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5-01-06 21:33 조회 : 1771 |
| | | 드라마 ≪미생未生≫에서 길 찾기 방법으로서 형제애兄弟愛
이방주(수필가, 문학평론가)
요즘 젊은 세대를 미생세대未生世代라고 한다. 바둑에서 주로 쓰이는 미생未生이란 말은 집이나 대마가 아직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석死石과는 달리 완생完生을 꿈꿀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삶에서나 바둑에서나 완생을 이루려면 완생에 이르는 ‘길 찾기’를 해야 한다. 현실적 삶에서 완생을 이룬다는 것은 그렇게 수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욕구 보전을 위해서 문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학을 하나의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한다면 희곡이라는 문학을 행동 예술로 현실화한 드라마 ≪미생≫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이고 그 해결 방법은 어떤 것일까?
《미생未生 Incomplete Life》은 2014년 10월 17일부터 12월 20일까지 tvN에서 20회로 방영된 금토드라마이다. 2012년 1월 17일부터 2013년 8월 13일까지 다음Daum에서 연재한 웹툰을 각색해 제작한 드라마이며 업데이트된 'TV 손자병법'이라고도 부른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오늘날 미생세대의 갈등과 고민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관심을 표현한다. 이러한 분석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비롯한 서사문학에서 문제만 제시하고 해결방법은 수수께끼로 남겨 두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드라마를 초저녁 흥밋거리로만 생각한 것이고 그래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드라마 ≪미생≫은 그냥 저녁 식사 후의 흥밋거리로만 보고 말기에는 현대 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면 ≪미생≫의 어떤 점이 한창 바쁜 시간에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 놓았을까?
잘나가는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미생세대의 아픔을 위로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이 정도의 고루한 위로를 받아 편안해질 단계는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면 청춘에 겪은 아픔만큼 보전할 화려한 미래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청춘들의 미래는 안개인지 황사인지 가늠할 길 없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한다. 그러더니 그것도 모자라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라고 한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쓰 노리토시는 <절망한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저서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를 받으며 희망을 가지고 길을 찾을 때보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것은 현대의 젊은이들의 미래를 아주 절망적인 것으로 말해버린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준비할 필요조차 없으니 현재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고 행복이 아니라 타락이다. 그래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무책임한 말보다는 젊은이들의 아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소득 3만 불을 바라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길 찾기를 일러주는 진정한 멘토mentor는 누구일까? 드라마 《미생未生》에서 제시한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가 미생세대의 고민과 갈등이라면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글에서는 드라마 《미생》이 제시한 ‘형제애兄弟愛’ 또는 ‘우애友愛’라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인간관계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모두冒頭에서 밝힌 대로 드라마 《미생》에서 다룬 삶의 문제는 미생세대의 고민이다. 문제의 원인을 간단히 짚어보면 가진 자들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 경제 권력을 가진 자, 지적 권력을 가진자들의 항간에서 말하는 ‘갑질’ 앞에서 못 가진 자 즉 정치적, 경제적 지적 빈곤층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주, 임원, 부장, 입사 선배로 서열화된 이른바 ‘갑’들에 의해서 위에서 받은 핍박을 아래로 갚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러한 갑의 횡포는 도덕이나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 있다는 착각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무기력한 '을'의 분노는 배가된다. 일상에 쫓기며 바쁘다고 아우성치는 와중에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에 그 답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긴 다만 문제만 제시하고 마는 드라마에 누가 빠져들겠는가? 거기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기에 시청자들의 기대가 더 컸을지도 모를 일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특성은 동시성, 대량 전달의 가능성, 박진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건이나 주제의 보편성을 들 수 있다. 즉 텔레비전 드라마는 인간 생활의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제가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재벌의 아들, 그의 출생 비밀, 불륜, 미혼모, 겹사돈 등 좋은 말로 하면 전위적인 사회 모습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패륜과 부도덕으로 사회의 파격적인 모습이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제로는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아니 도리어 시청자들은 이러한 소재에 신물이 나 있다.
