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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34회>
씬 1 전장
지난 회의 연결이다. 양길이 꿇여 앉은 채 궁예를 쏘아보고 있다. 궁예도 착잡한 표정으로 양길을 보고 있다. 그 주위에 왕건을 비롯해 장수들이 묵묵히 지켜서 있다.
양길 어서 내 목을 치거라 !
궁예 ......
양길 내 목을 치라고 하였다. 옛정이 털끝만치라도 남아 있다면 더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
궁예 대장군..
양길 ........?
궁예 이 궁예가 그토록 미웠소이까?
양길 이제 다 끝난 이야기니라. 더 할말이 없으니 목을 베거라.
궁예 전쟁은 끝이 났소이다. 우리 사이에 꼭 죽고 죽여야 할 이유가 없소이다. 나와 함께 송악으로 가십시다.
양길 뭐라, 송악...? 하하하하..거 모처럼 인정있는 말 한번 들었구나.
궁예 .....대장군....? 이것은 나의 진심이오.
양길 나는 너에게 여러 번 속았다. 딸을 줄 때 속았고 또 명주로 너를 보낼 때 속았다. 이제 그만 세상살이도 귀찮구나... 쉬고 싶다. 어서 눈을 감게 해 다오.
궁예 나와 함께 가십시다.
양길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이니라. 장수가 어떻게 살고 죽는지 잘 알고 있느니라. 패장으로서 어찌 살기를 바라겠느냐?
궁예 다 끝났소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소. 이제 남은 여생은 송악에 있는 따님과 편히 보내시면 어떻겠소이까?
양길 .....(신음처럼) 그래, 그 아이가 마음에 걸리는구나. 못난 애비를 만나서 일신이 불쌍하게 되었어. 그러나 이제 그 아이의 일은 너에게 달렸으니 내가 어찌하랴.....
궁예 ........여생을 편히 보내게 해 드리겠소이다. 함께 가십시다.
모두들 .........
양길 .....내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거늘 어찌 너에게 목숨을 구걸하겠느냐? 더 이상 긴말하지 마라.
은부 ......!
궁예 대장군....
양길 내 평생 네 놈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느니라. 허나 기억해 두거라.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니라. 너 또한 나와 같은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느냐?
궁예 ......
왕건 ......?
궁예 기어이.. 죽음을 택하겠단 말이오?
양길 (눈을 감으며) 어서 끝내거라.
궁예 ......
의연한 양길의 모습에 모두들 말이 없다.
은부 원하는 대로 해주시오소서. 그것이 적장에 대한 예이옵니다.
궁예 .......
금대 그리 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여전히 양길을 바라보고 있다)
양길 ....(의연하게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궁예 장군.... 장군은 이 시대 최고의 용장이었소이다.... 이렇게 이별하게 되어.... 안타깝소이다.. (돌아서며) 잘 가시오....
신음처럼 내뱉고 궁예가 돌아서 간다. 은부가 종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종희가 칼을 빼들어 양길의 목을 내리친다. 양길이 피를 토하며 비참하게 쓰러진다. 왕건이 착잡한 모습으로 바라보다가 외면한다. 궁예가 돌아서서 가다가 비명소리에 잠시 멈칫 선다. 그리고는 다시 걸어가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은부 이것으로서 끝난 게 아니오. 양길은 두 번씩이나 우리를 공격했고 끝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소. 내원께서 내게 이렇게 일러주시었소. '인정은 단 한 번으로 족할 것이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세력은 그 결과가 어찌 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모두들 ........?
은부 모두 불태워버리시오. 이 죽주는 물론이요, 양길을 따랐던 모든 고을들과 북원을 불태워버리시오. 양길을 따르던 무리들을 모조리 도륙하시오!
장수들 예.
그런 은부의 싸늘한 모습에서...
씬 2 인서트
북원성이 불타고 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궁예의 군사들이 양길의 군사들과 백성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있다. 미향의 언니들로 보이는 여인들과 아이들도 살해된다.
왕건이 그의 부장들과 함께 그 처참한 광경들을 지켜보고 있다. 왕건의 표정은 절망 그 자체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자비로운 미륵의 세상이 아닌 지옥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왕건의 그 절망적인 깊은 침묵에서... (디졸브)
씬 3 궁예의 군막
궁예와 제장들이 회의를 갖고 있다.
