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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에 참석할 자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특성
인류의 빛 - ‘갈릴리’ ‘가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혼인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인 행복한 그 잔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SJ 51.4)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에서 주신, 선물(膳物:구속함의 은혜와 축복)은 한 상징이었다. 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는 침례(浸禮:죄악세상에서 나 자신의 죽음)를, 포도주(포도즙 葡萄汁)는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십자가보혈 十字架寶血]를 상징(象徵:표상)한다.
‘항아리’를 채운 물은 인간의 손에 의하여 운반되었으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생명을 주는 효력(效力:능력)을 그 물에 부여(附與:행사 行使)할 수가 있었다. 구주의 죽음을 가리키는 의식들도 역시 그러하다.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의식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효력[구속과 성화의 능력]을 갖게 된다.(DA 148.4)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를 위하여 준비한 포도주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의 상징으로서 주신 포도주는, 순수한 “포도즙”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도송이”의 새 포도주에 대해 말할 때에 이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사 65:8)고 말했다.(DA 149.3)
실물교훈 - 값없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는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품성의 특성[속죄와 구원]을 거절(拒絶:불순종 不順從)하는 것이다. 그들은 혼인예식에 참석할 자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특성[영생복락 永生福樂]을 거절하고 있다.(COL 316.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과, 감람산 위에 앉아 계셨다. 해는 서산에 지고 하늘은 저녁 그늘에 덮여 가고 있었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한 집에서는, 무슨 잔치가 베풀어지는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빛과, 집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멀지 않아 혼례행렬이 나타나게 될 것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동양(동방 東方)의 많은 나라에서는, 혼인예식(婚姻禮式)을 밤에 행하는 풍습[전통]이 있었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그를 맞아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혼례행렬은 횃불을 앞세우고, 신부 집을 나와 신랑 집으로 간다. 신랑의 집에서는 초대받은 손님들을 위하여, 피로연(披露宴:잔치연회 상)을 준비한다.
그리스도께서 내려다보시던 장면역시, 한 무리가 혼례행렬에 참가하기 위하여,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COL 405.1)
(등불의 기름이 없는 다섯 처녀-신부) 그들이 기름[성령 聖靈]을 사러 간 동안에, 혼인행렬은 그들을 버려 둔 채 지나가 버렸다. 불이 켜진 등을 가진[성령 충만한-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그 무리와 합세하여 그 행렬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은 닫혀 버렸다.
미련(未練:등불의 기름-성령부족)한 처녀들이, 피로연이 열리는 집에 다다랐을 때에, 그들은 의외로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잔치주인[婚主:아버지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고 하였다. 그들은 문밖 캄캄한 거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COL 406.1)
일찍이 인간의 귀에 들린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곧,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마 7:23)한다고 하는, 운명(運命:영생과 영멸)의 선고(宣告:심판결정)일 것이다.
그대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성령과의 교제가 혼인예식 때에, 그대로 하여금 기뻐하는 무리에 참가할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것이다. 성령[인도하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그대가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
그 빛이 소경의 눈에 보이게 될 것이며, 그 아름다운 음악이 귀머거리의 귀에는 들리게 될 것이지만, 그 곳의 사랑과 기쁨은 세속으로 마비된 마음[세상 부귀영화에 찌든 심령]에, 아무런 즐거움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그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 어울려 살기에는, 부적합(不適合:자격미달)하기 때문에 그대는 천국에서 제외(除外:버림받게)될 것이다.(COL 413.1)
이 비유[예시]를 보면,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불은 기다리던 그 밤 동안,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등불은 신랑을 축하하기 위하여 비추는 불빛을, 더욱 환하게 해 주었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이 등불은, 신랑이 혼인잔치[혼인예식 준비]를 위하여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COL 414.1)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성령을 통하여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시며, 그것을 받는 자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성령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심어 주심으로써,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속성[품성]을 계발시켜 준다.
