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가는 길(1)
지금까지 이 땅에 살면서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다. 남한 땅은 거의 지나쳐라도 보았는데, 유일하게 경상북도 북부내륙지방은 가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하기사 항상 바쁜 일정으로 여행을 해야하는 것이었기에 특별한 기회가 없이는 거기까지 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꼭 가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 몇 10여년 동안 휴가다운 휴가도 가지를 못했었는데... 금년에는 반드시 휴가를 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별러왔다. 당장 급한 일들도 있지만 모두 미루거나 포기하고 안동 그곳을 가려는 계획을 했다. 그것도 미루고 미루어서 남들은 휴가를 다 다녀온 다음인 8월 말 주간에 겨우 시간을 만들었다.
막상 그 날이 왔다. 그런데, 문제는 갑작스럽게 토요일부터 오열과 편도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일요일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해서 해열제로 버티고 월요일 이제 휴가를 떠나야 하는 날이지만, 아침에 일어나 결국 여행을 포기하고 병원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오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을 살피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이젠 20년지기 의사 선생님께 어디를 가려고 하니 1주일 분을 처방해 주십사 부탁을 했다. 번거로워진 진료제도 덕분에 이번엔 약국으로 갔다. 약사에게는 졸린 약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아내가 아무래도 여행은 무리라고 버틴다. 결국, 지는 척 하면서 일정을 하루 미루기로 했다.
오늘 아침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하면서 여행을 재촉했다. 아내는 의심을 하면서도 멀쩡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아내는 내가 아프면 어떤 현상을 경험하는지 알기 제일 먼저 약꾸러미를 챙겼다. 그러나 길을 나서자 원인도 모르는 가운데 고속도로에서 서있기를 무려 3시간, 너무 힘들었다. 가뜩이나 몸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 에어컨디셔너를 킨 채 차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무래도 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궁리 끝에 에어컨디셔너를 끄고 창문을 모두 열었다. 시끄럽고 끈적한 느낌이 좋지는 않지만 몸의 상태를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은 미적거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를 길 위에 있었는지. 예상 시간보다 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인천에서 떠나서 영동고속도로에서 시간을 소비했고,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달려서 서안동 나들목을 나섰다. 비록, 고속도로가 막혀서 고생은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산의 수려함이 압도하는 정경이었다. 몸이 지친 상태이기에 여유롭게 느낄 수는 없었지만, 수려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경북 내륙의 땅 안동에 다다른 것이다. 버거움과 설렘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떠나기 전에 숙소는 예약을 해놓았기에 곧 바로 숙소로 찾아들었다.
여장을 풀고 잠시 침대에 몸을 눕힐 수밖에 없었다. 오면서 먹지 못한 약을 먼저 먹고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어나 준비한 주변지역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이곳에 머물면서 찾아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살폈다. 그리곤 잠시 산책도 할 겸, 도시를 느껴보고 싶은 생각에 도심으로 나섰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저녁식사도 해결해야 하니 겸사해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구 도심의 한 복판으로 향했다.
소위 먹자골목이라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았다. 건진국수, 헛제사밥, 안동고등어자반, 안동찜닭 등이 눈에 띠었다. 저녁에 부담이 안 되면서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안동 고등어자반을 선택했다. 그 중에서도 요리를 잘할 것 같은 식당을 들어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찾은 곳이라 습도가 많아서 상쾌하지 못한 상태에서 식사를 했다. 기대가 커서인지 고등어의 맛이 그렇게 입에 붙지는 않았다. 끼니를 해결하고 잠시 산책을 할 겸 도심을 걸었다.
하지만 더위와 습도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컨디션을 끌어내렸다. 얼마를 걸었을까. 구도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아파트들이 앞을 막아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너무 많이 걸었음을 알아 차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전혀 모르는 도시의 한가로운 밤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좋았다. 아마 그만큼 정신 없이 지내온 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2003.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