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우리나라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찾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장 먼저 일본, 중국을 거처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면서 그곳 나라에서 가장
맛있다는 음식은 모두 맛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일본의 초밥, 오리를 훈제해 만든 중국의 베이징 덕(peking duck), 그리고 태국의
마싸만 커리 등등
처음에는 각 나라 음식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것 저것 먹어보면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이 이처럼 다양하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점점 음식에 대한 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최고의 음식만을 먹다보니 최고라는 맛에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그게 그맛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먹기만 하면 사르르 배가 아프기도 하고 소화가 안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할 수 없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하루종일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밤이 되어서야 식사하라는 아내의 말에 겨우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식탁에 않으니 무엇인가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냄비에서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 맛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바로, 맑고 진한 멸치육수에 순두부를 넣어 끓인 아내의 된장찌개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만에 먹어보는 하얀 쌀밥, 마지막으로 들이키는 시원한 물.
이때서야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색이 화려하고 특유의 향이 나는 진미성찬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는 식탁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리2.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은 공동체
어떤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어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은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이 사람은 최고의 공동체이니만큼 나름대로 질서 있고 서로 배려가 넘칠 것이며
모든 행동마다 예의 바르고 성의가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하다 했으니 싸움이 없고 웃음이 차고 넘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그곳을 방문하여 가만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질서는 웬걸? 어린아이가 나이든 어른한테 반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 가관인 것은 그 어른이 어린아이를 타이르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맞장구를 치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과 아이간 질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또한 전혀 없었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러자 당사자는 따로 나가서 조심스레 전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당당하게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큰 소리로, 주위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기 혼자 살아가는 공동체인 듯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위 사람에 대한 배려는 꽝이었습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싶었는데,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만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은 공동체이니
저들만큼은 서로 예의를 지키고 성의를 보이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역시였습니다.
서로 만났는데도 반갑다는 악수도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식이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성의는 눈씻고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조용하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고불고 게다가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왕짜증을 냅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입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으르렁거립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으르렁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는 듯합니다. 정말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모습이,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망만 가득하고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가만 보아하니
한 사람이 배가 아프다고 배를 움켜쥐고 그대로 바닥을 뒹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공동체에 난리가 났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흔들며 소리치더니 곧바로 119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밤 공동체 어느누구도 편히 잠자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안절부절이었습니다. 다음날, 의사로부터 큰 병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모두는 안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그 사람은 이곳이, 왜,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은 공동체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공동체는 한 생명으로 엮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공동체를 가리켜 가정(家庭)이라 부른다는 것을...
이 사람은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생명, 이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는 바로 생명이구나.
그리고 그 생명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가 바로 사랑이구나.
생명이라는 최고의 가치 속에서는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질서도, 배려도, 예절, 성의도 다 녹아버리는구나.
마치 용광로 속에서 모든 것이 녹듯이....
남는 건 오직 뜨거운 사랑만이....
그래서 가정을 최고 사랑의 공동체라 하는구나...."
진리3.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리고 잘못은 잘못으로 다스린다.
이탈리아에 베르디라는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있었습니다.
베르디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감성이 예민하여 15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23세에 그의 스승의 딸 마르게리라와 결혼하여 행복을 맛보기 시작하면서
최초의 오페라 <산 보니파키오의 백작 오베르토>를 써서
이탈리아 대표적인 스칼라 극장에서 발표하였는데
그리 대단한 성공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르디는 실망하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몰두하던 중
그만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고 맙니다.
게다가 이듬해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아내마저 잃고 맙니다.
베르디는 너무나 큰 슬픔에 빠진 나머지 음악도, 인생도 모두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아직 애송이 작곡자에 불과했던 베르디의 재능을 아깝게 여겼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칼라 극장장 메렐리였습니다.
어느 날 메렐리는 베르디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베르디는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메르디는 한 오페라 대본을 그의 책상 위에 가만히 두고 나왔습니다.
음악에 대한 모든 동력을 잃어버린 베르디는 아예 처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갔습니다.
베드로는 책상에 앉았다가, 이게 무엇인가 하고 무심히 그 대본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때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 강가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장면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유프라테스 강을 바라보며 강 건너 두고 온 고향과 부모 형제를 그리며
슬프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 내 마음아 황금 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아름답고 정다운 내 고향 산들바람 불어주는 내 고향 ~~~~"
그 순간, 삼천리 머나 먼 고향과 부모 형제들을 그리며 절절하게 부르는
유대인들의 심정이 그대로 베르디의 마음에 입혀졌습니다.
왜냐하면 꿈에도 그리는 고향과 부모형제를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어버린 베르디 자신의 처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베르디는 그 슬픔을 따라 흥얼흥얼하다가 그 악상을 따라 노래를 완성했습니다.
이 노래가 이탈리아인 가슴에 애국가처럼 담겨진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후 베르디는 슬픔을 완전히 극복하고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오페라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슬픔을 당하게 되면 흔히 여행으로 잊으려하고, 술로 잊으려하고, 쇼핑, 영화로 잊으려 합니다.
즉 슬픔을 즐거움으로 다스리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슬픔이라면 모르겠지만 정작 큰 슬픔이라면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슬픔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잘못도 그렇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가리켜 '너, 그러면 안돼' 하고 반대로 가르치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오히려 담배불을 붙여 주며 그 마음을 헤아려 주면
그 학생은 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게 됩니다.