이에 비하여 드라마 《미생》은 재벌도 등장하지 않고 불륜도 남녀 사원간의 사랑의 삼각관계도 없이 수요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룬 드라마답게 도중하차하는 배우도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사람에 서사가 집중되는 스타도 없다. 주인공과 함께 모든 인물이 살아서 끝까지 간다. 더구나 배역을 맡은 배우들도 잘나가는 배우가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비정규직급의 배우들이다. 그래서 은연중에 독자는 감동한다. 비정규직급의 배우들이라도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여줄 때 시청자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보편적인 관계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작가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수필적 정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자연에서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인생의 섭리를 배우고자 하고, 일상에서는 서사구조의 흥미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따뜻한 정을 찾으려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수필적 정서라고 말한 이유는 한국의 수필문학의 전통적인 소재와 주제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략 이와 같이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은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지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생》의 주인공은 고졸 계약직 신입사원 ‘장그래’이다. 그의 이름은 흔히 현재 상황을 묻는 인사에 대답으로 '장 그려'하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현재를 긍정하는 듯, 미래를 부정하는 듯한 이름을 가진 ‘장그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른바 낙하산 인턴사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장그래가 프로바둑 입단에 실패한 후 그의 바둑 후견인의 소개로 원인터내셔널이라는 상사에 취업한다. 바둑을 공부하느라 정규 교육 받을 기회를 놓친 주인공은 고등학교까지 검정으로 마쳤다. 남들처럼 화려한 학력도 스펙도 인맥도 없다. 그래서 더욱 막막한 현실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주인공 ‘장그래’에 의미 있게 연결되는 주변 인물의 관계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인물간의 관계를 수학적 함수관계로 분석할 수 있는데, 주인공 ‘장그래’를 좌표축원점座標軸原點으로 하여 관계 양상에 따라 세로축과 가로축을 이루어 좌표축座標軸을 형성한다. 좌표축원점인 장그래로부터 세로축에는 그 수직적 거리에 따라 김동식 대리, 천관웅 과장, 오상식 차장으로 영업 3팀을 구성한다. 물론 오상식 차장의 상위 계급으로 부장과 전무가 있고 사장이 있지만 장그래에게 미치는 인간적 영향은 크지 않다. 한편 장그래에게 가로축에는 동료인 신입사원들이 포진한다. 물론 처지는 계약직인 장그래와 달리 모두 인턴을 거쳐 채용된 정규직이지만 인간적 동료의식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을 장그래와 인간적 거리감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여사원 안영이(자원2팀) 한석율(섬유1팀) 장백희(철강1팀)로 정리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 각자를 좌표축원점으로 삼는다면 모두 세로축과 가로축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물간의 관계 설정이 복합적이고 조직적이다. 예를 들면 오상식 차장의 가로축에는 그의 동기인 고 과장과 여성인 선지영 차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긍정적인 동료애적 관계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업본부 부장과 최 전무, 사장이 있다. 이들은 갈등관계에 있다. 또한 한석율에게는 세로축에 성준식 대리가 있다. 이들의 관계는 심한 갈등관계로 애증관계에서 형제애 관계로 발전하는 장그래의 세로축과 대조된다. 장그래를 좌표축원점으로 한 좌표평면에는 많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사실적으로 현장감 있게 구성된 원인터내셔널 사무실을 마치 보이지 않는 좌표평면처럼 관계의 라인을 그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모두의 가로축과 세로축이 존재하지만 이 글의 목적상 의미 있는 몇 개의 관계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좌표축원점 장그래를 기준으로 세로축을 살펴보자. 장그래는 26세의 바둑 영재로 가난하고 스펙도 학력도 없는 인턴사원이다. 2년 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회사를 떠나야 하는 운명이다. 쉽게 말하면 일회용 소모품이다. 세로축으로 연결된 인물이든 가로축으로 연결된 인물이든 누구도 장그래에게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인물은 없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다가 낙하산으로 입사했기에 초회에서는 모두가 그를 경멸하고 외면한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하게 되고 또 그의 정규직에 대한 절실한 소망을 이해하게 된다.