궁예 (침통하게) 북원과의 전쟁은 끝이 났소. 서로가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피를 보았소.
왕건 ......
은부 피치 못할 일이었사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응징이었사옵니다.
금대 폐하. 이번 일을 계기로 폐하를 거역하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사옵니다.
궁예 하지만 그렇게 해서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겠소? 짐이 원하는 세상은 만백성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용화세계요.
은부 신들이 어찌 그것을 모르겠사옵니까?
궁예 .......전쟁이 끝났으니 황도로 다시 돌아갈 것이오. 나머지 일은 왕장군에게 일임하겠소. 왕장군.
왕건 예, 폐하.
궁예 그대는 계속 남진하여 견훤과 경계를 이루도록 하라.
왕건 알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대를 믿네. 중원 일대의 맹주 양길이 사라졌으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야. 힘으로 굴복시키기 보다는 덕으로서 그들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오도록 하게.
왕건 명심,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끈끈한 신뢰가 묻어나는 궁예와 왕건의 모습에서..
씬 4 길
왕건이 그의 부장들인 유금필, 능산, 박술희와 배현경, 홍유, 김언, 김락들과 함께 가고 있다. 수많은 군사들이 따르고 있다. 왕건은 여전히 표정이 밝지 않다. 그 군사들의 행렬 위로 해설이 흐른다.
해설 왕건의 남진. 죽주(안성)에서 양길의 군대를 격퇴하는 데 혁혁한 군공을 세운 그는 궁예의 명에 따라 다시 남진을 계속했다. 이 때 궁예의 영토는 서해안의 당성(남양)에서부터 내륙의 죽주(안성)와 북원(원주), 그리고 지금 왕건이 가고 있는 청주와 충주, 괴양(괴산)에 이르렀으니 가히 삼한의 절반을 차지한 형국이었다. 그리고 충주에서 조령을 넘으면 바로 아자개가 웅거하고 있는 상주 땅이었다. 비로소 궁예를 대신한 왕건과 백제의 견훤이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씬 5 완산주 성 외경
견훤(E) 뭐라, 아버님이 군사를 준비하신다?
씬 6 동 대전
견훤과 최승우, 능환, 신강, 추허조 등이 회의를 하고 있다.
견훤 그게 무슨 소리야? 나와 싸우시겠다? 아들인 나와 말인가?
신강 황공하옵니다, 폐하.. 신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해 폐하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사옵니다.
능애 .......
견훤 ......그게 어디 그대의 잘못이겠는가? 도무지 말씀이 통하지 않는 분이시니...
능애 노여움이 대단하셨사옵니다. 도대체 전후사정 얘기를 아니 들으시니....
견훤 노망이 나신 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능환 결국 궁예가 양길이를 격퇴하고 왕건을 보내 충주로 향하고 있사옵니다. 조령만 넘으면 가은현(문경)이옵고 상주 땅이옵니다.
견훤 답답한 일이야.. 궁예의 군대가 턱밑에 와 있는데두 아버님은 이 아들과 싸우시겠다니... 이런 세상에...
신강 지금으로서는 군사를 보내시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사옵니다. 조금더 상황을 지켜보신 연후에...
최승우 아니될 말씀이외다. 여기서 물러서면 상주는 필시 궁예의 땅이 될 것이오이다.
견훤 .......
능환 그렇사옵니다, 폐하. 상주의 어르신께서 그리 나오실 줄은 예상했던 일이었사옵니다. 예정대로 군대를 보내시오소서. 먼 곳에서부터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면서 계속해 어르신을 설득하면 될 것이옵니다.
신강 ......
견훤 ....그리하세. 사벌주를 궁예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지... 추장군?
추허조 예, 폐하.
견훤 철기군단은 준비되어 있는가?
추허조 예, 폐하.. 언제든 상주로 진격할 준비가 되어 있사옵니다.
견훤 이찬이 함께 가도록 하게. 아무래도 자네가 가야 마음이 놓이겠어.
능환 알겠사옵니다, 폐하. 곧 출병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견훤 ......
그러나 고민스러운 그의 모습에서...
씬 7 길
추허조와 능환, 김총 등이 수천의 철기군을 이끌고 가고 있다. 실로 오랜만의 출병인지라 추허조 등이 신바람이 났다.
