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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성, 베토벤
신의 언어를 창조한다는 음악가 중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라는 "헨델", 음악의 신동 "모짜르트", 가곡의 왕 "슈베르트",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등..
그러나 이 무수한 인물들 중에서도 유독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은 단연 베토벤이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제각각이지만, 호사가들이 붙여놓은 별칭만 보더라도 베토벤이 음악사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악성"이나 "음악의 황제"란 칭호는 "아버지", "어머니"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요즘 "위대하다"란 말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위대한 음악가"란 수식어를 붙일만한 위인 역시 베토벤이라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사실 클래식이라면 "엄격하고 지루한 음악"이란 편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나처럼 클래식에 문외한이라도 "운명"이나 "합창"교향곡을 들으면 만감이 교차하는 것도 모두 그의 위대성에 기인한다 하겠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엘리제를 위하여"도 다름아닌, 베토벤의 작품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베토벤에게 "위대하다"란 찬사를 붙이는 것은 단순히 그의 천재적인 재능 때문이 아니다.
음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인 청력을 잃고도 자신의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초인적인 의지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과 귀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에 얽힌 일화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필립스의 "CD용량" 에 얽힌 비화는 베토벤의 위대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1978년, 당시 필립스는 최초로 CD를 발표하고, 1982년 소니와 손 잡고 요즘 사용하는 음악용CD규격인 CD-DA라는 규격을 제정하고 상품화에 성공한다.
그때 결정된 CD 용량은 60분량으로 크기도 지금보다 5mm가 작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세기 최고 지휘자라는 카라얀에게 녹음시간에 대하여 자문을 구했고, 카라얀은 음악CD의 녹음시간을 74분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카라얀이 74분을 제안한 이유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연주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60분으로 정하게 되면 그 유명한 "합창"교향곡을 처음부터 끝가지 다 듣지 못하고 중간에 판을 갈아 끼워야 하고, 그렇게되면 한창 고조되던 음악감상의 흥취와 열기가 사그라들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베토벤을 소재로 폴란드 출신 아그네츠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라는 여류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무장한 채..
혹 이 이름이 낯설지도 모르지만, 1995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토탈 이클립스-동성애를 나눴던 프랑스 시인 베를랜느와 랭보의 시와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이 작품 역시, 천재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특유의 오만함과 모든 천재들이 느꼈던 절망감을 잘 표현하여 국내 영화팬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남성보다는 섬세한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 "랭보"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를 계기로 미소년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탄생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2. 숨겨진 보물, 대푸가
이 영화는 베토벤의 악보를 필사하던 가상의 인물 "안나 홀츠"(다이안 크루거)를 등장시키면서 말년의 베토벤의 생애를 조명한다...
1820년, 이 시기는 베토벤에게 있어 보청기와 노트가 없으면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물질적으로는 궁핍하고 성격도 괴팍하여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던 절망의 시기였다..
이 때, 여류 작곡가를 꿈꾸는 안나 홀츠가 등장하면서 촛불처럼 불살랐던 베토벤의 마지막 생애와 수많은 불후의 명곡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말년의 비화를 전지적 시점으로 조망한다..
여기에 주옥같은 대사의 향연도 <카핑 베토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스토리텔링은 단순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당시 비엔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 의상, 그리고 영화 전편에 흐르는 베토벤의 음악들로 인하여 러닝타임 104분동안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베토벤을 소재로 이미 개봉된 <불멸의 연인>과 비교해도, 나으면 나았지 절대 뒤지지 않다는게 개인적인 견해다...그만큼 잘 만든 영화다...
특히, 10여분 간 계속되는 합창교향곡의 초연 장면은 닭살이 오를만큼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에드 해리스의 모습은, 베토벤이 살아돌아온 것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큼 명연기를 선보이는데, 산발한 머리,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연신 지휘봉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웅장한 합창 교향곡의 선율과 함께 관객들에게 끔찍한(?) 전율을 안겨준다...
장담컨데, 최소한 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카핑 베토벤>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현존하는 교향곡 중에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 "합창" 교향곡에 넋이 빠진 나머지 <카핑 베토벤>에서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마는데..그것이 다름아닌 베토벤의 현악 4중주 대푸가(Grosse Fuge In B Flat Majer Op.134)의 작곡 과정이다...
합창 교향곡이 불후의 명작이라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정작 매니아들에 의하면 베토벤이 위대한 점은 9번 합창 교향곡 이후 만들어진 6개의 현악 4중주 때문이라고한다....
