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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일단(四號一段)
채 만 식
잠깐 이야기가 끊기고.
모본단 보료 깐 아랫목, 문갑 앞으로 자봉침에 비스듬히 팔꿈치를 고이고 앉아서, 박주사는 펄쳐든 조간 신문을, 제목을 훑는다.
잠잠한 채, 방 안은 쌍미닫이의 납을 먹여 마노빛으로 연한 영창지가 화안하니 아침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밝고 쇄러하다.
주인 박주사는, 방이 밝고 쇄려하둣이, 사람도 또한 정갈하고 호사스런 의표와 더불어 신수가 두루 번화하다. 기름을 알맞추, 반듯이 왼편으로 갈라 빗은 짤막한 머리가 우선 단정하다. 마악 아침 소쇄를 하고 난 얼굴이 부웃이 희고, 좋은 화색이다. 마흔여섯이라지만 갓, 마흔에서 한두 살 넘었다고 해도 곧이가 들리겠다. 코 밑으로 곱게 다듬어 새운 가뭇한 코밑 수염이 한결 그러해보인다. 아랫 턱은 면도 자국만 푸르고.
마고자도 조끼도 민으로 은회색 공단이다. 저고리와 바지는 삼팔. 두둑한 솜버선에 대님은 그것도 은회색이다.
갖추 이렇게 화려 선명하고 어둔 그늘이 없다. 방 안을 차린 범절은 그러나, 판연히 대조가 되는 두 갈래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의좋게) 함께 있곤 하여 그래서 언뜻 보매 심히 동떨어지고 어색한 느낌이 없지가 못하다. 가령, 윗목으르 친 여덟 폭 병풍은 추사의 대가 분명한데, 반만 접은 그 병풍 뒤로 크막하니 섰는 책장에는 한 세대 천의 법학생들이 교과서 혹은 참고서로 쓰던 여러 가지 범학 서적이 가득 들어 쌓여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금자박이의 양서까지도 서너 권 섞여 있고, 그리고 더욱 진기하기는 구리야가와하쿠손(廚川白村) 의 유명하던 ‘연애지상주의’ 이것을 비롯하여, 나쓰메소세키(夏目漱右)의 ‘나는 고양이다’니, 가가와도요히코(賀川豊彦)의 ‘사선을 넘 어서’니 승서뭉 번역의 신조판인 톨스토이의 ‘부활’이니 하는 문학 서적과, 몇 권씩의 ‘학지광’이며 ‘개벽’ 등 옛 잡지를 곁들인 것이다.
무릇, 솜버선 마고자에, 책상 대신 연상(硯床)과 문갑을, 문갑 위에는 몇 종류의 한서가 놓였고, 안락의자가 아니라 사방침에 기대앉아서, 퇴색한 추사의 대를 즐기며, 심심파적삼아 한문 고전낱도 뒤적이고 하는 고풍의 중년 신사 박주사에게는 그러므로, 세계를 달리한 듯싶은 이 장서들이었지만, 그러나 일변 그가 항용 출입을 할 적이면 자못 화사한 넥타이에다가 과히 유행에 뒤지지 않은 양복을 차리고 나선다는 사실을 참작할진댄, 그러한 부조화도 저으기 더얼 무안할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시, 그가 약 이십여 년 저쪽, 비록 전문부요 이 년쯤 하다가 중도 폐지는 했을망정, × × 대학에 학적을 둔 적이 있는 동경 유학생의 한 사람이었다는 경력을 고려한다면, 그 부조화는 상당히 존재의 이유를 주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책상을 맨 밑의 서랍을 뒤져본다치면, 무수히 블랭크가 치어 문맥이야 닿지 않으나마 ‘법학총론’이니 ‘민범원론’이니 등속의 펄기 노트가 꽤 여러 벌 들어 있기까지하다.)
따라서, 지금 그 머리맡의 문갑 위에 가서 ‘× × 일본’이라는 화문 잡지의 이달 호가 (실상은 새달 신년 호가) 유색한 미인화 표지를 해가지고, 한서 ‘동한연의’며 ‘고문진보’와 함께 나란히 놓여 있는 어색함도 자연 변명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한갓 그러하되, 잡지가 ‘법률시보’니 ‘외교시보’니 기타 고급한 평론 잡지가 아니고서 취미 본위의 통속잡지인 것은 그가 증왕에 잠시 들른 적이 있던 저 책상 속의 학문 세계와는 어찌하여 그랬든, 이미 상관을 가지지 않은 타인이 되었다는 표적인 동시에, 오직 얻은 바 어학의 힘만이 시방은 실생활 가운데서 조금씩 소용이 되고 있음을 은연중 말함일 것이다.
‘× × 일본’이 놓이고 ‘동학연의’와 ‘고문진보’가 놓이고 한 그 옆으로는, 이미 또 어이한 내력이런지, 멋쟁이 불란서 인형이 한 놈, 상하 사면의 유리곽 속에서 방그레하니…… 패전 고국의 침울한 소식도 모르는지, 꽃다웁던 파리잔느의 명랑하고 호사스런 의상 그대로에, 푸른 눈 붉은 입술로 방그레하니 미소를 머금고서, 솜버선 마고자짜리의, 동방 이국 중년 신사에게 총애를 받으며 행복한 날과 날을 누린다는,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곰상스럽게 생긴 것을 박주사는 예뻐하기를 천생 좋아했다. 무어든지, 몸피가 조그맣고 아담하고 그리고, 정교한 것이면 그는 예뻐했고, 불란서 인형 같은 것이 그의 눈에 고인 것도 그 때문이었었다.
그러나 그는 노상이 판에 박힌 도락가는 아니었다. 어떤 그 방면에 대해서 일정히 체계적으로 연구가 있는 것도 아니요, 욕심 사난 수집광은 더욱 아니었다.
무엇이 되었든, 또 아무 때 어디서고 그 임시 그 임시, 눈에 뜨인다든지 소문이 난다든지 하면, 그래서 마음이 내키거드면, 별반 상량도 없이, 마치 거리를 지나다가 담배나 한 곽 사는 푼수로.(값 같은 것은 전혀 헤아릴 여부도 없이) 가볍게 그저, 하나 사보고 할 따름이었었다.
이런 솜씨로, 연전에는 꼬마 자동차를 한 대 샀었다. 한참 국산 닷산이 퍼져 택시 영업차로 시중을 뽈뽈 달러 다니고 할 무렵 인데, 박주사는 하두 그놈이 재롱스럽고 예뻤었다.
최하로 육백 원이면 살 시절이었지만, 어떻게 해서 골라잡은 것이 천삼백 원짜리였다.
막상 그러나, 사놓고 보니 실없이 고놈이 손에 주체스러웠었다. 운전수를 두잔즉 너무 허겁스럽고, 몸소 운전을 하잔즉 상패스럽기도 하거니와, 우선 운전을 배운다고 거기 어디 자동차 학교 등속엘 드나들기부터가 점잖지 못한 노룻.
그뿐더러, 가사 운전수를 두거나 몸소 운전을 해서거나, 좌우간 그 깜찍스런 물건을 졸랑졸랑 타고 돌아다닐 비위는 차마 없었다.
뒷마당이 넓직하겠다, 아무렇든 혼자 조종법이라도 익힐 겸, 울 안에서 타볼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건 또, 며느리야 딸이야 손녀야 마누라야 하인배들이 보는 데서, 그리고 손자놈의 삼륜차와 경주를 다 하게 될 형편이니, 차라리 더 체모가 아니었었다.
애초의 요량이 실용은커녕, 구태라 노상으로 타고 나다니며 하려던 게 아니요 한갓 재롱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었음을 나중에야 스스로 깨달았으나, 그러니 그렇다고서 그 엉뚱스런 장난감을 방 안에다가 들여놀 수도 없고, 생각다 못 해 밧줄로 얽어서는 광의 대들보에 도옹동 매달아두고 말았다.
요새는 그것을 열세 살박이 막내둥이가 가지고 놀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내맡겨보 무방은 하겠으나 가솔린이 구지부득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번은, 고향의 연하 친구 하나가 방문을 오면서, 라이카를 가지고 왔었는데, 그의 묘한 생김새와 더불어 정교한 성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그 이튿날 마치 본정통(本町通)엘 갔다가 팔백 원짜리를 하나 샀었다.
필름을 넣어 가지고, 병풍의 대도 찍어보고, 셰퍼드 막둥이를 데린 차인군 삼복이도 찍어보고, 망원 렌즈를 끼워 들고서 멀리 길을 가는 나무 장수두 찍어보고 한 것을 사진관에 보내서 현상 야키쓰께를 해다간 괴상스런 그 영상들을 보고는 실소를 하고.
그러나 반드시 사진을 찍자는 것이 라이카를 산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사진이야 잘 되어도 그만 도께비가 나와도 그만 또 필름없이 셔터만 눌러도 그만이었었다.
한 달쯤 해서 그런데, 중학 상급 학년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 경주로. 수학 여행을 간다면서 그걸 걸메고 가더니 돌아올 때는 빈 ‘색’만 가지고 왔었다. 불필히 알맹이를 꺼내 들고서 차창 바깥으로 내대고 찍노라다가 놓쳐 버렸다면서.
