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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승리의 찬양
이사야 42:9-17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10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15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오늘 본문도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보라’라고 시작합니다. 무엇을 주목하라는 것입니까?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일’을 알리며,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과 모세와 사무엘을 통해 하신 모든 예언들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무엇보다 이사야 42장을 읽는 이사야 선지자 당시의 남유다 사람들이 볼 때는 이사야가 주전 733년 이후 반복적으로 산헤립에 대해 예언한 내용이 문자 그대로 완벽하게 다 이루어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주신 앗수르 왕 산헤립에 대한 신탁의 내용입니다.
[
12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14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8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9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 10:12-21)
그리고 이 예언은 대략 45년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정확히 이루어집니다. 또 놀라운 것은 산헤립 왕이 제1차 침입 후에 물러간 후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사신들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냈을 때 히스기야는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않고 자신을 드높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히스기야에게 심판을 전하는데 그 심판은 바로 바벨론 제국에 포로가 되는 예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 42장의 예언의 글을 읽게 될 바벨론의 포로 된 유다 백성에게는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말한 예언의 성취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도다
[(사 39:5-7)
이렇게 친히 하신 예언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신실하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제 자기 백성에게 새 일에 대해 알려주신다면 그 일이 반드시 발생할 것을 확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약속하신 분이 과거나 현재나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알려주신 장차 하실 일인 ‘새 일’은 때가 되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사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새 일’입니다. 그 ‘새 일’과 관련해서 10절에는 ‘새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새 노래’를 부를 사람들이 누구인지 10절과 11절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
10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사 42:10-12)
지금 이 표현은 바다와 섬과 광야와 산과 성읍과 장막에 거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새 일 때문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며 기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게달 사람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서 아리비아 사막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셀라는 반석의 땅이라고 알려진 에돔의 성읍을 가리킵니다. 즉, 주의 백성의 원수로 행하던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성읍에서도 ‘새 일’ 때문에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의 땅 전체에서 ‘새 일’로 인해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를 12절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사 42:12).
그리고 14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그 ‘새 일’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 오셨는지, 얼마나 그 새 일을 하고 싶어하셨는지 강력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사 42:14).
여기서 “오랫동안”은 히브리어로 (메올람)인데 (먼 과거로부터) 또는 (영원 전부터)라는 뜻으로서 영원하신 하나님께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창세기 21장 3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블레셋 땅에서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과 우물 문제 때문에 언약을 맺은 후 그 우물을 브엘세바라고 부르고 서로 더 이상 상대의 우물을 빼앗지 않기로 맹세하게 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그 언약이 맺어진 후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이때 영원하신 여호와가 (엘 올람)입니다(참조, 창 21:31-34).
즉,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이 새 일을 행하기를 조용히 참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곧 메시야가 태어나 그 새 일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14절은 바벨론 포로로 70년의 종살이 생활을 해 온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 즉 남유다 백성을 해방시켜서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궁극적인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며, 그 사건에 대해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되고 기다려왔던 가장 위대한 일로서 마침내 그 일을 이루실 시간이 배가 부른 임신부처럼 거의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삼위 하나님은 창세 전에 세우신 구속의 언약이 인류 역사 가운데 성취되기를 너무나 오래 기다려 왔고 마침내 때가 되어 그 새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 4:4-5, 7)
그러므로 그 ‘새 일’은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의 포로 된 주의 백성을 해방시키는 것을 일차적으로 의미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셔서 율법의 굴레와 저주와 죄와 마귀로부터 주의 백성을 해방시켜 자녀 삼으시는 구원사, 즉 Historia Salutis 를 의미합니다. 이에 이사야 42장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는 구원사가 그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새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 새 일에 해당하는 내용이 13절, 그리고 15절부터 17절에 담겨있습니다.
[
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
15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사 42:13, 15-17)
먼저 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대적을 치시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사야 42장 2절에서 7절까지는 1절에서 ‘보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겸손하고 온유하신 메시야의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어린 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9절부터는 또 다른 ‘보라’로 시작하여 메시야의 또 다른 면을 묘사합니다. 그 다른 면은 놀랍게도 용사로서의 메시야입니다. 물론 메시야는 여호와께서 사람으로 오시는 분이십니다.
외견상 무력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그리스도는 마침내 십자가에서 대제사장 및 로마 총독의 손에 의해 죽지만 놀랍게도 주의 죽음은 마귀의 심장을 찌르는 최고의 용사의 승리였습니다.
[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2-25)
[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 2:13-15)
그러나 십자가에서 원수의 머리를 때려 상하게 하신 후 승리를 얻은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심판의 전사로 오실 것인데, 그 때는 권력과 능력으로 원수를 가루로 만드실 것입니다.
