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행복은 노후 준비에 달려있다.
은퇴 나이는 짧아지고, 노후 생존 기간은 길어지고 있다. 은퇴 후 적어도 우리에겐 30년 이상이 더 남아 있다. 경제 활동 기간에 필사적으로 이 30년을 준비해 놓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에 행복은 없다.
준비한 은퇴 자산 없이 너무 오래 사는 것은 일찍 사망하는 위험보다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훨씬 치명적이다. 미국 노인학협회 존 헨드릭스 회장은,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거의 혁명적이라고 지적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도 개인도 은퇴 자산을 축적할 시간이나 대책을 세울 기간이 짧다는 것을 뜻한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퍼센트에서 14퍼센트로 증가하는 데 걸린 기간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잘 알 수 있다.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71년, 영국은 47년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19년으로, 초고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프랑스보다는 무려 6배, 미국보다는 3.7배(영국은 2.5배)나 빠른 속도로 황혼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필요한가
인간의 평균수명은 80세 전후지만, 금융회사 등은 고령화 속도와 의료 기술의 발달 등을 고려해 인간의 기대수명을 평균 90세로 잡고 있다. 이를 3단계로 나눠 ‘트리플 30’ 시대라고 하는데, 첫 30년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소비 단계다. 다음 30년은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시기로, 결혼과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등을 위해 목돈을 마련하고, 노후 생활 30년을 위해 비축하는 시기다. 마지막 30년은 은퇴 후의 삶을 정리하는 단계다. 결국, 경제 활동을 하는 두 번째 30년 동안에 생애 재무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은퇴 후의 삶이 결정되는 셈이다. 30년 벌어 60년을 살아야 하는 시대다.
소득이 발생하는 이 30년은 경제적인 독립과 함께 자산 증식을 극대화하고, 아울러 노후까지 준비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퇴직 연령이 낮아지면서, 60세까지 직장에 다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갑작스러운 은퇴를 예상하지 못하고 은퇴 이후에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삶으로 이어진다.
은퇴 후에도 현재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
첫째는, JP모건 인베스트가 발표한 ‘행복한 노후 비용 계산법’에 따른 것으로,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돈은 ‘현재 연봉×{55-(나이/3)-(은퇴 나이/7)}’로 계산한 금액이다. 예를 들면, 연봉이 4천만 원인 A씨(40)가 60세에 은퇴한다면, 약 13억 원이 있어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이 계산법이 풍요로운 노후 생활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려면, 이 공식에서 산출한 금액의 50퍼센트가 적정선이라고 본다.
둘째는, 노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금융기관의 분석 자료로 추정하는 것이다. 부부가 은퇴 후 30년간 사는 데 필요한 노후 자금은, 최저 생활비를 유지할 정도는 4억 8천만 원, 여행을 하고 건강 검진을 받고 하는 중산층 수준은 약 7억 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아래에서 분석한 식비만 보아도 이 금액은 적정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식비만 계산해 보자. 한 끼에 5천 원씩 하루 1만 5천 원, 물가상승률을 4퍼센트로 가정하자.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은, 5천 원이면 평범한 식사지, 그럴듯한 식당에서 돈 걱정 없이 먹는 수준이 아니다. 20년 동안 식비의 합계 금액이 1억 6천300만 원이나 된다. 부부로 계산할 때, 식비만 3억 2천600만 원이나 된다.
