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82강 – 1 – g
(27) 菩薩의 十種佛業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佛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隨時開導가 是佛業이니 令正修行故며
夢中令見이 是佛業이니 覺昔善根故며
爲他演說所未聞經이 是佛業이니 令生智斷疑故며
爲悔纏所纏者하야 說出離法이 是爲佛業이니 令離疑心故며
若有衆生이 起慳悋心과 乃至惡慧心과 二乘心과 損害心과
疑惑心과 散動心과 憍慢心하면 爲現如來衆相莊嚴身이
是佛業이니 生長過去善根故며
於正法難遇時에 廣爲說法하야 令其聞已하고 得陀羅尼智와
神通智하야 普能利益無量衆生이 是佛業이니 勝解淸淨故며
若有魔事起어든 能以方便으로 現虛空界等聲하야
說不損惱他法하야 以爲對治하야 令其開悟하면 衆魔가
聞已에 威光歇滅이 是佛業이니 志樂殊勝하야 威德大故며
其心無間하야 常自守護하야 不令證入二乘正位하며
若有衆生이 根性未熟이면 終不爲說解脫境界가 是佛業이니
本願所作故며
生死結漏를 一切皆離하고 修菩薩行호대 相續不斷하야
以大悲心으로 攝取衆生하야 令其起行하야 究竟解脫이
是佛業이니 不斷修行菩薩行故며
菩薩摩訶薩이 了達自身과 及以衆生이 本來寂滅하야
不驚不怖호대 而勤修福智하야 無有厭足하며
雖知一切法이 無有造作이나 而亦不捨諸法自相하며
雖於諸境界에 永離貪欲이나 而常樂瞻奉諸佛色身하며
雖知不由他하고 悟入於法이나 而種種方便으로
求一切智하며
雖知諸國土가 皆如虛空이나 而常樂莊嚴一切佛刹하며
雖恒觀察無人無我나 而敎化衆生하야 無有疲厭하며
雖於法界에 本來不動이나 而以神通智力으로 現衆變化하며
雖已成就一切智智나 而修菩薩行하야 無有休息하며
雖知諸法이 不可言說이나 而轉淨法輪하야 令衆心喜하며
雖能示現諸佛神力이나 而不厭捨菩薩之身하며
雖現入於大般涅槃이나 而一切處에 示現受生하야
能作如是權實雙行法이 是佛業이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不由他敎無上無師廣大業이니라
(27) 菩薩의 十種佛業(보살10종불업)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佛業하니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님의 업이 있으니,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열 가지냐?
1. 所謂隨時開導가, 이른바 때를 따라서 열어서 인도하는 것이,
是佛業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令正修行故며, 바른 수행을 하게 하는 연고고,
2. 夢中令見이 是佛業이니, 꿈속에서 보게 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覺昔善根故며, 옛날의 깨닫게 하는 연고고,
3. 爲他演說所未聞經이 是佛業이니,
다른 이에게 듣지 못하던 경을 연설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令生智斷疑故며, 지혜가 생겨서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고,
4. 爲悔纏所纏者(위회전소전자)하야 說出離法이,
후회함에 얽힌 이에게는 벗어나는 법을 말하는 것이
是爲佛業이니 令離疑心故며,
부처님의 업이니 의심을 여의게 하는 연고이니라.
5. 若有衆生이, 만약에 어떤 중생이,
起慳悋心(기간인심)과, 아끼는 마음과,
乃至惡慧心과, 내지는 아주 나쁜, 잔머리쓰는 그런 꾀의 마음.
二乘心과, 2승심과,
損害心(손해심)과, 남을 해끼치는 마음.
疑惑心과, 의혹하는 마음ㆍ진심이 없는 마음과,
散動心(산동심)과, 흔들리는 마음과,
憍慢心(교만심)하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거든,
爲現如來衆相莊嚴身이 是佛業이라.
그런 중생들에게 여래의 여러 가지 상호(相好)로 장엄한 몸을 나타내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生長過去善根故이니라. 과거의 선근을 자라게 하는 연고이니라.
