별들이 내려오고 살아있는 것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듯 붉게 물들어간다.
중심을 잃어버린 가을 숲의 잎새가 우수수 흔들릴 때 오제의 초원 위에는 최후의 합창곡이 울려 퍼지고 아득해진 길 하나가 우리 앞에 떠오른다. 가을 안개 가득히 내려앉은 그 길을 따라가면 쓸쓸해진 목로木路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지금 그대의 삶은 어느 가을 속을 걸어가고 있느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