박주사는 그 말을 듣고서,
“거, 빈 벤토 껍데기보.다는 좀 비싼 걸 그랬니?”
하면서, 빙긋이 웃을 뿐이었었다.
불란서 인형은 재작년 오월, 본정통의 어느 백화점엘 들렀다가 문득 눈에 띄어서, 팔십 원을 내고 샀었다.
이때만은 박주사도, 대체 이게 무엇이길래 팔십 원일꼬 하는 생각이 나지 않지 못했었다. 그만큼 그는 불란서 인형이란 것에 대하여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으면서도 그것을 예뻐만은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사다가 놓자 금시로. 집 안에 소문이 좌악 돌아, 열다섯살박이 큰 딸과, 같은: 동갑인 질녀가, 서로 가지고자, 저마다 샘을 내었다.
한 놈이라면 선뜻 집어주겠지만, 두 놈이라 놔서, 불가붙 따로 다른 걸로 꼭 같은 놈 물을 사다가 각기 하나씩 나누어주어야 했었다. 그 덕에 지금 저 파리잔느는 여지껏 주인 양반의 총애를 받으며 지내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2
훨씬 아래로 떨어진 동넷 집 뒤울안의 살구나무에선지, 아침까치가 싸느랗게 두어 소리 지저귀더니, 그도 이내 조용하다. 경성부(京城府)라곤 하지만, 문밖이요 산과 숲이 있어서, 곧잘 다람쥐가 정원엘 들르곤 하는 터라 까치나 낡은 뒤울안의 살구나무 고목 같은 것은 예사로 흔했다.
이윽고 박주사는, 무심중 손에 집히는 대로 펼쳐 들고 잠깐 눈을 주는 시늉하던 신문을, 곧 도.로 내려놓으면서 얼굴을 쳐든다. 무어라고든, 이야기가 더 계속이 있으려니 함이다.
넌즈시 방 한 군데만큼, 윗목께로 방석 위에다 한 무릎은 뉘고 한 무릎은 세워 ㅍᅟᅡᆯ짱 낀 팔을 얹고(이렇게, 그대로 어디 가서 들어다 논 듯 당시랗게 앉아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콧물을 들이마시면서, 가만가만 몸을 앞뒤로. 끄덕거리고 앉았는 영감은 박주사의 집 거간 노릇을 하는 최생원.
맨 처음 박주사의 살림집을 사준 것이 발연이 되어 미구에 그 집을 팔 적에도, 댓집을 살 적에도, 이 최생원이 거간을 했었다. 눌러서 오늘날까지 꼬박 십 년 따로이 토지 거간을 하는 윤팔이와 더불어, 최생원 그 동안 넉넉 오백 채도 넘는 박주사의 집 매매를 도맡아 거간을 해 내러왔었다.
그 길다면 길달 수도 있지만, 짧다면 짧달 수도 있는 십 년 사이, 박주사는 윤팔이와 최생원이 토지와 집을 꾸준히 사주고 팔아주고 하는 동안, 어느덧 지금과 같은 막대한 재산을 장만했었다. 물론 돈 십만 원이나 부형의 조업을 탄 것이 없던 매는 아니나, 불과 십 년 하여서 오십만 원 가까운 성세를 그는 이루어 놓았었다.
그러나, 짧고도 긴 그 십 년지간에 그때나 시방이나 조금치도 변함이 없이 간구하기는, 윤팔이도 윤괄이지만, 최생원은 더욱 최생원이었다.
언제 보아도 드레지 않은 적이 없었던 둣 싶은, 노닥노닥 기운 당목 두루마기, 역시 딴 조각을 빚깔조차 같지 않은 여러 조각으로. 기운 양말, 그리고 마루 구석에 벗어놓고 들어온, 낡은 중절 모자와 낡은 털실 목도리는, 십 년 전 그때에 쓰고 다니던 모자요 두르고 다니던 목도리 일시 분명할 것이다.
박박 깎은 머리, 그래서 유난히 더 귀만 커 보이는 우뚝한 양편 귀, 근천스런 코, 한 가지.로 근천스런 위아랫수염, 주름살이 가득 얽힌 얼굴과 홀쭉 팬 볼, 모두가 십 년 천 그때와 다름없이 꾀죄하니 궁졸스런 상모다. 허나 그러면서도. 한갓 속절없기는, 머리터럭과 수염이 알아보게 센 것과, 입이 완구히 합죽한 것이며 그리하여 오직 늙음만이, 변치 않은 그 위에 가서 더해 있을 뿐이다.
신문을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들던 박주사는, 그러다가 곰곰이 그대로, 최생원의 얼굴을 걘소롬히 건너다본다. 역시 최생원의 그렇듯 지지리 가실 줄 모르는 궁졸한 신수를, 어언 그리고 늙음만이 역력히 드리워 있음을 문득 느꼈음이리라. 십 년 전 어느 날, 재동 어느 복덕방에서 처음 비로소 대면을 하던 그날이나 십 년이 지나간 오늘이나, 어쩌면 저다지도 한결같이 초라한 상모일런고 그러하건만서도, 어느덧 머리는 거진 다아 세고 앞니는 잇몸만 남고 주름살은 빈틈이 없고……·저다지도. 늙음만 깃들인고, 이런 느낌이 있었으리라.
푸뜩 그래서, 생각이 나는 대로(별다른 의사가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한담삼아서 물어보는 말이던 것이다.
“최생원 참, 올에 연치가 어떻게 되셨지요?”
물어놓고서 생각을 하니, 아무러니 십 년 주객인데 우금 나이도 모르고 지내도록 범연했던고 싶어 스스로 고소를 않지 못 한다.
“허!”
최생원은 웃음에 탄성을 곁들어 내다가, 앞니 빠진 잇몸이라 침을 그만 한 줄기 흘리고는, 얼른 팔짱 낀 손을 뽑아 턱을 씻기가 바쁘다.
“……·염치없는 나이가 벌써 예순다섯 인걸요!”
“…….”
박주사는, 나하고는 부집(父執)이로구나 생각하면서 말없이 바라보는 채, 고개만 두어 번 가볍게 끄덕인다.
최생원은 조금만에 다시,
“금년이래야 며칠 남았습니까? 접때 동짓날 댁에 와서 팥죽을 먹었으니깐 이젠 예순여섯이지요! 허, 허!”
“자녀간에 몇 분이나 두시구?”
“늦게에늦게, 남맬 겨우 둔 것이…….”
“딸년은 출갈 해설람 그럭저럭 살구요 자식놈은 갓스물인데, 지난 봄에 전차 차장에 뽑혔대나요! 쯧!”
“인젠 그마안 고생을 하시구서, 자제 덕이나 보시지?”
“여대 그놈 장가도 못 들인걸요!”
“…….”
박주사는 속으로, 사람이 세상 살기라는 게 천차만층이라더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또 고개를 끄덕인다.
“…….”
“…….”
둘이서 다시 한동안 잠잠하고 있다가 얼마 후에야 최생원이 불시에 촉량이 들어서……, 그는 어서 대강, 오늘 소관에 대한 이야기를 끝을 내고서, 잘못 ‘호랭이’와 마주치기 전에 냉큼 자리를 일어설 것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처음 아까 중판을 민, 그 이야기로 말을 도로 옮겨,
“게, 어떡허실른지?……·내 요량 같아서는……·.”
“글쎄……·.”
박주사는 쾌히 응낙을 하는 것도, 아니나 그렇다고서 난색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담배합에서 궐련을 집어다가 불을 붙인다.
오랜 상종이라, 그의 솔성과 사람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생원은 그만하면 박주사가 별 이의가 없는 것으로 여겨도 무방했다.
청량리 저쪽 회기정에다가 집을 스무남은 채, 도통 이백 칸 가량 지은 게 있었다. 작년 초가을까지에 공사를 다아 마쳤는데, 그 중 몇 채는 준공 즉시, 매칸 삼백육십 원이니 삼백팔십 원이니 하는 상당한 값으로 매매가 되었었다.
그러자 때마침 부동산 방면의 금융이 투색되면서 시세는 뚝 떨어져 삼백삼사십 원. 그러나 시세도 시세지만, 고만 시세에도 도무지 흥정이라는 게 없었다. 금년 늦은 봄참에, 삼백삼십 원씩에 겨우 두 채 열아홉 칸이 팔렸을 뿐, 그러고는 나머지 열여석 채에 백오십여 칸은 그대로. 나가 자빠져 있었다.
형편이 이러하고 보면 일반적으로 뜬 시세 같은 것은 전혀 종작할 바이 못 되고, 따라서 아무런 소용이 없고 그 시세에 넘거나 그 시세에 처지거나, 좌우간 사는 게 값이요 파는 게 값이요 한 것이었었다.
과연, 지금 최생원이 가지고 온 소식컨대는, 여덟 칸짜리 한 채는 삼백 원씩에, 열두 칸짜리 한 채는 삼백십 원씩에 각기 한 채씩 원매자가 있다는 것이었었다.
이, 삼백 원 내지 삼백십 원이라는 값으로, 박주사는 건축을 팔아도 그만이었고, 그러나 또, 팔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삼백 원이나 삼백십 원이 아니라 그 안쪽을 이백오십 원이나 이백 원이나, 단 백 원이나, 하더라도 그러했었다. 반대로, 삼백오십 원이나 사백 원이나 사뭇 오백 원이나 하더라도 역시 그러했
었다.
