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이며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쪽에서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용서를 받았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할 때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나님의 진리가 더 쉽게 이해됩니다. 그러한 시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타인을 용서할 때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용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까 안 할 수는 없고, 정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간신히 용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했다고 해도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 보니, 하나님께서도 그러실 거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참, 신기한 부분이지요? 인간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가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러실 거로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가정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십니다(사 55:8-9). 하나님께서 우릴 용서하시는 것은 용서하기 위해서 용서하시는 것도 아니고, 마지못해 억지로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요 3:16), 그러니까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는 것입니다(요 17:3). 그런데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화해해야 하고, 화해를 위해선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꺼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값)인 십자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온 천지 만물 중에 가장 귀하신 예수님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뭔가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겠지요. 용서하신 이유도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기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롬 5:8).
즉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우리와 너무나도 교제하기 원하셔서 우리를 기꺼이 용서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용서를 기꺼이 받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는 그렇지 않죠. '저 인간, 양심도 없네. 용서해 줬더니 자기가 잘못한 걸 다 잊어버렸나?' 그러나 하나님은우리가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는 그 의도가 다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각에서 용서를 바라봐야 하나님의 용서를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가 너무 큰 죄를 지어서 이러이러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벌을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과 "퉁" 칠 수 있다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각이고, 세상엔 크고 작은 죄가 있긴 하지만 율법은 통유리처럼 하나입니다. 조금 금이 가나, 완전히 박살 나나, 다시 갈아 끼워야 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들끼리는 거짓말을 한 것과 간통을 저지른 것은 다르게 여겨야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마땅히 다르게 다뤄져야 하고요. 그러나 하나님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가 개미를 볼 때, 이 개미나 저 개미나 오십 보, 백 보이듯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보실 때도 그렇습니다. 내가 직접 벌을 받아, 하나님과 퉁 칠 수 있는 죄는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었겠지요. 우리 각자가 벌을 받아서 퉁 치면 되니까요.
제가 이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해 보기 위해 제가 제일 예뻐하는 제 조카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는 다 커서 자주 만날 수도 없는 아이인데, 저는 지금도 항상 제 조카가 보고 싶고 그 아이와 교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에게 뭔가를 잘못해서 나를 멀리한다면 저는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또 제가 그 아이를 용서해 주려는 이유는 그 아이의 마음에 다시 평강이 찾아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에게 나아올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 용서해야 하니까 용서할 목적으로 억지로 용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마, 저는 상대가 내 아들이 아니라 조카라서 더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은 미울 때가 있잖아요? 저는 제 조카가 미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용서의 극치는 십자가상에서 선포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저의 영혼에 엄청난 평안을 가져다주신 말씀이며, 이렇게 정의가 말살되고,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우리의 시선을 돌려 큰 그림을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뿐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자와 지옥으로 가는 자.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땅의 삶, 연기처럼 짧은 이 세상을 살면서 그 어떤 악독한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게 큰 그림을 보면 하나님께 용서 받는 것도 한층 쉬워지고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것도 한층 쉬워집니다. 무엇보다 천국으로 가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지옥으로 가고 있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거나 미워한다는 것은 실상,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지옥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나에게 한 짓만 생각하니 밉고 용서가 안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의 크기를 내 생각으로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큰 그림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면 이 세상도, 우리 인생도, 우리의 신앙생활도 엄청나게 간단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