그분의 영광의 빛인 그분의 품성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서 비춰[반사]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집으로 가는 신랑의 길을 비춰 주며, 하늘도성(都城: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길과, 어린 양의 혼인잔치[혼인예식]로 가는 길을 밝혀주게 된다.(COL 414 .2)
인류의 빛 - ‘갈릴리’ ‘가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인 행복한 그 잔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SJ 51.4)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에서 주신, 선물(膳物:구속함의 은혜와 축복)은 한 상징이었다. 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는 침례(浸禮:죄악세상에서 나 자신의 죽음)를, 포도주(포도즙 葡萄汁)는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십자가보혈 十字架寶血]를 상징(象徵:표상)한다.
‘항아리’를 채운 물은 인간의 손에 의하여 운반되었으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생명을 주는 효력(效力:능력)을 그 물에 부여(附與:행사 行使)할 수가 있었다. 구주의 죽음을 가리키는 의식들도 역시 그러하다.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의식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효력[구속과 성화의 능력]을 갖게 된다.(DA 148.4)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를 위하여 준비한 포도주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의 상징으로서 주신 포도주는, 순수한 “포도즙”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도송이”의 새 포도주에 대해 말할 때에 이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사 65:8)고 말했다.(DA 149.3)
실물교훈 - 값없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는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품성의 특성[속죄와 구원]을 거절(拒絶:불순종 不順從)하는 것이다. 그들은 혼인예식에 참석할 자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특성[영생복락 永生福樂]을 거절하고 있다.(COL 316.4)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에서 주신 선물은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물은 침례를 상징하고, 포도즙은 세상을 위하여 흘리실 그분의 피를 상징하였습니다.(SJ 53.2)
재림 신도의 가정 - ‘아담’에게 ‘하와’를 배우자로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잔치에서 그의 처음 이적을 행하시었다. 친구와 친척들이 함께 즐기던 잔치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공중봉사를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결혼을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로 승인하시고, 이를 윤허(允許:제정하신 분이 직접허락)하시었다.... (AH 26.1)
남녀는 혼인으로 가정을 건설하고, 그 권속들은 영광으로 관 씌워져서 하늘가족의 권속으로 인정되도록 제정하셨다.—치료봉사,323.(AH 99.3)
즐거운 자리 — 성경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잔치에 초청되었을 경우에, 그처럼 즐거운 자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잔치에 참석하심으로 그분은 자신의 율법을 준수하는 중에,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자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는 하늘의 율법을 따라 행하여지는, 인간의 깨끗한 잔치들을 결코 못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거기 계셔서 친히 높이시는 그런 모임에, 그의 제자들이 참석하는 일은 옳은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잔치에 참석하신 후에도 많은 다른 잔치에 참여하셔서, 그분의 임재(臨齋:왕림하셔서 함께)하심과 교훈으로 그 자리를 거룩하게 하셨다.(AH 100.4)
혼인관계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사이에 존재하는 부드럽고 신성한 결합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예수께서는 혼인잔치의 기쁨을 자신의 신부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시는 날, 구원받은 자들이 구주와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식탁에 앉을 그날의 기쁨을 예표(豫表:표현 表現)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오직 너를 ‘헵시바’(Hephzibah: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여인)라...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것임이니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사 62:5, 4; 습 3:17)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사도요한’은 하늘의 사물에 대한 이상을 보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양의 혼인잔치(예식)에 청함(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6, 7, 9).(DA 151.1)
“그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니,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고 진실한 자니.”(계 17:14, 구역)라.(COL 421.2)
허식, 낭비 그리고 떠들고 노는 일은 결혼 예식에 합당하지 않다. — 결혼예식들이, 허식과 사치와 자아방종을 나타내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하는 두 편이, 종교적 신앙과 관습에 합의하고 그로써 시종 일관하다면, 그리고 그 결혼 예식이 사치나 허식 없이 거행된다면, 이 시대에 있어서 결혼이, 하나님께 불유쾌한 일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AH 100.5)
비록 결혼잔치가 양쪽가정에서 모두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큰 잔치를 베풀고 과시(誇示:거만하게 자랑하고 보이기)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4T,515.(AH 101.1)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악[정도에 지나친 과시욕]을 시정(是正:옳고 바르게)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의 최초의 이적은 혼인잔치에서 행하여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결혼은 깨끗하고 더럽힘이 없이 보존될 때에는, 신성[하늘축복의 아름다운] 한 제도임을 세상에 선포하셨다.(AH 341.2)
예수께서는 순결하고 행복한 정경(情景:광경)에서 기쁨을 찾으셨다. — 예수께서는 각종 형태의 자기방종을 견책하셨지만, 선천적으로 사교적이셨다. 예수께서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베푸는 대접을 받아들이시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시고, 그들의 생각을 평범한 인생의 문제들에서, 영적이고 영원한 것들에게로 향상시키고자 힘쓰셨다.