돈이 무슨, 옹색한 것도 아니고 남의 돈을 끌어다댄 것도 아니요, 따라서 금리가 무럭무럭 늘어나가는 것도 빚 졸림을 당하는 것도 아니요, 한 바에야 구태여 팔지 못해 할 며리는 없었다.
일변 그러나, 아무 때 팔아도 팔기는 괄 것이겟다, 이번으로써 그 노릇은 손을 뗄 요량이겟다, 그러나 부질없이 묵혀두고 질질 끌기보다는, 어서 바삐 청장을 내버리면 시원해서 좋았었다.
채산이랄지 이해 득실은 고려 밖이었다.
사백 원이나 하던 것을 삼백 원씩에 팔아 넘김으로써만 오륙천 원의 손해를 본대서, 그걸 박주사는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었다.
도통 따지면 먹힌 원가가 매칸 이백오십 원 남짓이 돌아가는데, 삼백 원씩에라도 괄아 넘김으로써 돈 만 원이나 이문을 본 대서, 그만하기도 다행이라고 손바닥을 비빌 사람 역시 아니었었다.
막이 살전을 기만 원 손을 본다든지, 영영 한 채도 팔리지 않아서, 들인 밑천 오만 원을 통질로 잃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제법 가슴을 치거나 코가 빠질 사람 또한 아니었었다.
그러하되, 오만 원이나 만 원이나 등의 돈이 그의 전재산에 비해 극히 적은 일부분이래서 그러므로. 그러한 정도의 손쯤 재산상 그리 큰 타격이 되지 않는 대서…… 물론 그렇지 않는 것은 아니나, 노상이 또 그렇달 수만 있는 것도 아니었었다.
이를테면, 하루 아침 기적이 있어, 그의 재산 오십만 원이 몽땅 죄다 없어지고 말았다고 하면…… 아마 그런 경우를 당해서도 그는 연전에 둘째 아들이 수학여행을 간다고서 팔백 원짜리 라이카를 갖다가 내버리고 왔을 때 이상토록이 섭섭해할 줄은 모를 사람이었었다.
3
“가만히, 돌아가는 물정이, 한 푼이래두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좀처럼 생할 눈친 없는 것 같드군요? 그러니 그저, 한두 채라보 작잘 만난 계제에……·.”
“쯧! 아무러나 좋도록 하십시요그려!”
“그런깐두루 거저, 좀 나뿌다 할 맥이라도, 계젤 놓치지 말굴라믄, 연해 자꾸자꾸 처분을 하는 게 득책일 상불러서……그래서 참……·.”
“온, 한편 생각하면, 내가 보기도, 하아도 섭섭해서……·일 년 남짓해서 집 한 칸에 백 환씩 손을 보시니!”
“사무소로 가서 용택이하구 상의하시면 그만일걸…….”
“것두, 돈이 일이십 원 상관일세 말이지, 거 어디, 쥔주사허구 의논이 없을 수가 있더라구요?”
“쯧! 좋도록 하실 거지, 걸 무슨……·.”
“허허! 참 덕인(德人)이시여! 덕인이시여! 아무렴 덕이 있으니깐 다아 참, 복을 받으시구…….”
최생원은, 박주사만이라면 다시금 여러 소리를 늘어놓는다, 주장을 한다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십상 간섭이 없지 못할 ‘호랑이’ 즉, 박주사의 부인 강씨의 입을 될 수 있으면 막아버리는 것이, 일이 성가시지가 않을 테였었다. 그리고, 그리하자면 박주사로 하여금 좀더 확실한 작정을 가지게 함으로써, 간접으로. 강씨 부인의 반대를 막도록 하는 것이 좋았었다. 꼭이 효험이 있으리라곤 막상 믿기도 어렵지만.
아무튼 그리하여 최생원은, 웬만큼 인제는 퇴각을 하려 하는 참인데, 바투 그때에, 안채로 통한 뒷 복도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그래서, 아뿔사! 들켰구나싶어 찌잉하는 사이, 어느덧 미닫이는 드르릉 열리고 말았다. 그러나 ‘호랑이’는 아니었다.
쪼그만 놈이, 수병 모자에, 털강아지처럼 부얼부얼하니 털외투에, 물병을 걸메고, 방글방글 문턱 안으로 턱 들어서는 귀때기에다가 병정 경례를 딱 붙이면서, 글 읽듯 또랑또랑,
“할아버지, 유치원에, 다녀오겠습니다.”
“오오냐!”
박주사는 얼굴에 미소를 드리우면서 점잔하게 대답이다.
뒤미처 또 한 놈이, 같은 낫세라도 다박머리 기집아이가, 쫓아들어오더니 저도 병정 경례를 붙이면서,
“아버지, 유치원에, 다녀오겠습니다.”
“오― 냐!”
박주사는 아까처럼 미소를 하면서, 아까처럼 대답을 한다. 그러고는 턱을 까불면서,
“이리오온!”
두 아이는 경주나 하듯이 우루루 달려와서, 제각기 한 무릎씩 차지하고 털썩 털썩 안겨 앉는다.
박주사는, 이놈 거놈 번갈아 가면서 볼비빔을 해주다가, 이윽고,
“창선아!”
“네에?”
“숙희야!”
“으응?”
“으응이라니?”
“네에.”
“오오! 길루 다닐 때는?…….”
“왼편으루, 다닙니다아.”
둘이서 합창으로 대답을 외운다.
“오옳지! 길을 건너갈 때는?”
“서서 보다가, 자동차나, 마차나, 자행거나, 없을 때 건너갑니다아.”
“오옳지! 길에서 노는 아이는?”
“길에서, 노는 아이는,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아.”
“오옳지! 길에서 주점부리를 하는 아이는?”
“길에서, 주점부리를, 하는 아이는, 착한 아이가 아님니다아.”
“오옳지! 허허허허!”
박주사는 이렇게 강을 받고 나서, 또 번갈아 볼비빔을 해주고는 아이들을 놓아보낸다. 아이들은 뒷문께로 달려가고, 거기에는 삼복이가 벌써 대령을 하고 섰다.
박주사는 삼복이를 신칙하여, 조심해서 데러다주고 오라고 이르기를 잊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별의 주의도 받지 못한 채, 그리하여 존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그 아이들의 귀여움과 더불어 하도 부러운 박주사의 낙을, 정신없이 바라다보느라, 절로 빙그러니 근천스런 미소를 드리우고 앉았던 최생원은, 아이들이 물러나가고 문이 닫기고 한 후에도. 한동안 고개를 돌릴 줄을 모른다.
“거, 수히 이 근처에다가 유치원을 하나 설치를 하든지 해야지, 원…….”
이런, 박주사의 혼잣말이 들러서야 최생원은 비로소 아적도 그대로. 황홀한 얼굴을 이편으로. 돌린다.
“하난 그런깐 손자 애기구, 하난 딸애기구, 그러시구우?”
“그렇답니다!”
“허허! 참 복인(福人)이시여! 복인이시여…… 딸애긴 그런깐두루, 마아침 양념딸이시구우, 손자 애긴 첫 손잘보신 심이신가?”
“그놈 위루 하나가 또 있지요 아홉 살맥이루·…….”
“은 저런! 오십 전에! ……·허어……참, 복인이시여! 복인이시여!……·자손은 번창하구, 성세는 불일 둣 일구……·.”
“덕이 있으면 복이 따르는 법이여!……·드문 팔짜, 드문 복인이시여!”
아첨이라느니보다도 늙은이의 궁상스런 감탄이겠는데, 덕인이 네 덕이 있어서 그러네 하지만 그것까지는 막시 몰라도 복인이라든가 복이 있다든가 하닷 소리는 역시 그런 대로. 승인을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미상불 박주사의, 이른바 좋은 팔자 즉, 행복과 및 그 유래를 갖다가 한 마디로써 설명을 하자면 ‘복’이란 그 말이 가장 무난하고 편리한 말이기는 할 것이다.
충청도의 어느 삼천 석이나 받는 부자요 소위 반명한다는 집안에, 삼 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었다. 의식 그리운 줄도 부모 동기간의 애정 그리운 줄도 모르고, 남의 흠모와 추양을 갖추 받을지언정, 남께 괄시나 이놈 소리 한 번 들은 적도, 들을 며리도, 없이 소년 시절을 고히 자랐었다. 잔병이 끓거나,생명을 걸고 삐댈 만한 중병을 치른 적도 없었다.
낙지하면서 타고난 이 호감은 소년 이후 청년 장년을 지나 초로에 든 이날 이때까지 조금치도 변하거나 축지거나 함이 없었다.
일찌감치 열여섯에 정취를 했었다. 부인 강씨는 나이 다섯 살이나 맏이였었으나 금슬은 대단히 좋았었다.
열여덟에는 첫아들을 얻었고, 양념딸이라던 숙희까지에 다섯 남매를 ㄹ하에 두었다. 맏아믈들 지금 나이 거의 서른, 그 몸 몸에서 두 손자를 보았다. 그 준례로만 나간다면 환갑 전에 넉넉 증손자를 보아, 한 마당에서 사대가 살고 있게 될터. 환갑 잔치가 단란한 것은 물론이요 일흔여섯에는 회혼례 잔치가 또한 혼란스럴 수가 있을 테였었다.