우리는 얼마만큼 준비되어 있는가
개인의 노후 준비는 국민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 세 축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3층 구조를 갖고 있는 선진국 사람들도 노후에 돈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차 중심축인 국민연금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상태다. 전문가들이 2003년에 처음으로 재정 계산을 해보았는데, 태생부터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2047년에는 적립 기금이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 얼마만큼 적게 내고 많이 받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현행 보험료율은 9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보험료율 17.5퍼센트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소득 대체율은 60퍼센트인데, 일본 50퍼센트, 캐나다 25퍼센트 등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
간단히 계산해 보자. 납부 기간과 보험금을 받는 기간이 같다면, 소득 대체율이 60퍼센트가 되려면 현재 평균소득의 60퍼센트를 내야 한다. 40년 내고 20년 동안 받는다면, 그 반인 30퍼센트를 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연금은, 9퍼센트를 내면 노후에 60퍼센트를 받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만한 수익률을 낼 상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개발기구의 연금제도 개선 권고안도, 국민연금이라는 사회보장 외에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을 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둘째 축인 기업연금은 2006년에 시작했다. 이제 막 걸음마 상태니, 개인이 기대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차, 2차 축이 금이 가거나 기초를 이제 쌓는 중이고, 그렇다면 3차 축인 개인연금은 어떤가. 가입자가 절반도 되지 않는데다 가입 금액이 이삼십만 원대로 턱없이 부족하다. 해는 저물어 가고 갈 길은 먼데, 우리는 고령화의 가속화로 쓰나미급 충격 속에 있는 국민연금과, 이제 막 출발한 퇴직연금, 소액으로 준비한 개인연금의 삼중고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후진국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형이다. 반면 선진국일수록 개인이 축적한 은퇴 자산이 많다. 세계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스위스에서는, 퇴직연금 적용을 받는 근로자들은 1층(사회보장)과 2층(퇴직연금) 보장으로 기존 소득의 60퍼센트를 보장받게 된다. (스위스의 퇴직연금은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오랜 연금 역사를 가진 나라답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3층 기둥 체제가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다. 3층 연금 체계는 상호 보완으로 국민의 노후를 촘촘히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금보험 등 생명보험에 가입한 금액이 1인당 연간 300만 원이 넘는다.
선진국의 연금 제도를 취재하고 연구한 학자와 기자들은 한결같이 다음을 권고한다.
첫째, 무엇보다 선진국 국민은 젊을 때부터 노후 준비를 서두른다. 국가연금 등 사회보장 제도에 노후를 의지할 수 없다는 자각이 낳은 변화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전략을 세우고, 상황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꿔 나간다. 주식 투자에서는 적은 금액을 다달이 적립해 나가는 정액 분할 투자법을 널리 활용해, 투자 위험을 상당히 줄이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셋째, 위험 관리 측면에서 보험 가입은 필수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과거에는 금리가 10퍼센트를 넘었기에, ‘단기 저축’에 집중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와 고령화 사회 진입 등 시대적 변화로 말미암아 예금은 자산 증식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예전에는 은퇴 후 10년 정도 먹고살 것만 준비해도 되었지만, 지금은 은퇴 후 20~30년 먹고살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일시적 목돈 마련에서 이제는 교육 자금, 노후 준비 등 목적에 맞게 준비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주식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주식시장은 늘 출렁거린다. 때로는 마치 서핑하듯이 높은 파도를 타고 대박을 터트리는 개미도 있지만, 그 행운과 능력이 노후까지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 펀드와 부동산은 노후의 삶을 풍요케 할 중요한 지류지만, 본류는 아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도, 투자란 결국 신의 영역이다. 펀드나 부동산은 은퇴 자산의 보완재로서의 구실을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펀드 전문가들은 ‘100 - 나이’ 법칙을 제시한다.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서 나온 비율만큼은 수익성 위주의 투자 자산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안정성 위주의 자산에 배분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35세는 ‘100 - 35 = 65’, 즉 65퍼센트는 공격적인 자산에, 35퍼센트는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여 보수적인 보험회사도, 연금보험에 펀드를 가미한 변액보험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변액연금이든 펀드든, 하나로만 노후를 준비하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일반 연금보험과 잘 혼합하여 당신의 노후를 안정되게 만들기 바란다.
첫째, 은퇴 시 기초 생활비 : 최소한의 생활비로,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입이 발생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연금보험으로 준비한다. 둘째, 문화생활비와 여유 자금 : 인생을 즐겁게. 적립식 펀드나 부동산 등.
분명히 첫째와 둘째는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시간, 의지, 방법, 모두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은퇴 기간이 늘어나도, 다시 말해, 예상보다 더 오래 살아도 충분한 수입을 제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은퇴 자산은 주택 자금 마련처럼 목돈 마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은퇴 이후에 소득이 없는 기간에 생활비로 사용해야 하므로, 달마다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이어야 한다. 또, 평균수명 상승과 맞추어 연금 수령 기간도, 일정한 기간이 아닌, 사망 시점까지 종신토록 지급되도록 준비해야만 안정적인 소득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연금보험(종신형)이다. 부동산과 주식 등 다른 투자 상품은, 아무리 안정적이라 해도 죽기 전에 돈이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재테크 관련 잡지 <머니>도, 행복한 은퇴 생활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며 연금을 권한다.