추허조 도대체 이게 얼마만입니까, 형님? 모처럼 전쟁터에 나간다 하니 힘이 절로 솟는 것 같습니다.
능환 (미소) 그렇게도 좋은가?
추허조 아 그렇구 말구요. 자네들은 아니 그런가?
김총 저희들도 그렇사옵니다.
능환 까딱 잘못하면 어르신의 군대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도 있는 일이야.
추허조 아, 그야...
능환 차근차근 아자개님과 부딪히지 않는 곳부터 서서히 함락시켜 가야 할 것이야. 그렇다고 너무 늦어서도 안되는 일이고.. 아무튼 어려운 길인 건 분명하네.
능환의 그 모습에서.
씬 8 견훤의 대전
견훤과 박씨, 그리고 신검, 양검, 첫째 딸(국대부인)이 모여 있다.
박씨 아무래도 신첩은 마음이 놓이질 않사옵니다. 군대가 온다고 하면 아버님 성미에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견훤 .......(대답이 없다)
박씨 폐하, 아니 그렇사옵니까?
견훤 왜 이렇게 집안 일이 안 풀리는지 모르겠소. 너무 답답해.
자식들 ......
견훤 백성들도 그렇거니와 너희들 보기가 참으로 부끄럽구나.
신검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아바마마...?
견훤 너희들은 절대로 이 애비처럼 살지 말거라.
양검 아바마마께서는 할아버님을 도우시려고 사벌주에 군사를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할아버님께서도 언젠가는 아바바마의 진심을 이해하실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이 애비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다니 너희들도 이제 많이 컸구나. 그리 안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박씨 .....(미소).....
견훤 부지런히 학문과 무예를 닦아서 이 애비를 돕도록 하거라.
신, 양검 예, 아버님..
견훤 허허허... 그래, 그래야지... 신검이 이제 헌헌장부가 다 되었구나... 나는 네 나이부터 전쟁터에서 살았다. 너희들도 곧 전쟁을 경험하게 해주마...세상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흡족하게 자식들을 보는 견훤의 모습 위로 송악의 백성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대왕 폐하 만세!
씬 9 송악길
궁예와 장수들이 개선하고 있다. 연도의 백성들이 '대왕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은부와 장수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지만 그러나 궁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씬 10 궁궐 앞
강장자와 박지윤, 유장자, 장자1, 장자2 등이 마중을 나와 있다. 그 뒤로 왕평달과 왕식렴, 왕신, 변사부, 마사부, 장수장들이 함께 해 있다. 궁예들이 궁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다가온다. 장자들이 나아가 허리를 굽혀 궁예를 맞는다.
강장자 어서 오시오소서, 대왕 폐하.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장자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덤덤하게) 고맙소.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강장자 ....예..
궁예들이 대궐 안으로 향한다. 장자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간다. 왕평달이 보고 있다가 중얼거린다.
왕평달 양길이 패하여 죽었다 들었는데 폐하의 심기는 밝아 보이지가 않는구먼...
변사부 그러게 말이옵니다.
씬 11 동 대궐 안
궁예들이 들어서고 있다. 내군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고 그 사이로 궁예와 장수들, 장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황후 연화가 상궁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있다. 종간과 염상도 나와 있다.
종간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황후 어서 오시오소서.
궁예 그 동안 별고 없으셨소?
황후 예..
궁예 대전으로 가십시다.
궁예가 대전으로 향하면 황후와 종간, 장자들이 궁예의 뒤를 따른다.
씬 12 동 대전
강장자 전장의 소식은 전령을 통해 들었사옵니다. 참으로 대단한 전투였다들었사옵니다마는....
궁예 ........
박지윤 이제 나라가 안정을 되찾을 듯싶사옵니다. 양길이라는 큰 우환거리가 사라졌으니 말이옵니다.
궁예 그 이야기는 그만 두십시다. 잊고 싶은 일입니다.
장자들 .......?
종간 ........
궁예 북쪽으로 간 장수들의 상황은 어떻소?
종간 그 쪽도 마찬가지옵니다.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 장군 등이 승승장구하여 국경을 넓혀가고 있사옵니다. 북쪽의 고을들은 대개가 비어 있거나 오랑캐들에 의해 강점되어 있사옵니다. 말하자면 신라의 힘도, 발해의 힘도 미치지 못하는 힘의 공백지대지요.