6. 於正法難遇時(어정법난우시)에 廣爲說法하야,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울 때에 법을 널리 설법하여,
令其聞已하고, 그들이 듣고는,
得陀羅尼智와 神通智하야, 다라니 지혜의 신통지혜와
普能利益無量衆生이 是佛業이라.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이익케 하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勝解淸淨故라. 훌륭한 지혜가 청정한 연고라.
7. 若有魔事起어든, 만약에 마의 장난이 일어나거든,
能以方便으로 現虛空界等聲하야,
능히 방편으로써 허공계 등의 소리를 내며,
說不損惱他法(설불손뇌타법)하야,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법을 말하여,
以爲對治하야 令其開悟하면, 다스려서 깨닫게 하면,
衆魔가 聞已에, 모든 마가 듣고는,
威光歇滅(위광헐멸)이 是佛業이니,
위엄과 빛이 소멸하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志樂殊勝(지락수승)하야 威德大故니라.
훌륭한 것을 좋아하여 위덕이 커지는 연고라.
8. 其心無間하야 常自守護하야,
그 마음이 간단함이 없이 항상 스스로 수호하여,
不令證入二乘正位하며, 이승의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게 하며,
若有衆生이 根性未熟이면,
만약에 어떤 중생의 근성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숙이어든,
終不爲說解脫境界가 是佛業이니
끝까지 해탈하는 경계를 말하지 않음이 부처님의 업이니,
本願所作故며, 본래의 서원으로 짓는 연고니라.
9. 生死結漏(생사결루)를 一切皆離하고,
생사의 결박된 번뇌를 모두 여의고,
修菩薩行호대, 보살의 행을 닦아서
相續하야 不斷(상속부단)이라.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하여,
以大悲心으로 攝取衆生하야, 크게 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서,
令其起行하야 究竟解脫이 是佛業이니,
그 행을 일으키고, 필경에 해탈하게 함이 이것이 부처님의 업이니,
不斷修行菩薩行故니라.
보살의 행을 닦아서 끊지 않는 연고이니라.
10. 菩薩摩訶薩이 了達自身과 及以衆生이,
보살마하살이 자신과 중생들이
本來寂滅하야, 본래 고요하여,
不驚不怖(불경불포)호대,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본래 고요하다.”는 것은 “본래 없다.”는 말씀입니다.
而勤修福智하야, 부지런히 복과 지혜를 닦아서,
無有厭足(무유염족)하며, 만족함이 없이 계속 싫증없이 정진하고,
雖知一切法이 無有造作이나, 비록 일체법이 지음이 없는 줄을 알지만,
而亦不捨諸法自相하며, 그러나 또한 제법의 모양을 버리지 아니하며,
雖於諸境界에 永離貪欲이라.
비록 모든 경계에 탐욕이 없지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욕심은 없지만,
而常樂瞻奉諸佛色身(이상락첨봉제불색신)이라.
그러나 부처님의 육신을 뵈옵기를 좋아하고,
雖知不由他하고, 비록 다른 이의 깨우침을 말미암지 않고,
“불유타오”라고 많이 배웠지요?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라.” 여기서 다 나옵니다.
“成就慧身에 不由他悟라.”
悟入於法이라. 법에 확실히 깨쳐서 들어감을, 증입함을 알지만,
而種種方便으로, 그러나 종종 방편으로, 확실히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지만, 진공인 줄 알지만 명이를 얼마든지 펼친다. 갖가지 방편으로
써, 求一切智하고, 온갖 지혜를 구하고,
雖知諸國土가 皆如虛空이나, 비록 모든 국토가 허공 같은 줄 알지만,
而常樂莊嚴一切佛刹하며, 그러나 일체 장엄을 항상 즐긴다.
반야바라밀을 넘어서서 방편바라밀이 완성된 사람들한테 나타난 현상을
지금 쭉~~ 써놨네요. “항상 모든 경계를 장엄하기를 좋아하며,”
雖恒觀察無人無我나, 비록 무아ㆍ무인이나, 아상도 인상도 없음을 관찰
하지만, 그것 제대로 알기는 하지만
而敎化衆生하야, 그러나 중생을 교화하려다 보니까
無有疲厭(무유피염)하고, 고달픈 줄도 모르고,
雖於法界에 本來不動이나,
비록 법계는 본래부터 구래불동명위불인줄 누가 모르나요? 다 알지만,
而以神通智力으로, 그러나 신통한 힘으로써,
現衆變化하며,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고,
모르는 중생들을 깨우치려고 여러 가지 장난을 친다는 겁니다.
