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보리 개떡 -김준호 재피방
비록 쌀 대신 보리였지만, 오뉴월에는 주식 자리를 꿰차고 ‘밥, 죽, 수제비, 떡, 빵’은 물론이고,
‘보리 된장, 보리차, 보리 김치’까지 더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보리는 겉 표피가 두꺼워, 입에 씹히는 부드러운 알곡을 얻기 위해서는 도정을 여러 번 해야했다.
그리하여 갉아 낸 겉 표피인 ‘보리등겨’가 많이 생겼다.
60∼70년대에 참 많이 먹었던 것이 이런 보리등겨나 보리 싸라기로, 손바닥만 하게 납작납작한 반죽을 만들어, 밥 위에 얹어 쪄 먹는 ‘보리 개떡’이 있었다.
말이 떡이지 그냥 배가 고파 할 수 없이 먹는 참 볼품없고, 맛도 없고, 그냥 달달한 사카린 맛으로 먹는 그렇고 그런 떡이었다.
옛적의 ‘개’ 이미지는 형편없었다.
개떡에 붙는 ‘개’라는 말도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원칙에서 벗어났다, 보잘것없다, 가짜’를 표현할 때 주로 쓰는 말이었다.
‘개나리꽃’은 피는 시기가 아닌데 아무 때나 막 핀다고 붙은 이름이고, 막 자란 복숭아는 ‘개복숭아’라고 했다.
개떡은 사카린 단맛으로 먹지, 그 본연의 맛도 별로이고 생긴 것도 아무렇게나 볼품없이 시꺼멓게 생겨, 떡 중에 최하급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얄궂게 생겼다는 말로 “쥐었다 놓은 개떡 같다”, 일이 안 풀릴 때는 "뭐 이런 개떡같이"라고 하였고,
답답한 사람을 보고 "제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등 답답하고 안 풀리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붙이는 말이었다.
“보리 떡에 쌍장고”, “보리떡이 떡이냐 의붓아비가 아비냐”와 같이 격에 맞지 않음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러한 별로 반갑지 않은 ‘개떡’의 이미지에 ‘보리’까지 붙어 춘궁기 보릿고개의 상징 ‘보리 개떡’이 탄생했다.
보리 개떡은 서러운 역사의 산물이었다.
이름마저 억울한 ‘보리 개떡’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일제는 ‘산미 증산 운동’을 전개하며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의 절반 이상을 악랄하게 공출하여 본토와 전쟁 지역에 보급으로 보냈다.
이때 조선의 쌀 포대인 ‘섬’은 바다 습기에 약하고 쌀이 잘 흘러내려 도입한 것이 일본식 쌀 포대 ‘가마니’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가마니 짜기’ 대회를 열면서까지 그 가마니에 조선의 쌀을 담아 군량미로 국외로 빼돌렸다.
그로 인해 조선 사람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제가 농사를 짓고도 제 몫이 없는 ‘풍년기아(豐年飢餓)’를 견뎌야 했다.
만주에서 건너온 좁쌀을 배급받거나, 고구마, 감자, 강냉이, 옥수수 심지어는 콩깻묵, 술지게미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러한 식민지 서러운 수탈의 역사 속에 ‘개떡’이 탄생했다.
당시에는 서로가 민망해서 밥 먹는 시간에는 남의 집이나 친척 집도 방문하지 않았다.
식민지 백성들은 영양실조로 체중이 빠져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얼굴은 허연 마른버짐이 피어나고 빈혈로 핑 도는 어지럼증이 만연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어서 지독한 변비가 생기는 것도 큰 고통이었다.
“밑구녁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
하루 한 끼는 보리밥으로 해결하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 이 보리 개떡으로 끼니를 삼았다.
‘개떡은 ‘등겨 떡’이라고도 하며, 보리등겨, 싸라기, 깻묵, 조, 쑥 등을 재료로 했다.
“낡은, 존위 댁네 보리밥은 잘해”라는 말이 있듯이 형편없는 재료라도 최대한 먹기 좋게 한 것이 개떡이었다.
보리등겨가 많이 들어가면 ‘보리 개떡’,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면 ‘밀 개떡’, 쑥이 들어가면 ‘쑥개떡’이라고 했다.
개떡은 주로 아침밥을 할 때, 보리밥이 한 번 끓어 넘치고 나면 밥 위에 천을 깔고 쪄냈다.
주로 솥에다가 보에 싼 채로 보관을 하는데, 어린아이들은 보에 붙은 부스러기라도 떼어먹는다고 난리가 났다.
가족 일인에 하나씩이다 보니, 할무니가 일일이 숫자를 세어놓아, 하나라도 없어지면 집안에 한바탕 큰 소란이 벌어졌다.
절망감과 수치심 속에, 단지 살기 위해 서럽게 먹었던 음식이 개떡이었다.
그래도 가난하더라도 허기를 견디며, 보리 개떡이나마 서로 나누며 오순도순 정을 쌓고 가족을 일구어 “천생연분에 보리 개떡”이라는 말도 생겼다.
“영감아 영감아 죽지마라
보리방아 품들어서 개떡쪘다
개떡을 쪘지만 작기나 쪘나
서말지 솥에다 솥째로 쪘다”
-경남 의령
반세기 전, ‘꽁보리밥, 보리 개떡’으로 상징되던 세계 최고 가난한 나라,
코리아가 순수 우리 기술로, 세계에서 7번째로 우주를 향해 ‘누리호’ 발사를 성공시켰다.
유년의 서러운 추억을 우주로 날려버린 기분이다.
다음 우주선 이름은 ‘보리호’로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