결코 방탕을 위하여 방종을 일삼지 아니하셨으며, 세속적인 경박(輕薄:가벼움)의 그림자가 그분의 처신(處身:품위 品位)을 훼상(손상)시키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순결하고 행복한 정경에서 기쁨을 찾으셨으며, 그분께서 친히 임석(함께)하심으로써, 사교적인 모임을 인정하셨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감명적이어서, 그 혼인의 기쁨이 인자(人子:인간예수 그리스도)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즐거움은, 그분께서 자신의 신부를 아버지의 집에 데리고 가시는 그날,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구속자와 함께 어린 양의 혼인잔치의 자리에 앉게 될, 그날의 기쁨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소망1권,193,194.(AH 503.2)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야곱’의 환란과 같은 간구]하는 일이 더 많도록 해야 한다. 결코 중단하지 아니하는 정신으로 사심 없이, 그리고 단호(斷乎:결단력으로)하게 일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영혼들이 참여하도록 강권하라. 기도하고, 믿고, 용납하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더 많아야 한다.... (LHU 180.6)
의심을 걸어 놓기 위한 못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포착(捕捉:사로잡음)하도록 마음을 길들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도록 암시(暗示:몰래 충동)하는 자들은, 언제나 (언제 어느 곳에서도)의심할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알려 주는 일에서 생기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비평하며, 다른 사람들의 사업과 위치를 비판하고, 그들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사업의 각 분야를 비난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실수와 결점을 먹고 살 것이다. 천사는 말하였다.
“주 예수님께서 하늘성소에서의 중보사업을 마치고 일어나서, 복수의 옷을 입으시고 그들의 불경한 잔치석[환락의 자리들]을 갑자기 덮치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기호(嗜好:성향취미)가 너무도 비뚤어졌기 때문에, 주님의 나라에 있는 그분의 식탁까지도 비평하고자 할 것이다.(2TT 300.3)
실물교훈 - 예복에 대한 비유는, 가장 중요한 공과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혼인으로써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 표상되었으며, 예복은 혼인예식에 참석할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합당한 품성을 표상한다.(COL 307.1)
이 비유는 이미 설명된 큰 잔치의 비유에서와 같이, 복음의 초청과 ‘유대인’의 거절 ‘이방’ 사람에게 보내는, 자비의 초청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초청을 거절한 자들이 주인에게 더욱 큰 모욕을 돌릴 것과, 그들에게 더욱 무서운 형벌이 임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잔치에 오라는 초청은 왕이 한 것으로, 명령할 권한이 있는 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청을 받은 자들에게는, 더없는 영광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영광은 감사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는 묵살되었고] 왕의 권위는 멸시를 받았다. 집주인의 초청은 무시된 반면, 왕의 초대는 모욕을 당하고 살인으로 갚음을 받았다. 그들은 왕의 종들을 멸시하고, 학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죽였다.(COL 307.2)
잔치에 오라는 초청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 주어졌다. 우리 주께서는 ‘열두제자’를 보내시고, 그 후에 ‘칠십 인’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요청을 하셨다. 그러나 그 초청에 유의(留意:유념 留念) 하는 사람이 없었고, 청함을 받은 자들은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종을 보내어,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마 22:4)하는 기별을 보냈다.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유대인’들에게 보낸 기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나라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보내 주신 복음을 거절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몹시 멸시하는 태도로 거절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구원이 제공되었다는 것과, 영광의 주를 거절한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에 격분하여, 기별을 전하는 자들을 대적하였다. 그 때에 “큰 핍박”(행 8:1)이 있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옥에 갇히게 되었고, ‘스데반’[집사직분]과 ‘야곱’과 같은 주님의 사자들 중, 몇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COL 308.2)
