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246. 결론과 결실의 사이 (주일 강론을 받아 적고, 보태고)
요세비
<살고 싶다는 농담>(허지웅 저) 에세이를 읽어보면 혈액암 투병 중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이 마음을 울린다. 투병중 괴로운 어느 날 잘 알지 못하는 간호사가 손수 모자를 떠서 선물한 것을 무심코 받아 두었다. 그리고는 잊었다. 그런 후 어느 날 밤 문득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누구도 내가 죽는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만 죽을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고서는 죽을 준비나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며 혼자 비참해 하며 살려고 발버둥 쳤으나 현실은 변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간호사가 떠준 모자도 의미 없게 버려두고 고마움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판단이나 결론은 어떤 시도도 실천도 해 보지 않은 순전히 마음으로 짜집기 하고 논리화 하여 결정한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섣부르게 판단한 것들이 소중한 현재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이 아니라 결실이 중요한데, 우리는 해보지도 않은 결론으로 자기 논리에 빠지고 예측하고 끼워 맞추어서 자기 마음대로 부정적 결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결실을 잊게, 잃게 만든다.
시도해 보는 것, 결실을 생각하는 예지, 확실하지만 사소한 그런 것들이 삶을 가꾸는데 도움이 된다.
항암치료를 한다고 할 때 죽음 이외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반성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해도 안돼, 뻔해, 하나마나야~ 하는 변명을 앞세워 해보지도 않고 결론을 세워 포기하는 일이 잦다. 내가 이렇게 미리 내려버린 결론은 결실이 아니다. 불확실한 자기 판단의 결론을 믿고 시도도, 실천도 하지 않았다. 결론이 결실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한달에 책 두 권을 읽자고 마음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다섯 페이지쯤 읽었을 때 갑자기 급하고 바쁜 업무가 생겼다. 마음이 그 쪽으로 쏠려 책으로부터 멀어졌다. 여유가 없었다. 급한 일에 매달려 될까 안될까? 어떻게 해야 하나, 마나,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마음만 번잡하게 되었다. 결국 그 책은 읽지도 못하고 도서관으로 반납 했다. 책 제목이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팻 맥라건 저) 였다.
그 후 읽어야 할 책의 수를 정하기 보다 책을 읽을 시간을 정하는 게 더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출근을 30분 일찍 해서 책을 읽기로 했다. 그런데 나처럼 30분을 먼저 출근한 사람이 있었다. 간섭없이 책을 읽었으면 했는데 자꾸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주차한 차 안에서 읽었다. 그렇지만 춥거나 더웠고, 시동을 걸어놓고 있기도 뭣해서 그마저도 그만 두었다. 이런 저런 핑계는 늘 생긴다.
시인이, 수필가가 된 후 날마다 배달되는 책들이 엄청나다. 대부분 읽어보지만 어떤 책은 미루어 진다. 그러다가 잊혀지기 도 한다. 책 한권을 읽는데도 수 많은 장해가 있고 현실은 늘 녹녹치 않고 내 편도 아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으면 뒤로 밀린다.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현실이 힘들다고 다른 현실도 그럴 거라고 결론짓지 말자.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일화이다. 우선 시작하고 하면서 방법을 생각하고 수정하면서 나은 연구를 하게 되고 결국은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얻는다.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그만한 수업료를 지불했으니까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결과는 얻은 것이다. 그것이 결실이다. 해보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는 일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배울 수 없듯이, 사랑해보지 않고는 사랑의 환희를 모른다. 이별의 아픔이 반복되더라도 사랑해본 일이 추억이 된 것은 얼마나 큰 수확인가?
오늘 복음 루카 3.1-6 절의 말씀처럼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고 결실을 위해 우리를 가로막는 골짜기와 언덕을 고르게 깎아내고 펴서 길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