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으로 돈을 벌다 2
할아버지는 손금, 점술,
관상을 공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어린 시절에 등창으로 죽을 고비를 견디며
살았던 경험과 인내는
타고난 직관에다 침착함을 더해주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
장병두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좀더 널리 알려질 필요 가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야 해.
그래서 나는 꾀를 냈지.
백정들을 돈 주고 사서 여기저기에다가
아무개가 점을 잘 본다고 선전하게 한거야.
백정들은 자기들끼리
아주 의리 있게 잘 뭉치지.
처음에는 몇 사람
모인 곳에서 나를 선전하게 하다가
나중에는 큰 장터에서
장병두라는
사람이 관상을 잘 본다고 선전하고,
그러다가 전주, 천안, 수원까지 올라가서
여기 장병두라는
기가 막히게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며 돌아다니게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서울에서도 나를 찾는 사람이 생겨.
그 당시 백정들은 천한 직업이었지만 돈은 많았어.
소를 잡아서 파는 데 이익이 많이 남았지.
그런 백정들에게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듣기 좋은 말로 점을 쳐주면 아주 좋아하지.
잘된다는데 싫어할
놈이 어디 있겠어? ---좋은 소리해주고
--- '아들 잘 된다, 부자 된다'고
말해주니 나를 용한 점쟁이로 대접하지.
근데 백정들이니까 소 값에 가장 관심이 많아.
그래서 소 값을
미리 점 쳐주는데 이게 아주 잘 들어.
1월에는 소 값이 떨어지니까 그때 가서 소를 사라고
충고해주면 실제로 1월에는 소 값이 최하로 떨어져.
그럼 내 말을 믿고 소를 열 마리 사뒤.
그리고 소 값이 최고로
올라갔을 때 소를 팔라고 또 점을 봐줬지.
이익이 많이 남으니까
백정들 부인들은 항상 나에게 와서 점을 봤어.
우리 집 앞은 그런 사람들로 들끓있어.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돈이 막 벌리고,
아픈 사람 역시 내가 약만 지어 주면 나으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보면 서로 자기 집으로 들여서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고
나가려고 하면 주머니에 돈을 넣어줘.
그래야 자기들이 뭔가를 결정하려고 할 때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평소부터 잘 대해주는 거지.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라고,
실지로 나는 주역을
공부해서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어.
무조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야.
하늘을 쳐다보면 천문을 알게 되고,
땅을 보면 물이 어디서 나올지를 알게 되지.
비가 오지 않으면 우물을 파야 하는데,
물 나오는 곳을 척척 알아내어
파는 곳마다 물이 솟구치니
많은 사람들이 내 신통력에 놀랐던 거야.
그러니
산세를 볼 줄도 알아야 하고
음양오행 금목수화토를 꿰어야 해.
금목수화토를 몰라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점을 치고
어떻게 사람을 고칠 수 있겠어?"
육경신 수련으로 귀신들의 자취도 알게 되고
음양의 상대성의 원리로 자연의 이치를 통달하니
할아버지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도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번은 김제에서 조재남이란 사랍을 만나게 된다.
조재남에게는 조재두라는 형이 있었는데
김제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만석꾼이었다.
그런데 동생 재남은
미두를 하는 바람에 큰돈을 벌지는 못했고
그저 논 마지가나 조금 있는 형편이었다.
미두란 오늘날의 중권과 같이
그날그날의 시세에 따라
쌀을 사고팔아서 그 이득을 챙기는 장이었다.
마침 장병두가 김제에 갔더니 난장이 벌어졌다.
난장은
소나 광목을 걸고 벌이는 씨름 시합인데,
공식적인 허가가 있는 도박장이었다.