잔치에 오라는 세 번째 초청은, 복음을 ‘이방’ 사람들에게 보낼 것을 표상한 것이다. 임금은 “혼인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청함의 부르심을 외면],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마 22:8~9)고 말하였다.(COL 309.1)
혼인예식에 참석한 손님들은, 임금의 심사(자격조사)를 받았다. 임금의 요구대로 예복을 입은 자들만이, 잔치 자리에 앉도록 용납되었다. 복음잔치(승리의 복음)에 참석한 손님들도 그러하다. 모든 사람들이 크신 임금의 정밀한 조사를 받게 될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들만이 받아들여질 것이다.(COL 312.1)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복음의 축복과 특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품성의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를,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그분에 대한 믿음도 나타내지 않았다.
저희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성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꽤 선하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대신에 저희 자신의 공로를 의뢰한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들로서 잔치에는 왔으나,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는 입지 않았다.(COL 315.2)
복음교역자 - 엄숙하고 신성한 경고의 기별은 가장 어려운 지방과, 가장 죄 많은 도성과, 이 큰 ‘삼중 복음기별’[마지막 “셋째 천사의 기별”]의 빛이, 아직도 비치지 아니한 모든 곳에 전파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의 마지막 초청을 들어야 한다.
각 동리와 도시와 나라에 현대진리의 기별을 전파하되, 외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할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 그분의 말씀과 생애에 나타내려고 오셨던, 그 거룩한 진리가 단순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소개될 때에, 그 기별의 능력은 자연히 나타날 것이다. 모든 교역자들은, 이 때에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가! 성실하고 확고한 믿음과, 단호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 지칠 줄 모르는 열성(熱誠: 전심전력 全心全力)으로, 일하여야[사명완수] 한다.(GW 27.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함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의 잔치 곧,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오라는 마지막초청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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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그 초청을 듣지 못한 많은 곳에, 그 초청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기별을 지금까지 전해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도, 아직 그것을 전파할 수 있다. 나는 재차(再次:한 번 더 강조) 우리 청년들의 마음에 질문한다.(GW 64.3)
혼인잔치에서, 포도즙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주님의 이적에서, 가장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친히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모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어느 때나 필요한 때에, 가장 좋은 음식을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GW 363.1)
살아남는 이들 - 모든 사람의 생사가 결정[영생과 영멸의 심판]되었다. 예수께서 그 성소 안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죽은 의인[무덤의 의인들]과 산 의인들에 대한 심판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을 위해 중보(仲保:중보기도-죄인의 구속을 위한 구세주의 기도) 하시어 저희의 죄를 제거하시고, 그의 나라를 받으셨다.
그 나라의 백성들은 결정되었다. 어린양의 혼인예식잔치가 다 준비되었다. 그 나라와 온 천하의 위세(威勢:위엄과 기세)가 예수와 구원의 후사(後嗣:상속자)들에게 주신 바 되고,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통치하게 될 것이다.(SR 402.3)
[마지막 호소] 혼인예식 잔치에 부르심 -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 차로 가고.”(마 22:4~5).(1SAT 4.4)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마 22:8~9).(1SAT 5.2)
왕국의 왕께서, 자기 아들을 위해 결혼 잔치를 베풀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청함을 받은 자들에게 말하게 했다. “결혼 잔치에 오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보내어 듣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게 하셨다.