[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철장으로그들을깨뜨림이여질그릇같이부수리라
](시 2:8-9)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계 12:5).
[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 19:12-16)
즉, 새 일에는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하신 하나님이 메시야로 오시는 일과,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과, 또한 용사로 오셔서 원수 마귀 및 그 세력들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마귀의 그 세력들을 영원한 옥, 즉 불못에 가두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에 15절은 그 새 일에 대해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메시야의 오심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사람들과 나라들에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14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15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16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 2:10-19)
메시야의 심판에 대해 시편도 노래합니다.
[
33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리라
](시 107:33-34)
즉, 여호와께서 메시야로 오실 때는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지만, 반대로 교만한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사실 계시록에서는 일곱 나팔 중에 첫째와 둘째 나팔을 불 때 불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심판 내용이 15절과 유사합니다.
[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계 8:7-9).
아무튼 15절은 메시야가 오시면 그분과 관련해서 심판의 날이 있음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들을 귀 있는 자들을 향해서는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사 42:16)고 말씀합니다.
이는 물론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로 있는 주의 남은 자들에게 해당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열방으로부터 주의 복음과 성령에 의해 귀와 눈과 입이 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때 이러한 복음의 능력과 성령에 의한 역사가 ‘새 일’입니다.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이 열리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새 길로 걷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십자가의 속량을 통한 죄 사함의 길이요,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메시야를 통해 주의 백성에게 흘러나가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 영은 주의 모든 믿는 자녀들에게 하늘의 생수의 강을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 소경들의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 안에서 택함 받은 남은 자들을 맑은 샘과 풍성한 꼴이 있는 진리 되신 성삼위 하나님 보좌 앞으로 인도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외칩니다.
[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눅 1:78-79)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 주께서 바울을 사도로 임명하시며 말씀하십니다.
[
17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행 26:17-1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빛에 속하였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할 수 있습니다.
[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8-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반면, 메시야가 오시는 날이 되면 우상을 섬기던 자들은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사 42:17)
그러므로 우상 숭배자들의 종말은 반드시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우상을 가까이 할 때 그들은 롯처럼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영원한 결실을 전혀 맺을 수 없습니다. 이는 우상을 가까이 하는 순간부터 소경처럼 눈이 어두워지고 죄악 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그토록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시 97:7).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사 1:29-31)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사 44:9-11).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라”(사 45:16).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벨론 포로 이전에도 그러하고 바벨론 포로가 된 이후에도 우상에 물든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의 계시를 받았고 이 땅의 많은 민족들 중에 택함을 받은 선민이었지만 그들은 그들을 존귀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세상 나라들의 우상을 찾아 다니며 스스로 맹인이 되고 스스로 벙어리가 됨으로 결국 바벨론 제국에 약탈당하고 그들의 포로로 잡혀가는 비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2장 18절 이하는 바벨론 포로가 될 정도로 어리석고 눈이 멀었던 그들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그들의 눈을 열어줄 메시야를 바라게 합니다. 사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메시야를 믿고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21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메시야를 바라지 않고 우상을 섬겼도다. 그러므로)
22 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되돌려 주라 말할 자가 없도다 …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사 42:18, 20-22, 25)
이사야는 결론적으로 주만 바라며 믿는 자들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비교하며 선포하였습니다.
[
11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아람 신) 갓에게 상을 베풀며 (운명의 신이라 불리는)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12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내가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사 65:11-13)
사랑하는 여러분!
히브리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이제 하나님은 구약의 백성과 세상 모든 열방을 향해 주 하나님의 마지막 실재 구원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 구원은 여호와께서 창세 전부터 준비하신 것으로서 인류 역사 가운데 ‘새 일’이며 그 일로 인해 열방 가운데 있는 주의 백성은 한없는 감사와 찬송을 주께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 새 일은 여호와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메시야로 오셔서 주의 택하신 백성의 죗값을 십자가 속량으로 치러 주시고 나아가 성령을 보내심으로 주의 백성의 감긴 눈과 막힌 귀를 열어 주시고 혀가 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며 광야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게 하는 것”(사 35:10)입니다. 그 일이 여호와께서 메시야로 오셔서 행하실 ‘새 일’이요, 그 새 일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한없는 주의 자비와 은혜가 차고 넘칠 것이기에 사랑과 긍휼함을 입은 주의 택한 백성은 영원히 찬송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까지 42장의 예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남유다를 구원하여 해방시키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진정한 ‘새 일’은 이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애굽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출애굽은 주의 재림과 함께 주의 백성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들어옴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예배하신 전 우주적인 가나안 땅, 즉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얻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구약에서 알아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에 대한 개념입니다.