궁예 (끄덕이고)... 궐 안의 일은 어떻소? 후원의 북원보살도 이번 전쟁의 결과를 알고 있는지....?
종간 .....예... 그러하실 것이옵니다.
연화 ......(날카롭게 종간을 쏘아본다)...?
종간 ........
궁예 .....오늘은 이만 물러들 가시오. 쉬고 싶구려...
강장자 아 예.. 그리하시오소서.
장자들과 종간이 예를 갖추고 나간다. 연화만 그 곳에 남았다.
궁예 황후도 그만 돌아가 쉬시구려.
연화 폐하...?
궁예 .....? 내게 하실 말씀이 있소?
연화 (끄덕이며) ...예..
궁예 말씀해 보시구려.
연화 후원에 있는 북원부인의 일이옵니다.
궁예 ..........?
연화 그 사람을 보살펴 주시오소서.
궁예 .......?
연화 죄는 부인의 아비에게 있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궁예 ....(보다가) 허허허... 황후의 마음 씀이 참으로 갸륵하구려.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소. 허나 신료들과 장수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야....
연화 그렇사옵니다. 그 사람들이... 부인을...
궁예 .......?
연화 아, 아니옵니다.
궁예 허허.. 말씀을 꺼내놓고 아니라니요? 무슨 일이 있었소?
연화 아니옵니다, 폐하.. (잠시 사이) 폐하, 부인을 살리실 분은 오로지 폐하 뿐이시옵니다. 굽어살피시오소서.
궁예 그렇지 않아도 생각중이오... 나는 그 사람의 애비를 죽였소이다.아무래도 이쯤해서 궁을 떠나는 것이... 낳을 것인데...
연화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시옵니까?
궁예 .....?
연화 ......폐하를 사모하기 때문이옵니다. 그 사람에게는 폐하가 전부이기 때문이옵니다.
궁예 ..............?
씬 13 내원 외경
은부(E) 그래서, 하필 그 때 황후마마께서 오셨단 말인가?
씬 14 동 내원
종간이 묵묵히 앉아 있고, 은부가 염상을 질책하고 있다.
은부 그 광경을 다 보셨단 말인가? 황후 마마께서?
염상 .........
종간 그만 하게. 어차피 엎지러진 물일세.
은부 이런 낭패가 있나? 아니 어쩌다가...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하였는가?
염상 면목없사옵니다.
은부 ....큰 실수를 하였네.. 황후께서 알고 계시면 곧 폐하도 아시게 될 것이 아닌가?
염상 .......
종간 어쩌겠는가? 이미 그리 된 것을... 폐하께서 우리의 충정을 이해하시기를 바랄 밖에..
은부 .......
종간 문제는 폐하께서 점점 인간의 정을 나타내신다는 것일세...
은부 그게 무슨...?
종간 점점 사사로운 정을 너무 챙기신다는 게지.. 양길과 싸우실 때도 그러하셨고, 북원부인에 대해서도 그러하시고....
은부 .....(끄덕인다)
종간 하지만 그것은 아니될 말일세. 폐하께서는 영원히 미륵으로 남으셔야 하네.. 완전한 미륵으로...
은부 ......
종간 이제 시작이네. 대제국으로 가는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야. 폐하께서 미륵의 자리를 잊으시면 우리 대제국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일세.
은부 .......
종간 우리는 명주를 비롯하여 한산주와 하서주, 삭주 일대를 차지했네. 삼한의 절반이 우리 땅이 된 게야. 이제부터는 통일을 생각해야 할 차례가 아닌가? 그럴려면 폐하께서 더욱 새롭고 큰 미륵의 모습으로 백성들 앞에서야 하시네. 자네와 내가 바쳐드릴 일이야.
은부 예, 내원 어른..
종간의 고뇌어린 표정에서...
씬 15 미향의 처소
연화와 미향이 마주해 있다.
연화 폐하를 알현하고 오는 길입니다.
미향 .........
연화 이제 염려 놓으세요. 지난 그 사건은 폐하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부인의 안위를 걱정하셨어요.
미향 아버님은... 어찌 되셨다 하옵니까?
연화 ......(고개를 가로젓는다)
미향 그리 되셨군요. 결국....(눈물이 주루루 흐른다).....
