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40/킬리만자로의 표범]눈물 반, 웃음 반
8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양인자'라는 작사가를 아시리라. 가왕 조용필과 이선희 노래 작사를 도맡았다 할 수 있는, 그 시절 대중가요의 품격을 격상시켰다. 혹자는 작가의 삶과 사랑(남편인 작곡가 김희갑과 환상의 짝궁이었다)을 바탕으로 한 정선된 문학적 감수성이 우리를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드라마 작가의 대모 김수현과 방송입문 동기였다고 한다.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과 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김국환의 <타타타〉,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혜은이의 <열정〉, 남진의 <나야 나〉,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놓치기 쉬운 인생의 서사에 철학을 담금질하여 낭만의 당의정을 입혀놓은 달콤쌉싸름한 언어’의 달인이었기에 판판이 히트곡을 양산해냈을 터.
소설가이기도 한 그녀는 영원한 문학소녀였던 듯.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랫말은 원래 문단의 등용문인 신춘문예 당선에 대비한 소감으로 대학 1학년때 일기장에 써놓은 메모에 살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가 이 긴 노래를 사랑하는 까닭은, 주어진 운명인 고독과 사랑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견뎌가는 한 남자의 의지 속에서 ‘그래, 아참,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라는 예술가도 있었지’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의 에너지를 받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방에서 정지용의 ‘향수’와 함께 애창곡이면서도 너무 길고 부르기가 어려워(조용필조차 외우지 못해 노랫말을 보면서 녹음을 했다던가) 모두 다 ‘싫어하는’ 이 노래를 다 부르고나면 저절로 나오는 후렴구가 “내 청춘에 건배!”였다. 뭔가 후련하면서도 쓸쓸한 고독과 사랑으로 점철된 이 유행가는 어쩌면 가왕 조용필의 삶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내뱉는 독백일 듯하다.
이 절묘한 노래를 돌에 새긴 ‘천상천하유아독존’ 전각서예인의 걸작품을 어제 인사동갤러리에서 구입했다. 50년 가까이 순전히 스승이 없이 독학자습으로 ‘돌에 꽃을 피우는’ 작업에만 몰두, 이제는 어떤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경지’가 이르렀다고 소문이 나있는 예술인이지만(2021년 전북세계서예비엔날레 그랑프리 수상), 그것과 상관없이 작품을 보는 순간, 이것만큼은 연수입이 오백만원도 안되는 농사꾼일지라도 오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삶의 터전을 잡은 ‘장한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도, 권투, 철인 3종경기 등 ‘strong is beautiful’이 신념인 아들인데도 잔정이 너무 많아 수 년째 외국생활에 향수병鄕愁病이 심한 모양이다. 출근하다 도로의 영어 표지판만 보아도 하루종일 기분이 저기압이라니 문제가 아닌가. 제 예쁜 색시가 있는데도 힘들다는 말을 제 엄마에게 해댄다는 말을 여러 번 듣고 애비로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달말 4년만에 한 달간 귀국, 체류하는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선물인 듯했다.전라고6회 동창회 | [문화야 놀자]천상천하유아독존, 전각예술인 진공재 - Daum 카페
아들아,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를 아느냐? 이 새벽 같이 한번 읊어보자.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아들아, 쪽팔리지만 솔직히 고백하마. “울지 마라”고 너에게 부탁하는 애비는 이러면서도 시도때도 없이 노상 운다. 말 그대로 ‘울보’다. 늙으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울고, 네 엄마 생각하면서도 운다. 또한 네 형네 가족과 너희를 생각하면서도 매급시 울 때가 많다. 피붙이인 애비 형제들을, 친구들을 생각하면서도 왜 울지 않겠느냐? 이율배반적인가? 아니다. ‘국민석학’ 이어령 박사도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 사진을 보며 통곡을 하는 등, 자주자주 한 방울씩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책으로 읽었다. 눈물은 감정의 사치인가? 아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고 단언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눈물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세상은 대체 그 얼마나 삭막하단 말이냐? 나는 종종 흘리는 눈물이 창피하거나 감추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눈물이 없는 세상은 싫다. 1983년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눈물바다, 눈물이 홍수를 이뤄 여의도 바닥을 흠뻑 적신 적이 있었단다. 남들의 일인데다 실컷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 전세계 방송사상 유례없는 기획물이었다. 오죽했으면 유네스코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모든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을까. 그러다 가끔 정호승의 시 한 편을 읽고, 조용필의 표범 노래를 한번씩 불러제킨다.
그러면 된다. 카타르시스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울어라 그리고 또 울지 마라.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나를 벗삼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우아吾友我’-나는 나를 벗삼는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절인 영정조때 이덕무라는 학자의 자호自號가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였다. 영문과를 나온 애비가 ‘I friend me’라고 하니까, 영어 잘 하는 친구가 ‘I befriend me’로 해야 맞을 것같다고 하더라.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9/오우아吾友我]나는 나를 벗삼는다 - Daum 카페 눈물은 자산이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