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아침 일찍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지금 한국의 교육 제도는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 엘빈 토플러
●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세계적인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다. 미래 가능성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지만, 유독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경고등을 켠다.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 중에는 이미 더 이상 진리가 아닌 것이 많으며, 과학적 발견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기존의 학교 교육은 내용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앨빈 토플러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방법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한국은 변화의 속도, 변화의 내용, 미래에 적극 발맞추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며, 앞으로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다양성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한국이 세계를 이끌려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라는 화두를 남긴 바 있다.
●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는 ‘미국을 뒤흔든 세계 교육 강국 탐사 프로젝트’라는 부제로 미국 저널리스트 아만다 리플리가 쓴 르포르타주 책이다. 2009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미국이 수학 26위, 과학 17위, 독해 12위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접한 뒤 한국, 핀란드, 폴란드 등 ‘공부 잘하는 나라’의 실태를 파헤친 책이다.
책에서 미국 미네소타에서 한국에 찾아온 에릭은 부산 남산고에서 수업을 들은 첫날 충격을 받는다. 책은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린다. ‘반 아이들의 3분의 1이 잠들어 있었다. 그냥 꾸벅꾸벅 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책상에 박고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기색이 전혀 없이 푹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밤 9시가 되어서야 에릭의 급우들은 남산고등학교 정문을 나선다. 그러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이라고 알려진 사립 교육 기관으로 향한다. 그러고 나서야 마침내 집에 가서 몇 시간 자고 다음날 학교에 8시까지 등교한다. (중략) 어떻게 10대 청소년들이 공부 외에 아무것도, 진짜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에릭은 예정된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남산고를 ‘탈출’해 본래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 에릭은 한국의 고등학교를 견디지 못했고, 저자가 한국을 방문해 만난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한국의 교육 제도를 칭송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긍정적 결론을 내리는 아이러니로 마무리한다.
● 한국 국제학업성취지표, 학습-정서 불균형 심각해
한국의 교육 현실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OECD 회원국 중심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지표이다. 2012년 회원국 34개국과 비회원국 31개국의 학생 5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를 차지했다. 수학의 평균 점수는 554점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고, 읽기는 536점으로 일본(538점) 다음이었다. 과학(538점)은 일본, 핀란드, 에스토니아에 이어 네 번째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140개교, 중학교 16개교의 학생 5,201명이 평가에 참여했다.
하지만 높은 성취도와 달리 학습 태도와 관련한 정서적emotional 지수는 OECD 평균을 밑돌았다. 수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을 측정하는 ‘내적 동기’는 이전 조사인 2003년 조사 때보다 더 낮아졌다. ‘자아 효능감’이나 ‘수학 불안감’ 역시 OECD 평균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다른 국제지표인 IEA 학업성취도(TIMSS)의 경우 2007년 당시 역시 수학 2위, 과학 4위를 기록했으나, TIMSS 평가 중 능동적·창의적 학습 수준을 측정하는 ‘자신감’과 ‘흥미도’ 부분에서 한국은 거의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같은 현상은 TIMSS에 처음 참가한 1995년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OECD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6년째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2010년 OECD 국가의 자살률 현황에서도 청소년 자살률이 상위 그룹에 속해 있다.
높은 학업 성취도에 비해 최하위권의 흥미도, 자신감 부족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두뇌의 정서 기능을 낮추어 결국 인지 기능과 창의성 증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서와 학습은 분리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두뇌 기능인 만큼, 정서적인 내면 요소를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청소년의 장기적 두뇌 능력은 갈수록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한국은 PISA 관계자의 말처럼 “한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그룹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행복한 아이들은 아니다”란 말을 되새길 시점이다. ‘꿈과 감성의 시대’,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는 21세기 문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기존의 교육 방식과 틀로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20세기 관념의 틀을 벗고 ‘지구’라는 확장된 사고로,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 양성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글·《브레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