연화 .......... 이 시대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간답니다. 강한자는 약한자를 죽이고... 사내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한을 겨루고... 땅을 빼앗고..
미향 ......
연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북원의 일은 남정내들의 일입니다. 부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잊도록 하세요. 그게 사는 방법입니다.
미향 ....... (눈물만 흘린다)....
씬 16 충주 관아 외경(낮)
자막 : 충주(충주)
왕건의 군사들이 긴 행렬을 늘어뜨리고 성으로 향하고 있다. 충주의 호족들이 미리 나와 왕건들을 영접하고 있다.
유긍달 어서 오시오소서, 장군.
호족들 어서 오시오소서.
호족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힌다.
왕건 반갑소이다. 소장은 왕건이라고 합니다.
유긍달 장군의 존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사옵니다. 소생은 유긍달이라고 하옵니다.
왕건 소장도 유장자님에 대해 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성문을 열고 우리 군사들을 환대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오이다.
유긍달 어인 말씀을... 우리 충주의 호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궁예 대왕 폐하를 내심 존경하고 있었사옵니다. 그 분은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시는 성군이 아니시옵니까?
왕건 잘 보셨소이다. 폐하께서는 이 시대를 구할 영웅이시지요.
유긍달 왕장군께서도 대단하시다 들었사옵니다. 지략과 덕망을 두루 갖춘 덕장이시라 들었사옵니다. 허허허..
유긍달의 모습 위로 해설이 흐른다.
해설 유긍달. 중원경, 현재 충주의 대표적 호족이다. 훗날 왕건이 즉위한 뒤 왕건의 장인이 되는 사람으로 그의 딸 신명순성왕후 유씨는 왕건과 혜종에 이어 즉위하는 정종과 광종을 낳은 여인이다. 왕건은 전쟁보다는 그 특유의 인화력과 덕으로서 경기, 충청 일대의 성문을 열었는데, 이 때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성문을 연 고을은 후에 주(州)로 승격이 되었다. 그러나 중원경과 서원경은 그 이전부터 충주와 청주로 불리워져 온 지명이다.
해설이 흐르는 동안 왕건과 그의 군사들이 유긍달들의 안내를 받으며 성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17 동 충주 관아 외경
왕건의 군사들이 도열해 대기하고 있다.
씬 18 동 관아 회의장
왕건과 유긍달 그리고 왕건의 부장들인 유금필, 능산, 박술희들과 충주의 호족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유긍달이 대형 지도를 펴놓고 그 일대의 지리를 설명하고 있다.
유긍달 이곳 충주의 남쪽엔 거대한 태백의 줄기인 조령이 있사옵니다. 조령의 경계를 넘으면 바로 사벌주 땅 가은현(문경)이지요. 그 곳은 견훤왕의 아비인 아자개라는 사람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유긍달 하지만 아자개의 영향력이 사벌주 관내 전역에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사벌주 본성과 본래의 터전이었던 가은현 일대가 그의 영토라고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박술희 견훤의 아비가 다스리고 있다면 결국은 견훤의 땅이 아니오이까?
유긍달 허허허.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오. 아직은 아자개의 땅이지 견훤의 땅은 아니오이다. 그들 부자간의 불화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오이다.
박술희 그래도 부모와 자식간이 아니오이까?
유긍달 허나 그들 부자의 불화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심각한 것 같소이다.
왕건 그 곳의 사정을 직접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군사력은 어느 정도인지 공격로와 퇴각로, 그리고 산천의 지리는 어떠한지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들이 이 곳 지리에 어두우니 유장자님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유긍달 이를 말씀이옵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그 곳 지리에 밝은 사람을 천거해 올리겠사옵니다.
왕건 고맙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능산과 박술희가 다녀오도록 하게.
능, 박 예, 주군.
왕건 적지를 살펴보고 오는 것이니 불필요한 싸움은 되도록 피하도록 하게. 알겠는가?
능산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왕건 술희 자네도?
박술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어느 분의 명이신데요. 허허허..
왕건 드디어 백제와 만나게 되는 일일세. 아무리 부자간에 불화가 크다 하여도 자식이 어찌 아비를 돕지 않겠는가? 조심하게, 견훤왕은 서라벌의 이름 없는 군관에서 일약 한 나라의 대왕이 된 사람이야. 더구나 그 사람의 철기군은 용맹하기로 천하에 소문이 났어...그 사람은 영웅이야... 내가 어릴 때 보았었지.... 대단했어..