김동식 대리는 지방대학 출신으로 초회에서 장그래를 경멸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경멸은 동조와 협력관계로 발전하여 장그래의 사수師受가 된다. 회사의 업무와 처신에 대하여 절대 무지 무능한 장그래에게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사내 정치 싸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일에 무한 책임을 지면서 일밖에 몰라 여성들에게 가장 매력 없는 청년이다. 정치적 사원이 아니라 업무적 사원이다. 현실사회에서도 그렇듯이 이런 사원은 승진에서 제외되는 딱한 인물이다. 그는 장그래에게 업무와 현실적 처신 방법에 대한 안내자이지만 장그래에게 인간의 진실을 배운다. 그는 장그래에게 업무를 안내하고, 장그래는 바둑의 원리를 삶의 원리에 적용하여 그에게 조언한다. 인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계산하고 있을 때,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삶에서 인간관계의 진실한 의미를 장그래로부터 배운다.
천관웅 과장은 전무의 줄을 타고 있는 기회주의자로 평가할 수 있지만 장그래의 라인에 들어와서 회차를 거듭할수록 형제애에 젖어들게 된다. 최전무가 평가할 때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장그래를 일회용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오상식은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는데 일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아니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일에 매달리며 사는 사람이다. 그는 장그래에게 맏형이나 마찬가지이다. 초회에서는 무능한 천덕꾸러기인 장그래의 자기 팀 배속을 기분나빠하고 천시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동료애를 넘어선 형제가 되고 동지가 된다. 결국은 장그래의 외골수 처신으로 회사를 떠나지만 자신의 무역회사를 창립하고 이 회사에 장그래와 김동식이 합류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오상식 차장에게 의미 있는 가로축이 있다. 바로 동기인 고 과장과 여성인 선지영 차장이다. 고 과장은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동료애의 대상이다. 여성인 선 차장은 오 차장에게 진실한 동료이며 맨토이다. 오 차장은 선 차장이 일하는 주부로서 육아와 가사의 고통을 이해하고 힘이 되어 준다. 선 차장이 과로로 쓰러졌을 때 장그래를 원점으로 하는 신입사원을 동원하여 그의 일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동료애의 꽃을 피운다.
권력도 없고 일은 많아 힘만 드는 영업 3팀이라는 극적 공간에는 장그래를 원점으로 김동식 대리, 천관웅 과장, 오상식 차장이 있다. 이들은 후반부로 가면서 상하 관계라는 단순한 관계로 끝나지 않는다. 윗사람만이 아랫사람에게 깨우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도 윗사람에게 본질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과 따뜻한 인정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고 이루어간다. 뿐만 아니라 조직의 이익과 실적을 쌓기도 한다. 여기에 현실에서 보기 드문 긍정적인 형제애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제애가 현대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시사점을 안겨준다.
다음에 장그래를 좌표축원점으로 한 가로축을 살펴보자. 먼저 자원2팀의 안영이가 떠오른다. 안영이는 스펙 최고, 업무능력 최고의 여성 사원이다. 다시 말하면 못나고 시원찮은 남성 세계에 뛰어든 잘난 여자이다. 회사를 옮겨오기는 했지만 인턴부터 시작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까지 거머쥔 능력 있는 여성이다. 장그래는 그에게 무관심의 대상이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동정으로 시작하여 형제애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동지애 형제애를 넘어선 로맨스는 없다. 말하자면 서로를 성적 교제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안영이의 세로축을 검토해볼 필요를 느낀다. 안영이에게는 여자들에게 고약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하 대리와 매우 불량한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마 부장이 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어 안영이의 속앓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안영이에게는 또 하나의 세로축이 있다. 바로 같은 여성인 선지영 차장이다. 직장 내에서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과 성희롱에 대해 가로막이가 되어 주고 함께 저항해 주는 힘센 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관계도 형제애로 풀이할 수 있다. 이들도 모두 장그래를 원점으로 하는 좌표평면 위에 존재한다.
장그래의 원점으로부터 안영이 다음 거리에는 한석율이 있다. 한석율을 현실주의자라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발로 뛰는 이상주의자이다. 노동의 현장을 중시하는 인도주의자이기도 하다. 한석율은 장그래, 안영이, 장백희로 이어지는 가로축의 윤활유이다. 인물들 간의 문제를 들추어내고 자신과 상관없는 그 문제 해결에 고심한다. 한석율의 가로축으로서의 역할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의 세로축에 성준식 대리가 존재한다. 성준식 대리는 모든 신입사원에게 부정적인 인물이다. 그는 '후배는 일회용으로 이용하고 버리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는 후배의 실적은 가로채고 책임은 후배에게 떠넘긴다. 윗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아첨하고 아랫사람은 괴롭힌다. 그는 업무상으로 부정도 저지르고 거래처인 타 회사 여직원과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한석율에게 존재하는 세로축은 장그래의 세로축과 대조되어 장그래의 세로축에 존재하는 형제애를 돋보이게 한다.