雖已成就一切智智나, 비록 이미 일체 지지를 다 성취했지만,
而修菩薩行하야 無有休息하며,
그러나 보살행 닦기를 쉬지 아니하며,
雖知諸法이 不可言說이나, 모든 법이 말로 할 수 없음을 알지만,
而轉淨法輪하야, 청정한 법륜을 굴리고,
令衆心喜하며, 여럿의 중생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雖能示現諸佛神力이나, 비록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나타내지만,
而不厭捨菩薩之身이라. 그러나 보살의 몸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雖現入於大般涅槃이나, 비록 대반열반에,
앞의 般자는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들어간다.”
흔히 “반열반”이라고 하잖아요? 大般이라면 크게, 다른 말로는
“究竟(구경)”이라고 그럽니다. 구경열반을 “大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뒤의 涅槃은 우리 흔히 “滅”이라 써버리고,
앞의 것은 “入”이라 써서 “입멸이라.”이렇게 하잖아요. 그렇지요?
入滅. “멸에 들어갔다.” ←이 말을, “大般涅槃.” ←이렇게 얘기합니다.
般涅槃이라고 하는 것은 구경열반이라고 반야심경에,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원리전도몽상구경열반)” 하잖아요?
究竟을 해석하자면 “반열반이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입열반이다 = 열반에 들어간다.
큰 열반에 들어감을 나투지만, 열반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는데,
而一切處에 示現受生하야,
그러나 일체처에서 마음대로 태어나서 중생에게
能作如是權實雙行法(능작여시권실쌍행법)이,
방편과 실상을 雙行法이, 방편과 실상.
방편은 자취라 그러고, 실상은 무상이라 그러지요.
“진리는 비등이요 실상은 이연이라.”
실상은 理라 그러고, 진실이라 그러고, 방편은 사상이라. 현실이라고
하지요. 현실이요. 理判ㆍ事判(이판시판).
방편을 權(권)이라고 합니다.
저울대 추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것은 실물이 담겨야 되잖아요.
저울대에 달여지는 물건. 그것을 실상이라고 하지요.
실상은 다 허공입니다. “一相도 無相(일상무상)이라.”
방편과 실상을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是佛業이라. 부처의 업이니라.
실상은 부처님의 입장이고, 방편은 중생을 실상으로 당기기 위해서요.
기신론 같은 데는 이래놓지요.
“생멸법을 통해서 중생을 진여법으로 데리고 간다.
생멸법을 관할 수 있는 것은 비파사나라고 한다.”
진여법으로 데려가는 것을 사마타라고 이렇게 얘기하지요. 사마타.
그 두 개는 다 똑 같지만, 굳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통발로서 통발법이 있고, 통발에 잡히는 법이 있고, 이렇게 얘기를 하지
요. 서문에도 나오고, 뒤에 기신론 과목에도 나오고요.
화엄경에도 다 그렇게 나옵니다.
아까 얘기했던 1주설법ㆍ2주설법ㆍ3주설법ㆍ4주설법ㆍ5주설법이 다
그런...
是爲十이니, 이것이 바로...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에 편안히 머물면,
則得不由他敎無上無師廣大業이니라.
즉득 그 자리에서 남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스승도 없고, 최고의 자기의 본지풍광 그대로 無師라고.
“스승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본래면목이잖아요. 그렇지요?
우리 본래면목의 입장에서 누가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못 가르칩니다. “자도자수”라고 합니다.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수행한다. 어느 정도 수학 문제 풀 때까지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진짜 문제 해결하는 것은 자기에게 답
이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_()()()_
아름답습니다♬♪♩ 환희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입니다♬♪♩ 감미롭습니다♬♪♩ 꿀맛입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
般涅槃 = 究境
入滅 = 大般涅槃
究境涅槃 = 大般
남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
자기의 본지풍광 그대로 無師라..
참으로 근념하셨습니다..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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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념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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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자수”...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