자녀손들은 몸이 거개로 충실하여 집 안에 우환이 잦다거나, 항차 참척 같은 것을 당해본 일이 잔작에 없었다.
학업에 남다른 정성이나 출중한 재주투룩은 없어도 낙제한 통신부를 안고 돌아오는 놈도 없었다. 이른 말을 타지 않는다기나, 남과 시비를 것고 다닌다거나, 더욱이 불량한 동무와 주축을 한다거나 하는 법도 없었다.
박주사는 스물여섯 되던 해, 동경 유학 중도에 부친 박진사의 상을 만나 향제로 돌아와서는, 눌러서 칠백 석 거리의 분재 탄 것을 가지고, 독립한 일가의 호주가 되었었다.
칠백 석 거리의 전장이니 의식이며 가용이 옹색할 것은 없었으나, 지방 소지주답게 감농이나 하고 소작인이나 고객삼아 푼푼 식리나 하고, 하잘 규모도 주변도 흥미도 없는 박주사는 자연 시골 살림이 무료한 일방 항용들 하듯이, 부재 지주로서 서울로 이주를 하고 싶은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집안간에서는 그런데, 세 집 사이에 생긴 자질 여러 아이들의 교육이며 감독을 담당할 겸, 삼 형제 가운데 누가 하나쯤 서울살림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의논이 있어 온 참이라 박주사는 마침내, 전장의 관리를 천상 그 재목들인 형과 아우에게 맡겨버리고서, 가뜬히 서울로 옮아앉았고 그것이 꼭 십 년 전이었었 다.
그 십 년 동안에 박주사는, 일찍이 꿈에도 없던 집장사를 한 것이 꿈결같이 큰 성세를 장만했었다. 많은 재물이 가지고 싶었던 것도 아니요, 남처럼 긴장하여 서둘며 납딘 것:도― 아니요. 경륜이나 포부 같은 것은 더욱이, 애초부터 지닌 게 있던배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제일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어떤 형제가 있어, 부모에게서 같은 액의 약간한 재산을 각기 물려 받었드란다. 그것을 형은 위인이 착실 고정하여 낭비를 않고 잘 지키고 사는데, 동생은 돈냥 생긴 김에 맨판 술만 먹어대고, 하느라고 미구엔 한 푼 없이 톨톨 털어버리고서, 빈 술통과 맥주병 나부랭이만 집안에 수북히 쌓였더라고.
그러자, 전쟁이 뚝 끊지면서 마르크가 디리 폭락이 되어가지곤, 어떻게나 몹시 떨어졌던지 노파 하나이 큰 보퉁이를 안고서 만원 전차를 타려고 하는 것을 차장이 짜증을 내어,
“짐은 안 돼요!”
하고(거기도 경성 전기회사가 있었던 모양으로) 사뭇 지청구를 하니까, 그 노파 애원하는 말이,
“여봅시오! 이게 찻삯 낼 돈입니다!”
형편이 이 지경이었을진댄, 아까 그, 착실한 재산을 지키고 있었다던 형이란 사람쯤, 허울 좋은 휴지 지폐 마르크 무더기 속에 묻혀 앉아서, 끼니가 간 데 없었을 것은 불문가지.
한편 그런데, 술만 퍼먹고 한 푼 건지 없이 되었던 동생은 어쨌느냐 하면, 숱한 그 빈 술통과 맥주병을 팔아가지고, 담박에 큰 부자질을 하더라고,
어느 실없는 사람이 짐짓 지어내느라고 지어낸 농담일 것이나, 박주사네 삼 형제를 놓고보자면 (물론 그와 동일지담은 아니더라 하더라도) 조금 그와 일맥 상통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가 없지 못하다.
박주사네 삼 형제 가운데 맏이는 장자라서 천이백 석 거리를 타고, 끝이는 박주사와 한 가지로 칠백 석 거리를 탔었다.
그래 가지고, 이래 십 년 동안 맏이와 끝이는 근실한 지주 노릇을 한 덕분에, 얼마쯤 재산을 각기 놀였었다. 맏이는 한 이백석, 그리고 끝이는 사람이 더 영악하여 삼백 석 가량 늘여서 천 석을 채웠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었다. 소위 ‘토지의 자연증가(自然增價)라는 것으로, 맏이의 재산이 십 년 전의 십이만 원에서 지금은 이섭만 원으르 평가가 되고 끝이의 것이 구만 원에서 십오만원으로 각기 평가가 되고 하기는 한다지만 실 내용에 있어서는 이백 석 거리와 삼백 석 거리가 겨우 늘어가지고, 천이백 석 받던 사람이 천사백 석을 받고, 칠백 석 받던 사람이 천 석을 받고, 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박주사보다 몇 갑절이나 더 부지런했었다. 그러면서 박주사의 몇 칸의 한 칸도 용은 더얼 썼었다. 박주사 같아서는 엄도 못 내제 성세를 부리고 싶은 열망이 컸었다.
그렇건만서도, 문명하고 살기 좋은 대처바닥 서울서 선화당 같은 집을 지니고, 돈을 물 쓰둣, 잘 먹고 잘 입고. 유유자적 편안히 살면서, 또 돈을 모으자는 성의나 흥미도 주변도 와락 그리 없으면서, 그랬으면서도 박주사는 십 년 후 오늘에 이르러 자그마치 오십만 원의 돈을 모으지 않았느난 말이다. 실로, 원재산의 일곱 갑절이다.
지극히, 간단하고도 번연하여, 담배 한 대 피우기와 다를 게 없었다.
맨 처음 원동에다가 살립집으로 집을 산 것이, 협착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석 달만인지 팔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노릇인데, 산 값보다 천 원 소수를 더 받았었다.
댓집을 사놓고 본즉, 너무 이번 치는 커서, 공지를 사이에 둔 뒷채는 수리만 해두고 쓰지 않다가, 최생원의 권염으로 떼어 팔았더니 집 전체 값이 그놈에게 빠지는 것 이었었다.
부인 강씨가 신이 버썩 나서, 박주사더러 집장사를 하자고 졸랐었다.
이 강씨 부인이라는 여인이, 사나이 웬만한 이재가(理財家〉 뺨쳐먹을 만치, 선견지명에 잇속 밝고, 주먹 구구 용하고, 경우 바르고, 과단있고 영악하고……·과시 ‘호랑이’란 별명이 허전이 아니었었다. 박주사가 그렇듯 치부를 하기는 그러므되 강씨 부인이 등 뒤에서 조종을 하고, 때로는 직접 나서서 활약을 하고 한 덕택 이라고도 이를 것 이었었다.
박주사는 처음엔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누차 졸리다 못해.
“쯧! 그림 어디……·.”
이린 생각으로, 우선 고가를 한 채 사서 대강 고쳐서, 팔아보았었다. 장난같이, 두둑이 이문이 남았었다.
그 다음, 또 해보아야, 또 그러했다.
최생원도. 차차로 맛을 붙여 가지곤 연방 고가를 물색해오고 그걸 헐찍하게 사서는, 조금 그저 눈어리기로 고치는 시늉을 해놓는다치면, 최생원이 냉큼 들어서 엉뚱한 값에 팔아주고.
큰 대가집 낡은 것을 사서 죄다 헐어버리고서, 소위 집단 소 주택을 지어는 즉은, 그건 더 잘 팔리고, 이문도 더 숫디었었다.
윤팔이가 참가를 하여, 교외로 그럴 듯한 토지를 거간하고 거기다가 올망졸망 집을 지어놓기가 무섭게 최생원이 눈깜짝할 사이도 없이 말끔 죄다 팔아 넘기고.
그저, 사서 고쳐놓으면 괄리고, 지어놓으면 팔리고 했었다. 팔리면 드뿍드뿍 이문이 남고 일이 좀 부풀면서는, 미장이야 토역장이야 무엇이야, 무엇이야, 뻔질나게 사랑으로 드나들어, 그걸 피하느라고 종로 어느 빌딩에다가 사무소를 하나 개설하고는 용택이를 그리로 쫓아버렸었다.
이 사무소에서 용택이는, 조수 한 사람을 데리고, 회계와 감독과 주인 대리를 보며, 일 처리를 천부 해치웠다. 하기야 그새까지도 일은 용택 이가 도통 맡아서 했었지만.
박주사는 한결 더 편하고 한가할 수가 있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든지, 흑은 사무소에 들러서든지, 용택이가 형식상 알리는 보고나 들으면 그만이었었다. 아무 데치 몇 채가 암만씩에 팔렸소. 아무 이러저러한 곳에다가 암만씩에 땅을 암만을 샀소. 목재를 암만 치를 샀소. 이번 아무 자리 치는 전부에서 이익이 암만이었소. 이렇게…….
이렇게, 물 마시듯 수월수월하게, 최생원이 고가를 사들이고, 용택이는 땅을 물색해오고, 미장이와 토역장이는 집을 고치고 짓고 하고 최생원 등이 나서서팔고, 용택이가 범백을 통솔하여 처리하부인 강씨가 가끔 더러 의견도 말하고 참섭도 하고…… 하는 동안에 이문은 자꾸자꾸 봇고?……·하기를 미만 십년 ……·그러자 하루 아침 대략 셈을 헤아러보았더니, 오십만 원 짜리 재산더미 위에 가서 올라 앉았는 자신을 박주사는 문득 발견하였던 것 이었었다.
