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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굉지신(股肱之臣)
다리와 팔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라는 말이다.
股 : 다리 고(⺼/4)
肱 : 팔 굉(⺼/4)
之 : 의 지(丿/3)
臣 : 신하 신(臣/0)
(유의어)
고굉(股肱)
굉려(肱膂)
고장지신(股掌之臣)
사직지신(社稷之臣)
주석지신(柱石之臣)
이 성어는 다리와 팔과 같은 신하라는 뜻으로, 왕이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를 비유하는 말이다.
순(舜)임금이 우(禹)와 대화를 하며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신하들은 짐의 팔과 다리요, 눈과 귀가 되어야 하오(臣作朕股肱耳目). 내가 백성들을 보살피려 하면 그대는 (날개가 되어) 옆에서 도와주고, 내가 사방을 위해 노력하면 그대가 함께 해 주시오(予欲左右有民汝翼 予欲宣力四方汝爲)."
이 이야기는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나온다. 익(益)과 직(稷)은 순(舜) 임금에게 봉사하는 현인이다. 우(禹)가 이 두 신하의 공을 널리 알리며 칭찬한 것을 기록한 것이 익직편이며, 여기에서 舜임금이 말하는 가운데 괴굉지신(股肱之臣)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 날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오오, 임금이시여, 제위의 책임과 제위의 임무가 얼마나 무거운가를 생각하소서." 순(舜)임금이 "그렇다" 하시었다.
우(禹)가 말하였다. "항상 바른 길을 찾는 마음을 안정 시키시어 사물의 변화를 재빨리 포착하시옵고, 이에 합당한 계획을 세워서 백성을 위한 임금의 마음을 베푸심이 이에 잘 일치하도록 하면 하늘이 이를 받들어 임금님을 도울줄로 아옵니다."
이 간(諫)함을 듣고, 어진 황제로 잘 알려진 순(舜)임금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그러하다. 신하들이야말로 짐을 도와 줄 유일한 존재이며, 짐을 도와 줄 유일한 존재는 역시 신하들 밖에 없는 줄로 알고 있다. 그대들과 같은 신하들은 짐의 팔과 다리요 눈과 귀로 내가 백성들을 위해 돕고자 하니 그대들이 대신해 달라. 나에게 만약 어긋남이 있을때는 그대들이 나를 보살피며 규정해 달라. 내 앞에서 순종하는 척하다가 물러간 후에 이러쿵 저러쿵 쓸데없는 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직접 충고해 달라. 또한 좌우의 동료들과 서로 공격하며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관리들은 백성들의 참뜻을 나에게 전하는 것이 임무이므로 올바른 이치를 천하에 선양토록 할 것이며, 잘못을 뉘우치는 자가 있으면 관직에 등용하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 철퇴를 가해 나라의 위엄을 보이도록 하라."
순(舜)임금이 성군이 되는 데는 신하들의 보좌가 필요했고,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준수, 인애와 형벌의 병행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고굉지신(殷肱之臣)은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 즉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충신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같은 뜻의 다리와 손바닥 같은 신하라는 고장지신(股掌之臣)이라는 말이 있고, 비슷한 말에 나라를 떠바치는 중심이 되는 신하라는 주석지신(柱石之臣)과,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이라는 사직지신(社稷之臣)이 있다. 고굉지신(股肱之臣)을 줄여서 고굉(股肱)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정치권이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의 위상조차도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측근에서 불거진 각종 비리 사건은 국민을 더욱 실망케 했다.
순(舜) 임금이 후대까지 칭송을 받는 것은 德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충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겐 과연 사리사욕을 버리고 헌신하는 고굉지신(殷肱之臣)이 얼마나 있는 지 자문자답해 본다.
김후직(金后稷)은 신라(新羅) 지증왕(智證王)의 증손으로, 진평왕(眞平王)을 섬겨 병부령(兵部令)을 지냈다. 그는 정사를 내팽개치고 사냥을 즐기는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옛날 노자(老子)가 이르기를,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발광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서경(書經)에서는 '안에서 여색에 빠지거나 밖에 나가 사냥에 몰두하는 것 중 한 가지만이라도 있으면 망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병을 얻어 세상을 하직하는 마당에도 충심은 변함이 없었고 유해를 왕의 사냥 길목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후직의 사후에도 왕의 사냥놀음은 그칠 줄 몰랐다. 어느날 왕이 사냥을 가는 도중 어디선가 “가지 마시오!” 라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출처는 후직의 무덤이었다. 왕은 후직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다시는 사냥터에 나가지 않았다.
고굉지신(股肱之臣)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가 되어, 진심으로 주군의 팔다리가 되어 주는 지극한 신하가 되겠다는 뜻이다. 서경(書經)의 익직(益稷) 편에 나온다.
개자추(介子推)가 말한 고굉지신(股肱之臣)이란 말은 온몸을 바쳐 중이(重耳) 공자의 팔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지극한 맹서(盟誓) 이며 희망이었으리라.
