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환(幻)/ 이규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굶어도 배고프지 않은 그런 때가 있다
뭔가 휙, 지나가버린 때
주방 구석에 앉아 상추쌈 먹으며 울었다
쑥갓 두어 잎 얹어 먹으며 울었다
푸성귀처럼 퍼렇게 살아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지만
지나갔다,
막막해서 입 미어지도록 상추쌈 쑤셔 넣었다
혀를 깨물었다 허가 씹혔다
치명적인 오류가 생겼을 때
아무 키나 누르면 회복되기도 하지만
그나마 남은 것 다 지워질까 봐
노심초사 상추쌈만 꾸역꾸역 넣는다
쌈장에 찰지게 버무려진
환(幻)이라는 것,
마늘 환(幻), 양파 환(幻), 참깨 환(幻)
꼭꼭 씹어 먹는다
내가 먹은 게 너였나
너가 먹은 건 나였나
가부좌 틀고 앉아 들었다 놨다 한 너,
잘 가라, 환(幻)
속치마 레이스 같은 환(幻)을 걷어내면 문득
실핏줄 아른아른 비치는 늙음이 다가와 있을 거다
여기서부터 가파르다
단물 빠진 거친 밥상 위
이제부터 제대로 맛을 아는 때라고
깊은 맛은 씹은 뒤에 안다고
넌지시 또렷하게 말하는,
- 시집『뒷모습』(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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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휙, 지나가버린 때"를 발로로 한 이 시는 그 지나감이 너무 막막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시인의 번민과 절망을 기록한다.
번민과 절망은 주방 구석에 앉아 울며 입에 상추쌈을 우겨 넣는 행위로 마침내 폭발(?)한다
비루하고 처절한 이 '먹음'의 행위는 바로 다음 행의 "혀를 깨물었다, 허가 씹혔다"는 문장을 통과하면서 일약 삶의 방식 전체에 대한 환유로 전환된다.
"혀"에서 "허"로, 음의 유상성에 기대 이루어진 환유적 도약은 다시 "환(幻)"으로 이행하며 삶의 헛되고 부박한 시상을 생생히 드러낸다.
"내가 먹은 게 너였나 / 너가 먹은 건 나였나"에서 보듯, 먹는 행위는 "사랑"과 "관계"의 속성도 함께 포괄한다. 울며 상추쌈을 먹는 순간에 만개한 이규리의 "허(虛)와 환(幻)"의 인생론은 그러나 여기에서 종결되지 않는다. "속치마 레이스 같은 환(幻)을 걷어내면 문득 / 실핏줄 아른아른 비치는 늙음이 바싹 다가와 있을 거다"라고 말하며 이규리는 환의 배후 또는 이후에 놓인 "늙음"의 숙명을 통찰하는 것이다.
이규리는 자신을 향해 "여기서부터 가파르다"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허(虛)를 씹으며 환(幻)을 걷어낸 자리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늙음의 미래는 "휙,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보다 훨씬 막막하고 허허로운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부터" "나"를 서서히 와해시켜갈 요령부득의 타자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생기와 실감을 지닌 실물(實物)에 의탁해, 즉 "퍼렇게 살아 있"는 상추쌈이라도 씹어 삼키며 허기진 생과 내면을 달래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위로받을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부터 제대로 맛을 아는 때"라는 사실이다. 이규리의 공허하면서도 필사적인 삶의 방법론에 의하면 그렇다.
이규리의 시는 삶의 거대한 허기(虛飢/虛氣)와 빈약한 생기(生氣)의 어긋난 지점에서 빚어진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들이 평탄하고 행복한 것일 리는 없다. 이규리는 "바닥을 지나"온 참담한 경험을 즐거이 시의 제일 자산으로 삼는다.
삶의 역동성과 실감이 비극의 현장에서 더욱 증폭되는 것처럼 이규리 시의 역동성과 실감 역시 고통의 순간들에 보다 뜨거운 형상을 갖춘다. (김수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