이와 같이, 지극 간단하고 명료했었다. 어느 한 때고 어떤 한 구석이고 난관이나 차질이 있는 적이 없었다. 오직, 담배 한 대 피우기처럼, 물 한 모금 마시기처럼 간단하고 수월함이 있을 따름이었다.
세상은 그리하여, 주저없이 박주사를 일러, 유복한 사람이요 ㅍᅟᅡᆯ자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 것이었었다.
4
적실히 박주사는, 유복하고 팔자 좋은, 즉 행복한(적어되 행복할 수 있는) 생태(生態)의 컨디션이요 및 그 연속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누구나 박주사와 같이 그런 생태의 컨디션이요 및 그 계속이라고 한다면 항용 행복할 것임에 또한 틀림이 없을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객관적으로 행복한 컨디션이라고 해서, 그 객관에 대하여 반드시 주관이 일치하는 것이라고 는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치하는 것이 물론 상례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도 노상이 없진 않기 때문이어서, 다.
박주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종종 듣는 말이요, 지금만 하더라도 최생원이 앉아서, 덕이 있네 어쩌네 하면서, 복인이라는 등 호팔자라는 등 탄복하여 중언부연하는 소리가, 잠자코 듣기는 하는 것이나 속으로는 연제나 마찬가지로, 조금치도 귀에 울려 실감이 나는 줄을 모르겠고, 그러면서 한갓 궁금하기만 할 뿐이었었다.
“대체 무엇이 복이며, 어쨌으니 호팔자란 말인고?”
“가문 좋은 부자집에서 태어났대서?”
“호강으로 자랐대서? 고생을 모르고 산대서?”
“자녀손이 번창하대서? 집 안에 우환과 근심이 없대서?”
“힘 안 들이고 돈을 모았대서? 오십만 원짜리 부자래서?”
“이런 게 다아, 복이요 좋은 팔자란 말인가?”
“가사 또 , 그런 걸 복이요 호팔자라고 친다손 하더라고 그게 무엇이 그다지 좋으며, 어쨌으니 그다지 부러운고?”
“모를 일이로.군! 모를 일이로군!”
이렇게 그는 가벼이 회의를 하는 것이었었다.
이것은 그러나, 막상 그가 보다 더한 행복, 가령 제왕 같은 지체며 장상 같은 명예를, 재산으로도 석숭을 능가할 거부 장자를 바라고 의욕하여 시방의 행복을 시뻐하는 탓이더냐 하면 아니었었다. 혹은 현자의 풍도가 있어, 진속의 행복이나 물욕 같은 것을 초탈한 철인다운 기품을 지닌 소치더냐 하면, 그역 아니었었다.
지재차산중 운심부지처(只在此山中雲深不知處)란 격으로, 오로지 행복 속에서만 살아야 불행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탓이기 쉬웠을 것이다. 열이 어느 한도 이상에 올라가면, 만져도 열인 줄은 감각지 못하는 사정과 같달 수도 있겠고.
그러나 그 이전에, 박주사라는 사람이 오직 박주사 그 사람인데에 가장 원인이 없음도 아닐 것이다.
부질없이 남의 호강에 팔려 해망을 하고 앉았다가, 최생원은 ‘호랑이’한테 그만 띄고 말았다.
하인 오월이가 박주사의 조반상을 올리는 뒤를 따라 은쟁반에 은잔과 은주전자를 받쳐 들고 반주 시중을 나오는지, 나오던 강씨 부인은 문 밖에서부터 최생원을 알아보고서 웃은 낯을 짓는다.
벌떡, 최생원은 일어서기는 했으나, 그대로 앞문이라도 박차고 내빼는 수는 없었다.
강씨 부인은 문턱을 넘어들어오면서, 호감히,
“오랜간만에 오셨군요!”
“네헤! 아 참 오래간만에…….”
쩔쩔 매느라고, 먼저 인사를 못 했다가 겨우 대응을 하고는 뒤미처서야 다시,
“……·그새 안녕하신 말씀은 들었슴다! 댁내 다아…….”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총총히…….”
“네혜, 좀 긴급한……·.”
그럴 때에 박주사가
“거, 약주나 한 잔……·?”
“웨엔 걸, 술을 먹 나요? 어디…….”
“많인 못 하셔두, 왜, 몇 잔 하시지?”
‘웬걸, 무어 먹나요!“
전에 없이 굳이 사양을 하여, 박주사는 더 만류하는 대신 배웅 인사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런 중에서도 강씨 부인은 기어코,
“그러 쟎아도 내가 최생 원을 뵙구 싶어서 기다리 던 참인데…….”
이렇게, 필경 말을 꺼내는 것을, 최생원은 당황히 중둥을 가로막아,
“그 말씀 다아 알아 듣슴다! 염러하실라 맙시요!”
“얼마 남잖은 거니, 어서 수히 조철 하셔야지, 걸 놔두구서……·!”
“아따 염려마시래도! 그리잖아도. 시방 그 일 조간으루, 요새…….”
“그렇다구 또. 되는 대루 갖다가 팔아넘기실 양으로?”
“오온 천만에!……·허허…….”
속은 있어서, 박주사를 돌아보고 실끔 웃는다. 그리고는 서리렁 구웅.
“……아, 저, 진지가 식슴다! 어서, 어서, ……자아, 난 그럼……·.”
가까스로 어려운 고비를 벗어나, 대문 밖을 나서면서 최생원은, 다행 섭섭하여, 생각이다. 누구 앞이라고 삼백 원이니 삼백십 원이니 소리가 비어졌다가는, ‘호랑이’가 단박 으르릉 하면서 훌쩍 뛰었을 판인데, 영낙없이 흥정은 바사기가 되고 말았을 건데, 용히 잘 모면을 했느니라고 그러나, 향긋하니 감칠맛 있는 술 그놈을 좋은 안주해서 댓잔 했더라면 어한도 되고 십상일 것을, 에잉 거, 눈으로 안 보았더니만 못 했다고.
강씨 부인은 마악 술을 부으러고 집어 든 주전자를 무심코 몸뚱이를 두 손으로. 담쑥 싸안는데, 순간, 그 따스한 촉감이 이상스럽게 전신에, 짜릿한 쾌감을 물결쳐 보내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서 시선은 제풀에 남편 박주사의 얼굴을 찾아, 유심히.
이어서 다음 순간, 속으로,
“오오!”
남편의 싱싱한 젊음이, 지금따라 역력히 눈에 뜨이는 동시에 방금 느끼던 그 쾌감이 무엇이었음을 비로소 께우치겠었다.
‘젊구나!’
부지중 속으로 긍정을 하더니, 문득 다시,
‘워너니 젊구나!’
재차 이렇게 강조하는 긍정은 그러나 벌써, 기왕 한 어떤 비정을 의식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한 의식 행위이어서, 먼첨의 쾌감과는 반대로, 뒤미처 더럭 불쾌가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질투…… 기생 옥진을 두고서, 남편의 젊음에 대한 질투……그 질투의 새로운 연소(燃燒)였었다.
강씨 부인은 박주사보다 나이 다섯 살이나 더해서, 올해 쉰한 살. 여섯 살박이 양념딸 숙희를 마지막으르 이내 멘스가 없고 단산을 했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그는, 여자로되 이미 여자가 아닌 여자되 따라서 아내로되 이미 아내가 아닌 아내로, 생리상 발전적 해소를 치른 사람이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자 아닌 여자요 아내 아닌 아내라서, 질투를 느낄 수 있는 생리와 권리까지도 동시에 잃어버렸느냐 하면, 아직껏은 아니었었다.
학자의 말을 들으면, 여자는 단산 후 오륙 년 내지 십 년 그 동안이 생리상 제삼기의 위기라고 한다. 이 기간이 다 차면, 생식 작용이 끝남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육체상 여러 가지 변화와 변조가 급격히 일고, 그 육체적인 변화와 변조는 필연적으로 정신 계통에 영향을 끼쳐 가장 현저하게는, 가령 히스테리가, 없던 사람은 새로 생기고, 이왕 있던 사람은 증세가 와락 더 도지고 특히 질투가 맹렬해지고, 한다는 것이다.
정히 강씨 부인이 그러했다.
사십을 넘자 조금씩 그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단산을 하고서부터는 그 경향이 급속히 표면화를 했었다. 우선 몸이 지방이 쪄 그들막하니 불었다. 이재방면(理財方面)의 수완이 한결 더 원숙 신랄해졌다. 명실이 아울러, 여장부다운 풍격을 갖추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에 없던 수다와 변덕이 생겼다. 성미가 보풀스러지고 반면에 너그러움이 더얼했다. 자녀손이랄지 하인배를 질책 혹은 닥달할 적이면 어쩐지 좀 박절하고 잔인하다 할 무엇이 종종 집안 사람의 눈에까지 뜨이군 했다. 별반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남편 박주사의 외출이나 외박에 대하여 신경을 쓰며 경계를 했다.
