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제자 3명…난 운좋은 사나이"
모두 성실 - 노력파…열심히 해줘 너무 고마워
허/세/환 광주일고 감독 인터뷰
`right CHOIce!'
최희섭(24)을 믿은 더스티 베이커 감독(시카고 커브스)의 선택은 옳았다. 베이커 감독이 고마워해야 할 인물이 있다. 오늘의 최희섭을 길러낸 광주일고 허세환 감독(42)이 주인공. 허감독은 서재응(26ㆍ뉴욕 메츠), 김병현(24ㆍ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최희섭(24ㆍ시카고 커브스) 등 광주일고 출신의 메이저리그 트리오를 키워냈다.
95년에는 서재응(당시 3학년), 김병현(2학년), 최희섭(1학년)이 함께 뛰며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난 13일 광주일고 운동장 한켠 벤치에서 허세환 감독을 만났다.
◇김병헌 ◇최희섭 ◇서재응
-제자들이 지금도 연락하는가.
▶물론이다. 모두들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 국제전화를 걸어왔고, 지난 겨울에는 병현이와 재응이가 우리 학교에서 두달간 함께 훈련했다. 희섭이는 작년 12월 중순 일구회(광주일고 출신 야구인 모임)때 찾아와 인사했다. 아이들은 "오늘이 있기까지 선생님의 은혜를 안 잊고 있다"고들 했다.
-3명의 고교 생활을 소개해달라.
▶고교 야구부에서 선후배 관계는 엄격하다. 막내인 희섭이는 2년 선배인 재응이를 어려워 했다. 반면 맞고참인 병현이를 편하게 생각했었다. 맏형 재응이는 학교 근처 시장에서 통닭을 사다가 후배들에게 주곤 했다. 지금도 서로 연락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안다. 학교때 안친했으면 지금 연락하겠는가.
-제자들끼리 맞대결을 할 때면 누구를 응원하는가.
▶재학생때 병현이와 희섭이가 연습경기서 맞붙으면 막상막하였다. 미국에서 서로 맞붙는다면 그 시점에서 성적이 안 좋은 녀석이 이겼으면 좋겠다.(웃음) 사실 텔레비전 중계를 보다가도 불안해서 채널을 돌렸다가 다시 틀곤 한다.
-2001년 월드시리즈때 김병현이 홈런을 두들겨맞는 모습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의외로 담담해졌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서 크려면 오히려 아픔과 고통을 일찍 겪는 게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3명의 공통점이 있다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 모두 주장을 맡았었다. 서재응이 가장 덜렁덜렁대고 병현이는 꼼꼼하다. 희섭이는 딱 중간이고 융통성이 있다.
-3명 중에선 서재응이 마이너리그서 가장 고생했다는 평가인데.
▶재응이는 원래 3루수 출신이다. 피칭폼이 예뻐서 투수로 발탁했다.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외국 책자에서 놀란 라이언의 투구폼을 응용해 가르치곤 했다. 변화구 보다는 강속구 위주의 정통파로 키우려 했다. 센스가 있는 선수다.
-김병현은 고교 시절에도 잠을 많이 잤는가.
▶병현이는 많이 잤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몰래몰래 숨어서 잤나 보다.(웃음) 잠 때문에 훈련에 늦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섬세하고 처음 만나면 쑥스러워 하는 편이다. 한번은 비오는 날 훈련을 일찍 끝냈더니 3학년이었던 병현이와 동기생들이 시내에 놀러갔다가 나랑 마주쳤다. 놀다가 걸렸으니 애들이 놀랐을 것이다. 주장이었던 병현이는 밤새 잠을 못 자다가 새벽에 내 집에 찾아와 사죄했다. 어떻게 보면 병현이는 `완벽주의자' 스타일이다. 그리고 그 당시엔 잔정을 주지 않고 아이들을 강하게 키웠다. 지금도 만나면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지만 "강하게 키워주셔서 지금 버틸 수 있다"고 말해줘 기쁘다.
