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철 시인과의 짧은 인연
6년 전 어느 초가을날 지성찬 시조시인과 함께 박남철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민경환 시인과 같이 안성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식당을 공동운영(적어도 형식적으로는)하고 있었다. 마을의 다른 가게에서 술을 마셨고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시비가 붙었으며 그 시비는 고래심줄처럼 끈질기게 이어졌다. 여차하면 몸싸움이라도 벌어질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당연히 처음엔 뜯어말렸으나 상대편의 기세도 만만찮아 만약 집단패싸움으로 번질 경우 나도 거들기 위해 예비동작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다행히 구체적인 몸싸움까지 가진 않았지만 덕택에 밤새 통음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2009년 공광규 시인이 윤동주 문학상 받을 때 뒤풀이에서 한 번 더 만났으며, 2010년 여름 대구에서 그의 고향 친구이자 나의 친구이기도 한 김아무개와 함께 사적으로 만나 술을 마신 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나같은 말석에도 끼지 못하는 시인으로서는 문단의 '대단한'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후 두어 번 전화 통화만 하고 잠시 폐북에서 조우했을 뿐 수시로 안부를 묻는 관계까지 발전하진 못했다. 그는 내게 비교적 친절했고 무례하지도 않았지만 내겐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만 했다. 술김에 서로 친구 먹자고 그랬음에도(물론 중간에 다른 친구 하나가 끼어서 그랬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기피인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인연으로 그의 시집을 받고, 당시 내가 관여하는 한 문예지에 주제넘게 시집「제1분」의 평설을 쓴 일도 있다. 갑작스런 그의 부음을 접하고 그와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스쳐지나갔다. 한번도 보지 못한 그의 아들 '해미르'도 생각났다. 나란 인간이 원래 무심하고 주변머리가 없긴 하지만 지금에서야 생전에 왜 좀 살갑게 안부 전화라도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제1분’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까지도 신용불량자인 나는, 눈시울이 흘러내릴 듯한, 삶의 희망을 얻어낼 수가 있었다. 붓다께서도, 이렇게, 평생을 제자들의 앞장을 서셔서 유리걸식을 하셨는데, 내가, 이 내가, 겨우, 나의 이따위 호화판 현실, 을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박남철 시인이시여, 이제 천상의 인간이 되어 비판과 비관, 분노와 핏대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안식하시라.
편견의 해체, 몽상의 조립 - 박남철 시집 <제1분>을 중심으로
- 권 순 진 박남철의 시를 읽으며 또다시 시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묵은 장르의 시론을 새삼스레 들추어낼 이유도, 개성 있는 정의를 보탤 재간도 내겐 없다. 이 글은 본격 평론이나 해설의 영역이 아니므로 해체시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 또한 내 깜냥이 닿을 영역은 아니다. 어차피 유일한 답을 구할 형편이 아니거니와 어쩌면 박남철 시의 본질과는 더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관념이든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며 인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서 시가 출발했다는 가설에는 동의하고자 한다. 확실히 박남철의 시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서정 따위는 거의 안중에 없고 인간 문제에 더 직접적이며 노골적으로 닿아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왕 박남철에게 덧씌워진 해체 이미지를 살펴보지 않고는 이야기를 끌고 가기가 버거울 것이므로 일반의 인식 수준에서 간략히 맛보기나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박남철의 지난 작품은 억압적이고 뒤틀린 세태의 반영이 자주 눈에 띄고 그 항거의 언술을 자주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다. ‘말 중심주의'의 허실을 파헤쳐 언어를 개념과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방법론에 기대어 쓴 시를 해체시라고 한다면 박남철은 황지우와 더불어 모범적 전통시의 형태를 파괴한 일련의 전위적 실험만으로 대표적 해체시인이라 불리어도 무방하겠다. 그들은 창작에서 모든 제약을 벗고 싶어 한다. 텍스트 밖에서 벌어지는 일과 텍스트 안에서 재현하는 일의 일체와 너나들이를 꿈꾸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늘 꿈틀댄다. 그들의 유보된 세계관과 가치관은 날 것의 현실 묘사가 아니라 표절하고 습득하고 인용하고 까발리는 형태를 취한다. 언어가 더 이상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언어불신이 배어있어 독자들로서는 낯선 독법을 요구받는 것과 더불어 적잖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음도 사실이다. 시가 진정한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삶 속에 표출되는 인간의 진실을 포착해야할 것이다. 