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어도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지만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시험을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사의 기도와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수넴 여인 가정에 귀한 아들을 주셨는데, 이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아들이 왜 갑자기 죽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8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이 아들이 추수꾼들이 추수하는 밭에 나갔다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면서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한낮의 땡볕에 밭에 나가서 일사병(日射病)에 걸려 죽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만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20절에서 이 아들이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어머니의 무릎에 앉을 정도의 연령이라면 아마도 많아도 6살이나 7살 정도 의 나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느지막이 주신 아들이었기에 애지중지했을 텐데, 이렇게 갑자기 죽게 되었으니 그 황당함과 슬픔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수넴 여인의 행동은 매우 빠르면서도 침착한 편입니다. 일단 그 아들을 엘리사가 들를 때마다 묵게 하는 방에 누인 후에 문을 닫고, 남편에게는 엘리사에게 다녀오도록 사환과 나귀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21절부터 23절의 내용을 볼 때 아들의 죽음을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남편에게 알렸다면 남편이 이렇게 차분할리 없고, 엘리사에게 가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은 초하루(월삭, 月朔)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왜 엘리사에게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으니 말입니다(23절). 아마 초하루나 안식일에는 엘리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넴에서 갈멜산까지의 거리는 대략 24km 정도입니다. 24절을 보면 중간에 지체하지 말고, 가능한한 빨리 달리도록 사환에게 이야기하였고,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에게 가서 엘리사를 만납니다. 엘리사는 이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미리 자신에게 알려주신 일이 없다고 자기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27절). 그러나 수넴 여인이 급하게 달려와 엘리사의 발을 붙드는 것을 보고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짐작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발을 붙드는 수넴 여인의 행동을 게하시가 저지하려고 하였지만, 엘리사는 이 여인의 긴박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냥 놔두라고 말하였습니다(27절).
이런 상황에도 이 수넴 여인은 샬롬(שָׁלוֹם)이란 말을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23절, 26절). 남편이 왜 갑자기 엘리사에게 가려느냐고 물을 때에도 “평안을 비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23절). 즉 모든 것이 평안할 것이고 별일이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 수넴 여인에게 남편과 아들과 수넴 여인 자신도 평안하냐는 인사말에도 “평안하다”고 답변합니다(26절). 물론 “샬롬”이라는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상시에 자주 사용하는 인사말이긴 해도 그 상황에서 보통은 “평안하다”고 답하지는 않는데, 이 여인은 의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샬롬”을 말합니다. 아마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반드시 죽은 아들을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여인은 엘리사에게 투정을 부리듯이 “내가 언제 아들이 필요하니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느냐? 왜 내게 아들을 주셔서 이 고통을 얻게 하느냐?”는 말로 엘리사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吐露)합니다(28절). 이 말에는 아들이 죽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하지 않지만, 아들에게 매우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말입니다. 나귀를 타고 긴박하게 달려온 모습이나, 엘리사에게 와서 하는 행동이 그 심각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자기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빨리 가서 그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고 말합니다(29절). 허리를 묶으라는 말은 빨리 출발할 채비를 하라는 말이고, 중간에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라는 말은 중간에 지체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사용되었기에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아이의 얼굴에 놓아 낫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졸랐고, 엘리사는 이 수넴 여인과 함께 수넴 여인의 집으로 갑니다(30절). 게하시가 먼저 가서 그 아이의 얼굴에 지팡이를 놓았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31절). 제 생각에는 아마 엘리사가 함께 오지 않았어도 게하시를 통해 지팡이만 아이의 얼굴에 놓았어도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살려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엘리사가 수넴 여인과 함께 오고 있기에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시려고 지팡이를 통해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그 집에 가서 자기가 들를 때마다 사용하는 침대에 누여있는 죽은 아이를 보고 문을 닫고 죽은 아이와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위에 엎드립니다. 아이가 작았기에 아마도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처럼 아이 위에 엎드렸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점차 아이의 몸에 온기가 올라오자 엘리사는 일어나서 집 안에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다시 아이 위에 엎드렸고, 이에 아이의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뜨게 됩니다(33절~35절). 차가운 시신이 된 아이의 몸에 온기를 돌게 하기 위해 엘리사가 운동하듯이 움직이다가 다시 아이의 몸 위에 엎드려서 온기를 돌아오게 하여 살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죽은 아이가 온기만 접한다고 살아나지는 않는 것이기에 아마 엘리사는 이 아이가 살아나도록 아이 위에 엎드려서, 그리고 일어나 집 안을 걸으며 계속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아이는 다시 살아났고, 그 어머니를 불러 아이들 데리고 가라고 하였으며, 이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감사를 표현하였습니다(36절, 37절).
이 수넴 여인의 가정에 아들을 주신 것은 엘리사의 기도와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에도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다시 향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불평을 늘어놓거나, 절망감에 휩싸여 미리 좌절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향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