하루 이틀의 변화는 아니어서 주위 사람은 잘 모르고들 지나지만, 정녕 그 히스테리 증세였었다.
이윽고 그리자 한 이십여 일 전, 박주사가 그새 두 달 장간이나 옥진이라는 어린 기생 하나를 데리고 논다는 사실이 드러났었다. 뻐언한 노릇이어서, 강씨 부인의 내부적으로 도져오던 히스테리에다가 기름읕 부은 양 질투의 불길이 타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주사의 오입은 물론 지금에야 처음 비롯한 것은 아니었었다. 이십 그 무렵인가 한 번은, 집안의 매초롬한 계집 하인을 건드린 일도 있었고, 동경 유학시절엔 호박 같은 하숙집 주인네 딸과 장난을 한 일도 있었다. 장성해서는, 더욱이 서울로 이주를 해서는, 친구 얼러 술잔 마시고 놀기가 유일한 소일이요 재미던 만큼 자연 기회도 흔하여, 혹시 눈에 좀 고이는 기생이 있든지 하면, 맘 내키는데 맡겨 그대로. 일시의 홍땜을 하기도 했었다.
박주사는 그러나, 여색에 들어서도, 어느 편이냐 하면 차라리 담담한 사람이었었다. 그만이나 한 처지이면서, 여지껏 첩 살림 한 번인들 차린 적 없고, 오십 평생에 도통 상관을 한 계집이야 꼽아서 열 손가락이 미처 차치 못하는 수효.
그 열 손가락에도. 차지 못하는 수요의 여자들이면서 또한 하나의 예외도 없이, 어떤 임시 어떤 임시의 급박한 생리적 요구가 시킨 노릇이 아니면, 기회가 우연했던 탓이었고, 다만 기생은 사정이 좀 달라, 몸매랄지 얼굴에 운치있는 특징을 지녔다거나 혹은 가무가 고아하고 점잔스럽다거나 한 데에 문득 일시적인 흥미가 끌렸던 것이고.
했으되,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외도 없이. 길게 여러 달을 두고서 침흑이 된다든가 정분이 난다든가 하는 등사도 전혀 없었다.
박주사에게는 오직, 아내 강씨 부인이 가장 즐거운 여자요 가장 정다운 여자요 했을 따름이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가 정다운 아내요, 중난한 아내임엔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박주사의 아직 젊음은 비록 정답고 중난이야 할망정, 나이 오십을 넘어 머리는 반백이요, 여자이면서 이미 여자의 기능을 잃어버린 여자, 아내이면서 이미 아내의 자격 일부를 잃어버린 아내 강씨 부인 말고서, 한 사람의 완전한 여자로서의 여자가 필요치 않을 수 없었다. 기생 옥진은 때마침 박주사의 그와 같은 필요에 응하여, 바루 그, 한 사람의 완전한 한 여자로서 ‘공급된’ 어떤 여자랄 것이었었다. 따라서 박주사가 부득이 한 사람의 완전한 여자로서의 어떤 여자 즉 옥진이라는 기생을 데라고 놀지 않지 못하게 된 책임은, 박주사의 아직 젊음과 강씨 부인의 벌써 늙음이 각기 절반식 분담을 해도, 피차간 과히 억울할 것은 없을 것이었었다.
강씨 부인은, 그로서도 자신의 벌써 늙음과 남편의 아직 젊음을 인정치 않는 배는 아니었었다. 동시에, 그러한 실정의 당연한 결과로서, 남편이 다른 계집을 가까이 하지 않지 못하는 경위도 또한 모르는 배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는, 진실로. 자신의 벌써 늙음과 남편의 아직 젊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따라서 그러한 실정의 당연한 결과보서, 남편이 다른 계집을 가까이 하지 않지 못하는 경위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차라리 화가 나고 샘이 나고 하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렇듯 딜레마 함이야말로, 히스테리의 과연 히스테리다운 억 지스럼 일 것이었었다.
돌이켜서 젊었을 적엔, 남편 박주사가 더러 오입을 한 기수를 안다거나 소문이 들린다거나 해도, 그저 심상하지, 별로이 질투라는 걸 느낄 수가 없었다. 질투는 고사하고, 도리어,
“그 얌전이가 용히 남의 계집을 다아 건디릴 줄을 알구!”
“사내채고 병신이 아닌 담에야, 한때 오입이야…….”
이렇게 희한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은 떳떳이 여기기도 했었다.
시방은 그러나, 절대로 그렇듯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문득문득, 분이 치밀면서, 금시 사람이 미치는 것 같기도 했다.
고옴곰 앉아서 생각하노라면, 설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를 적도 있었다.
평생을 몸에 든든히 지니고 살아온 가장 소중한 것을 일조에 잃어버린 듯, 그래서 전신이 텅 빈 초롱같이 허전할 적도 있었다.
재산도 번족한 자녀손도 호강도 죄다 성가시고 마음 내키지 않을 적도 있었다.
긴 막대를 휘저어, 아무것이고 모든 것을, 걸리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산산조각에 쳐부서버리고서, 훠얼훨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싶을 적도 있었다.
밤 깊었을 때, 남편이 옥진이라더냐 그 어린 계집을 데리고 입을 비죽거리며 시시덕거리머 강씨 부인 자신의 온갖 흉아작을 하는 시늉이 선연히 눈에 밟힐 적도 있었다.
가슴을 쥐어뜯고 싶게, 자신의 벌써 늙음이 안타까울 적도 있었다.
박박 할퀴어주고 싶게, 남편의 아직 젊음이 얄밉살스린 적두 있었다.
남편이 별안간, 옥진이라더냐 그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오늘부터 이 사람을 정실로 삼겠노라고, 그러니 임잘랑은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지금 당장 이 집을 맨몸으ㄹㅗ 나가라고, 방금 저 밖에서 호통을 하면서 달러드는 둣 달러드는 듯, 가슴이 조마조마할 적도 있었다.
대체 얼마나 정이 철석같이 깊었으면 전고에 없이 두 달 장간이나 데리고 지내는고 싶어, 둘이를 한데 앉혀놓고 노는 양을 좀 보았으면 할 적도 있었다.
노엽고 섭섭해서, 나를 이다지 괄시할 도리가 있더란 말이냐고, 남편을 부여잡고서 원정를 하며 실컷 울었으면 싶을 적도 있었다.
이렇둣 강씨 부인은, 별별 망상과 분노와 비애와 절망 등에, 가진 애간장을 자즈리던 것이나,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그는 일체 그러한 내색을 표면에 드러내는 범이 좀처럼 없었다. 그는, 그의 애브노멀한 세계를 따로 독립한 공간에다가 설정을 하고서, 언제든지 혼자만이 그 속에 들어가서 혼잔만이 고민을 할 뿐, 다른 사람을 이끌고 들어간다거나, 그 세계의 핀린인들 현실세계로. 가지고 나온다거나 하는 범이 없었다.
그만큼 강씨 부인이라는 여인은, 사람이 능란코 현명함이 있던 것이고, 사실 또, 그러한 악몽의 세계는 흔히 야간의 일로, 극히 잠깐잠깐이어서, 평상시에는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는 이 집안의 점잖고 침중하고 덕도 무던하고 한 주부요 어른이요 했었다. 즉 근본적으로 마음의 안정이 파괴된 것이 아니었
기 때문에, 순전한 자제력에 의하여, 강인해서 마지못해서, 표정상으로만 심상함을 가장하던 게 아니었다.
물론 젊었을 때에 비하여 변덕이랄지, 성미 보풀스럽고 언동의 박절한 구석이랄지, 두루 이린 변화가 주위 사람의 눈에 약간 뜨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서, 그것쯤 가지고 아무도 근심을 한다거나 피해를 받는다거나 할 것까지는 못되는 것이었었다.
가정은 그리하여, 평화가 교란됨 이 없이, 그 동안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대평무사한 박주사네 가정 일 수가 있었다. 아울러, 박주사와 강씨 부인과의 사이에도 아무런 암류나 갈등 같은 것이 생긴다든지, 서로간 존경을 잃는다든지 함이 없이, 여전히 원만한 부부일 수가 있었다.
강씨 부인은 훨씬 스물한 살 적, 충분히 성숙하고 철이 난 신부로서, 겨우 열여섯 살박이 소년(박주사)을 신랑으로 맞이했었다. 그때 초야의 문득 인상은 마치, 헴든 손윗 누이가 사랑스런 손아랫 오랍동생을 대하기 같은 알뜰스런 느낌이었었다.
강씨 부인의 이, 손윗누이다운 초야의 첫인상은 그들의 부부생활에 있어서 애정상 중대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십이 넘은 오늘날 지금까지도 강씨 부인은, 그 기분이 고스란히 가시지를 안 했었다. 지금까지도 남편 박주사가(남편인 동시에) 손아랫 오랍동생 같았다.
남편 박주사에게 대한 세심하고 살뜰한 시중은, 그리고 삼십 년을 꾸준히 변치 않는 그 정성은, 물론 일반이 남의 아내된 사람의 애정과 도리로서 하더라도 그리 못 할 것은 아니지만, 강씨 부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이, 항상 남편의 허물을 허물하지 않는 너그러움과 더불어 진실한 그 손윗 누이다운 마음상과 애정이 보다 더 시킴 이었었다.