먼저 여러 구절이 있겠지만 예레미야 23장에서 한 구절만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3장 5-8절입니다.
[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렘 23:5-8)
이 내용의 배경은 이제 곧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합니다. 또한 그는 선지자로서 유다와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이 비통의 소식을 전하여야 하니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또한 이로 인하여 그가 당할 모함과 미움과 반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레미야는 그 비참한 소식의 와중에 복음을 말합니다.
그 복음은 바로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암울한 때에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가 극에 달하고 그들을 향한 심판이 자명하여지자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복음은 분명 "그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란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가 일어나는 날이요, 그리고 그 의로운 가지는 이 세상의 왕이 되어 공평과 정의를 행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분이 이사야 선지자가 가리키는 것처럼 다름아닌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가 가장 깊고 멸망이 자명하게 코 앞에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주의 백성들에게 메시야와 그가 이루실 죄가 제거된 맑은 상태의 아름다운 주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이 땅에서 실패한 이스라엘의 나라가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될 나라입니다.
신기한 것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이사야 41장과 42장에서 이미 다룬 주의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즉, 무너진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는 대신에 남은 자들에 의해 다시 회복되어 원래 주의 의도대로 완성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여호와의 의”입니다. 그것은 이미 확인한 것처럼 로마서 3장에 묘사된 복음 그 자체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3-25).
이것이 “여호와의 의” 또는 “여호와 우리의 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예레미야 23장 7절과 8절입니다. 7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 땅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출애굽” 사건을 말합니다. 8절은 죄로 인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하나님의 백성이 그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내용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때가 되면 주의 백성이 출애굽 때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맹세하지 않고 바벨론과 및 다른 나라에 흩어졌다가 "돌아오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내용을 신학적으로 “제2의 출애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제2의 출애굽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다윗에게서 나오는 의의 가지로 인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슬프게도 바벨론 포로에서 제2의 출애굽을 했던 주의 백성은 다시 죄로 타락하여,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극소수의 “남은 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 속에서 주의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시는 ‘마지막’ 출애굽입니다. 즉, 주의 보혈을 통한 출애굽입니다. 그후 그의 부활을 통한 영원한 승리입니다.
신약으로 넘어가서 누가복음 9장, 마태복음 17장, 마가복음 9장을 보면, 변화산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때 대화의 내용이 개역 개정 누가복음 9장 31절을 보니 “별세”라고 되어 있고, 원어로는 정확하게 “출애굽, Exodus”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출애굽입니다. 마지막 영원한 해방입니다.
오늘 배운 모든 내용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 이후에는 더 이상 실패가 없는 영원한 “출애굽”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큰 죄악과 실패라도 주님의 보혈을 통한 “출애굽”을 무효화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되풀이 되는 죄악이라도 주님의 보혈을 통한 “출애굽”의 능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 이사야를 통해 알려주시는 ‘새 일’은 주의 백성들에게 더 이상 실패가 없는 출애굽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바로 메시야 예수의 보혈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영적 출애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의 의”, 즉 복음을 통한 마지막 출애굽을 경험했습니까? 하나님의 ‘새 일’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서 알고 계십니까? 그분이 행하신 ‘새 일’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성령의 조명과 역사로 정확하게 와 닿으십니까?
오직 마지막 출애굽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안전하게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진정한 죄 사함과 죄를 향한 승리를 체험하며 하늘의 평강과 감사와 보람을 누립니다. 지금 현실 속에서도 주의 보혈과 부활로 인한 “새 출애굽”은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믿음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출애굽의 그 부활의 승리에 계속 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주의 보혈을 체험하는 것이고, 그 믿음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 안에서 영원한 승리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러한 승리의 기쁨을 주기에 ‘복되고 즐거운 소식’입니다. 복된 소식이 있는 곳에는 찬양이 넘치기 마련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복된 교회를 세우며 그 교회는 복음과 함께 끝없는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영원한 모세의 찬양을 쉬지 않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계 15:1-4)
이 노래는 마지막 출애굽을 경험한 주의 참된 성도들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사실 첫 번째 모세의 출애굽과 그 노래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출 15:1-3, 7-8, 13, 19)
이러한 승리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새 일’, 즉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이는 너희들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이에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이 자리에 계신 주님의 귀한 백성 여러분!
지금 이후로 우리 모두가 평생,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의 놀라운 역사와 함께 ‘새 일’과 ‘새 노래’를 부르면서 삶의 엄청난 도약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부족한 종의 권면을 받으시며 여러분 남은 삶을 성삼위 하나님의 ‘새 일’이신 “오직 예수”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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