즉 시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아가 카타르시스를 통해 성숙된 의식의 소유자로 완성되어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남철에게 있어 그의 절제되지 않은 언어 속 진실은 무엇인가. 개인의 내면 탐구 과정을 넘어 첨예하고도 은밀한 부분으로까지 그의 진술은 확장된다. 얼핏 보기에도 위태로운 예각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 박남철 시정신의 진액이 녹아있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어 그 위에 철퍼덕 주저앉지 않으면 그를 읽어낼 수가 없다. 그러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는 평범한 일반 독자들로부터 이해되지 못하며 고독한 선지자의 길을 가게 된다. 밑변의 저변이 없기에 고독하고 그 정점이 구름 위에 위치해 있기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배적인 규범이나 가치관이 없이 혼란에 빠진 상태를 ‘아노미’현상이라고 한다. 산업 사회와 첨단 기술의 발달로 급격하게 변해가는 세대 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차이, 그리고 지역과 집단 간에 맞물린 이해관계의 격차 등으로 인하여 총체적인 지향 목표가 사라진 상태를 말하는데, 얼핏 박남철의 문단 또는 세상과의 불화가 그렇게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부분도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정연한 질서를 독자들이 이해 못하는 데서 비롯된 오해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끊임없이 '독자를 길들이려' 하고 그 과정에서 시시때때로 마찰을 빚기도 한다. 박남철 문학의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많은 부분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백의 형식으로 자신의 모든 생활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문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이 그 기원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박남철은 참회나 반성의 문학이 아니라 진술과 되새김의 문학이다. 삶을 통한 거의 모든 관계 맺기가 그의 작두날 아래 놓여있고 시 꼬챙이에 꿰어져 있다. 그는 무척 꼼꼼하게 까발린다. 그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그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의 정경이 시 속에서 피사체로 들어와 있다. 그뿐 아니라 그림과 음악이 재현되기도 하는데, 음악을 시집에서 들려줄 수 없으므로 태그소스를 친절히 기표해 두기도 한다. 방법적 인용의 시적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박남철 문학을 우호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유용한 언술이 될 터이지만 그 기반이 탄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할 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백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니. 사랑하는 그녀가 말했다. “저, 통신에서 대화하다가 간혹 이상해질 때도 있으면 통신 끊고 들어가서 ‘자위’......해요......“ 내가 담담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순간적으로; 너무나 환하다 싶은 말이었지만 ; 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녹음 무성하고 햇살 환한 유월의 오후, 나는 그녀의 그 말이 베란다 쪽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비 갠 뒤의, 햇살의, 장미의, 햇살의, 말의 폭죽임을 이제 다시 알겠다. 으하하하하하하하......[^^)))!][1999.6] 23p <진실> 전문 '전문'이라고 굳이 밝히는 이유는 맨 뒤의 기표 부분까지도 몽땅 그의 시 안에 포함된 것이기에 그렇다. 이른바 ‘해체시’의 맛보기인 셈이다. 이 시를 보면 시인은 매우 솔직함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이토록 솔직하기 때문에 상대에게도 솔직함을 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부딪칠 도리밖에 없다. 보편성이란 수적으로는 확실히 우세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타당하거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과 시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의 노출은 군중 속에서 언제나 가능하다. 그리고 보편성이 엷어졌다 해서 특별히 배제되어야 할 까닭도 없다. 오히려 눈에 익은 보편성에서 억지스러운 자기합리화나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 등 진실 아닌 것이 발견될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 너무 튀지 않고 묻어가려는 성향 때문에 진실이 가려질 때가 있고 보편성의 함정에 빠질 수가 있다. 특히 문학에선 이런 얼마간의 톡 쏘는 겨자 같은 이질적인 맛에서 진실게임의 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솔직함은 때로 유쾌함을 동반한다. 시인이 진술하는 자의식의 한 단면을 통해 옛날을 꺼집어낸다. 어느 해 늦은 여름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후미진 곳에 잠시 차를 댔을 때 처음으로 그녀가 했던 말 “차 안에 휴지 있어요?” ‘순간적으로; 너무나 환하다 싶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었다’ ‘응......’
