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어쩌다 농부가 되었다
2023.10.23
서울살이 꼬박 30년, 마흔이 넘자 배터리가 자주 방전되었다. 죽자고 살고 있는데 사는 건 늘 고만고만하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둘러보면 또 다들 죽자고 살고 있어서 어어 하다가 쓰러지길 여러 번, 고만고만 사는 일이나마 감지덕지하며 살았는데 월급이 두어 달 밀리자 금방 생활이 불안해졌다.
서울살이라는 게 원래 그러려니 오늘은 간당간당 내일은 위태위태, 달음박질치면서 견디는 거겠거니 하며 버텨 보려 했는데 아이가 아팠다. 아토피였다. 자고 나면 피와 진물로 옷과 베개가 얼룩졌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야 했다.
서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희생을 연료 삼아 유지되는 곳이 아닐까? 내일의 더 넓은 아파트, 내일의 더 큰 차를 위해 오늘의 야근이 당연한 곳이 서울이다. 그런데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내일은 늘 내일이기만 하고 오늘은 늘 야근이더라.
스무 살에는 야근을 자청했고 서른에는 야근이 두렵지 않았으나 마흔에도 야근이 당연하고 보니 어쩐지 쭉 속으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성취에 대한 앞뒤 없는 몰입의 힘으로 노를 젓기는 하는데 방향은 사방팔방, 목표는 오리무중인 유원지 나룻배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이 차올랐다.
그래서 물었다. 흔들리는 배보다는 발 디딘 땅 위에서의 삶이 더 낫지 않겠냐고, 귀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다. 회사 동료들은 ‘출퇴근 자유로운 직장‘이라며 마냥 부러워했다. 용기백배해서 고향에 남아 20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동창에게도 물었다.
농사지어 먹고 살 만하냐?
농사보다 주식이 나을 걸? 농사보다야 천천히 망할 테니까.
절박했으므로 아버지의 농지를 무단 점유하는 걸로 무작정 귀농했다. 까짓 농사, 회사 생활하듯 하면 안 될까 보냐! 출근을 하듯 밭에 나가고 영업을 하듯 작물을 돌보면 되겠지 했는데 회사 생활하듯 지은 고추 농사는 퇴직금도 없이 서리를 맞았다.
된서리를 맞아 폭삭 내려앉은 고추밭을 보면서 정리한 농사짓는 요령 하나, 출근하는 시간에 밭에 나가면 한여름 땡볕에 쪄 죽을 수 있다. 둘, 영업하듯 작물을 돌보면 어깨고 무릎이고 남아나는 게 없다. 셋, 농사는 농부가 반짓고 하늘이 반짓는다. 그러니 안달복달 말아라.
농부의 몫을 뺀 나머지는, 바람이 불어 자두 꽃이 수정되고 봄비에 감자 싹이 나고 더위에 옥수수수염이 마르고 따가운 벌 에 사과가 붉어지는, 모두 하늘의 몫이다. 농부는 그저 삽을 들고 물고랑을 내거나 논두렁을 고치면서 싹이 나고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는 그 곁을 가만히 지켜 주면 그뿐. ‘사람이 하는 일은 별 게 아니구나’를 겸손하게 알아 가는 일 이 농사의 시작이라는 걸 세 번째 봄에서야 겨우 깨달았다.
서울에는 서울 나름의, 이 골짜기에는 골짜기 나름의 질서와 리듬이 있다. 그 사람이 타는 차의 크기로 잽싸게 상대를 가늠하던 서울의 기준을 이곳으로 고스란히 가져왔으니 당연히 몸이 고달프고 마음이 가난할 수밖에. 차가 무슨 소용일까, 고개 너머 논에 뿌릴 비료를 심자면 차보다야 경운기다.
그렇게 감자를 심었다. 심는 것까지는 내 몫. 나머지는 하늘이 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사과 농사를 지었다.
-변우경 수필, <어쩌다 농부> 중에서 / 행복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