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보름살기
230130. 송혜영
부산 강서구에 사는 동생은 국제학교(영어유치원) 선생님이다. 방학 동안 winter camp가 열리는데 서은이도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마침 설연휴가 끼어있어 양가 부모님 뵙기도 좋고 아이들도 사촌들 만나기 좋아하니 잘 되었다. 수업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2시반까지. 집에 오면 3시이기에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자연스레 고민이 되었다. 매일 루틴대로 공부하기, 중학생 되는 큰 조카 공부 봐주기 등 2주만에 하기에 너무 빡빡하게 계획을 짜며 욕심을 부렸는데, 며칠이 지나며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아이들 우쿨렐레 가르쳐주기로 한 것은 악기까지 준비했으니 꾸준히 하자. 꼭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고 가까이 사시는 친정 부모님과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보내자. 근처에 아이들과 갈 곳들을 다녀보고 저녁에 일기를 함께 쓰자. 이렇게 즐거운 2주를 보내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1. 책 읽기 좋은 부산 1_ 부산현대미술관 책그림섬 도서관
아이들과 가기 가장 만만한 곳이 도서관이다. 책그림섬 도서관은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한 번씩은 들르게 되는데, 도서관 자체가 놀이터같은 데다 멋진 전시회도 덤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같은 지하에 'post modern child'라는 어린이 전시회를 하고 있으니 함께 즐기기 딱이다.
책그림섬은 미로같기도 하고 늑목같기도 한 재미있는 구조이다. 신발을 벗고 예약 인증 후 들어서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길을 따라 도서관을 한 바퀴 돈다. 2층의 조그만 그물 놀이터 공간도 들러줘야 하고 서가를 뱅뱅 돌아 1층으로 내려오면 손에는 이미 책 한 두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은이가 즐겨 앉는 자리는 늑목처럼 올라가 맨 윗층 폭신한 공간. 가은이와 조카는 2층, 나는 1층 오늘의 자리다.
미술관 내 도서관인 것을 인증하듯 이쁜 책들이 많다. 독립서점 출판 책이 따로 전시가 되어 있고 그 옆에 이어진 좁은 골목같은 통로로 들어가면 다시 공간이 약간 넓어지면서 양쪽으로 빅북을 전시회 놓았다. 눈이 시원하고 함께 읽기 좋은 빅북을 나는 좋아한다. 몇 권을 꺼내 읽다가 아이들이 추천하는 책들과 돌려 읽다가, 오늘의 책을 발견하였다. 바로 '바람꽃도서관'이다.
한 아이- 안나가 숲에서 책을 읽는다. 다른 동물이 와서 뭘 그리 들여다보냐 기웃거리다가 토끼도 참새도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뭇가지에 올라가 누운 안나와 윗층에서 배깔고 누워 꼼짝않고 책 읽는 서은이가 겹쳐져 보인다. 마음으로 잠시 아이들을 축복한다. '저 모습 너무 이뻐요! 책을 즐거워하고 사랑해서 함께 나누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아늑하고 멋진 도서관이 된 숲을 그려놓았다. 커다란 나무를 기둥으로 책이 꽉 찬 서가가 늘어서 있고, 중앙의 큰 그루터기는 책상이 된다. 어른과 아이가 책을 찾고, 읽는 데 빠져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나 지금 아이들과 '섬'에 있지만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와 아늑함의 극치인 '숲'에도 가고 싶다^^ 실제 강화도에서 바람숲그림책도서관 주인장인 최지혜 님이 쓰신 책이라니 조만간 강화도에도 가야겠다 싶었다.
#2. 책 읽기 좋은 부산 2_ 부산국회도서관
지난 여름, 여의도에 있는 국회도서관에 처음으로 갔다. 국회도서관이 처음 설치된 1951년에는 전쟁 중이라 그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부산 소재 경남도청에 설치되었다 한다. 그리 보면 부산에 지역으로서는 처음으로 국회도서관이 세워진 것도 의미가 있다. '어느 도서관보다도 내용이 충실한 것이며' 라는 국회도서관 설치결의안의 한 문구와, 너무나도 빈약해서 구색만 맞추었나 싶었던 어린이 공간이 비교되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소지품을 맡기고 속이 다 보이는 가방에 꼭 챙겨야 할 것을 들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들어갔던 국회도서관에서 기둥 뒤 한 켠에 숨어있던 어린이 공간은 지도를 보고도 바로 못 찾을 만큼 안내표시도 잘 안 되어 있었다.