1. 버린 시가 나로부터 버려진 시가 온갖 각종 ‘사랑의 시집’들이며 온 인터넷 공간에 흩뿌려져 그 자신이 나로부터 버려졌음을 알리고 있다. 시인 박덕규와의 공동 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청하,1982)에 수록되어 있다가 내 개인시집 ?지상의 인간?(문학과 지성사,1984)을 묶으면서 내가 버린 시가 나로부터 분명히 버려졌던 그 시가 그 자신이 나의 ‘사랑의 시’라고 온 세상에다 내가 ‘사랑의 시인’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내가 버린 시가 나로부터 그 언젠가 분명히 버려졌던 그 시가, [http://www.hamir.com.ne.kr/집필실/106 “버린 시” 2002-03-02 119] 2.
이숙자, 이브의 보리밭(1997) 예술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연의 모방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하면 원숭이가 아닐 수 있겠는가......짐승이 아닐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으로, 자연을 창조하고 창조하고 또 창조한다! [박남철](2002.09.29. Sun. 12:49) 작가 정보 : 이숙자 1942년 서울에서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 졸업. 현재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2002.09.29.Sun. 12:49) 3. 사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을 해보았습니다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사랑이 더 깊어졌습니다 사랑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사랑이 그만 미움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미워졌습니다 사랑이 더 미워졌습니다 사랑이 더욱 미워졌습니다 에라 사랑을 찢어 버렸습니다 사랑은 찌지직 소리를 내며 찢어져 버렸습니다 사랑이 흘렀습니다 사랑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사랑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만 사랑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사랑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없었습니다?전문 P37 ~P40 <버린 시> 전문 박남철이 버렸다고 하는 ‘사랑 시’는 여기에 소개한 것 말고도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첫 사랑’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버스 안에서 늘 새침하던/ 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 포항여고 그 계집애/ 어느 날 누이동생이/ 그저 철없는 표정으로/ 내 일기장 속에서도 늘 새침하던/ 계집애의 심각한 편지를/ 가져왔다.// 그날 밤 달은 뜨고/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엔 정말 계집애가/ 교복 차림으로 검은 운동화로/ 작은 그림자를 밟고 여우처럼/ 꿈처럼 서 있었다 나를/ 허연 달빛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얻어맞았다/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에서 정말 계집애는/ 죽도록 얻어맞았다 처음엔/ 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나중엔/ 눈물도 안 흘리고 왜/ 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달빛 아래서 죽도록/ 얻어맞았다.//그날 밤 달은 지고/ 그 또 다른 허연 분노가/ 면도칼로 책상 모서리를/ 나를 함부로 깎으면서/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자꾸 책상 모서리를/ 깎아댔다.’ 사실상 박남철 시인의 첫 시집인「지상과 인간」은 군데군데 그 ‘실험’으로 인하여 독자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경직된 군사독재 문화의 그늘 아래 유순하게 길들여져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단정하지 못한 그의 시는 일순 의식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시 또한 문화적,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그 형식이나 내용이 유연성을 갖지 못하고 일괄의 규범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 재바르게 ‘포스트모더니즘’의 딱지를 붙인 것에 대해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개 사랑 시는 향긋하고 달콤한 전율이 동반되는데 비해 박남철의 그것은 다소 과격하다. 그의 시는 그리움이나 외로움 따위의 멜랑꼴리한 밑바닥 정서와는 거의 섞여있지 않다. 물론 사랑의 구도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겠지만 때로는 지나치리만큼 진솔하게, 또 때로는 너무나 완곡하게 사랑을 표출함으로서 독자들로서는 출렁이는 격정을 ‘과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감당하기 힘겨운 너무나 벅찬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감정이 어느 한 때에 국한된 것이라면 ?