왕건의 감회어린 표정에서..
씬 19 완산주 외경
씬 20 동 대전
견훤과 최승우가 마주해 있다.
견훤 아무래도 영 개운치가 않구먼.. 아버님이 그렇게 노발대발하셨다는데 짐은 그곳에 보란 듯이 군사를 보냈어. 아마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인데...
최승우 이찬님께서 함께 갔으니 염려 마시오소서. 어르신께서 혹 군사를 보내 공격해 오시더라도 적당히 타계해 나갈 것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지금의 기회를 놓치시면 더는 아니 되옵니다. 이번이야말로 사벌주도 얻고 어르신의 신임도 함께 얻으실 좋은 기회이옵니다. 정 마음이 놓이시지 않으시다면 폐하께오서 직접 가시오소서. 이제 그럴 때도 되었사옵니다.
견훤 내가 말인가.....? 사벌주에...?
최승우 궁예의 막하장수 왕건이 충주에 이르러 있사옵니다. 양길과의 싸움에서 확인됐듯이 왕건은 대단한 지장이옵니다. 어르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왕건의 군사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이럴 때에 폐하께서 직접 가시면 왕건이 섣불리 사벌주를 넘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 점을 어르신께 설득해 보시오소서.
견훤 ........(생각) 그리하세. 매를 맞더라도 먼저 맞는 게 좋겠지. 짐이 아버님을 직접 만나보겠네. 기왕 결정이 섰으니 속히 가는 것이 좋을 것이야. 군사들을 준비하도록 하게.
최승우 만일을 대비해서 이미 후발 부대를 대기시켜 놓았사옵니다.
견훤 오 벌써..? 하여간 자네는 대단한 사람이야. 빈틈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아. 허허허.
최승우 허허허.. 어인 말씀을.. 그럼 소신도 차비를 하겠사옵니다.
견훤 ...그리하게. 왕건이라... 그가 어렸을 때 본 적이 있어. 우린 그때 아주 친해졌었지... 아주 총명했었어... 그때도...
최승우 허어... 그랬사옵니까?
견훤 어느새... 그리 성장해서 궁예왕의 선봉으로 오다니... 하지만.. 이번에 혼을 좀 내야겠구먼.. 우리 백제군이 얼마나 무서운가도 가르쳐 주어야지, 허허허....
씬 21 동 훈련장
군사들이 출병 준비를 하고 대기해 있다. 능애와 신강, 수달 그리고 박영규와 공직의 모습도 보인다. 이윽고 내관의 '대왕 폐하 납시오!'하는 소리와 함께 견훤이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황후 박씨, 최승우와 함께 나온다. 견훤은 평상복 차림이다. 그리고 신검 형제와 두 딸들도 견훤을 따라나선다.
견훤 오 박장자와 공장군이 아닌가?
박, 공 예, 폐하..
최승우 신이 이 분들을 불러들였사옵니다. 폐하를 뫼시고 사벌주로 함께 갈 것이옵니다.
견훤 그랬는가? 허허허.. 자네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구만.. 들 가세..
견훤이 말에 오르자 다른 장수들도 말에 오른다. 신강과 수달은 그 곳에 남는다.
신강, 수달 다녀오시오소서, 폐하.
견훤 알았네. 짐이 없는 동안 황궁을 잘 지키도록 하게.
신강, 수달 예, 폐하..
견훤 자 가자!
견훤이 군사들 사이를 지나쳐 앞서가면 장수들과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른다.
씬 22 길
'대백제국(大百濟國)' '견훤대왕(甄萱大王)'의 수기가 앞서가고 백제의 대병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위로 해설이 흐른다.
해설 견훤의 사벌주행. 드디어 견훤이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웅거하고 있는 사벌주로 향했다. 궁예가 양길을 꺽고 왕건을 시켜 계속 남진을 해오자 위기의식을 느낀 견훤이 마침내 출병을 단행했던 것이다. 이 즈음에서 견훤을 따르는 두 인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메라 팬하면서 박영규의 모습을 잡는다.
