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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60편 3절.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만큼은 어려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만 어떤 어려움은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해결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여러움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그 어려움을 왜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잘못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그의 적인 요압이 단창으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그가 그런 일을 당한 이유는 아버지를 대항해 쿠테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나 투자나 욕심을 부리다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두 번째 이유는 대적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괜히 누군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경쟁심을 가지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경쟁자로 생각해서 계속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로인해 다윗은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많이 넘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우셔서 그 모든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어려움은 다른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또다른 누군가의 실수로도 장애를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기때 유모가 안고 급하게 도망치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평생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도움을 주게 하셨습니다.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므비보셋은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어려움은 사탄이 주는 시험으로 인해서 옵니다. 욥은 사탄이 주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인생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끝없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그 싸움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못이길 싸움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연재해나 예고치 못한 사고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안했는 데 사고 현장에 있다가 다치거나 고통사고가 나거나 전염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입거나 하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남자가 24층에서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그 아래 길에 지나가던 여자분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로인해 여자분은 그 자리에서 죽고 남자는 중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예고치 못한 일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재난들로 인해 사람은 큰 어려움을 겪에 됩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아내는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부가 계단에서 굴렀는데 심정지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모두가 다 평소처럼 직장에서 가정에서 여기 저기에서 자기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형 역시 직장에서 자기 업무에 충실하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심정지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죽은 사람의 아내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맨붕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극한 어려움을 당하면 사람들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예기치 못한 때에 다가오면서 당황하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고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를 알지 못하는 맨붕에 빠지게 됩니다.
어려운 일은 누구나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람은 그래도 조금은 낫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생겨도 아주 먼 훗날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려움은 지극히 갑작스러운 때에 예기치 못한 난폭한 악마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라고 당황하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지 엄두가 안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집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학교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가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바다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전쟁터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경기 중에 일어날 수도 있고, 버스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산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급격한 바람과 함께 갈릴리 바다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배를 뒤집어 엎을 정도로 강하게 배에 부짖쳤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배에 있는 물건들을 버리고 그 폭풍과 사투를 벌였지만 중과 부적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풍랑이는 바다 위로 걸으셔서 그들 가까이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본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유령이다”하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니 두려워말라”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풍랑이 그치면서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때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오셔서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구원하기에 능하신 예수님께 나아와 구원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일어납니다. 우리 시편 60편 3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이것을 쉬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어려움은 바로 고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을 주십니다. 그 어려움으로 인해 몸에 힘이 빠져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데 마치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비틀거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무 놀라고 극한 어려움으로 인해 수취한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과연 그 때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도움이 되실까요? 그리고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며 여러분들을 모든 극한 어려움에서 구원하실 유일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뿐 이라는 것을 알고 확신하신다면 거기서도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며 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극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여러분들이 그 극한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우리 시편 60편 1-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이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 때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일어나는 분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회복하면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볌죄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한 몸이었지만 분리가 되었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 나라를 분리시키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고 르호보암의 교만이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들의 마음을 산산조각 냅니다. 베냐민지파의 동성연애자들을 두둔하여 싸우던 것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들은 연합하여 베냐민자손들을 공격했습니다. 베냐민의 죄는 스스로 이스라엘로부터 자신들을 나누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거의 멸망을 당할 정도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깨지는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죄를 범하기 때문에 그 가정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게 됩니다. 