이는 자전거를 타면서 왼쪽으로 넘어지려 하면 왼쪽으로 약간 틀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즉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리고 잘못은 잘못으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ㅇ ㅇ ㅇ
여기서 우리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진리란... 진리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색과 향이 현란한 특이한 음식일 줄 알았는데
실상은 날마다 먹고 마시는 평이한 식탁의 음식이었다니
진리란 특이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많은 공동체라면
만날 때마다 사랑한다고 서로 비비고 인사할 것 같은데...
그리고 배려와 예의와 성의가 깍듯할 것 같은데...
그토록 기본 질서조차 없는 공동체라면
진리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 명제는 아닌가 봅니다.
슬픔을 당한 자에게 기쁜 말을 해 주어야 위로가 될 것 같은데
같은 처지의 사람이 다가와 손만 잡아 주고 눈만 마주쳐도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따끔한 충고와 책망이 약이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잘못을 이해해 주고 덮어주면 그 잘못을 고쳐지게 된다니
참으로 진리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알다가도 모를 이 진리에 비추어 본다면
진정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진정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진정 교회를 개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ㅇ ㅇ ㅇ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 글을 쓴 작은아이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란 특이한 교리에 젖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 우리 주변의 사람들,
주일이면 으레 교회에 나가 예배하고
평일에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러면서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누가 되는 것이 싫어
정직하고 성실하며, 마땅히 내가 할 일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선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
즉, 우리가 흔히 보고 만나며 이야기하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이 아닐까요?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
내 안에 열심이 있노라고, 온 세상을 변화시키겠노라고
입에 거품을 물며 열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내 재산도, 내 인생도 주님 것이라며
집 팔아 헌금하며, 직장 그만 두는 사람이 아니라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즉,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내게 특별한 사명, 소명이 없어도
이웃이 웃을 때 같이 기뻐해주고, 이웃이 울때 같이 슬퍼해 주는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가 여행을 다니는 중에라도
어려운 일을 당한 자를 보면 내 가진 모든 것이 아니라
우선 급한 대로 나의 작은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 진정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아닐까요?
마지막 교회 개혁.
개혁이라 해서 모든 것을 반대로 뒤엎어야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가 한쪽으로 넘어지려 하면 그쪽으로 살짝 틀어주 듯
아무리 썩은 내 진동하고 이건 아니다 싶을지라도
아무리 내 마음 답답해 미칠 것 같더라도
때때로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만 나는 중심을 굳게 잡고
조금씩 조금씩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방법이
진정 교회 개혁이 아닐까요?
......
요즈음
숭사리에서
여러 표현과 주장을 보면서
혼자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깊이 생각해야 할 지혜들입니다.
많은 생각을 주셨군요? 때는 더욱 더 자기를 돌아볼때라 생각됩니다. 이 편한 인터넷에서..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마구 마구 쏟아 부었습니다. 익명으로~, 그런 기간이 한 10년정도라 봅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은 더욱더 악해졌습니다. 이는 경에 기록되었듯이..악한자는 더욱 더 악한 길로.., 선한자는 더욱 더 선한 길로..와 같아 양분되어 보입니다. 때는 심히 가까웠다는 증거로 말입니다. 마지막 때는 각인의 어떠한 믿음일 것입니다. 자기도 구원치 못하면서..남을 구원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과 같을 것입니다. 이런면에서..더욱 더 자신들의 내면을 성찰해 볼때라 생각됩니다. 저는 한국교회(종교)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을 약 3년간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주권에 맏기우게 하셨습니다. 들어 고침을 받을 자는 받을 것이고.., 그렇치 않은 영혼은 나의 역량으로는 불가한 하나님의 모사속에 있는 것이기에..하나님의 판단에 맏기우는 그런 것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능력에 맏기울 줄 아는 각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양을 물가에까지 끌고는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 곧 생명수를 먹이는 일은 불가한 일로.., 스스로 마셔야 할 줄로 압니다. 스스로 취해 먹지 아니하면..전능하신 하나님도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라 압니다. 괴로운 일이지만..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늘 주장한바..순종이 열심있는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순종입니다. 의탁입니다. 누구도 온전한자는 없으니..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그 믿음으로 나라에 들것 입니다. 오직 그 마음의 어떠함을 보고 추수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알고(지식)..얼마나 지혜롭냐? 가 아니라..그 믿음의 마음이 어떠함을 보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샬롬!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읽고난 후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르는군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이웃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는 삶.....
저도 한 때는 강한 바람이 되어 상대의 옷을 벗기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따뜻한 햇볕이야말로 상대의 옷을 벗기는 힘이란 것을 안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미소짓게 만드는 글을 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님의 따뜻한 마음이 만져지네요.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내 위치에서 단순히 주님을 사랑하며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때에
주님이 이를 기뻐하시겠지요.
거창한 행동보다는 주님앞에 순종하는자세로 보일듯 말듯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주며 따뜻하게 손잡아주고
어려움이 있는 성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위로해주고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며 품어줄때
주님은 어느새 약했던 교회도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가시겠지요.
그렇지요? ^^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에서 나오는 행함..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평범할지라도
주어진 현실에 성실과 정직으로 순응하되
불의에 항거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삶..
나를 드러내려는,, 소영웅심의 발로에서가 아닌..
나는 쇠하고 예수는 흥하여야 하는
예수만 드러나고 존귀케 되어지도록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의미있는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