이 곳 부산국회도서관은 22년 4월에 개관한 만큼 시대의 요청을 잘 수용한 듯 하다. 일단 천장이 높아 공간이 널찍했고, 입구에서 주욱 들어가면 넓은 어린이 공간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폭신한 집 모양의 매트 위에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가득한 유아를 위한 공간과 밖으로 계단과 원형탁자 등으로 다양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어린이 공간. 책이 아직 가득 차 있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한 편에는 일반서가로, 다른 편에는 화장실과 까페로 연결되어 열린 공간으로 가족들이 맘껏 다닐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래, 국회도서관이라면 이 쯤은 되어야지! 여의도에 있는 도서관도 어린이 공간이 다시 정비되길 바란다.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라 며칠 뒤 한 번 더 갔다. 이번에는 친정부모님도 함께 하였다. 시각 중증장애를 지닌 어머니가 날도 추운데 집 근처 공원만 도실 게 아니라 따뜻하고 구비가 잘 된 공공장소에서 걷기도 할 겸 바람도 쐴 겸 나오시면 좋겠다 싶었다. 어린이도서관에서 가까운 친절한 점자책 코너는 엄마와 상관이 없어도 화장실도 가까이 있고 까페에서 간단한 먹거리도 챙겨드실 수 있어 좋다. 엄마가 간식을 드실 때 늘 곁을 지키는 아버지는 책 한 권 뽑아와 잠시라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부모님이 기분이 좋으시다. 집 근처에 신박한 공간을 알게 되셔서 그런지, 아니면 딸래미가 쏜 다과를 드시며 담소를 나누셔서 그런지. 손주들은 십여미터 떨어진 공간에 책 읽다가 가끔씩 와서 소란을 떤다. 까페 벽에 붙여진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건물 앞 잔디밭과 내부 회의장 대형 사진 앞에서 아버지는 마치 서울에 오신 양 기념사진을 찍고 흐뭇해 하셨다.
#3. 풍요로운 부산_부산수산자원연구소
어린물고기 먹이주기 체험하는 곳이 마침 근처에 있다 해서 연구소에 들렀다. 종이컵에 1cm 정도 올라오는 양의 환 같은 고기밥을 성격대로 준다. 서은이는 고기들에게 인심쓰듯 팍팍 뿌려 금방 동이 나 내 것을 더 가져갔다. 가은이와 조카는 한두알씩, 몰려드는 고기들 살펴보며 나눠준다.
5cm가 조금 넘은 감성돔이 먹이를 먹겠다고 세 아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요즘은 감성돔이지만 은어, 넙치, 대구 등도 키워서 일정크기가 되면 바다로 방류한다고 한다. 한 예로 대구는 12,1월이 산란기인데 아무래도 자연에서는 알이 부화할 확률이 너무나도 적다보니 어느 정도 키워 먹이를 구하기 좋을 때에 내보내는 것이다.
여름에는 강물이 바다로 더 유입되어 농도가 낮아지다보니 잠시 쉬지만 7월 이후에는 보리새우도 방류를 한다고 한다. 보리새우는 가덕도 등 주변 섬에서 많이 잡히는 종류이다. 이들이 바다에서 잘 자라 또 어부가 잡으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방류하면 생태계에 교란이 될 수 있으므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다.
갈미조개도 현재 쌀알크기-5mm 정도까지 키워 내보내려 연구 중인데 조개류는 환경에 좀 더 민감하여 쉽지 않은 작업이라 한다. 수산자원연구소가 하는 주요한 일이 이렇게 어종을 연구하고 키워 방류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먹이주기로 시민들에게 하는 일을 알리다니 좋은 아이템이다.