그 나라가 왜 망합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이 금하신 죄들을 마음에 두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비춰주시는 죄를 회개하면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 죄로 인해 가정과 사회와 각종 모임이나 공동체가 무너지고 휘청거리게 되어, 서로 오해하면서 미워하게 되고, 마음이 산산히 깨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될 때 어떤 사람이 중재자가 되어 서로 화해를 시켜야 하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편에 붙어서 더욱더 미워하게 만들고 분열로 가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향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 그의 곁에는 아히도벨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윗왕의 모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행하는 일에서 무엇이 못마땅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압살롬이 반역을 하려고 할 때 반역을 막은 것이 아니라 반역을 획책했습니다. 그는 모사였기 때문에 머리가 비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의 마음까지도 서로 미워하고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하셨습니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아히도벨은 목메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 반역으로 인해 미움을 불러 일으켜서 백성들로 하여금 서로 죽이고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의인들이 고난을 당합니다. 다윗은 악한 압살롬과 아히도벨리 연합하여 자신을 공격한 쿠테타로 인해 왕궁을 버리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광야로 도망하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진정한 자신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행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한 사랑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혼자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고 예수님은 외로운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듣고 계셨지만 그러나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지 않도록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알아야할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구상하고 계시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시기에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겟세마네에서도 그리고 여러분의 십자가 위에서도 그 어려움 자체를 즐거워할 수는 없어도 그 어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극한 환난 가운데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을 즐거워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심으로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능력이 너무나 카서 사람들은 성경을 사실이 아닌 사람들이 만든 신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지나 많은 고고학자들 가운데 불신 고고학자들은 성경이 사실이 아닌 것을 밝히기 위해 땅을 뒤엎으면서 진실을 찾았고 성경의 사실이 진리라고 믿는 고고학자들은 그 진리임을 밝히기 위해서 성경의 기록을 의지하여 진실을 찾았습니다. 그로인해 속속들이 성경의 내용이 진리라는 것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허황된 이야기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그 역사적인 유물들을 찾아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어도 그런 능력을 행하시지는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신 성령께서는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이 진리라는 것을 여러분 안에서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드러내십니다. 시편 60편 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하나님의 능력이 집중적으로 역사하시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택하신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다윗은 아람군대와 싸우고 있었고 그의 부하 장수인 요압은 에돔 사람들과 소금 골짜기에서 싸웠습니다. 그 때 요압은 에돔 사람 만 이천명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승리한 요압은 다윗에게 나와서 합류를 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한 내용이 바로 오늘의 시편 60편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비록 택하신 자들이 술취한 사람처럼 다리에 힘이 빠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오른손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자신이 택하신 사람들과 일꾼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일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과 일꾼들과 교회를 통해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역사를 택하신 자들이 보며 어떤 것들은 불신자까지도 보게 하십니다. 그로인해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게 되고, 때로는 불신자들도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은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불신자들은 놀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하지만 찬송하거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는 않습니다. 그 점이 매우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면서 감사드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들이 일어나는 것일 것입니다.
세 번째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탄과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특별한 뜻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사탄과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실 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죄와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실 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시편 60편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들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도 역시도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 오셔서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진리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진리의 기둥이며 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의 본분은 세상이 변해도 진리를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귀와 세상과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진리를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며 성령은 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러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극한 어려움 가운에 있는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움을 통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대적들을 치는 것입니다. 6-10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승리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갖게 됩니다. 그 믿음이 확실하면 대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적들과 싸울 때도, 또 마귀와 싸움을 할 때도 여러분은 영적싸움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 싸움의 대상인 마귀와 마귀의 쓰임을 받는 대적들을 치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도우시기 때문에 질 것같은 싸움도 이기게 되고 질 수밖에 없는 싸움도 역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승리하는 싸움을 싸울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60편 11-12절을 보면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용감하게 앞서 나가 싸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때가 오면 뒤로 물러갑니다. 뒤로 물러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0장 38-39절을 보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지 않고 아무리 강한 적이 앞을 가로 막아도 전진하게 되고 맞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하는 성도와 교회에 하나님은 승리와 더불어 많은 복을 주십니다. 또한 그 믿음을 통해 영혼 구원함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요즘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여러분들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크신 섭리 안에서 복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즐거워하십시오. 비록 어려움이 여러분들의 영혼까지 삼키려고 큰 입을 벌리고 달려와 도저히 피할 곳이 없을지라도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며 큰 승리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이 즐거움의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