상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입사원 중에 철강 1팀에 장백희가 있다. 대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는 신입사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잘 나가는 신입사원이지만 여성에게는 자신의 두툼한 스펙만을 자랑하는 천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초회에서는 자신의 스펙을 믿고 장그래를 무시하고 동정하지만 결국 동료애에 합류한다.
이 드라마에는 신입사원과 총각 대리라는 젊은 남성들과 젊은 여성이 존재한다. 시청자들은 장그래를 비롯한 다른 남성들과 잘나가는 미모의 여사원 안영이의 사이가 성적 사랑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지만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다만 형제간의 우애와 같은 협조와 의리만 존재할 뿐이다. 회사와 같은 어떤 조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남녀 인물 사이에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것은 드라마의 극적분위기를 조성하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단초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는 본래의 사건보다 복잡한 러브라인에 치중하여 결국은 치졸한 주제로 빗나가거나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미생》에서는 이런 러브라인도 치졸함도 찾아볼 수 없고 본래의 갈등과 고민을 다루고 있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 재미를 더한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우애友愛라고 하면 ‘형제 사이의 정과 사랑’을 의미한다. 이 말이 의미가 확장되어 친구 사이나 가까운 사람 사이의 정과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여러 형제 사이에서 형과 아우 사이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과 사랑도 존재했었다. 이것은 대가족 제도에서 사촌형제 사이에도 있고, 집을 벗어나 서당에 가면 선후배 사이에서도 있다. 형제애로서 사회가 발전하고 학문의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 우리의 미풍이고 양속이다. 이러한 형제애는 믿음을 중시하는 친구 사이에도 존재한다. 친구 사이에 붕우유신朋友有信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깨우침도 있다. 이러한 개념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남성과 동일하게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남녀사이에도 적용되는 의미로 확산되었다. 그래서 이미 직업사회에서 남녀 관계를 불문한 형제애로서 우애와 업무를 함께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는 20세기 말에 들어서 한국의 형제애란 개념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브로맨스bromance를 말하는데 형제를 뜻하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조합하여 만든 합성어이다. 처음에는 우리 전통사회의 형제애처럼 로맨틱한 동성끼리의 진한 우정을 뜻하다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진한 우정까지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다만 인간적 우애와 동료관계로 생각할 뿐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온 형제애兄弟愛애라는 개념보다 최근의 드라마에서는 브로맨스bromance라는 개념으로 더 많이 수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미생세대의 고민과 갈등을 해결한 것은 바로 이 형제애라는 개념이다. 좌표축원점座標軸原點인 장그래를 중심으로 한 가로축과 세로축의 등장인물들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장그래에게 형제애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형제애는 여성인 안영이도 포함된다. 전반부에서 장그래의 갈등과 고민은 그를 원점으로 한 세로축과 가로축에 서서히 전이되어 공동의 소망이 된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가면 안영이를 중심으로 한 세로축은 물론 사무실내의 모든 사람의 소망으로 발전하여 보편화된다. 이때 시청자들도 형제애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장그래의 소망이 시청자의 소망으로 발전한다. 오상식 차장이 회사를 떠나고 강력한 배후 혹은 맨토를 잃은 장그래에게 여성인 선지영 차장이 장그래의 정규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무산되었을 때 사무실 분위기는 숙연해진다. 장그래를 원점으로 한 좌표평면 위에 좌절감이 내려앉은 것이다. 말하자면 장그래를 원점으로 한 좌표평면은 전반부에서 갈등과 경멸의 공간이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우애와 사랑의 공동운명체가 된다. 이때 시청자들의 가슴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갑중의 갑인 재벌 사용자인 시청자들의 가슴도 찡했을 것이다.