“오라, 어린양의 큰 혼인 잔치를 위해 준비하라. 그분은 곧 오셔서 신실한 모든 자들을 영접하여 그분이 준비하신 집에 들일 것이며, 그분이 차리신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종들을 보내신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에게 30여 년이 지나도록, 종들을 보내고 계신다.
“오소서, 혼인예복을 입고 준비하소서. 그대 자신을 온유함과 겸손함과 진리로 옷 입으시오. 그리고 그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의로 감싸시오. 그래서 그분 앞에 나타날 수 있게 하시오. 그리고 내 아들의 결혼 때, 내 옆에 앉을 사람들과 함께 손님방으로 들어가시오.” (1SAT 5.4)
위대하고 영원하신 아버지가, 그분의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를 준비하셨다. 우리는, 이 엄숙한 초청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그분의 종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돌아보지 않고 말 것인가? 오, 어찌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을 위해 준비하기를 거절하는가? 그 초청을 받아들일 모든 사람들에게는 방이 있다.
제 시간에 제대로 그것들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귀인이 돌아왔을 때, 준비된 자들은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으며,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눅 13:25)는, 더 들어가고자 하는 자가, “나는 너를 알지 못하니—나를 떠나가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1SAT 8.2)
“성소”에 계신 그리스도 - 성경적 기초를 - ‘다니엘’ 8장 14절에 기록된 바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과, ‘다니엘 7장 13절에 묘사된 대로,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아가시는 것, ’말라기‘가 예언한 것처럼 주님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것, 이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직접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랑이 혼인예식(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CIHS 154.2)
1844년 여름과 가을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라는 기별이 선포되었다. 그때에 슬기 있는 처녀와,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바라보고,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부지런히 준비하는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충동으로 행동하는 자들로, 진리의 이론에만 만족했지 하나님의 은혜는 결핍 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비유에 의하면, “신랑이 올 때에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예식(잔치)에 들어”(마 25:10)갔다.
여기서 신랑이 오는 것은, 혼인보다 선행(先行:먼저 행함)하는 일임을 알려 준다.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나라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한 성, 곧 그 나라의 수도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곳인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린다. 천사는 요한에게,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계 21:9)라고 말하였다.
선지자는,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10)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부란, 거룩한 성을 대표하며,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처녀들은, 분명히 교회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들이다(계 19:9 참조).
그들이 손님이라면, 동시(同時:한 가지)에 신부로 상징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이 기록한 대로, 하늘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께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단 7:14)를 받으실 것인데, “그 준비 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계 21:2)같은 새 ‘예루살렘’, 곧 자신의 나라의 수도를 받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 나라를 받으신 후에, 그 나라에서 자신의 상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마 8:11) “앉아”(눅 22:30)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CIHS 155.1)
1844년 여름에 선포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라는 기별로 인해, 무수한 사람이 주님께서 당장 오시리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그 지정된 시기에 백성들이 기대했던 대로, 신랑이 이 세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혼인 예식을 위하여, 하늘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로, 곧 자신의 나라를 받기 위하여 나아가신 것이었다.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 25:10). 백성들은 직접 그 혼인예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살고 있었고, 반면에 그 혼인은 하늘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눅 12:36)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에,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이 혼인예식에 들어간다고 기록된 것이다.(CIHS 156.1)
조사심판의 사역이 마칠 때, 각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하는 자들에 대한 판결이 조사되고 결정되면, 바로 그때에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자비의 문은 닫힐 것이다.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 25:10)라는 간단한 구절에는, 구주의 마지막 봉사로부터 인류를 위한 구원의 큰 사역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사실이 다 포함되어 있다.(CIHS 158.1)
성적행실과 간음과 이혼에 관한 권면 -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는, 마음에 품은 죄들을 결코 가려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의를 뜻하는 결혼예복을 입지 않고는, 어린양의 혼인예식잔치에 들어갈 수 없다. 거룩함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과 결합할 신적인 능력을, 각 영혼에게 주기 위해서 기다리신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TSB 134.2)
교회증언 6권 - 우리는 위험한 때의, 마지막 국면에 살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오심과 관계하여, 지금 기승(騎乘:말 탄자와 같은 광란)을 부리는 불신(不信:불순종)을 미리 내다보셨다. 주님께서는 거듭해서, 이 사건이 예상 밖의 사건임을 말씀하셨다.