진헌공이 아름다운 여희의 꾐에 빠져 세자 신생을 자결케 하고 기어이 여희의 어린 아들 해제(奚齊)를 세자로 세운다. 나머지 공자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며, 두 번째 공자 중이(重耳)는 책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진헌공이 죽고 11살짜리 해제(奚齊)가 즉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극 장수가 반역하며, 해제(奚齊)와 추종세력을 모두 죽인다. 이극 장수는 우유부단하여 쉽사리 주변의 말에 넘어가게 되며, 바라던 중이(重耳)를 다시 부르지 않고 꾀 많은 중이(重耳)의 동생 이오를 부르게 된다.
이오 공자는 옆 나라 진목공에게 영토의 30%를 주기로 약조하고 도움을 받아 진혜공이 된다. 진혜공은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며 이극 장수를 자결하게 하고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자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되며 진목공에게도 약조한 영토의 30%를 주지 않는다.
진혜공은 집권 5년 동안 내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자 할 수 없이 진목공에게서 수십만 가마의 양곡을 도움받는다. 그 후 진목공이 흉년이 들어 도움을 청하자 섭섭했던 감정을 드러내면서 침공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도움청하러 왔던 사신을 쫓아낸다.
약이 오른 진목공이 침공하여 한원 전투가 벌어지며, 진혜공은 포로가 된다. 진목공이 진혜공을 죽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려 하자, 진목공의 부인이며, 진혜공의 이복 누나인 목희가 살려주게 만든다.
진혜공은 귀국하자, 군주 자리를 빼앗길까? 하는 겁이나게 되며 형인 중이(重耳)를 죽이려고, 발제와 암살자들을 책나라로 보낸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대우받으며 머물던 책나라에서 긴급히 달아나게 된다.
그때 막 책나라를 떠나려는 데 심복이면서 아주 성실하게 살림을 잘 살던 두수가 금붙이 비단 등, 모든 걸 가지고 달아난다. 이 과정에서 공자 중이(重耳)와 40여 명의 가신 일행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급하게 쫓기며 제나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된다.
며칠을 걷는 중에 적적(赤狄) 인들이 침공해 10여 명이 살해당하며, 그나마 하나의 수레도 불에 타버린다. 도움을 받으려 배를 곯으며 찾아갔으나, 위나라에서 냉정하게 쫓겨나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며칠을 걷다가 오록 땅에서 농부들이 밭에서 점심 먹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밥을 구걸하자, 한 농부가 직접 농사지어 밥해 먹으라며, 한 사발 흙을 담아준다. 중이(重耳)가 분개하고, 젊은 가신들이 농부들의 밥을 뺐겠다고 하자, 좌장격인 호언(狐偃)이 급히 만류한다. "공자님, 그렇습니다. 강도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공자님, 밥을 얻기는 쉽사오나 흙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흙을 준 것은 나라를 얻으라는 큰 뜻이옵니다. 이 흙은 하늘이 내려 주신 보물입니다. 오히려 저 농부에게 절을 올려야 합니다."
중이(重耳)가 농부를 때리려고 높이 추켜올렸던 채찍을 내던지자 호언(狐偃)은 조롱하던 농부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를 본 가신들 모두가 호언(狐偃)의 뒤를 이어 농부에게 무릎을 꿇자, 살벌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엄숙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농부는 얼이 빠졌으며 중이(重耳) 일행이 멀리 간 다음에도 멍한 눈길로 바라보자, 다른 농부가 말한다. "정말 미친놈들이로구나. 너무 굶어 돌았나 보구려."
허기진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또다시 한 동안을 걷게 되자 모두 정신이 몽롱해지며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맨 먼저 중이(重耳)가 비틀거리면서 일행을 돌아보며 힘없이 말하였다. "잠시 나무 밑에서 쉬었다 갑시다." "공자님, 그리하소서."
며칠 후에는 개자추(介子推)가 보이지 않더니, 바가지에 고깃국을 가지고 와 내놓으니, 중이(重耳)는 허겁지겁 꿀꺽꿀꺽 삼켰다. "아. 이 맛있는 고깃국이 어디서 생겨났소? 개자추(介子推)는 이 맛있는 고깃국을 어디서 얻어온 것이오? 아니, 허벅지에 왼 피가 그리 많이 묻어있소?"
개자추(介子推)는 고단한 망명길에서도, 지극한 정성으로 중이(重耳) 공자를 모시며,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대접을 한 것이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개자추(介子推)가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 국 끓인 것을 알게 되자, 모두 큰소리로 통곡하며 한없이 흐느꼈다. "그대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지는구려. 장차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소?" "신 개자추(介子推)를 비롯한 우리 가신들은 공자를 모시고 귀국하게 되면, 공자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개자추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국을 끓여 중이(重耳)에게 바쳤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나,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국어(國語) 등에도 이 일화가 실려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다만 장자(莊子)의 도척(盜蹠) 편에, '개자추(介子推)는 충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배고픈 주인을 먹였다'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장자(莊子)가 서술한 것은 중이(重耳) 일행이 제(齊) 나라로 가는 망명길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참담(慘澹)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로써, 이야기한 것이라 할 것이다.
