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노래가 K 팝이라고 알고 있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옛노래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태평가입니다. 물론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는 당연히 아리랑이지요. 태평가는 정말 태평성대에만 불렀을까요. 나라 잃은 이땅에서 무엇이 그렇게 좋다고 태평가를 불렀겠습니까. 그냥 답답하니까 은유적으로 아니 비꼬면서 불렀겠지요. 태평가는 이름 그대로 태평성대를 누려 좋다는 말 아닙니까. 하지만 그 가사를 들여다 보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태평성대는 우리 민족에게 있기나 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담긴 노래로 여겨집니다.
태평가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이른바 신민요입니다. 처음에는 태평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강남월이 작사하고 정사인이 작곡했으며 일제 강점기 신민요의 여왕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기생출신 민요가수 선우일선이 불러 빅히트를 쳤던 곡입니다. 여기서 들려드리고 싶지만 저작권 위반으로 허락치 않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노래는 민요이기는 하지만 서양 음악 공부를 한 작곡가 정사인이 만든 곡인만큼 왈츠풍이며 우리 전통의 굿거리 장단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보세. 개나리 진달화 만발해도 매란국죽 못하느니 사군자 절개를 몰라주니 이보다 큰 설움이 또 있을까.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온다 공수래 공수거하니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라.(중략)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니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이 노래가 어떻습니까.즐거우십니까. 우리의 옛 선생자(先生者)들은 이런 방식으로 일제 강점기의 아픔과 괴로움과 피곤함을 표현했을 것입니다. 제목 자체가 태평성대에 불러보고 싶은 노래가 바로 태평가 아닙니까. 태평성대때 백성들은 왕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야말로 태평스런 그런 세월을 보내는 것 아닙니까. 봄이면 씨앗뿌리고 여름이면 열매가 맺히고 가을이면 추수하고 겨울이면 일년을 되돌아 보고 내년을 준비하는 그런 시간이 바로 태평성대 아닙니까.
요순시대에 왕이 지방 암행 순찰에 나서 어느 촌부에게 물었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노래를 부르며 농사를 지으니 즐거운 것 같은데 당신 나라의 왕이 누구신지 아시요...그랬더니 촌부가 말했답니다. 내가 알바 아니요 그는 그의 일을 잘하면 되고 나같은 촌부는 농사를 잘 지으면 되지 안그렇소...왕은 너무도 흐뭇했다지요. 요즘은 나라님이 요상하게 백성들의 손가락이 필요하면 등장해 이런 저런 말과 행동도 자주 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찾을 때 그때뿐인 시대보다는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백성의 배를 부르게 하고 물가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등을 따뜻하게 연료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참으로 좋은 태평성대 아닌가요.
조선시대 이후 한반도 백성들은 참 어렵게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침략으로 나랏님은 여러번이나 도망가고 백성들은 왜적과 청군에 도륙당했습니다. 청으로 끌려가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참담한 세월 보내고 겨우겨우 돌아왔더니 이제는 고향의 이웃들이 환향녀라며 돌맹이질을 하는 나라 아닙니까. 그러다 결국 일제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정말 이 나라에 사는 백성들은 편한 날이 그리고 태평성대를 누려본 적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노래라도 한번 불러보고 싶은 것이 바로 이 태평가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아마도 우리의 옛시절 백성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평가라는 노래로 스스로 위안하고 피곤한 세월의 흐름을 이어간 것이라 판단합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나서는 태평성대가 왔습니까. 이번엔 민주주의 공산주의 양쪽에 끼여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나라가 바로 이 한반도입니다. 도대체 유래도 알 수없는 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파묻혀 밤에는 이 동네가 낮에는 저 동네가 몰살당하는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민족 상잔을 펼친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전쟁후에는 또 어떻습니까. 북한은 김일성 일파의 강압 독재 시스템이, 남한에는 이승만 독재가 백성을 피폐하게 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의 꽃이 피지도 못하고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가 한국을 지배한 것 아닙니까.
그 다음은 또 어떤가요. 조금 잠시 봄도 찾아오기도 했지만 또 다시 꽃샘추위속에 백성들은 다시 움츠려들었습니다. 급기야 촛불혁명으로 나라를 바꿔 이제야 태평가를 부르는가 했지만 또 다시 역사의 속절없는 되풀이에 휩쓸려 원위치되어 버렸습니다. 나라의 경제는 세계 13위라고 하고 피부로 느끼지도 못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백성들은 결코 태평가를 부르지는 못합니다. 태평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민주주의 지수는 곧두박치고 초저출산에 초고령화속에 이제는 최고의 권력과 최고의 직업군들이 서로 영역싸움을 하는 와중에 백성들의 마음은 정말 갈 곳을 잃습니다.
이제 할수없이 이 나라 백성들은 많이 잊혀졌던 그 민요 태평가를 다시 꺼집어내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그 힘든 세월을 견디게 했던 바로 그 노래를 지금 다시 부르고 싶은 것입니다. 이 나라에 태어난 사람은 스스로 살아야 하지 나라의 리더들이 결코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각자도생이 이제 생활화되었습니다. 그 각자도생의 마음으로 태평가를 다시 불러 봅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보세. 개나리 진달화 만발해도 매란국죽 못하느니 사군자 절개를 몰라주니 이보다 큰 설움이 또 있을까.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온다 공수래 공수거하니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라.(중략)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니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2024년 3월 2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