오죽하면 선배 작곡가들은 전혀 안중에도 없던 바그너조차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6개의 현악 4중주만큼은 인정하지 않을래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겠는가?
다시 말하면 베토벤의 후기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그의 위대함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하이든이나, 모짜르트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과연 베토벤이 동시대에 살았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인데 특히 17번 대푸가는 그 중에서도 당시는 물론이고 현대음악에 익숙해진 21세기 음악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해하다고 한다..
<카핑 베토벤>에도 이와 관련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는 듯 하다..
전위적인 화면들로 가득 채워진 오프닝 씬에서 흐르는 선율이 바로 베토벤의 푸가다..
사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화면은 "합창" 교향곡 초연 장면이 아니라 바로 이 오프닝 씬이라고 할만큼 목가적인 풍경들을 실험적이고 현란한 카메라 워크에 담는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역동적으로..
CLOSE-UP을 주로 사용하며 푸가의 선율에 맞춰 펼쳐지는 감독의 기교는 그야말로 달인의 경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카핑 베토벤>에서의 백미는 "합창교향곡 초연 장면"이 아니라 단연 이 오프닝 씬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합창 교향곡"에 가려져 세간에 덜 알려진 6개의 "현악 4중주"의 운명처럼...
사실, 베토벤의 생애는 워낙 세간에 널리 알려져 흥미가 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안나 홀츠라는 여인을 등장시키면서 지지부진한 스토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어쩌면 안나 홀츠의 성장 영화라고 볼 수 있을만큼 철저히 안나 홀츠적 시선에서 베토벤에 접근한다...
잘 알려진 대로 베토벤은 거의 야수에 가까울만큼 난폭하고 무례한 영감탱이(?)다..
여기에 꽃다운 처자(?)가 야수의 동굴에 먹이감으로 던져지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우선 늙은남자-젊은 여자의 대비는 고사하더라도,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성격 때문에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렇다고 그것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만한 충돌은 아니지만, 뭐랄까?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정도?
매사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베토벤에 비해 상냥하고 친절하다..
베토벤의 표현처럼 말년에 신의 언어를 창조하라고 말년에 신(神)이 보내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안나 홀츠로 등장하는 다이안 크루거는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트로이>에 헬레네 공주로 출연하여 자신의 매력을 잠깐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중세 영화에 등장하는 공주들은 누구나 다 이뻐 보여 진정한 다이안의 매력을 느낄 수 없다 )
그러나 <카핑 베토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품격이 흐르는 다이안의 막강 포스(?)가 쉼없이 분출된다.
솔직하고, 엉뚱한 그녀의 행동 앞에 천하의 베토벤도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에 반해 "대머리"인 에드 해리스는 베토벤의 산발한 곱슬머리를 어떻게 극복할까란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 자연스럽게 베토벤을 연기하여 "과연"이란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특히 뒷짐을 지고 저잣거리를 갈짓자로 횡행하는 그의 연기에는 깜빡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보여준 그의 악역 연기만큼이나 인상적이 아닐 수 없다..
<더록>에서의 험멜장군,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서의 코니그 소령등 파란 눈에 그윽하고 단호한 표정은 악역이지만 왠지 악역 같지 않은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정작 아카데미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아 많은 영화팬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배우이기도 하다..
잠깐 이야기가 딴데로 흐르는데, 암튼 이런 연기 대결만큼이나 베토벤과 안나의 신(神)을 대하는 감정도 그들만큼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안나 홀츠는 수도원에 기거할 정도로 신에 대한 애정이 극진한 반면, 베토벤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뭐랄까? 무작정 사랑이 아니라, 애증(愛憎) 정도?
자신과 신에 대한 관계를 "동굴 속에서 서로 으르렁대는 두 마리의 곰"이라고 표현할만큼 남들과 다른 음악적 재능을 주고, 또 그것을 시기하여 청력을 빼앗아간 신(神)에 대한 원망 역시 큰 편이다.
그러나 이런 대립의 감정은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카핑 베토벤>의 최대 장점이라면 이처럼 안나 홀츠가 음악에 대해 눈을 떠 가는 과정을 유효적절하게 삽입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어느 순간, 베토벤을 지켜보는 게 안나 홀츠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베토벤의 운명과 웃고 울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4. 그 밖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
<카핑 베토벤>이나 <불멸의 연인>에서 다루어진 합창 교향곡은 누가 뭐래도 베토벤 예술의 최고 절정이자 고금을 통하여 현존하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베토벤은 이 교향곡에서 제 1악장에서 인간의 강렬한 의지와 분투를, 그리고 제 2악장에서는 열광적인 난무를 그렸으며, 제 3악장에서는 아름다운 사랑의 황홀경을 표현하였다..