강씨 부인은 박주사의 조석 식석의 찬수는 으레 손수 장만을 하고, 밥상머리에는 반드시 몸소 앉아서(시방 오늘 아침처럼) 반주와 식사를 권하기를 잊지 않는뎨, 이것이 바로 남편에게 대하여 그의 독특한(손윗누이다운) 정성이 변치 않았다는 일단이었었다. 따라서, 그것을 미루어 그의 박주사에게 대한 마음의 평정이 동요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었었다.
5
“좀 쉬었지요?”
수저로 동치미 국물을 떠 마시다가 알폿 이맛살을 찌푸릴 듯 하는 박주사더러, 민망스러이 강씨 부인이 묻던 것이다. 아까 섬쩍 그렇게, 불쾌함이 솟은 것은 순간, 후에 죄다 스러지고 즉시 화기로운 마음을 회복하여 마악 석 잔째 반주를 권하고 난 참이었었다.
김치 같은 것이, 꼬옥 제맛이어야지 조금만 시다 해도 즐겨하지 않는 성미인 줄 번연히 알면서, 지레 익히느라고 맛도 들지 않은 채 쉬기 먼점 했던 모양인 것을, 깜박 그대로 놓아 내왔대서, 강씨 부인은 속으로 거듭 뉘우쳐 마지않는다.
“맛은 더얼 들었어두, 묻은 독에치를 좀 끄내오리까?”
“걸, 무얼…….”
아침 반주는 석 잔이 정한 잔수라, 이윽고 박주사는 식사를 시작한다.
복개를 여는 거기에는, 이 당절 싯누런 금싸라기를 한 사발을 그렇게 담은 것보다도 더 희귀한, 하얀 쌀밥이다. 쌀밥하고도 옥 같은 정백미에 기름이 치르를 흐르는, 알 굵은 다마금쌀이다.
논도 많이 사서, 근 이천 석 추수를 한다지만 이 집안이라고 잡곡 혼식을 않던 못 했으나, 강씨 부인은 세상 없어도 박주사의 밥만은 보리 한 톨 섞게 하지 안 했었다.
“국물이 식 었을걸?”
“아― 니!”
“…….”
“…….”
“그 어리굴젓 좀 잡숴보세요?……·서산으로 기별했더니, 두 통이 어제 왔습디다. 석양찬에……·.”
“굴이 사람 몸에 ㅍᅟᅥᆨ 이하다는군요? 창선 애비가 그러는데……·.”
“…….”
“참! 무엇이냐 육미를 한 제 지어오겠으니, 좀 잡수세요.”
“건, 무얼…….”
“노오 실섭을 하구 다니면서!”
“…….”
“그리고, 제발 덕분 하시―느라고, 저녁 진지 좀, 들와서 잡숫도록 하세요!”
“…….”
“천하 없는 솜씨에, 돈이 아니라 세상 없는 걸 주기로소니, 집안에서 잡수기 같우?……·섬식구!”
“…….”
“숭악한 보리 밥에다가!……그렇잖으면 빵이라드냐 그 알량한……·.”
박주사는, 부인 강씨의 이런 가추가추 정성이며 곡진스런 배려가 박주사 자신에게 무엇으로서 나타나는지를, 그는 알지 못하고 지낸다. 또 강씨 부인 요행 강씨 부인이었기 때문에, 집안과 생활 전체가 무사 평온한 채로 지탱이 되고 있는 사실의 중대성도, 역시 알지 못하고 지낸다. 노상 부인 강씨를 갖다가 등한히 여긴다든가 혹은 무슨 불만하여 한다든가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는 그러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줄 모르고 지나던 것이다.
진소위, 손복할 사람이랸, 매양 박주사 같은 사람을 두고 이름이 아닐는지.
6
사무소라지만, 박주사에게는 친구들을 만나는 사랑 대신이었고, 사무야 백날 가야 있을 턱이 없는 것, 기왕 나온 길이요 지난 걸음이라 습관적으로. 잠깐 그저 올라가서는 담배나 한 대 피웠을 뿐이고 이럭저럭 한시쯤 되어서, 서린정 옥진의 집으로 내러왔다. 사무소 빌딩에서 바루 지척이었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옥진이 마악 안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숙발이라더냐, 그 새둥주리처럼 정신 사납게 떠 인 머리에, 매무시는 질질, 점심을 먹었는지 그제서야 조반을 먹었는지, 볼때기에다간 밥알을 댈름 붙여가지고,
밥알은 볼때기에다가 붙여가지고, 까불까불 가까이 오고 있는 양을, 비깃이 바라다보던 박주사는 피식 혼자 실소를 하면서, 뜰 아랫방을 향해 돌아선다.
“왜 쳐다보구 웃어요? 괜히!”
저도 무얼 숭을 잡히는 줄을 알았던지, 빠락빠락 쫑아리면서 뒤를 따른다.
나이도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본시 타고나기를 진중한 태생이 아니었었다. 올망졸망한 얼굴하며, 작다란 체집이며, 외양 생김새가 벌써 그러했다. 술상 머리에 불러다 앉혀야, 술 한 잔 법도 있이 쳐서 권할 줄 아는 게 아니고, 시시한 창가나 유행가 나부랭이를 부르는 게 위지왈 학습이요, 했었다.
나이도 좀 진득하고 언행도 차분하니 조심성이 있고 인물이 취함직한 구석이 있다거나 가무가 볼만한 게 있다거나, 박주사 하고는 기왕, 이런 계통의 기생이면 기생이었을 것이지만, 그러므로 옥진이란 대체가 박주사 그 사람답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것이었었다.
옥진에게는 그러나, 박주사의 일변 그 곰상스런 것을 좋아하는 취미를 만족시킴직한 ‘성능’이 있었다.
처음 불러서 데리고 노는데,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잘게없어도 한 줌은 되게 쪼고만 놈이 야불야불 이야기를 꽤 잘하고 눈치 빠르게 영리해서 무얼 시키든지 한다치면 따르를 시중을 들어다 바치고, 잘 웃고 잘 놀고……·하는 양이 여승 꼬마 자동차나 라이카같이 재롱스러웠다. 박주사 자신이 오십을 바라보는 ‘늙은이’인데 대하여, 미처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소녀라는 것이 물론 자극이 컸었고.
두 달 넘겨 석 달 가까이 시방, 후한 생활비와 따루 제 용돈을 매삭 대주면서, 그리고도 제 희망이요, 이편은 구태여 그것을 막잘 필요가 없고 하여, 영업은 여전히 계속하게 하면서, 그런대로. 데리고 지내는 중이었었다.
윗목의 의걸이 장농이나 경대 같은 거야 당연타 하겠지만, 언제 보아도 그 모양인 듯, 방 안은 이부자리가 깔린 채, 헌 잡지며 신문, 벗어 던진 옷가지, 과자 상자, 담배곽 등속으로, 발 들여 놀 틈도 없이 어수선하게 널러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주사는, 저고리 얼러 외투를 벗어서 모자와 한가지로 벽의 못에다가 손수 걸고는, 이부자리를 걷어 제끼고, 가서 버얼떡 드러눕는다. 이 일곱 자에 열 자짜리 장방형의 좁다란 방 안이야말로, 박주사에게는 타객이 되고 어린 아이가 되고 농판이 되고 할 수 있게 별천지던 것이다.
“아이이! 어떡해여!”
옥진이 혼자서 별안간 호들감을 떨면서, 빠알간 혓바닥을 연방 세수 수건으로 닦아 쌓는다.
저만큼 경대 앞에 가 모으로 앉아서, 그러는 양을 말없이 건너다보고 누웠다.
“어떡해애!……·아이 따가!”
“…….”
“헤빠닥에가 가시가 백혔었어!”
“…….”
“아, 영가암!”
“오죽 미우면, 혓바닥에가 가시가 백히리!”
“이잉 깍쟁이!”
“이전 꼭 죽었구먼!”
“피이!”
“혓바닥에가 가시 백히면 죽는 법이란다!”
“…….”
한 마디도 안 지는 주둥이면서, 웬일인지 아뭇소리도 않고 한참을 있더니, 한숨을 호오, 다뿍 폴죽은 음성으로,
“죽어두 고만이구!”
“…….”
“영감?”
“…….”
“사람이 죽으믄 어떻게 된다우?”
“저승으로 간단다.”
“가선?”
“이승에서 진 죄대루…….”
“죄외?”
“소두 되구……·.”
“또오?”
“말두 되구……·.”
“또오?”
“너 같은 참새두 되구…….”
“하하하하…….”
옥진은 어느새 명랑하게 웃고 나서,
“구리구, 또오?”
“생선 가시두 되구…….”
그러자 여태 승강이를 하던 것을 마침,
“요오고 말이지?”
하면서, 손톱 끝으르 훑더니,
“·…·아! 나왔어! 나왔어!……·아, 요므게 글쎄!”
훑어낸 손톱 끝을 쳐들고 들여다보면서, 좋아 날뛴다.
이윽고 그 다음엔 앉아서, 경대의 화장품 병들을 만지고서 심심해 하다가 문득 의걸이 문짝을 열더니 편물하던 것을 추들어 내온다.
