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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 명시감상 1권에서
외딴 유치원
반칠환
아랫목에 밥 묻어 놨다----
어머니, 품 팔러 새벽 이슬 차며 나가시고
막내야, 집 잘 봐라
형, 누나 학교 가고 나면 어린 나 아버지와 집 지키네
산지기 외딴집 여름해 길고,
놀아줄 친구조차 없었지만 나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네
외양간엔 무섭지만 형아 같은 중송아지,
마루 밑에 양은냄빈 왈칵 물어도 내 손은 잘근 씹는 검줄이,
타작 끝난 콩섶으로 들락거리던 복실꼬리 줄다람쥐,
엄마처럼 엉덩이 푸짐한 암탉도 한 마리 있었다네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
원생은 나 하나뿐인 외딴 유치원, 솔뫼 고개 우리 집
아니 아니, 나 말고도 봄에 한배 내린 병아리 떼가 있었네
그렇지만 다섯살배기 나보다 훨씬 재빠르고 약았다네
병아리 쫓아, 다람쥐 쫓아 텃밭 빠대다보면,
아버지 부르시네
풍으로 떨던 아버지,
마당에 비친 처마 그림자 내다보고 점심 먹자 하시네
해가 높아졌네, 저 해 기울면 엄마가 오시겠지
----반칠환, [외딴 유치원]({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와시학사, 2001년) 전문
반칠환 시인은 196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고, 198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또한,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과 {웃음의 힘} 등의 시집과, 그리고 {하늘 궁전의 비밀}, {지킴이는 뭘 지키지?} 등의 동화집을 출간한 바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가계家系에 대해서는 한사코 침묵을 지켜왔지만, 그러나 반칠환 시인은 그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에서 그의 어린 시절과 그의 가계에 대해서, 보다 자연스럽고, 보다 사실적이고, 보다 완전하고, 보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이야기들로 재구성해놓은 바가 있다. 가난이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 사람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가난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사람은 낙천주의자가 된다. 왜냐하면 전자의 의식은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후자의 사회적 지위는 그의 의식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본가와 노동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계급적 질서에 반발하여 부의 공정한 분배와 만인 평등 사회를 추구하게 되고, 후자는 자본가와 노동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계급적 질서보다는 이 세상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한다. 나는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 가난마저도 더욱 더 의연하고 꿋꿋하게 살아나감으로써 그 인간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어린 시절은 다만 어둠컴컴한 과거일 뿐이며,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남 부끄러운 상처일 뿐인 것이다.
나의 가난은 아직도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반칠환 시인의 가난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한사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는 그의 어린 시절을 매우 즐겁고 기쁘게 이야기 한다. 충북 청주시 용정동 84번지, 솔뫼 고개의 산지기 움막집에서 천 년 사찰인 보살사를 등 지고 있는 낙가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으로는 150여 호의 이정골 마을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80여 호의 중고개 마을이 있다.(지금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중고개 마을이 사라지고, 이정골 마을도 많이 변해버렸지만.) 이정골 마을과 중고개 마을의 중간 지점에, 조금은 널찍한 진사래 들판과 낙가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솔뫼고개’이며, 그 ‘솔뫼고개’의 산지기 움막집이 반칠환 시인과 내가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 반상규(1916~1969), 어머니 정간옥(1921~2000), 장남 반성환(사망), 이남 반길환, 장녀 반용산(사망), 삼남 반용환, 사남 반경환, 오남 반동한, 차녀 반순환, 삼녀 반수환(사망), 육남 반칠환----. 