아이들은 낙동강에 사는 물고기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수족관 안에 가자미가 모래 속에 섞여 잘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는 것, 드레스자락이 걸을 때마다 우아하게 들렸다 내려오듯 여유롭게 하늘거리는 헤엄솜씨. 눈이 약간 한쪽으로 몰려 360도를 돈다는 것도 보았다. 부산에서만 나는 종인 청게를 지역특산물로 개발하려 한다는 전시도 있었는데 이게 적어도 십년은 전에 설치된 것 같으니 청게개발에는 난관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긴 하다.
재미있는 체험 뒤에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뭔가 뿌듯함으로 발걸음이 더 가볍다. 청게 동상 앞에 포즈를 취하고 달려가다 나무 아래에 서서 사진 찍어달라 하는 아이들의 에너지는 간만에 겨울다운 부산의 추위도 저리가라 할 만하다. 쾌청한 하늘 아래 아이들의 흥이 전해져 행복한 시간이다.
4. 풍요로운 부산 2_ 낙조정, 어도관람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이번에 가지 못했다. 1년 전 겨울에 넓은 생태탐방로를 거닐어보고 싶었지만 추워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더랬다. 전시물도 유익했지만 무엇보다 한 쪽 벽면 전체를 창으로 하여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해 둔 그 공간을 잊지 못한다. 맨 눈으로 봐도 철새들 무리가 보이고, 여러 대 설치된 망원경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냥 바닥에 퍼질러 앉아 볕을 쬐어도 좋고 오른편에 마련해 둔 작은 도서관에서 책 읽는다고 머무는 것도 좋았다.
이번에는 지인을 만나러 동래에 가는 길에 잠시 낙동가람끝공원에 있는 낙조정과 어도관람실에 들렀다.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 오를 때 타는 경사진 엘리베이터를 낙조정에서도 탈 수 있기에 아이들이 잔뜩 기대했는데 마침 고장이라 이용을 못 했다. 그 대신 계단을 오르며 좀 더 건강해지긴 했다. 3층 정도 높이에 낙동강 하구둑 양편을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이 놓여있어 번갈아가며 뚫어지게 보았다. 여긴 사람이 많이 안 오나 보다. 조금 춥고 망원경 발 받침대도 아이가 보기엔 조금 낮아 불편했다. 그래도 철새가 무리지어 날아가는 낙동강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
바로 옆 건물에 어도관람실은 낙동강 수심 45m에서 직접 물고기가 지나가는 것을 관찰하게끔 해둔 공간이다. 강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강으로 산란이나 먹이를 위해 오가는 물고기들을 실제 겨울에 많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동물성 플랑크톤으로 보이는 아이들만 있네. 반대편 영상에는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어종과 이동을 쉽게 해 주는 구조물에 대한 설명, 무엇보다 물고기 이동이 많을 때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걸 진짜 볼 수 있단 말이야? 아쉬움에 이 쪽 저 쪽 왔다갔다 하며 기다리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자리를 떴다. 어쩌랴, 우리 왔다고 물고기더러 시간 맞춰 다녀라 할 수도 없는 일. 바로 옆에 현대미술관이 있으니 다음 방학 때 겸사겸사 또 와 봐야겠다.
이외에도 간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다시 확인하고, 로고스 글쓰기 사부님과 벗님과도 좋은 시간을 가졌다. 가덕도에 바다뷰가 좋은 까페에서 친정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도 따뜻했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가은이는 모범학생이 되고 할아버지는 최고의 훈장님이 되어 한자 퀴즈를 그리도 재미있게 했었다. 그 외에도 명절에 무료로 개방한다 하여 남포동에 있는 부산영화체험박물관과 트릭아이뮤지엄을 가 보고 부산역 근처 까페를 찾다 초량 이바구길과 모노레일을 일부나마 경험했다. 초량의 가파른 골목길은 클래쓰가 다르다. 건물 위의 주차장에 무사히 주차를 한 것에 안도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