사랑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없었습니다?라는 사랑시는 그의 말대로 ‘버린 시’ ‘나로부터 그 언젠가 분명히 버려졌던 그 시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아토포스atopos'(예측할 수 없는, 끊임없는 독창성으로 인해 분류될 수 없다는 뜻)로 인지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연애관이 개입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사랑의 대상을 분류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자신이 지닌 욕망의 특이함에 기적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안겨온 유일하고도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투적인 것(타인들의 진실)에도 포함될 수 없는 그 자신만이 갖는 진실의 형상이다. 아토피아atopia에 깃드는 무한신비 자체일 따름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의 욕망이 아무리 특수한 것이라도 그것은 어떤 전형에 속하여 분류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어떤 타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타입’을 찾아 일생을 힘들게 헤매기도 하며, 어쩌면 맨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박남철 시집에서 가장 앞서 언급된 그의 아내 ‘송미자’는 매우 순진한 아토피아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그는 그녀의 위대한 순진함을 제대로 읽으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에 있어 스스로 수상쩍은 존재임을 포기하는 유순한 액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사랑처럼 뒹굴고, 질투하고, 버림받고, 또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관계방정식의 사랑이란 늘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독창적인 관계일 때에는 상투적인 모든 것은 흔들리며, 초월되고 철수된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질투 따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머무를 처소도 아토포스도 어떤 결론이나 담론도 부재하는 관계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또다시 가만 생각해 보면 완벽한 독창이란 없다. 그래서 ‘예술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연의 모방일 것이다.’란 견해는 돋보인다. 사랑과 연애도 마찬가지 아닐까. 빌게이츠가 좀 다른 뜻으로 솔로몬의 전도서에 나온 말을 구부려 한 얘기지만 ‘하늘아래 새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조합만 있다’는 말은 유효하게 환기된다. 박남철은 ‘내가 어떻게 하면 원숭이가 아닐 수 있겠는가, 짐승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자연을 창조하고’ 또 창조하면서 품위를 지키려 한다. 사랑 또한 그럴 것이다. [2006. 01. 14. 23:31:53] View Name 박남철[IP:220.72.54.216] Subject "그대에게“ 겨울비 내린 뒤의 섣달 보름달이 둥그렇게 동쪽 하늘에서 조그만 아파트의 세상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내 지금 사는 월세32만 원짜리 중계3동 무지개아파트 203동 115호를 잠시 벗어나 이 밤 동안 먹고 마실 음료수와 빵을 사서 다시 돌아오면서 잠시, 이렇게 섣달 보름달이 밝은 음력으로는 을유년이지만, 양력으로는 벌써 2006년 1월14일인 오늘 나는 잠시, 내 라흘라Rahula였던 해미르가 지난 4월 인사도 없이 훌쩍 입대를 해버리자, 그것을 물은 내게 다시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지금까지 집을 비워버리고 만 해미르의 엄마에 대한 생각도 잠시,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내 어머님이 바로 저 달로 비천하셨음을 내게 알려주지도 않은 내 생부와 동기들에 대한 생각도 잠시, 우선 내가 다시 완벽한 무용지물로서 내 혈족들로부터도 버림받을 수 있었음에 나는 삼가, 다시, 경건해짐을 느낍니다. 나는 삼가, 이젠 그 어떤 슬픔조차 없이, 내 이토록 저절로 가볍게 될 수 있었음에 얼굴도 모를 그대에게, 나는, 삼가, 다시, 감사드리게 됩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제1악장” <EMBEDsrc="http://music.cein.or.kr/music2/akgi/movie/운명1악장.asf"width="480" height="380" type="video/x-ms-asf" loop="true" P67 ~P69 <그대에게> 전문 고단한 삶과 따돌림 가운데도 박남철은 ‘내 이토록 저절로 가볍게 될 수 있었음에/ 얼굴도 모를 그대에게, 나는, 삼가, 다시, 감사드리게 됩니다.’라고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다. 여러 개의 쉼표에서 그가 흘렸을 눈물의 질량이 가늠된다. 현실 극복의 의지에는 두 갈래의 방향이 있다. 