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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하나 살리려고 20억 원을 소비하다니? 그것도 2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매스컴의 찬반 논쟁과 함께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화제였다.
- ▲ 1 용계리 은행나무는 공사 때 뿌리와 가지를 상당 부분 잘라 냈으나 여전히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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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된 700년 된 은행나무(높이 37m, 가슴둘레 14.5m, 수간 폭 33m)가 임하댐 건설로 수장될 위기에 처했다. 신목(神木)으로 숭상되어 오던 은행나무를 살리려는 이 지역 주민들의 구명운동은 10여 년간이나 이어지고 그 노력의 결과로 600여 톤 이상 되는 거목의 뿌리와 원목을 15m 위로 어렵게 들어 올렸다.
당시 20억 원이란 엄청난 예산도 물론 문제였지만 이를 상식(上植)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고심하던 중 한 회사가 상식 공사를 시행하고 만약 생육에 실패할 경우 공사비를 전액 변상하기로 공증서를 제출하고서야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4년여 공사 끝에 1994년 10월 8일, 마침내 순조로이 상식 공사를 마쳤고 생육상태 또한 좋아서 기대 이상으로 은행 알이 주저리주저리 열렸다. 이를 수확해서 싹을 틔운 다음 2006년부터 2세(世)목(木) 3,000여 본을 각 기관, 단체, 시민과 전국으로 분양했다.
- ▲ 2 마을주민들은 해마다 제사를 올리며 신목으로 숭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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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은행나무 주변정비와 교량건설 등으로 소요된 전체 경비가 23억 원이나 되었으니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자연을 숭상하는 안동사람들의 온고(溫故) 정신이야말로 정부 예산당국을 감동시켰음은 물론, 세인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훌륭한 스토리로 세월을 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낸 송암 탁순창(卓順昌)공이 낙향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정계(杏亭稽)를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며 이 나무를 극진히 보호했다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용계리 은행나무는 어떤 국가적 변고가 있을 때면 신기하게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어 위기를 알려 주는 신목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마을은 지금 수몰되고 없지만 이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이 나무에 제사를 올리며 신목으로 숭상하고 보호했다.
안동시에서는 이 은행나무 주변을 기점으로 용계골과 전 시가지 가로변에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은행나무 10만 본을 심었다. 그 후 2009년 10월 29일 은행나무 상식 전 과정을 소개한 전시관 개관과 주변 순환도로 개통식(L=9.5km)과 더불어 늦은 가을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잎을 밟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처음으로 용계리 은행나무 추수감사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700세로 수명을 다할 뻔했던 은행나무를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과 노력으로 살려 낸 것은 앞으로도 전설이 되어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다. 또한 용계리 은행나무는 앞으로 그 수명이 800년, 900년을 넘어 1,000년을 넘길 때까지 이어지기를 염원한다.
그리하여 그때도 지금처럼 은행알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눈부시게 노란 은행잎이 환상처럼 바람에 날리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아득한 후손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