-최희섭을 처음 본 순간 느낌은.
▶거물 왼손투수 혹은 대형 왼손타자가 탄생하겠다는 느낌이었다. 입학하자마자 4번타자를 시켰는데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희섭이는 직구가 140㎞대 초반까지 나왔다. 고교 1학년이 그 정도면 대단한 거다. 당시 광주 지역에 왼손투수가 드물어서 투수로 키우려 했고 본인도 의욕이 있었지만 결국 3학년때 타자쪽으로 돌아섰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병현이는 입학때 체구가 작아서 유격수를 놓고 저울질 했다. 기교파 투수였는데 겨울에 "투수 계속하려면 스피드를 올리라"고 엄포를 놓았더니 죽자고 러닝에 매달려서 결국 강속구 투수가 됐다. 아이들 모두 운동을 다 잘하는데 재응이와 희섭이는 농구, 병현이는 축구를 잘한다. 병현이는 지난 겨울에도 축구하다 지니까 열받아서 슬라이딩을 막 하길래 혼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스승'이라 불릴만한데.
▶내가 길러냈다고 얘기할 수 없다. 자질 있는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한 내가 운 좋은 감독이다.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게 자랑스럽고 고맙다. 실력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광주=김남형 기자 star@>
'울보' 최희섭
슬럼프 빠져 호통치자
운동장 한켠서 훌쩍훌쩍
거포 최희섭(시카고 커브스)이 `울보'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허세환 감독은 최희섭의 순진한 성격을 언급하며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96년 아니면 97년, 그러니까 최희섭이 고교 2학년 혹은 3학년때 일이라고 했다.
당시 최희섭은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 감독이 잘못 된 플레이를 지적하며 조언했지만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지지 않았다. 허세환 감독은 "너 그런 식으로 계속 하면 앞으로 다시는 안 볼거야"라고 호통을 쳤다.
잠시후, 훈련이 계속되는데도 최희섭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 후에 발견한 곳은 운동장 한켠. 커다란 덩치의 최희섭은 놀랍게도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최희섭은 겨우겨우 "감독님이 저를 관심에서 제껴놓은 줄 알고 서러워서 울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야구가 잘 안 되던 시기였으니 최희섭 자신이 가장 속상해 있었다. 가뜩이나 힘들었는데 감독의 야단 한마디에 그만 더 주눅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허세환 감독은 "이눔의 시키야! 그 뜻이 아니야"라며 한참을 달랬다.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잔뜩이었지만 어르고 달래며 최희섭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허세환 감독은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고 해야 하나, 참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희섭은 그만큼 순수하고 심성이 여렸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시카고 커브스)의 늦둥이 아들 대런 베이커(4)가 최근 "팀에서 최희섭이 가장 좋다"고 한 건 아마도 최희섭의 순수함과 통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광주=김남형 기자 star@>
'밥보' 서재응
한때 작고 볼품없는 체격
대접 3~4그릇 후딱 '대성'
`제구력의 달인' 서재응(뉴욕 메츠)은 광주일고 입학을 앞둔 93년 초만 해도 작고 볼품 없는 체격이었다고 한다.
당시 서재응은 불미스런 일을 겪었다.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가 고등학생 건달 3명에게 둘러싸였다. "가진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을 당했지만 서재응은 순순히 응하지 않고 버텼다. 작고 힘없는 체격이었던 서재응은 결국 3대1의 일방적인 몸싸움에 휘말렸고 등 아래쪽에 칼을 맞았다.
허세환 감독은 "조금만 더 위쪽이었다면 심장이 다쳤을 수도 있었다. 아찔한 사건이었다"며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가족과 감독이 걱정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재응은 사건 직후에 집에 돌아가 말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고 한다. 결국 병원행. 이후 3개월 정도 고생하며 운동을 전혀 못 했다.