현실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상황 극복의 의지와 현실상황이 제공하는 괴로움을 이겨내고 견디고자 하는 의지겠는데, 이 맞물린 두 의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오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중력과 같아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거역하며 부정한다. 어디론가 떠나려고 갈등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다만 막막하고 덜 막막한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차가운 벽 역시 마찬가지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불신과 단절의 높은 벽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회복에의 갈망을 드러낸다. 박남철의 경우 실존의 소외와 위기극복 의지가 좀 생소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는 정도다. 가족과 집은 세상을 여는 첫 관문이자 동시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장소다. 박남철은 최근 서울 변두리의 거소를 벗어나 경기도의 한 공기 좋고 망초 흐드러지게 핀 마을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사람은 누구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 헤매는 고달픈 순례자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이곳에서 ‘벼락 치듯’ 그를 ‘전율 시킨’ ‘금강경’의 경전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탐색과 깨달음의 길을 가고자 한다. 녹슨 추억들은 이번 시집을 통해 정리하고, 일말의 세상에 대한 증오가 있다면 다 버리고 비로소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세상사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하고 익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말은 여전히 민감하고 원칙은 견고할 것이다. 품위는 지켜질 것이며, 기죽을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그의 고백은 계속될 것이나 어쩌면 그의 고뇌는 더욱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진정한 사랑은 불화했던 자기 자신과의 화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잘 알기에 이제 우리는 그가 화해하는 방식을 지켜볼 뿐이며, 그가 내미는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문학적 건강함과 탄력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분명한 확신을 갖는다. 1. 제1분 : 법회가 걸식 이후에 비롯되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m maya srutam") 한때에 붓다께서 큰 비구 무리 1,250인과 더불어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오전에 공양 때가 되어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대성으로 들어가시어, 걸식을 하시었다.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을 다 하셔서는, 다시 본처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마치신 다음에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에 자리를 펴고 좌정을 하시었다. [박남철 옮김] 2. 2006년 3월 어느 날, 나는 인터넷 상에서, 많이 거치른 번역인 듯한 ?금강경?을, 벼락치는 듯한 소리, 로 들을 수가 있었다.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충격 속에 한동안 정신이 다 어질어질해지기도 했었다. 지금까지도 신용불량자인 나는, 눈시울이 흘러내릴 듯한, 삶의 희망을 얻어낼 수가 있었다. 붓다께서도, 이렇게, 평생을 제자들의 앞장을 서셔서 유리걸식을 하셨는데, 내가, 이 내가, 겨우, 나의 이따위 호화판 현실, 을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P179 ~P180 <제1분> 전문
이 시집의 핵심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박남철 시집 <제1분>을 건성건성 읽고 느낀 생각도 웬만큼 다 말했다. 더구나 시집에서 이수정 시인이 이 부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솔직히 불교의 경지로 접어들면 금강경을 새로이 공부해야 하는 부담도 그렇거니와 박남철 시인의 깊은 해찰을 도무지 뒤쫓아 갈 재간이 없다는 고백을 해두는 바이다. 본성을 한순간 깨달아버린 찰나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필자로서는 천천히 그가 들려주는 법 보시에 귀를 기울이는 도리 밖에는. 그리고 그를 찾는 ‘손님’에게 그가 공손히 한 손을 다른 한 손에 받혀 내미는 ‘물잔’을 통해, 더불어 보내는 염화시중 같은 그윽한 미소와 함께, 그의 ‘포스’는 더욱 강력해질 것임을 믿는다. 또한 1969년 다른 지역, 다른 학교였지만 같은 고1을 통과했다는 추억어린 연대감의 인연으로 그의 성공과 건필을 기원하면서 글을 끝마친다.
- 월간 '스토리문학' 2009년 8월호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