그 큰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눅 21:35).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첫째 부류에게 사도는,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어떤 이들은 신랑이 올 때 준비되어 그분과 함께 혼인예식으로 나갈 것이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귀중한 생각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이 은혜를 즐길 것인데, 이는 그들의 품성이 아름답기 때문이다.(6T 129.1)
그들의 태만 때문에, 주님께서는 교회를 냉대하신다. 안락과 이기적 방종을, 많은 이들이 사랑한다. 성경의 진리를 배우는 특권을 얻은 어떤 이들도, 그것을 영혼의 깊은 성소 속으로 들여가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잃은 자를 찾아 구하는 일에,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정직하고 충성된 봉사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돌려 드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이 게으른 종들은 혼인예복, 즉 그리스도의 의의 옷 없이 혼인예식에 오는 사람들과 같다. 그들은 명목상으로 진리를 받아들였으나, 그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다. 할례 받았다고 하나, 사실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 중에 속한다.(6T 295.2)
하나님께서는 다가온 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별을, 세상에 나누어 주라고 이 백성을 부르셨다. 우리는 복음 잔치의 마지막 초대 즉, 어린양의 혼인예식잔치에의 마지막 초청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 초청을 듣지 못한 수 천 곳에서, 이 초청은 들려야 한다. 이 기별을 아직 전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선포해야 한다. 다시 젊은이들에게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그대들 부르셔서, 이 기별을 외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6T 412.2)
교회증언 7권 - 우리에게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날에 관한 큰 빛이 비춰졌다. 우리의 지혜와 노력의 부족이, 영적맹목의 증거가 되지 않게 하자. 하나님의 사자들은, 능력으로 옷 입혀져야 한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고상한 존경심을 진리에 대하여 가져야 한다
주님의 엄숙하고 거룩한 경고의 기별은, 가장 어려운 지역과 가장 죄 많은 도시들에서, 셋째 천사의 기별의 빛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모든 곳에서 선포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오라는, 마지막 초청이 주어져야 한다.(7T 54.2)
증언 8권 - 오늘날 하나님의 남은 백성은 마지막 경고의 기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오라는 마지막 초청을 전함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기대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대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8T 153.2)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 생각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비책이 마련됨—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이 정결하고 숭고하고, 세련되고 고상하게 될 수 있도록 온갖 대비책을 마련해 놓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그분께로 들어 올려 주고 그분의 거룩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은혜를 공급하시기 위해 실제적인 준비를 해오셨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과, 우리가 세상에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하늘의 은혜로 말미암아 준비된 우리는 혼인 예복, 즉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게 되며, 결혼 예식에 참석하는 데 적합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며, 정결케 되고 세련되고, 고상하게 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들 즉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로 인정받게 된다.—YI, 1897.10.28. (2MCP 660.2)
그분을 알기 위하여 -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그 잔치에 참석한 자들을 동정하시며 혼인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바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결혼을 금하시거나 혹은, 가정 안에 존재하는 관계와 그 감화를 깨치거나 없이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상에 있는 가정이 하늘가정의 상징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순결한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조류를 회복시키고 향상시키며 또한 정결하고 고상하게 하시고자 오셨다.... (TMK 39.2)
우리는 구원이 우리의 것이 되리라는 그 조건에 관하여 잘 알 필요가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그의 아버지께 유지하고 있는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이름을 은혜의 보좌 앞에서 나타낼 때에, 그 이름을 높이시리라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서약하셨다.