아버지 반상규씨와 어머니 정간옥 여사 사이에는 육남 삼녀가 있었지만, 반칠환 시인이 태어났을 때는 장남과 장녀가 이미 사망한 뒤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칠환’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칠환 시인이 두 살인가, 세 살이었을 때, 그의 바로 손 위의 누나인 수환이마저도 홍역을 앓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노동력을 상실한 천식환자였고, 육이오 이후부터는 어머니의 노동력에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매우 어렵고도 궁핍한 집안이었다. 반길환, 반용환, 반경환은 상급학교 진학은 커녕, 초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값싼 싸구려 상품처럼 팔려 나갔던 곳, 산전뙈기 1,000여평과 수십 그루의 감나무와 두 거목의 은행나무와 울창했던 참나무 숲과, 해발 400여 미터의 아주 아름답고 수려했던 낙가산이 그 산지기 외딴집의 유일한 터전이자 그 배경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반칠환 시인은 마르크스의 반대방향에서, 인간의 사회적 지위가 존재의 의식을 결정하지 않고, 인간의 의식이 그 존재를 결정짓는다는 리얼리스트이며, 그의 [외딴 유치원]은 그 의식의 독창성이 빛나는 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 그 지위보다 못할 때 그는 사물화된 인간이며, 그는 그 지위(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사장 등)에 연연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그 지위보다 나을 때 그는 자유인이 되고, 그는 그 지위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모든 가치는 정신의 가치이며, 정신의 가치가 사물의 가치(상품의 가치)를 압도하게 된다. 산전뙈기 밭일과 날품팔이 노동으로 살아가던 어머니, 중풍으로 떨던 아버지, 어렵고도 힘든 시절만을 보내고 있는 형과 누나 등의 반대방향에서,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이라는 반칠환 시인의 티없이 맑고 순진했던 시구들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아랫목에 밥 묻어 놨다/ 어머니, 품 팔러 새벽 이슬 차며 나가시고”는 초여름 새벽에 이웃 마을로 일을 하러 나가시면서도 병든 남편과 어린 막내 아들이 찬밥을 먹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배어 있는 시구이며, “막내야, 집 잘 봐라/ 형, 누나 학교 가고 나면 어린 나 아버지와 집 지키네“라는 시구는 형과 누나 등이 학교에 가고 나면, 도둑조차도 외면하는 산지기 외딴집에서 그 막내 아들의 외톨이의 처지가 배어 있는 시구이다. 외톨이는 소외된 인간이며, 최악의 생존조건에 처해 있는 인간을 말한다. 또한, 외딴집도 소외된 집이며, 최악의 생존 조건 속에 처해 있는 인간의 집을 말한다. 그러나 반칠환 시인은 ”산지기 외딴집 여름해 길고/ 놀아줄 친구조차 없었지만 나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네“라고 노래한다. 왜냐하면 ”외양간엔 무섭지만 형아 같은 중송아지/ 마루 밑에 양은냄빈 왈칵 물어도 내 손은 잘근 씹는 검줄이/ 타작 끝난 콩섶으로 들락거리던 복실꼬리 줄다람쥐/ 엄마처럼 엉덩이 푸짐한 암탉도 한 마리 있었다네/....../ 아니 아니, 나 말고도 봄에 한배 내린 병아리 떼“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곳이 ”원생은 나 하나뿐인 외딴 유치원, 솔뫼고개 우리집“이었을지라도, 그 어린 아이에게는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이라는 그 이상적인 호기심이 있었던 것이다.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이라는 시구는 다섯 살배기의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는 시구이지만, 그러나 그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호기呼氣, 즉 자연스러운 숨쉬기로 이어지고, 그 자연스러운 숨쉬기는 낯선 세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호기好機로 이어진다. 그 호기는 마음이 넓고 뜻이 큰 모양의 호연지기浩然之氣로 이어지고, 그 호연지기는 사나이 대장부답고 장중하고 웅대한 기상을 뜻하는 호기豪氣로 이어지며, 고산영봉적高山靈峰的인 언어와 그 의미들의 문맥을 형성하게 된다. 외양간의 중송아지도 그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고 엉덩이 푸짐한 암탉과 병아리 새끼들도 그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호기심은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이라는 그의 자연스러운 숨쉬기로 이어지고, 그 자연스러운 숨쉬기는 ”병아리 쫓아, 다람쥐 쫓아 텃밭을 빠대다 보면“의 호기好機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호기는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이라는 호연지기浩然之氣와 호기豪氣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세상은 그의 ‘외딴 유치원’이며, 그 [외딴 유치원]은 그의 이상적인 천국이 된다.
