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열정 게이머' 빈 살만, K-게임에 꽂히다[머니S리포트-IT업계에 부는 모래바람]② 성장 잠재력 우수한 한국 게임들에 투자 확대
[편집자주]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가 석유산업 대신에 게임과 콘텐츠 등 미래 먹거리에 사활을 걸었다. 경제 체질을 바꿔 석유 왕국에서 기술 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사막 한가운데 길이 170km의 직선으로 건설되는 스마트 시티 '네옴시티'가 그 일환이다. 5000억달러를 쏟아부어 100% 재생에너지로 돌아가는 친환경 기술 도시를 세운다. 사우디를 이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을 기술 파트너로 삼고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 게임과 콘텐츠에 관심이 높아 투자 행보가 이어질 전망이다. 사우디의 움직임이 국내 IT 및 콘텐츠 업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머니S 양진원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사우디 네옴시티를 잡아라… 한국 IT업계, 주가 오른다
② '열정 게이머' 빈 살만, K-게임에 꽂히다
③ K-콘텐츠에 매료된 사우디… 전방위 협력 가속
변화를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가 오일머니를 앞세워 한국 게임업계에 손을 뻗고 있다. 국내 굴지 게임사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대주주로 등극한 데 이어 국내 중소게임사 시프트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석유 중심의 산업 구조를 탈피하고 사우디의 새로운 동력으로 게임 산업을 낙점한 것으로 관측된다. 사우디의 권력자이면서 게이머로 알려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K-게임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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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국내 게임 업계의 큰 손… 미래 비전으로 게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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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모래바람이 게임업계에 거세게 불고 있다. 빈 살만이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국내 게임 업계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PIF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부펀드 중 하나로 펀드 운용 기금만 5000억달러(약 620조8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막강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올해 넥슨과 엔씨소프트 지분을 대량 사들였다. 넥슨의 4대 주주(지분율 7.09%)로 올라섰고 엔씨소프트의 경우 김택진 대표에 이은 2대 주주(지분율 9.26%)다.
서브컬처 게임 '승리의 여신:니케'를 선보이며 상승세를 타는 시프트업도 관심을 받고 있다. PIF와 사우디벤처캐피탈(SVC) 관계자들은 지난 9월 시프트업 본사를 찾았고 지난 11월17일에는 양국 정부와 경제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사우디 투자부는 시프트업과 MOU를 체결, 게임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을 약속했다.
사우디 정부는 변혁기를 맞고 있다. 석유 의존형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정보기술(IT), 콘텐츠 등 여러 산업 분야에 진출해 '제2의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계획이다.
게임 산업은 사우디의 중요한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을 '비디오 게임과 함께 자란 첫 세대'라고 밝힐 만큼 게임 사랑이 대단하다.
PIF는 올해 초 게임 관련 법인 '새비 게이밍 그룹(Savvy Gaming Group·SGG)'을 설립하고 국내 게임사뿐 아니라 액티비전 블리자드, 일본 게임사 캡콤 지분을 잇달아 사들였다. 유가가 치솟은 덕분에 늘어난 PIF 여유자금을 기반으로 활발한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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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옴시티도 관심 갖는 국내 게임 업계… 위메이드 "장기적으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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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 업계는 사우디 초대형 스마트 시티 '네옴시티'에도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네옴시티는 공식적인 사업비만 5000억달러에 달하는 스마트시티 건설 프로젝트로 빈 살만 왕세자가 비전 2030을 위해 사활을 건 사업이다. 최첨단 기술 도시를 세워 일자리 창출과 경제 부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네옴시티를 (아랍에미리트(UAE)의 가장 큰 도시인) 아부다비보다 크게 만들 것"이라며 "네옴시티를 통해 사우디 주식 시장 가치가 1조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서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가 네옴시티에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장현국 대표는 지난 11월17일 17일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2022' 위메이드 기자간담회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동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장 대표는 이날 "네옴시티 관련 한국 기업들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블록체인 기업은 없었다"며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이코노미가 구축돼야 네옴시티라는 도시가 완성된다고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에서 벤처캐피탈부터 투자부 장관까지 방문했는데 위메이드도 하나씩 맞춰갈 것"이라고도 했다.
위메이드는 현재 UAE 아부다비에 법인을 설립하고 있는데 이를 발판 삼아 네옴시티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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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사, 사우디 눈도장 위해선 슈퍼 IP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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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는 인근 중동국가인 UAE와 함께 인구(3534만명)의 절반 이상이 35세 미만으로 젊다. 인터넷 보급률이 95%에 달하지만 젊은 층들이 소비할 문화 대상은 별로 없다. 빈 살만 왕세자의 문화 개방 정책과 맞물려 이(e)스포츠와 게임 산업이 부상하고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게임사가 사우디 게임 시장에 깃발을 꽂기 위한 관건은 지식재산권(IP) 역량이다. PIF는 시프트업 말고도 펄어비스, 네오 위즈 등 중소·중견 게임사들을 투자 리스트에 올려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게임사는 흥행성이 높은 IP를 갖고 있거나 신규 IP 개발 역량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네오위즈는 콘솔 게임 'P의 거짓'으로 독일 게임 콘퍼런스 '게임스컴'에서 3관왕을 거머쥔 바 있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IP 이후 붉은사막과 도깨비 등 신작 IP 출시를 준비 중이다. 슈퍼 IP를 가진 게임사들은 모바일, PC, 콘솔 등 장르를 아우르며 플랫폼을 확장할 수 있어 성장 잠재력이 크다.
넥슨, 엔씨소프트와 더불어 3N으로 불리는 넷마블이 사우디의 눈에 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넷마블은 자체 인기 IP가 적어 외부 IP를 수혈해 게임 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탄탄한 IP를 구축한 회사가 경쟁력이 있다"며 "최근 투자를 계기로 중동 진출이 활발해진다면 K-게임 세계 시장에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