해설 박영규. 그는 승평군(순천) 출신으로 견훤의 맏딸 국대부인과 혼인하여 견훤의 맏사위가 되는데, 견훤이 죽는 날까지 오로지 견훤만을 따른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그리고 견훤을 따라 태조왕건에게 귀부하여 고려에서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으며 태조와 혜종에 이어 즉위하는 정종의 장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공직의 모습을 잡는다.
해설 공직. 매곡성(충북 보은 회북면)의 성주로서 그 역시 견훤의 충직한 신하였다. 그의 영향력은 화령을 경계로 사벌주의 삼년군(보은),관성군(옥천) 일대와 웅주의 연산군(문의), 비풍군(대덕), 황산군(연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훗날 통일전쟁 당시 태조왕건에게 귀부하게 되는데 견훤이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그의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잡아서 다리 힘줄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고, 이때의 공직은 견훤의 충직한 부하였고, 신하였다.
견훤 서둘러야겠네. 먼저 떠난 군사들이 지금쯤 사벌주 관내로 들어가고 있을 게야.
최승우 전령을 앞서 보내 기다리라 하였사옵니다. 염려마시오소서.
견훤 잘했네.. 어서 가세나..
견훤의 군대가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계속해 이어져 가고 있다.
씬 23 충주 관아
왕건과 제장들, 유긍달과 호족들이 모여 있다. 박술희와 능산은 보이지 않는다.
왕건 조령은 험하기로 소문난 영이라 들었습니다.
유긍달 예.. 소로와 협곡이 계속해 이어져 넘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 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안내하여 갔으니 염려 놓으시오소서.
왕건 조령을 넘으면 가은현이라 했던가요?
유긍달 그러하옵니다. 조령이 가로막고 있어 자주 왕래를 하지는 않지만 그 곳의 지리는 훤히 알고 있사옵니다. 가은현은 견훤왕이 태어난 곳으로, 산세가 아름답고 유려하기로 소문이 난 곳이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허... 견훤왕의 고향이라...
유긍달 안내인이 있다지만 능산 아우와 박술희가 고생 좀 하겠사옵니다?
왕건 그렇겠지.
씬 24 조령길
능산과 박술희가 수십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조령을 넘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깍아지른 절벽에 나 있는 좁은 소로를 힘겹게 오르고 있다. 그 때 한 병사가 실수로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떨어지려 한다.
박술희 조심하거라!
다행히 그 군사는 절벽에 있는 나무 뿌리를 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병사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박술희가 다가가 창을 내민다. 그리고 괴력을 발휘하여 그 병사를 들어 올린다.
병사 고맙사옵니다요, 장군님..
박술희 (숨을 몰아쉬며) 하마터면 개죽음을 당할 뻔하지 않았느냐? 그러길래 한 눈 팔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 하지 않았느냐?
병사 죄송합니다요, 장군님.
박술희 가자..
박술희가 다시 능산 쪽으로 다가간다.
능산 수고했네.
박술희 뭐 수고랄 것도 없습지요. 장수가 군사들을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옵니까? 험..
능산 허허 그런가?
안내자 가시지요. 아직도 길이 머옵니다.
그렇게 계속해 절벽길을 가는데...
그 때 아자개의 첨병들이 박술희들을 보다가 급히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병사 하나가 보았다.
병사1 장군, 적군의 정탐병이옵니다.
박술희 ......?
그러나 이미 멀리 사라져 가고 있다.
박술희 이런.. 길이 이러니 쫓아갈 수도 없고... 허허..
능산 난감하게 됐구만.. 우리가 온 것을 알게 됐으니 정탐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울 게야..
박술희 일단 내친 걸음이니 가보십시다. 길이라도 익혀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능산 ......가세.
그들 계속해 험난한 비탈길을 오른다.
씬 25 사벌주 성 외경
첨병들이 급히 말을 달려와 성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자개(E) 뭐라, 궁예군이 오고 있어?
씬 26 동 성안 아자개의 거소
아자개가 첨병1의 보고를 받고 있다. 여느 때처럼 계모와 대주, 두 아들이 함께해 있다. 모두들 놀란 표정이다.
아자개 확실히, 확실히 궁예군이 맞더냐?
첨병1 예, 장군. 조령을 넘어 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사옵니다.
아자개 ...(신음하며) 음...그예..
계모 (두려워하며) 그럼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옵니까?
아자개 .......
대주도금 군사들의 수는 얼마나 되던가?
첨병1 확실치는 않사오나 대략 오십쯤 되는 것 같아보였사옵니다.