반칠환 시인은 그의 ‘외딴 유치원’, 즉 그의 호기심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새벽부터 일을 나가 해가 기울어야 돌아오시는 어머니는 조금도 염려가 안 되고, 중풍으로 떨며 반신불수의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앞날도 염려가 안 된다. 어렵고 힘들게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형과 누나 등의 장래도 염려가 안 되고, 산지기 외딴집의 외톨이의 신세도 걱정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호기심 천국에서 중송아지, 검줄이, 줄다람쥐, 암탉, 병아리 새끼들을 벗삼아, 그 외딴 유치원의 드넓은 천국을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살 배기 어린 아이가 전혀 떼를 쓰지 않고, 그처럼 잘 놀았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보아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늙은 엄마의 빈젖이나 빨고, 중풍으로 떨던 아버지마저도 그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으니까, 이 세상에서 반칠환 시인만큼 어렵고 힘들게 자라온 시인도 드물 것이다. 반칠환 시인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시인이며, 매우 온화하며 낙천적인 시인이다. 늙은 엄마의 빈젖이나 빨고 중풍으로 떨던 아버지와 함께 살아 왔으면서도, 그 최악의 생존조건마저도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외딴 유치원]으로 미화시켜 놓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그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행복한 인간이라면, 그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따라서 원생은 나 하나 뿐인 [외딴 유치원]에서의 “해가 높아졌네, 저 해 기울면 엄마가 오시겠지”라는 그의 낙천주의를 생각해보아라! 그의 현실주의는 그의 낙천주의 토대이고, 그의 낙천주의는 그의 현실주의의 소산이다.
원생은 나 하나뿐인 외딴 유치원, 솔뫼 고개 우리 집
아니 아니, 나 말고도 봄에 한배 내린 병아리 떼가 있었네
그렇지만 다섯살배기 나보다 훨씬 재빠르고 약았다네
병아리 쫓아, 다람쥐 쫓아 텃밭 빠대다보면,
아버지 부르시네
풍으로 떨던 아버지,
마당에 비친 처마 그림자 내다보고 점심 먹자 하시네
해가 높아졌네, 저 해 기울면 엄마가 오시겠지
반칠환 시인의 [외딴 유치원]은 시 전체가 어머니, 형, 누나, 중 송아지, 검줄이, 줄다람쥐, 암탉, 병아리, 아버지 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점층법과 동화적인 어법과 리듬, 그리고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아니 아니’ 등의 반복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점층법은 이야기를 점점 더 고조시켜나가고, 동화적인 어법과 리듬은 시의 분위기를 가볍고 경쾌하게, 또한 그만큼 즐겁고 기쁘게 이끌어나가고, 그리고 반복법은 [외딴 유치원]의 동화적인 세계로 몰입해 들어가게 만든다. 어머니, 형, 누나, 아버지도 살아서 움직이고, 중송아지, 검줄이, 줄다람쥐, 암탉, 병아리 등도 살아서 움직인다. 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 등장 인물들과 그 언어들도 살아서 움직이고, 시인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천성(의식)으로 그 최악의 조건들이 최상의 조건으로 변모를 하게 된다. [외딴 유치원]은 반칠환 시인의 호기심 천국이며, 가장 행복한 이상적인 천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교적이며, 그들은 모든 적대자들마저도 설득시킬 수 있을만큼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술을 갖고 싶어한다. 그들은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며, 또한 배우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언제, 어느 때나 진지하고 깊이 있게 사유하는 것은 그들의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재기발랄함과 공허하고 허황되기 짝이 없는 말들의 잔치이다. 아는 것은 보는 것이며, 보는 것은 아는 것이다. 여론, 대중, 대중심리, 예의범절을 늘 중요시하며, 자기 자신은 결코 되돌아 보지도 않는다. 사교적인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듯이 시간이 없고, 고독이나 외로움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싫어한다. 이에 반하여, 진정한 시인은 늘 혼자 있어야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늘 사색과 산책을 하며 어떠한 악의악식惡衣惡食마저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 그는 생각하고 배우며, 또한 배우면서 생각한다. 그는 진정으로 대시인이 되기 위하여 최악의 생존조건 속으로 뛰어들고, 어떠한 고독이나 외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고독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외로움 속에서도 행복하게 산다. 가난, 고독, 외로움, 고통 등을 벗삼아 살아가며, 티없이 맑고 순진한 사람을 위하여 [외딴 유치원]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늘, 항상, 검소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고귀하고 위대한 꿈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늘, 항상, 사색과 산책을 즐기면서도 [외딴 유치원]의 주인공이 되어간다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부족한 것이다.
시인은 홀로 있어야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첫댓글 시인은 홀로 있어야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