한편 장그래의 세로축과 대조되는 한석율의 세로축인 성준식 대리의 횡포에 대한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성 대리의 부정을 발견한 한석율은 고발을 고민하다가 결국 의리로 그만둔다. 한석율에게는 간악할 정도로 갑질을 해대는 성 대리를 향해서도 형제애가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대신해서 제3의 인물인 불륜대상 여성의 남편이 나타나 성 대리에게 참혹할 정도로 후련하게 보복을 한다. 여기서 장그래의 가로축인 신입사원들만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청자가 다 후련했을 것이다.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장면도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다소 만화적이고 작위적이라고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미생세대의 길 찾기’ 라고 본다면, 이 장면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회사를 나와 오상식 차장이 창업한 무역회사에 재취업한 장그래와 김동식은 새로운 형제애를 실현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결국 살림과 살이의 길을 찾는 것이다. 오 차장과 장그래가 비록 대기업에서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세계인 중동의 황량한 사막에서 '길 찾기'에 나서는 의기양양한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영화나 연극에 비해 수많은 계층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요자는 세대, 학력, 가치관 등 그 양적 질적 차이를 가늠할 수 없다. 이들의 수요나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각본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공동의 문제를 발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결 방법 또한 이들이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미생》이 최근 한국 사회 젊은이들의 갈등과 고민을 문제로 선택하고, 형제애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해결방법으로 삼은 것은 텔레비전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가치 구현에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드러나는 문제를 제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드라마 《미생》의 시사점을 사회에서 수용하여 보다 활기차고 희망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면 좋겠다. 기업가들은 젊은이들의 목마른 소망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무책임한 말로만 젊은이들을 위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득 수준에 맞추어 젊은이들의 삶의 행복을 걱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텔레비전 드라마가 갖는 사회적 역할을 바로 이행하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2015. 1. 5.) |
| 김권섭 | 15-01-07 09:17 |  | 이방주선생님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갖는 사회적 역할의 중요점에 적극 지지합니다. 저녁이나 아침드라마나 사회적 정화를 위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선정적이고 불륜적인 내용을 너무 쏟아내 철없는 여인들이 이혼을 밥먹듯이 요구하는 세태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평론 잘 읽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 |
| | 이방주 | 15-01-07 16:19 |  | 김권선 선생님 저는 드라마 미생을 처음에 보지 못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하도 좋다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몇 번을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형제애를 발견하고 정말 놀랐습니다.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 |
| | 임재문 | 15-01-07 21:56 |  | 저도 요즘 드라마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방사수 재방사수를 거듭하며 그렇게 드라마에 몰두해 있습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생을 재방송으로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 |
| | 이방주 | 15-01-08 06:06 |  | 임재문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나치게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을 것은 없겠지만 의미 있는 작품에 몰두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십시오. | |
| | 임병식 | 15-01-08 08:51 |  | 드라마 <미생>에 대해 사회문화적측면에서 심층분석한 글 잘 읽었습니다. 미생하면 잘 가슴에 와닿지 않는데 앞날이 물안한 청년세대를 빗댄것이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은 살아있지 못하는, 그래서 앞날이 매우 불안한채 살아가는 세대를 생각하게 합니다. 긴 글 만큼이나 여러번 읽어야 할것 같습니다. 글 감상에 앞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심을 축하합니다. | |
| | 이방주 | 15-01-08 19:48 |  | 임병식 선생님 길고 재미 없는 글을 참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오늘날 젊은이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전통적인 형제애로 해결하려는 방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 |
| | 류인혜 | 15-01-08 10:12 |  | 이방주 선생님 드라마 <미생>에 대한 평론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의 정서를 형제애로 풀어 놓은 솜씨가 신선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아픈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아직 철이 덜 든것 같아서요. 잘 나가는 기성세대가 아닌 탓인지도 모르지요. 내용 중에 구체적인 에피소드 하나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자세히 읽고 싶어서 복사해서 글씨 크게 인쇄해서 읽었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 |
| | 이방주 | 15-01-08 19:50 |  | 류인혜선생님 복사까지 하셔서 읽으셨다니 더욱 감사합니다. 그리고 형제애에 대해 공감해 주셔서 기쁩니다. 에피소드를 예로 들려고 했는데 드라마의 일부를 예로 드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말았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연구하겠습니다. 부족한 점 지적해 주셔서 감사하고 더 공부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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