인생역전? 당시 광주일고는 전지훈련을 완도로 떠났는데 허세환 감독은 몸이 아픈 서재응을 데려갔지만 계속 쉬게 했다. 이때 서재응은 부쩍 자랐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지금의 당당한 체구로 컸다. 결국 뜻하지 않은 사건 때문에 쉬는 동안 좋은 하드웨어를 갖게 된 셈이다.
서재응은 대식가였다. 2년 후배인 최희섭이 먹성 좋기로 유명하지만 허세환 감독은 "재응이가 더 먹었다. 완도에서 끼니마다 밥을 큰 대접으로 3~4그릇씩 비우는 걸 보고 놀랐었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의 휴식과 밥심'. 오늘의 서재응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하면 무리일까. <광주=김남형 기자 star@>
'악바리' 김병현
팔꿈치 부상 야구인생 위기
승부기운 결승 끝내 완봉승
봅 브렌리 감독도 인정하는 김병현(애리조나)의 승부 근성은 이미 고교시절 부터 유명했다.
허세환 감독은 김병현에 대해 "조용하지만 근성이 강했다"며 96년 전국체전(춘천)의 기억을 돌이켰다.
고3으로 올라가던 해인 96년초 김병현은 오른쪽 팔꿈치가 심하게 아파 야구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의사가 "더이상 운동하면 안 된다"고 진단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해 봄 대통령배에 출전했다가 김병현이 통증을 호소하자 허세환 감독은 거의 한시즌 동안 공을 놓게 했다. 당시 김병현은 통증 때문에 정신적인 좌절감 마저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 됐고, 통증이 가셨다. 야구에선 한해를 마감하는 대회인 전국체전 첫 판서 광주일고는 당시 우승후보 마산고와 맞붙었다. 홈런을 터뜨리는 등 투타에서 맹활약한 김병현 덕분에 광주일고의 승리.
대전고와의 결승전은 오히려 시시했다. 6회까지 7-0으로 앞선 상태서 허세환 감독은 김병현에게 "승부가 기울었다. 팔꿈치도 걱정되고 하니 그만 던지는 게 좋겠다"고 말을 걸었다.
이에 김병현은 "감독님,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던지는 마지막 대회입니다. 마무리까지 하고 싶습니다"라며 공을 놓지 않았다. 결국 7대0 완봉승. 김병현은 삼진을 무려 19개나 솎아내며 고교 시절의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삼진 아티스트' 김병현의 승부근성을 감안하면 올시즌 초반 부러진 배트에 발목을 맞은 뒤 "선발을 한두 차례 거르고 싶다"고 했던 건 정말 통증이 심각했다는 얘기가 된다. <광주=김남형 기자 star@>
허세환 감독은?
★…광주일고 허세환 감독(42)은 한때 유망한 야구선수였다. 광주일고 3학년때인 80년에 대통령배서 1번, 유격수를 맡아 우승하며 5관왕을 차지했다. 선동열 전 KBO 홍보위원과 동기생. 광주 남초등학교와 무등중학교를 거쳐 81년 광주일고 졸업을 앞두고 인하대 입학이 결정됐지만 축구를 하다 오른 무릎 인대를 다쳐 더이상 꿈을 펼치지 못했다. 인하대를 졸업한 뒤 포항제철서 8년간 선수와 사무직을 겸업했다. 한때 해태에서 입단 제의가 오기도 했지만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현역 복귀를 포기했다. 84년 12월부터 92년 1월까지 광주일고 감독을 지내다 잠시 광주 충장중학교 사령탑으로 옮긴 뒤 지난해 12월 모교에 복귀했다. 광주일고 출신 메이저리거 3총사를 모두 3년씩 가르쳤다. 부인 김정옥씨(40)와 슬하에 2남(허 윤, 허 승)을 두고 있다.
첫댓글 울보, 밥보, 그리고 울 악바리 홧팅!!ㅋㅋ
동순님 아바타 바뀌었네요..예쁘네요...^^ 최희섭, 서재응, 여긴없지만 박찬호, 글구 울 병현쓰 내년에 코리안리거들이 메이저리그 아작을 내버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