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김해헌혈센터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지만 따가운 뙤약볕으로 고민을 해야 했다.
'그래 걷자' 마음먹고 몇 발짝 걷자, 비 오듯 땀이 흘렀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8잔 시켜 들고 김해헌 집에 들어서자 문 앞은 외국인들이 북적거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
커피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나눠주자 센터장은 ‘잘 오셨어요. 시간 되시면 안내 좀 부탁드려요.’ 했다.
난 며칠 전 부적격으로 다시 찾았기에 우선 예약에 맞춰 헌혈이 되는지에 대해 손끝 검사로 비중부터 검사했다.
감사하게도 헌혈을 할 수 있었다. 앗 싸~~!!!
헌혈은 잠시 미루고 우선 외국인 안내부터 해야 했다.
외국인들은 진례면에 직장을 둔 스리랑카인들이었다.
난 헌혈봉사원임을 밝히고 그들을 통솔하고 온 36세의 ‘가야안’씨에게 물었다.
그는 전자문진을 돕고 있었다. 전자문진 도와주는 일은 해도 간호사실 문진 실에 들어가서가 문제였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난 전자문진을 돕는 ‘가야안’씨에게 ‘간호사실에는 개인신상 정보 관계로 같이 못 들어가고 선생님들의 질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문진 실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가야안’씨는 친구들에게 스리랑카 말로 내 말을 전달했다.
한참을 안내에 열중하고 있을 때쯤 그들은 나와 사진찍기를 원했다. 나쁘지 않아 그들과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가야안’씨에게 잠시 여기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스리랑카인들의 모임에서 돈을 내고 간식도 싸 왔다. ??? 직장에서 ~~~~(못 알아들음)'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8년이 되었고 부처님을 모시는 나라기에 헌혈한다, 고 하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헌혈을 몇 번 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가야안’씨도 못 알아듣고 옆에 있던 ‘바산나’씨가 들려주었다. ‘바산나’씨는 헌혈 14번 ‘가야안’씨는 헌혈 9번째 했다고 했다.
예쁜 눈을 가진 스리랑카 여성이 스리랑카 헌혈자들의 헌혈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가야안’씨는 올 3월에 결혼을 한 ‘가야안’씨의 예쁜 신부였다.
그녀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고 남편 ‘가야안’씨를 통해 나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난 ‘땡큐~’라고 말하며 그녀와 함께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렇게 스리랑카 헌혈자들을 안내하며 시간을 보낼 때쯤 빵을 맛있게 먹고 있는 젊은 헌혈자를 보며 ‘아차~! 어제 만든 빵이 있었지.’ 생각이 났다.
그만큼 헌혈하러 왔다가 갑작스레 안내하게 되어 정신이 없었다.
젊은이의 빵 먹는 모습을 옆에서 담을 수 있었다.
‘경남헌혈봉사회에서 봉사원들이 만든 빵입니다.’ 하자 ‘맛있습니다,’ 하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순간 사진을 찍게 되었다.
헌혈자들 바구니마다 우리 경남헌혈봉사회에서 정성스레 만든 빵이 담겨있었고 빵은 13시경 바닥이 났다.
고향 스리랑카에 다녀온 후 한국에서의 생활이 90일이 지나야 헌혈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헌혈자가 40명쯤이 다녀갔지만, 헌혈은 30명 중 24명이 헌혈에 성공했다고 한다.
난 바쁜 시간이 지난 오후에 헌혈할 수 있었고 김해헌 집 도착 후 봉사회 이광숙 봉사원도 만나고 끝나는 시간 봉사회 김성영 고문도 만날 수 있었다.
바빠도 헌혈자가 많아 기분 좋은 김해헌집 방문이었고 함께 안내를 맡았던 근로학생이 한가해지는 오후 3시 40분경 헌혈 287회를 마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첫댓글 헌혈봉사회 전국협의회 이지연 고문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