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하느님 뜻을 이루는 도구
주님 성탄 대축일 12월 25일에서 아홉 달을 소급해서 오늘 3월 25일에 마리아님이 하느님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잉태하셨음을 기념한다. 그분은 요셉 성인의 협조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동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세주 예수님을 잉태하셨다. 바로 이 점, 하느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 기꺼운 순종으로 성모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된다. 요셉 성인과 순교자 그리고 다른 모든 성인의 인생 전체 주제도 역시 하느님의 뜻이었다.
신앙은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고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 자신을 버리고 내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인화와 고유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그런 것이 상식처럼 돼가는 시대에 자신을 버리고 타인, 절대적인 타자인 하느님 뜻에 순종하라는 요구는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일 거다. 그래서 교우 숫자가 더 이상 많이 늘어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소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청하지 않는 것은 그런 것들이 필요 없거나 나쁜 것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청하지 않아도 하느님은 이미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데는 먹을 것, 입을 것뿐만 아니라 친구도 평생 동반자도 치료도 필요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고, 내가 살기를 나보다 더 간절히 바라신다고 믿는다. 내 꿈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건 어찌 보면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있는 사은품 같은 것일지 모른다. 사은품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히브리서는 예수님 마음을, 그분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한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5-7) 여기서 ‘몸’은 썩어 없어질 육체라기보다는 뜻을 이루고, 마음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도구다. 평생 자식과 가족에 헌신해서 굽은 등과 나무토막 같은 손을 지닌 시골 노모의 몸이 눈물 나게 아름답고 거룩한 거처럼 이 몸은, 나의 인생은 사랑할 때, 하느님의 뜻을 이룰 때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다. 자신의 꿈과 바람을 이루면 좋기는 한데, 그다음이 없다. 그 기분 좋음이 전부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당신의 뜻을 이루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이 부르신 사람이다. 성인들이 입던 옷, 쓰던 도구들을 보존하는 거처럼 하느님 뜻을 이룬 거룩한 몸은 썩지 않고 영원히 보존될 거다. 육신 부활이 그런 걸 거다. 내 뜻을 간직한 몸은 무거워 땅에 붙어 있고, 하느님 뜻을 바라는 몸은 가벼워 하늘로 날아간다.
예수님, 하느님 뜻에 제 꿈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제 꿈은 버리고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오늘도 주님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