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편에서 계속>
종가의 아침밥은 안채에 모두 모여 먹는다. 사랑채와 분강서원, 애일당, 강각 등에서 밤을 보낸 이들이 종손이 흔드는 쇠종 소리를 듣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밥상은 고기 반찬 하나 없이 소박하다. “대부분 나물이라 재료비는 별로 안 들어요. 하지만 다듬고 씻고 데치고 버무리는 정성이란 조미료를 듬뿍 넣었습니다.” 종부 이원정씨가 이날 내놓은 찬은 15가지. 북어구이, 호박볶음, 시래깃국 등 익숙한 찬들 사이로 콩가루 전구지와 오가피 장아찌, 명태 보푸라기 등 안동 지역 특색을 담은 반찬이 보인다.
종가의 아침밥은 안채에 모두 모여 먹는다. 사랑채와 분강서원, 애일당, 강각 등에서 밤을 보낸 이들이 종손이 흔드는 쇠종 소리를 듣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밥상은 고기 반찬 하나 없이 소박하다. “대부분 나물이라 재료비는 별로 안 들어요. 하지만 다듬고 씻고 데치고 버무리는 정성이란 조미료를 듬뿍 넣었습니다.” 종부 이원정씨가 이날 내놓은 찬은 15가지. 북어구이, 호박볶음, 시래깃국 등 익숙한 찬들 사이로 콩가루 전구지와 오가피 장아찌, 명태 보푸라기 등 안동 지역 특색을 담은 반찬이 보인다.
- 농암 종가의 아침 밥상. 종부 이원정씨가 매일 14~15개 찬을 마련해 종택을 찾는 손님들에게 낸다. /이경호 영상미디어기자
수많은 문학작품 빚어낸 예던길
- 예던길 중 빨간선 구간(약4km)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고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다. /조선일보 DB
한 시간 남짓 걷는 길은 청량산과 낙동강이 함께 빚은 수려한 풍광 덕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낙동강 물길을 따라 청량산의 육육봉과 학소대의 수직단애, 백운지의 넓은 못이 차례로 펼쳐진다. 때마침 들기 시작한 단풍이 물에 비쳐 더욱 고왔다. 예던길은 문학의 길이기도 하다. 이성원 종손은 “철학자 칸트가 걸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인의 길’이 유명하다지만 퇴계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이 걸으며 작품을 쏟아낸 예던길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퇴계는 백운지 근처에서 본 예던길의 수려한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구비구비 넓은 여울/ 높고 높은 푸른 산/ 청량산은 숨은 듯 다시 보이고/ 무궁한 모습 시심을 북돋우네.’
- 이성원 종손과 함께 걸은 예던길.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가며 이어지는 이 길은 퇴계 이황이 걸어서 유명해진 뒤 조선시대 안동을 찾는 수많은 유학자가 걷는 명소가 됐다. /이경민 영상미디어기자
농암종택에는 긍구당 외에도 강각(江閣)과 애일당(愛日堂)이라는 아름다운 별채가 있다. 강각은 수려한 주변 경관과 어울리며 농암이 이끄는 영남가단의 본거지로 쓰였다. 이황, 이언적, 주세붕 등이 이곳에 모여 풍류를 즐겼다. ‘애일’은 부모가 살아계신 나날을 아낀다는 뜻이고 애일당은 효를 실천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농암은 이곳에서 94세 아버지를 비롯한 아홉 노인을 모시고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그때 농암의 나이 67세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선조는 선행을 쌓는다는 뜻의 적선(積善)이란 글씨를 하사했다.
원이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월영교
농암종택에 이어 퇴계종택, 도산서원을 차례로 들른 뒤, 안동댐 바로 아래 조정지댐을 가로지르는 월영교(月映橋)로 향했다. ‘달빛이 비친다는 뜻’의 이 다리에는 조선시대 남편과 사별한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고성 이씨 집안 며느리인 원이엄마는 남편 이응태가 1586년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남편의 관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끊어 만든 미투리와 함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한글 편지를 넣었다. 소설 ‘능소화’에는 이응태의 이른 죽음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결혼 전 원이엄마에게는 저주가 씌어 있었다. 그녀와 결혼하는 남자는 요절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능소화가 피어난 담벼락 너머로 그녀를 우연히 보고 사랑에 포박된 이응태는 결혼을 택하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관에서 나온 미투리 모양을 본떴다는 월영교는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월영교를 건너는 젊은 남녀가 간간이 눈에 띄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진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강을 보며 걸을 수 있는 명품 산책길이다.
- 농암종택 전경. 종택 너머로 멀리 보이는 산은 안동과 봉화 사이에 걸쳐 있는 청량산이다. 청량산은 농암종택 앞으로 굽이쳐 흘러가는 낙동강과 어루러지며 수려한 풍광을 연출한다. /이경호 영상미디어기자
조선 중기 연산군 중종 때의 문신이다.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으로 효절(孝節)이란 시호를 받았다. 안동부사로 재직하던 1519년 9월 안동 부내 80세 이상 노인은 여자와 천민까지 초청해 화산양로연을 열고 장수를 축하했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 동네 노인 9명을 애일당으로 초청해 그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췄던 애일당구로회 일화로 유명하다. 연산군대 기묘사화에 연루돼 귀양갔다가 중종반정으로 복귀했다. 국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농암가와 어부가(漁父歌)로 유명하다. 사후 분강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