▶ 股(넓적다리 고)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殳(수, 고)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股(고)는 (1)고본(股本) (2)구고현(勾股弦)의 하나. 직각(直角) 삼각형(三角形)에서 직각(直角)을 낀 두 변 가운데서의 긴 변. 현(弦) 등의 뜻으로 ①넓적다리 ②정강이 ③고(股;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이룬 긴 부분) ④가닥(한군데서 갈려 나온 낱낱의 줄) ⑤가지 ⑥끝 ⑦가닥이 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넓적다리의 힘줄을 고근(股筋), 넓적다리의 살을 고육(股肉), 두 다리의 사이를 고간(股間), 사타구니와 손바닥을 고장(股掌), 사타구니와 장딴지를 고비(股腓), 몹시 두려워서 다리가 벌벌 떨림을 고전(股戰), 두려워서 다리가 떨림을 고율(股慄), 기린을 달리 이르는 말을 고고(股股), 남자가 입는 저고리를 고첩(股褶), 남자의 홑바지를 고의(股衣), 여자 속옷의 한 가지로 고쟁이를 고장(股藏), 여러 사람이 공동하여 사업을 경영할 때에 일정한 방법으로 각각 내는 밑천을 고본(股本), 다리와 팔이라는 뜻으로 온몸을 이르는 말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고굉(股肱), 다리를 찌름을 자고(刺股), 허벅지의 살을 도려냄을 할고(割股), 물체의 옆으로 갈라진 부분을 횡고(橫股), 키를 돋우려고 할 때 발 밑에 괴는 물건을 의고(義股), 다리와 팔의 힘이라는 뜻으로 온몸의 힘을 이르는 말을 고굉지력(股肱之力),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이르는 말을 고굉지신(股肱之臣), 허벅다리를 찌르고 머리털을 대들보에 묶는다는 뜻으로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자고현량(刺股懸梁), 공복을 채우기 위해 허벅살을 베어 먹는다는 뜻으로 한때를 모면하기 위한 어리석은 잔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할고충복(割股充腹), 상투를 천장에 달아매고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찔러서 잠을 깨운다는 뜻으로 학업에 매우 힘씀을 이르는 말을 현두자고(懸頭刺股), 허벅지의 살을 잘라내어 부모를 치료한다는 뜻으로 효행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할고료친(割股療親), 매우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떨림을 심경고전(心驚股戰) 등에 쓰인다.
▶ 宏(굉)은 ‘크다, 넓다’로 쓰이며, 청(淸)나라 고종(高宗) 황제의 휘(諱)가 홍력이었기 때문에, 청대(淸代)에는 홍(弘)자 대신에 굉(宏)자를 쓰도록 했다.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部와 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크다’ 의 뜻(光)을 나타내기 위한 굉(宏에서 부수를 제외한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뛰어난 학자를 굉유(宏儒), 굉장한 계획 또는 큰 계획을 굉도(宏圖),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굉재(宏材)라 한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臣(신하 신)은 상형문자로 본디 크게 눈을 뜬 모양을 형상화했다. 내려다 본 사람의 눈의 모양으로 전(轉)하여 신을 섬기는 사람, 임금을 섬기는 중신(重臣), 신하(臣下)를 말한다. 그래서 臣(신)은 ①신하(臣下) ②백성(百姓) ③하인(下人) ④포로(捕虜) ⑤어떤 것에 종속(從屬)됨 ⑥신하(臣下)의 자칭(自稱) ⑦자기(自己)의 겸칭(謙稱) ⑧신하(臣下)로 삼다 ⑨신하로서 직분(職分)을 다하다 ⑩신하답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임금 후(矦), 임금 벽(辟)이다. 용례로는 임금을 섬기어 벼슬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신하(臣下), 신하와 서민 또는 많은 신하를 신서(臣庶), 신하가 되어 복종함을 신복(臣服), 신하된 처지를 신분(臣分), 나라에 공로가 있는 신하를 공신(功臣), 국가나 임금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를 사신(使臣),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중직에 있는 신하를 중신(重臣), 봉토를 받은 신하 곧 제후를 봉신(封臣), 슬기와 꾀가 있는 신하를 모신(謀臣), 문관인 신하를 문신(文臣), 무관인 신하를 무신(武臣), 남의 신하를 인신(人臣), 간사한 신하를 간신(奸臣),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신하를 충신(忠臣), 지위가 낮은 신하를 미신(微臣), 이름난 신하를 명신(名臣),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고굉지신(股肱之臣),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난신적자(亂臣賊子),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는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군신유의(君臣有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