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딴지일보 최고령 필자로서 김어준을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고 공적으로는 조금 안다. 한 마디로 그는 고기 좋아하는 대처승 같이 산다. 그가 대처승처럼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조그만 문제점이 있어도 정권이 그를 가만두지를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 날 일이 없으니까 먼지를 뒤집어씨우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어 왔다. 한 마디로 24 시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를 받으면서 살아간다고 해야 맞다.
내가 몇 번 어떤 일을 제안 했을 때 언제나 그의 대답은한결 같이 “돈 없어요”였다. 그런데 요즘 그가 “비싼게 정확하다” 는 표어를 걸고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의 선거여론 조사에 현재까지 10억 가까운 돈을 퍼붇고 있다. 나는 그가 어디서 돈이 생겨서 꽃을 운영하는지 모른다. 혹시 딴지일보 임대 사옥의 지하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궁금하지 않다. 이순신에게도 12척의 배가 있었지 않았던가?
금요일 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른이답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밤 11시 휴대폰이 울렸다. 엉겁결에 받고 보니 전화가 아니라 페북 메신저였다. 통화 버튼을 눌렀더니 화면에 웬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히죽이 웃고 있었다. 딴지일보 편집장 김창규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지금 어디 계세요? 호주에 계신 것 아니세요?”
“한국에 있어. 왜?”
“아! 네. 이종섭 때문에 취재를 가려고 해서 의논을 드릴까 해서요”
더욱이 여기자를 보낸다니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기왕에 호주까지 가는 김에 교민들은 골고루 만나서 취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시드니, 캔버라, 멜번의 동포 중에 여성들을 수배해서 도움을 구하느라고 바빴다.
그런데 몇일 후에 “이종섭이 낙마 수순을 밟을 거라 호주 일정은 취소될 것 같습니다. 목사님 한국에 계시니 또 일 있을 때 sos 치겠음다…! “라고 메시지가 왔다.
공연히 심심한 사람 바쁘게 만들었다.
사실은 이종섭이 그렇지 않아도 절간 같아서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캔버라 대사관에서 나오지 못하는것도 이미 감옥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요일 김창규 편집장으로 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겸손은 힘들다’ 의 자매 프로그램인 매일 11시에 진행되는 ‘주진우의 이렇게된 마당에’ 프로 취재로 주진우와 같이 직접 호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종섭은 한국으로 날아와서 아마 비행기가 남태평양 상공 어디에선가 교차 했을 터이지만 서로 아는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닭 쫓든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닭이 날아갈 줄 알고 간 경우이다.
목요일 시드니에 도착해서 나에게 ‘혹시 대사관에 인터뷰 할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그것은 대사관 규칙상 불가능한 일인데 그런 것을 모를 리가 없는 그들이 나에게 묻는 것을 보니 무척 답답했던 모양이다. 일행은 밤새 비행해서 시드니에서 하룻밤도 자지 못하고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캔버라에 가서 하룻밤 자고 규탄 집회를 취재하고 다시 시드니로 올 모양이다.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연결을 해주는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취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근본이 천방지축 신출귀몰한 사람들이니 믿고 기다려 보는 수 밖에 없다.
현지와의 연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를 보고 아내가 “호주방송에 연결을 좀 해보지”라고 거들었다.
“다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SBS에 한국 PD가 있으니까 연락 할 수는 있지만 창피해서 그럴수 없지”라고 하니까
“왜 그렇게 좁게 생각해?”라고 해서 서로 웃었다.
평생 동안 "도대체 당신은 경계가 어디냐?" 고 무던 아내에게 ‘좁게 생각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금요일도 김창규 편집장과 계속 연락이 와서 만나야 할 사람을 수배해 달라는 요청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은 이틀 밖에 없는데 현지 사정이 가변적이어서 적절하게 인터뷰 대상을 찾아서 진행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밤새 이 궁리 저궁리 하느라고 잠을 설쳤다.
드디어 토요일 캔버라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1 시간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서 멜번에서 왕복 16시간 운전을 해야 했던 멜번 촛불대표가 열번을 토해냈다. 주제는 ‘이종섭 반품’이었다.
일요일 밤 10시에 김창규 편집장에게서 도착해서 월요일 녹화할 편집회를 끝냈다고 전화가 왔다. 내 이름을 엔딩 크래딧에 넣어야 하겠다고…..
한 주간 동안 이종섭 때문에 심심한 사람 마음만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