이 3개의 악장은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숭고한 경지를 보인다...
그러나 최절정은 이것들을 조화롭게 섞이고 총괄하여 인생의 참된 구원으로서의 "환희"의 모습을 구현한 제 4악장이다..
베토벤은 이 4악장을 위하여 제 2악장과 제 3악장의 순서를 뒤바꿨을 뿐만 아니라, 당시 기악을 선호하던 교향곡의 피날레를 사람의 목소리로 바꾸는 파격을 단행한다..
또 마지막 악장에서 1, 2, 3악장의 주제를 재현시키는 것도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형식이었다..
이런 베토벤의 구상은 결과적으로 웅대함을 심어주면서 성공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곡의 내용은 웅대한 구상마저 뛰어 넘을만큼 웅혼하며 장엄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애청하는 명곡이 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위대함은 이런 "형식의 파괴" 보다는 그에게 닥친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킨 한 인간의 집념에서 찾아야 한다...
합창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아 단절된 음향 세계에서 무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으로는 건강 악화와 궁핍한 가정 경제로 인하여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자신의 고뇌를 "환희의 송가"로 탈바꿈시킨다..
음악을 향한 초인적인 집념(혹은 열정)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합창 교향곡 1악장에 느껴지는 커다란 스케일과 투쟁적 본능,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은 당시 베토벤이 겪었던 어려움을 이해할 때여만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뀌게한 추동력이 과연 무엇일까?
비록 주변사람들에게 툴툴거리지만, 이런 작품이 과연 인간에 대한 애정없이 가능할까의 의문이다..
사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음악의 신동도 아니고, 또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도 남보다 뛰어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단점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으며 이런 차이를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조카 "칼"과의 차이점이다...
끊임없이 자연에 대한 감정을 오선지에 옮겨 놓으려한 대가의 자세...그게 바로 베토벤이다....
그저 단순히 베토벤의 작품에 대하여 "웅장하다", "비장하다" 따위의 단어로 표현하는게 얼마나 부질없고 부끄러운 일인지 <카핑 베토벤>을 보고 절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위대함은 <카핑 베토벤>에서의 인상 깊었던 장면과 대사를 인용하면서 그 느낌을 대신하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부인"
"훌륭해, 안그래? 이 고요함..하루종일 밖에만 있어, 동이 트기도 전에...
칼렌베르그에 있는 숲으로 산책을 나갔지...
내 방엔 창문이 없어..이럴 때만 문을 열어둘 수가 있지..
"끔찍하겠어요..종일 문을 닫고 계시면요"
"이런 순간을 바라며 살아...이런 평화로운 시간을..."
"실례지만 이사를 안하세요?"
"이사? 여긴 베토벤의 옆 집이야..누구보다 베토벤의 작품을 먼저 듣지, 초연도 하기 전에..
모든 비엔나 사람들이 날 부러워 해...7번 교향곡 때부터 쭈욱 여기 살았어...멋진 곡이지...
새 교향곡이 거의 다 됐지?"
"네..잘되고 있어요...감사해요"
"계속 하시게 해.."
"저는 이해가 안가요..선생님...악장은 어디서 끝나죠?"
"끝은 없어..흘러가는거야...시작과 끝에 대한 생각은 접어둬
이건 자네 애인이 세우는 다리가 아니야..살아있는거지..
마치 구름이 모양을 바꾸고 조수가 변하 듯...
"음악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죠?"
"효과는 없어..그냥 자라는 거지..보라구..첫 악장이 둘째 악장이 돼...
한 주제가 죽고 새로운 주제가 탄생하지...자네 작품을 봐....너무 형식에 얽매여 있어..
적절한 형식을 고르는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나도 내 귀가 멀기 전까지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어..
그렇다고 자네 귀가 멀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제 안의 고요함을 찾아야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그래, 맞아..고요함...그 고요함이 열쇠야...주제 사이의 고요함...
그 고요함이 자네를 감싸면 자네 영혼이 노래할 수 있어"
1.합창 4악장 (환희의 찬가)~ 명장면
2. 영화~~ 시간되면 꼭보세요
첫댓글 꼬옥~ 볼게요^^
^~^~~즐겁게 감상하세요~~새늘님~^~*
슈퍼맨님, 클레식에 문외한이라니요???? 마치 음악평론가의 말씀을 듣는 듯 합니다.
베토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영화평이라 긴 내용도 재밌게 보았답니다. *^^*
^~^ ~즐겁게 감상하세요~~하여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