하늘의 베틀로써 짜여 진 의의 옷을, 우리를 위해 사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치르신 큰 희생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는 혼인예식에 우리를 초대하셨으며, 우리 각 사람을 위한 혼인 예복을 준비하셨다.
의의 옷은 무한한 값을 제공하고 사신 바 되었는데, 사람이 자기의 국민복인 자기 의의 옷을 입고, 혼인잔치에 들어오는 손님으로서 나타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에 대한 얼마나한 모독인가. 그는 ‘갈보리’ 상에서 이루어진 희생에 대한 멸시를 공공연하게 나타냄으로써, 얼마나 크게 하나님을 욕 돌리고 있는가! ... (TMK 264.3)
위대한 구원에 관하여 무관심하고, 소홀히 하는 것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부주의한 자는 일깨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아들을 주셨는데, 그것은 영혼을 파괴하고자 연합하는 인간적, 사단적인 세력에 대하여 그분의 일꾼들을 통하여 대항하고자 함이다.
주님께서는 높이 들리신 구주께서, 죄인들에게 드러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셨다. 비록 그들이 죄와 허물로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설교함으로 그들의 관심이 일깨워질 수 있다.
사람은 죄의 악함을 깨달아야 한다. 범죄자의 눈은 빛을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께 이끌린 모든 사람이, 그분의 사랑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자신의 영혼에 변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한 모든 사람은 주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6T 66.2)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요구된 엄청난 희생의 가치는, 죄가 엄청나게 나쁜 것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피조세계에서 이 더러운 오점을 없애고자, 세상에서 죄인들을 말살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이웃과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눈을 밝게 하여, 이 위대한 구원을 더 이상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하고자 왜 애쓰지 않는가? (6T 66.3)
화잇 주석 3권 - 청년의 가장 귀한 선물— 아이들아, 예수께로 오라. 그리고 네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어라. 그분께 너의 마음을 드리어라. 그가 말씀하신다. “내 아들과 내 딸아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 비록 너의 죄가 주홍과 같을지라도 내가 눈과 같이 희게 할 것이다.
이는 내가 내 피로 너를 정결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내 가족 중 한 사람 곧 하늘 왕의 자녀로 삼을 것이다. 내가 값없이 주는 나의용서와 평화를 받으라. 내가 너에게 나의 의의 옷 곧 혼인 예복을 입힐 것이요, 너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기도와 부지런한 성경 연구와 근신으로 나의 의의 옷을 입고 있을 때 너는 높은 표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진리를 깨달을 것이요, 너의 품성은 거룩한 감화로 꼴지워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곧 성화이기 때문이다”(청년 지도자 1892. 6. 30). (3BC 1162.2)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식탁에 앉고 그가 마련해 놓으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면 그대는 혼인예복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흰 옷을 입어야 한다.
이 옷을 입은 각 사람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며 만일 예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 집에 한 자리를 마련해 놓으실 열망을 갖고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며 당신 자신을 그렇게 크게 희생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으며 당신의 구속받은 가족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 그분의 식탁에 앉아 즐기고 행복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런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다. —청년 지도자, 1886.8.11. (SD 368.5)
마태복음 22장의 비유에도 결혼에 대한 동일한 상징이 소개되었는데, 거기서도 조사심판이 혼인 예식보다 먼저 진행될 것을 분명히 나타낸다. 혼인예식이 있기 전에 왕이 먼저 와서 모든 사람이 다 예복, 곧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된 흠 없는 품성의 옷을 입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손님들을 살펴보게 된다.(마 22:11; 계 7:14 참조).
부족한 것이 발견되는 자는, 밖으로 내어 쫓김을 당하지마는 검사한 결과, 혼인예복을 입은 것이 인정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 그분의 보좌에 앉을 자격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품성을 검사하는 일, 곧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지 결정하는 것이 곧 조사 심판이요, 하늘 성소에서 하는 마지막 사업이다. (GC 4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