아랫 도련을 추콜릿 빛으로 두르고, 그 위서부터는 순 하양이로 짜 올라오면서, 호주머니 갓만 다시 초콜릿을 박은, 남자 양복 소용의 조끼였었다.
“이전 다아 됐구나?”
“꼬옥 두 코만 냉겼더니…….”
시무룩해서, 혼잣말하듯 하고는 잠잠히 앉아 손을 놀린다.
벌써, 그 전에 시작을 했던 모양으로, 처음 와서 보았을 때도 반 넘겨 짠 것을 가끔 차고 앉곤 하더니 그리다가 한동안 처박아두고 잊어버리더니, 요새야 도로 꺼내가자고 부지런히 뜨는 시늉을 했었다.
“그래, 다아 마쳤으니,…… 어떡 한다?”
“늙으믄 저렇게 총기가 없나?”
“…….”
“우리 애인 줄 꺼라구 안 해?”
“오, 참!……·그렇지만 네까짓 게 애인이나 제법 있으면 자앙사라구?”
“아이구, 참! 나군 섄님만 업신여긴다더니!”
소위 연애란 걸 한다구서 애인이니 무어니 하며, 따로 어제 애부를 두고 지난다손치더라도 박주사에게는 하상 그리 괘념한 거리가 아니었었다. 따라서, 제 행동에 유의를 하고 천착을 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정히 눈에 창피한 거동이 보이지 않는 이상, 그저 모른 체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아무 때고 내가 마음에 내키는 때 손 떼는 것이고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화류계의 다따나 어린 제집아이를 데리고 놀면서 도시에 청백이라께 당치 않은 말이래서, 이만큼 박주사의 염량은 태연 무관심했었다.
그러나, 그러고저러고간에, 본다치면 계집애년이 까부느라고 공연히 입을 놀리는 소리지, 실상 그런 무엇이 있는 성싶든 않았었다. 그렇지만 또, 오다가다 혹 어떻게 본다치면 눈치가 좀 다를 적도 없는 건 아니었었다. 해서, 막상 이렇다건 저렇다건, 단정을 할 수가 없었다.
잠깐 동안 옥진은 제 할 일에 잠심하더니, 눈은 일감에 둔 채 푸득,
“영감?”
하고 부른다.
박주사가 대답이 없으니까 히끗 돌아다보다가, 밴들밴들 웃으면서,
“아이 참, 영감이 아니라…….”
그러고는 고쳐 부른단 소리가,
“아버지?”
“무어라구 똑 까불구 싶어서!”
“나, 아버지 딸이지?”
“…….”
“아버지, 나 시집 좀, 안 보내주?”
“…….”
박주사는, 섬뻑 대답을 못 하고 속으로만 그년이 별소리를 다 할 줄 안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아마 정을 주고지내는 애부가 있기는 있나보다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깃비깃 더 웃는다.
“응? 아버지. 나, 시집 좀 안 보내주?……·아버지가 딸을, 말이우……·.”
“그래, 시집 가구 싶으냐?”
“응.”
“벌써?”
“왜 ?”
“아직 좀 어리잖으냐?”
“아, 쉰 살 다아 먹은 영감쟁이 한테두 시집을 가구 했는데, 어려?”
“데라끼년!……·허허!”
“하하하아!”
깜박 잠이 들었다가, 잡아 끄드는 바람에, 깨서 일어나 앉았다.
옥진이, 댓다고짜로, 그새 단추까지 말끔 단 털실 조끼를 갖다가 입혀놓는다.
“?…….”
“하주! 새서방님 매니야!”
“이걸 날더러 입구 다니란 말이냐?”
“좋잖우?”
”망신은 누구 하느냐?”
“좋거들랑 국으루 좋다구 그래요! 괜히…….”
박주사는, 이따가 집에 가서, 벗어서, 아무도 모르게 깊숙이 어디고 꿍져두든지, 마침 삼복이를 주어버리던지 하려니 하고서, 더는 탄을 않고 말았다.
옥진은 세시가 된 줄을 알자, 부리나케 치장을 하더니 극장엘 간다면서 혼자 먼저 나가고.
박주사는 박주사대로, 사무소로 올라가서 친구들과 얼려 가지고, 밤늦게까지 요리집에서 놀았다. 옥진을 불렀으나, 사랑노름이라고 해서 늘 하는 행투로 구경에 팔렸거니 했을 뿐, 구태여 찾지 안 했고. 파해서는, 옥진에게로 갈까도 했으나 몸이 좀 고된 것 같아서, 곧장 집으로 나왔었다.
7
꼬옥 어제 아침 그맘때다.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박주사는 소쇄를 마악 마치고서 역시 어제 아침처럼 조간신문을 펼쳐든다.
최생원이 와서 앉았지만 않았지, 방 안도 모든 차림새하며, 햇볕이 들어 밝고 쇄려함이 어제 아침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대로다.
크고 요란스런 기사보다도 잘잘한 이야기가 박주사는 재미있기 때문에, 시방도 작은 제목만 고른다.
저어 아래께로 ‘妓生이 飮毒’이라는, 사호일단(四號―段)가 눈에 띄었다.
읽는다.
“실연하고 음독 자살한 기생……·시내 서린정 × × 번지에 사는, × × 권 번 기생 이옥진(18)은…….”
박주사는 푸득 놀라면서, 읽은 데를 도로 쏘아본다. 번지가 ×× 번지였던지를 모르겠어도, 서린정, × × 권번, 이옥진 열여덟 살……, 다아 맞았다.
다음을 계속해서 읽는다.
“……. × × 일 오후 여섯시경 자기 집에서, 자살할 목적으로 다량의 × × × 이라는 극약을 마시고 고민하는 것을, 집안 사람이 발견, 즉시 부근 × × 의원으로 데려다가 응급 가료를 하였으나 워낙 마신 극약의 분량이 많았던 관계로, 동 여덟시경에 드디어 절명이 되었다. 원인은, 전부터 서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으나 두 사람이 다아 가정과 주위의 사정에 얽매어 사랑이 뜻과 같지 못함을 늘 비관해오던 중 이날도 종로의 모다방에서 그 남자와 만나가지고, 피차에 단념할 것을 말하다가 필경 언쟁까지 하고는 그 길로 돌아와서, 사연을 유서에 적어놓고 그와 같이 자살을 하고 만 것이라고 한다.”
박주사는 읽고 난 기사 위에 눈을 보는 것 없이 그대로. 버려둔 채, 잠시 애매스러이 앉아 있다가 이윽고 시선의 초점을 회복하여 가지고 천천히 다른 제목을 찾는다. 얼굴은 별반 동요가 지나간 자취도, 심각한 여운도 볼 수가 없고 차라리 무관심에 가까운 표정이다.
이 무관심스런 표정은, 누군지는 몰라모 그. 기사를 편집한 신문사의 편집 기자도 마치 그러했을 것이었었다.
어떤 외근 기자 한 사람이 소위 ‘겅깡다데’로 얻어온 그 사건을 원고로 써서 편집 기자한테 넘겼을 것이고, 편집 기자는 주욱 한 번 읽어보았을 것이고 읽어보았어야 지극히 흔한 사실로, 한 기생이 있었는데 정든 사람이 있었는데, 가정과 주위 사정이라고 하는 것에 얽매어, 결국 돈 때문에 같이 살지 못하고 서로 비관을 했는데, 그래서 하루는 여자가 독약을 마셨는데, 죽었다(혹은 죽지 안 했다)……, 이렇게 내용은 천편일률이요, 심심하면 가끔 ‘우메구사’감을 제공하는 항다반한 사실의 하나던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신문 기사적으론 한낱 평범한 사건일 따름이었고 그러므로, 그 편집 기자가 거기에는 특별히 무슨 자극을 받거나 흥분을 느낄 까닭이 없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편집 기자 그는 얻던 기생 하나가 연애 관계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는 것, 이상이야 달리 더 관심을 가질 내력이 없었을 것이고, 그리고서 그는, 한갓 사건의 사건성(事件性)에서 온, 신문 편집 기자로서의 감도(感度)에 충실히 ‘妓生이 飮毒’이라고, 일단짜리에 배수가 맞도록, 다섯 자 제목을 붙여가지고, 그 옆에다가 사자(四字)를 찍 갈겨서, 문선으로 넘겨버렸던 것 이었었다. 그리하여, 그가 이 사건에서 캐치한 바 사건성의 감도는 즉, 사호일단이었었다. 사호일단으로 물론 과부족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신문에 찍혀져가지고 눈앞에 나타난 그 가사를, 박주사는 마악 시방 읽었던 것인데……·그는 처음 그것이 옥진인 줄을 알,고 푸득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실상 그는 옥진의 죽음을 놀란 것이 아니라, 본즉, 죽었다고 기사에 가서 씌어 있는 게 옥진이었음을 놀랐던 것 이었었다.
또 어린것이 안되었다고 생각도 했었다. 애부가 있기는 있었던 거라고 생각도 했었다. 마지막, 장례 지낼 비용으로 돈이나 좀 보내주는 거라고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오직 그랬을 뿐이었었다.
정작, 옥진의 죽음 그것에서 받은 바 감도에 이르러서는 그 편집 기자의 사호일단어치보다, 과연 얼마큼이나 심각함이 있었더냐 하는 것은, 보장하기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1941년〉
2016년 12월 1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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