대주도금 (의아해) 오십...?
아자개 .....?
아들 겨우 그 정도로 온단 말인가?
그 때 밖에서 또 다른 아들1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들1 아버님, 급보이옵니다.
아자개 또 무슨 일인가? 들어오너라.
아들1이 급히 들어와 예를 올리고 보고한다.
아들1 아버님.. 견훤 형님의 군대가 사벌주 관내로 들어와 여러 성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하옵니다.
아자개 (벌떡 일어나며) 뭐라, 견훤이 그 놈이...?
계모와 대주도금도 놀란다.
아자개 (극도로 노하여) 이 놈이.. 끝내 이 애비를 치겠다는 겐가?
계모 (울상이 되어) 그러게 소첩이 뭐라 했사옵니까? 견훤이 그 사람은 자식도 아니옵니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아자개 고연 놈... 속히 전투준비를 하라! 내 견훤이 그 놈부터 칠 것이야.
대주도금 아버님, 고정하시오소서. 역정부터 내실 일이 아니옵니다. 궁예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해 왔다 하지 않사옵니까? 지금 급한 것은 오라버니가 아니라 궁예군이옵니다.
아자개 ......?
대주도금 그리고 오라버니께서 오시는 것은 아버님을 도우려는 것일 것이옵니다.
아자개 무슨 소리? 그 놈은 이 애비를 치러 오는 놈이야. 궁예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놈이니라.
대주도금 우리의 힘만으로는 궁예군을 막아내기 어렵사옵니다, 오라버니의 도움을 받으셔야 하옵니다.
계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도움을 받다니..? 우리를 죽일게야
대주도금 어머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이 일은 군사에 관계되는 일이옵니다.
계모 (어이 없어) 대.. 대주야?
대주도금 아버님..?
아자개 설령 우리를 도우로 왔다해도 도움 따윈 필요 없느니라. 우리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궁예군을 막아낼 수 있느니라. 궁예군이 코 앞에 닥쳐왔으니 그래 일단 그 곳으로 나가거라. 대주 네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란 말이다.
대주 ......알겠사옵니다. 곧 출전토록 하겠사옵니다.
아자개 이놈아... 그예 군대를 몰아온다...허, 이런... 헌데 궁예군이 언제 조령을 넘었누?
씬 27 강변
'상주장군 아자개(尙州將軍 阿慈 )'라는 수기가 펄럭이고 있다. 대주도금이 수백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 대주도금의 주위에는 여검사(女劍士)들이 따라붙고 있다. 박술희의 첨병들이 그 근처으슥한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지면..
씬 28 그 강변의 궁예군
능산과 박술희가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그 때 멀리서 첨병이 달려와 서면...
능산 적진의 상황을 살펴보았는가?
첨병 예, 장군. 아자개의 군사들이 이리로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능산 그래...? 아자개가 직접 나왔던가?
첨병 아니옵니다. 수장은 여인이었사옵니다.
박술희 (눈이 휘둥그래지며) 뭐라, 여인?
첨병 예, 장군..
박술희가 묘하게 미소를 짓는다. 예의 그 객기가 발동한 것이다.
안내자 그렇다면 대주도금이라는 여장수일 것이옵니다. 견훤왕의 누이 동생입지요.
박술희 .....? 견훤의 누이라고 했는가?
안내자 예.. 사내 못지 않은 담력을 지닌 대단한 여장수지요. 미모 또한 천하절색이구요.
박술희 정말인가? 그 여장수가 그렇게 잘 생겼는가?
안내자 그렇다니까요. 허허허. 박장군께선 여색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옵니다?
박술희 하하하.. 열 계집 마다할 사내가 있겠는가? 좋은 구경거리가 아닌가? 이 살벌한 전쟁터에서 그런 아리따운 여장수를 만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능산 이보게 아우, 괜한 소리 말고 대책을 논의하세. 주군께서는 되도록이면 전투를 피하라고 하시었네.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나?
박술희 돌아가다니요? 견훤의 누이라는 그 여장수는 보고 가야지요. 대주도금이라..? 천하의 절색이라 하지 않사옵니까.. 천하절색? 하하하하...
박술희의 그 호탕한 웃음에서...
씬 29 그 강변 일각
대주도금이 달려오고 있다. 그 얼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