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폐지 논의는 '부동산 아편'의 음습한 모습
/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2024.06.03 시민언론 민들레
과거 미·일 경제 몰락 불러온 부동산거품
금융은 약탈적 대출, 정부는 종부세 폐지
곧 닥칠 위기에도 나라 망칠 정부와 언론
한국 경제가 부동산 거품 때문에 무너지리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OECD 평균을 넘어 위험한 수준에 달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주택담보대출 때문이며 기업부채 중에서 자영업자의 사업자 대출도 대부분 부동산 담보대출이다. 또한 기업부채 중에서 최근 5년간 부동산업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고, 부동산 PF 대출 부실은 한국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편보다 더 무서운 부동산 거품
청나라는 아편 때문에 무너졌다. 부동산 거품은 아편보다 더 무섭게 한 나라의 경제를 무너뜨린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것이 대공황의 전조였고, 금융이 발전했다며 부동산 거품 통제에 자신만만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기도 했다. 제조업과 첨단 기술에서의 괄목할 만한 발전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한 중국 경제조차도 국내총생산 중 30%가 넘어가는 과다한 부동산 투자가 부실화되면서 흔들리고 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해 시작된 잃어버린 30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은 어떤 국가든지 한번 시작되면 큰 경제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아편보다 더 무서운 경제의 질병이다.
경기가 좋을 때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고수익 산업이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나빠질 때는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처럼 재벌, 관료, 학자, 언론, 정치권을 망라한 부동산 카르텔의 규모가 커지고 정부와 정치권이 투기를 부추기며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하게 되면 위험부담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투자 대상이 된다. 언론은 끝없이 공급부족론과 부동산 불패론을 반복하고, 정부는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반복하고, 재벌그룹마다 건설회사를 차려 과잉투자를 한 결과 부실화된 부동산 PF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데이터센터 대신 아파트 지으며 무너지는 다이내믹 코리아
부동산 산업은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산업이다. 이에 반해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과 같은 범용기술은 전반적인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국에서는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수백조 원 대의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센터 구축에 열을 내고 있는 반면, 한국은 막대한 돈을 들여 멀쩡한 아파트를 헐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고 있으며 텅빈 상가 옆에 지식산업센터를 짓는 과잉 투자가 일상화되고 있다. 부동산만 비대한 국가는 곧 생산성이 높은 국가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 덕분에 한국경제에서 건설업 비중은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최근에도 OECD국가 평균보다 훨씬 높은 15% 내외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생산성은 저하되고 국가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성공하기 어려운 혁신산업에 뛰어드느니 손쉬운 부동산 투자가 소득을 높이는데 훨씬 좋다. 자본과 인재가 부동산업에 몰리니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산업은 시간이 갈수록 살아남기 어려운 경제가 되었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 분석’)는 이러한 실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 모험적 사업에 대한 투자가 일상이었던 한국경제는 부동산 거품에 덮여 무너져 왔다.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자본과 인재를 쫓아내는 국가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수익을 내지 못하는 가게들이 쫓겨나면서 지역 전체가 쇠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학에서 지대로 불리는 높은 집세와 건물 임대료 때문에 소비자의 소비는 줄고 기업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부동산 가격의 하방 경직성 때문에 지대가 떨어지지 않는데, 한국처럼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하게 되면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비싼 임대료는 고정비용이 되어 투자 수익률을 낮춘다. 당연히 모험적인 투자를 줄인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마땅한 사무실이나 공장을 구하기 어렵다. 투자와 고용의 기회가 줄다보니 자본과 인재가 떠나기 쉽다. 경제 전체에서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지대의 상승이라는 국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한국 경제는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곧 닥쳐올 장기 경기 침체와 자본 도피, 인재 도피를 걱정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모두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은 약탈적 대출이 키우는 금융 현상
관료들과 사이비 전문가들이 아무리 옹호해도 한국의 부동산에는 잔뜩 거품이 끼어있다. 평생소득으로 구입할 수 없는 주택가격은 정상 가격이 아니다. 평생소득으로 갚을 수 없는 대출은 약탈적 대출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맞추지 못하니 40년 짜리 대출이나 이런저런 명목의 특례 대출을 만들어낸 후 이를 정상 대출이라고 용인하는 정부에서 부동산 거품을 잡을 리 없다. 여전히 집 사라고 권하고 PF대출 부실이 드러날까봐 규제를 완화하는 정부는 자신의 임기 중에 사고가 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사태를 키우는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약탈적 대출이 없다면 부동산 거품은 크게 커지지 못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 위기가 오는 이유는 금융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대출로 인해 연체율이 높아지고 부동산 PF대출로 인한 파국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가 부양책을 통해 거품을 더 조장할 수 있지만, 결국 자산보유자들의 지대가 커지면 임대료와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경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나날이 출산율 기록을 깨고 있는 경제에서 부동산 거품을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 앞날에는 일본을 따라 잃어버릴 시기가 몇십 년이 될지의 여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종부세 폐지 주장 하려면 부동산 거품 해소 방안도 함께 내놓아야
경제 위기의 목전에 있는 한국 경제에서 종부세 폐지 논의가 슬그머니 머리를 내미는 것은 아편보다 더 무서운 부동산 거품의 음습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선거 기간 중에 지역 주민들로부터 종부세를 없애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들은 부자 동네 국회의원이 종부세 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다면 종부세와 함께 부동산 거품 해소 방안도 주장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부동산 카르텔의 일원임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시내 한 세무서에 붙은 종부세 분납신청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
종부세가 성역이 아니라는 주장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보유세를 높여 비생산적인 부동산 지대를 낮춰 혁신적인 투자를 촉진하는 것은 경제를 살리는 기본 원칙이다. 원래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의 공급과 약탈적 대출의 규제가 더 중요하다. 보유세는 점진적으로 강화하되 부동산 폭등기에는 오히려 장기 보유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보완책은 필요하다. 금융을 풀어주고 임대주택 공급은 주저하면서 종부세만 강화하면 부동산 거품은 거품대로 커지면서 저항만 키우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장기 보유자의 부담을 줄이면서, 보유세율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대안은 도입할 만하다.
민주당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성역이 될 수 없다. 정책 실패의 핵심은 부동산 정책에 금융정책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시간이 지나도 공급 부족론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종부세의 재원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여전히 금융정책이나 임대주택 공급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의 주택 불안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경제 위기를 맞고 난 이후에나 정책을 수정할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산더미 같은 기업과 가계 부채, 경제 위기를 피할 길 없다
그래도 민주당 정부에서는 거품을 억제하기 위해서 노력이라도 했다면, 아예 부동산 거품을 더 조장하려는 듯 종부세를 없애자는 지금의 정부, 여당은 반드시 기억해 두었다가 심판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은 이제 불가피하다. 현재의 국제적인 경제 환경에서 과다한 기업과 가계의 부채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찾기 힘들다. 시간문제일 뿐 한국 경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를 겪어야 하는 지가 관건일 뿐이다. 곧 들이닥칠 위기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나라를 망치는 정책을 펼치는 정부, 그를 옹호하는 언론을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