첫째, 은퇴 시점을 스스로 정하라. 그래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뿐 아니라, 은퇴 이후에 돈 벌 기회를 찾기가 쉽다. 둘째, 적극적으로 일하고 살아라. 셋째, 여러 가지 일정한 수입원이 되도록 자산을 분산 투자하라. 목돈을 주식이나 채권에 넣어 두는 것보다는, 달마다 일정한 소득이 생기도록 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못해도 최저 생활비는, 지속적인 소득원이며 생명선인 연금보험에 가입해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인생의 인프라다. 자신을 절제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이 인프라를 한번 구축하면, 은퇴 이후에 마르지 않는 샘물 구실을 톡톡히 할 것이다.
언제 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좋은가
은퇴를 위한 투자는, 쓰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누리면서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선진국도 10퍼센트가 안 된다.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바로 가입하라.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할 이론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예상 수익률 7퍼센트로 설정하고 현재 30세, 40세, 50세인 사람이 10년간 투자하여 65세에 10억을 만들려면 해마다 얼마를 투자해야 할까? 30세는 해마다 1천200만 원을 10년간 투자하면 되지만, 40세 때 시작하면 그 두 배가량인 2천370만 원이 필요하다. 50세가 되었을 때 시작하면 해마다 4천650만 원이 필요해, 30세와 비교할 때, 약 3.8배다.
바로 ‘복리’라는 마술의 힘 때문이다. 버나드 지크가 뉴스레터에 낸 문제를 응용하여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31세인 홍길동은 10년간 연 10퍼센트의 복리 상품에 해마다 천만 원씩 모두 1억 원을 저축하고, 40세에 이르러 더는 저축을 하지 않고 65세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반면 변사또는 40세 때, 65세가 될 때까지 연 10퍼센트 복리 상품에 해마다 천만 원씩 모두 2억 6천만 원을 저축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65세 때 누가 더 많은 돈을 타게 될까? 놀랍게도 홍길동이다. 변사또는 단 한 해도 홍길동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은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복리의 마술 같은 힘이다.
연금은 시간과 벌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다.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면, 이길 확률은 아주 높아진다.
바람직한 은퇴를 위한 네 가지 단계
아무리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고 해도 노후가 불행하다면, 그 인생은 불행한 것이다. 인생도 곱셈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행복+행복+행복+행복+불행’은 네 번 행복, 한 번 불행이 아니다. ‘행복×행복×행복×행복×불행 = 불행’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세대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불행을 선택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후 준비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남아 있고, 어느 정도 선택권도 갖고 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서 인생의 방향을 행복으로 돌릴 것인가? 먼저, 인생을 길게 보아 꾸준히 여윳돈을 만들고, 일정한 기간 적립해 나가야 한다. 은퇴 설계는 곧 인생 후반부의 설계다. 그러므로 은퇴는 꼭 경제적인 것으로만 해결되지는 않는다. 바람직한 은퇴 준비는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은퇴 후 삶의 모습과 비전을 세운다. 은퇴는 정신적으로도 큰 도전이다. 무료함과 상실감에 빠지지 않고 보람 있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은퇴 시기를 결정한다. 은퇴는 퇴직처럼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줄여 가고 바꾸는 것이다. 갑자기 다른 사람 때문에 일상생활의 패턴이 바뀌게 되면 큰 충격을 받는다. 스스로 은퇴를 언제쯤 할지 결정해야 차분히 대처할 수 있다. 셋째, 경제적인 준비를 서두른다. 직장생활 시작과 함께 은퇴 자금 마련을 위한 저축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은퇴 시점까지 소득을 높이거나 지출을 감소함으로써 잉여 소득을 확보해 은퇴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 선진국 사람들의 최우선 목표는 교육 자금도, 주택 자금도 아닌 은퇴 설계다. 당신도 이 추세에 맞게 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넷째, 은퇴 시점을 늦추거나, 은퇴 이후에 시간제 업무를 가짐으로써 현금 소득 흐름을 유지하라.
<글 : 권광영>
출처 : [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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