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더듬더듬 읽기> 복효근의 '쟁반탑'
탑은 사리 신앙에서 비롯한 불교의 독특한 조형물 가운데 하나다. 어떤 재료를 썼느냐에 따라 탑은 목탑, 석탑, 전탑, 모전석탑, 금동, 청동, 철탑 등으로 나뉜다.
석탑하면 다보탑, 석가탑이요, 모전탑 하면 태백산 정암사 수마노탑, 전탑하면 안동 신세동 7층탑, 목탑하면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웠다는 황룡사 구층탑이라, 대충 이런 탑들이 우리 나라 탑 계보의 첫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나 여기 있노라고 "흠, 흠" 헛기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은 독특한 형태의 탑이 하나 있다. 우리 나라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탑 양식이다. 나는 편의상 그 탑을 모석탑이라 부른다. 재질만 놓고보면 결코 돌이 아니지만 석탑못지 않게 단단하고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탑의 기단부는 우리가 속칭 '조선무'라 부르는 두 개의 튼튼한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탑신부에는 불교에서 생명의 진수 가득한 원형의 수레바퀴란 뜻의 원륜구족인 두 개의 둥근 보륜(寶輪)이 있어 탑의 조형미에 완성도를 한껏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석탑이건 모전탑이건간에 탑의 양식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부하될 탑신부의 하중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기단부는 으레 육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륜부는 위로 올라갈수록 장식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어 상륜부의 보주나 찰주 등이 탑의 형식미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탑은 특이하게도 상륜부, 그 중에서도 지붕돌이라 부르는 옥개(屋蓋)에 더욱 많은 하중을 견디도록 돼 있다. 이것이 이 탑이 가진 불가사의한 점이다.
나 어렸을 적만 해도 이 탑들은 마을마다 수 십 기씩 있었다. 그때는 너무나 흔하다 보니 문화재 취급은커녕 홀대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 탑은 이제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역사적 유물이 되어 기억 저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순수의 시대가 낳은 아름다운 조형물
이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탑의 퇴장이 안타까운 나는 언젠가는 이 탑을 기억하기 위한 몇 줄의 비망록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 탑이 활발하게 조성되었던 시대야말로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대였고 그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활자를 아는 자의 역사적 책무가 아닌가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으른 나는 한 재빠른 시인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최민식 사진, 부산자갈치, 1983.
ⓒ2005 최민식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함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 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
-복효근 시 '쟁반탑' 전문
복효근의 시 '쟁반탑'은 바로 이 사라져가는 탑을 기억하기 위한 비망록이다. 시장에 간 시인은 탑으로 치면 지붕돌에 해당하는 머리에 똬리도 얹지 않은 채 층층이 쟁반을 이고 가는 아줌마와 조우한다. 감동한 시인은 그 모습이야말로 다보탑이고 석가탑이 아니겠느냐 라고 흥분하고 나는 그의 흥분을 '이유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논둑을 따라 새참 나르던 처녀의 모습에서나 장날이면 장에 내다 팔 곡식 자루를 머리에 이고 가던 아줌마에게서나 그 어디서건 신물날 만큼 볼 수 있었던 이 탑은 이제 재래 시장에나 가야 겨우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쟁반탑에 매혹된 것은 복효근 시인이 처음은 아니다. 일찍이 민족시인 김남주 시인도 '조선의 딸'이란 시의 모두에서 아버지에게 드릴 들밥을 내가는 처녀 쟁반탑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저기 가는 저 큰애기를 보아라
새참으로
막걸리 든 주전자를 들고
보리밥과 김치로 가득한 바구니를 이고
반달 같은 방죽가를 돌아
시방
논둑길을 들어서는
부푼 저 가슴의 처녀를 보아라
-김남주 시 '조선의 딸' 일부
김남주 시인이 왜 "부푼 저 가슴의 처녀를 보아라"고 애써 탑신부에 있는 두 개의 둥근 보륜에 주목할 것을 당부하는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시인이란 존재들은 감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벌어진 입을 쉬 다물 줄 모르던 복효근 시인은 마침내 그 밥을 먹은 시장 사람들마저도 마치 부처와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라고 까지 감탄하기에 이른다.
똥이 탑이라니! "익은 밥 먹고 선 소리하지 마라"고? 만일 시인의 말 대로 똥을 탑이라 친다면 그건 그냥 탑이 아니라 마땅히 부도탑에 속할 것이다. 쌀이라는 고승의 다라니가 들어있는 부도탑 말이다.
여자는 강하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더욱 강하다. 그 옥개석에다 온 우주를 이고 다닌다. 불교 경전인 <벽암록> 제18칙에는 혜충국사의 이음새 없는 무봉탑(無縫塔)이야기가 나온다. 혜충국사는 황제에게 자기가 죽으면 무봉탑을 만들어 줄 것을 청한다.
갖가지 물건들을 머리에는 이고, 손에는 들고 다니던 우리 나라 옛 여자들이야야말로 단 한 곳도 이음새 없는 아름다운 무봉탑(無縫塔)이었다. 그러니 나 또한 시인처럼 그 탑을 만나게 되면 그저 찬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와따메, 그 탑 한 번 징허게 이쁘구만이라!"
후제 그들이 죽어 행여 사리라도 수습할양이면 어느 고승 못지 않은 영롱한 사리가 출현하리라.
/안병기(smreoquf2)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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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소리님 고맙구만요.
"와따메, 그 탑 한 번 징허게 이쁘구만이라!" 그려그려 맞지라.
좋은 시와 멋진 감상평... 잘 읽고 퍼갑니다.
그날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전 이 글을 보고 갑자기 경산지방의 이앙요가 생각 났습니다.'모시야 적삼 안섶 안에 연적같은 검은 젖 보소, 많이야 보고 가면 병되나니 손톱만치 보고 가소' 건필,
지도 무쟈게 좋아하던 민요와 가사가 똑같아요.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줄밥 내따줄께 우리 부모 섬겨주오// 이 물꼬 저 물꼬 다 헐어놓고 쥔네양반 어디갔나/ 장터안에 첩을 두고 첩네방을 놀러갔소// 모시야 적삼에 반쯤나온 연적 같은 젖좀 보소/ 많아야 보면 병난단다 담배씨 만큼만 보고가소'
폴폴님과 여름비님의 노래 듣고 싶어지네요 구성질거 같아요.
히~ 예전엔 그려도 흉내는 냈는디 지금은 완전 음치로 원위치 해부렸네요. 대신 이성원 님의 목소리로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