이렇게 난장이 선 날이면 각 마을에서
돈 좀 있다는
부자들이 모여들어 돈을 걸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때 조재남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할아버지에게 신기가 있음을 직감한
조재남은 미두를 자세하게 설명 해주면서
미두의 시세를 예견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그런 시세는 변화가
너무 많아 알기가 어렵다는 대답에
그러면 기왕 왔으니
씨름판에나 한 번 나서보라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로 돌아갈 차비를 구해야 하던차에,
씨름에서 이기면 쉽게 해결되겠구나
생각하고 할아버지는 시합에 나섰다.
실지로 체구가 날렵했던 터라
애기 씨름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드려가라는 말처럼,
난장에 씨름선수로 참여하는 사람을
조재남에게 소개받아
조언을 듣고 미리 연습도 해보았다.
드디어 난장이 열린 날,
할아버지는 여러
선수들을 물리치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이제 한명만 이기면
40자에 60자 되는 광목이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결승에 올라온 상대를 보니
지난번에 충고를 해주었던 바로 그선수였다.
할아버지는 오른발로
상대방 왼발을 같아 쓰러트리려 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힘에 밀려 주저앉고 말았다.
차비로 쓰려 했던 광목은 이미 물 건너갔다.
할아버지는 이긴 사람에게 서울 갈 차비나
조금 보태달라고 했으나
그사람은 1원 50전밖에 돈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때 서울 가는 기차 값은 2원 80전이었다.
속이 상했지만, 조재남이 나머지 돈을 보태주어서
겨우 차표를 끊게 된 할아버지는
그 보답으로 조재남의 상을 읽어주었다.
"당신은 내년 7월 23일,
그러니까 음력 6월 초하룻날 1시에
물에 빠져 죽을 상이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지.
그런데 조재남이 화가 나서는 멀쩡한
자기에게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다고
길길이 뛰면서 나를 경찰서로 끌고 갔어.
--- '아차, 말실수를 했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송아지는 물 건너 간 꼴이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서울 갈 차비까지 마련해줬더니
이놈이 나보고 6월 초하룻날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다면서,
형사 앞에서 이런 놈은 유치장에
가뒤서 콩밥을
먹여야 한다고 소리를 막 질러대잖아.
형사들의 만류로
간신히 조재남의 손에서 벗어났는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미 김제 시내에 소문이 짝 퍼졌어.
정말 7월 23일에 조재남이가
물에 빠져 죽는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거야."
그러나 할아버지는 조재남이 들거나 말거나
자신이 본 관상대로 피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3백 원을 준비해서 10원짜리 30개로 만들어놓고
광목 다섯 통과 쌀 세 가마니를 그날 장에 오는 사람 중에
가장 가난해 보이는 사람과
거지에게 적선하라고 일러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김제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정말로 조재남이 몸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천을 건너다가 자전거 앞바퀴가 그만
나무다리의 썩은 곳에
끼어 넘어지는 바람에 떨어졌는데,
강물이 불어난 데다 수영도 잘 하지
못해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예언이 정확하게
들어맞자 김제는 그 이야기로 술렁였다.
꼬리에 꼬리틀 물고 소문은 무성해졌고,
살이 덧붙어 도인이니
산신령이 붙었니 하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한편에서는 조재남이 1시에 죽는다고 했는데
실재 조재남이 죽은 시간은 5시니까
예언이 다 맞지는
않았다며 시간까지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는
이 일로 점쟁이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이런 소문을 다
듣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행동을 조심했다.
섣불리 움직이면 더 잡다한 소문이 돌아
돈을 벌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한 해 농사가 다 끝나는 정월달 즈음이 되면
부자들이 서로 자기 집에
와달라고 아우성치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때 김제에서 돈 많이 벌었지.
그때 돈으로 9백 원은 될 거예요.
군수부터해서 경찰서장, 형사부장,
일본 놈들까지 나를 부르려고 줄을 다 됐어.
그때는 부르는 게 값이야.
10원을 내놓으라면 30원을 내놓았고,
더 부자들은 50원도 성큼 주었지.
그 돈으로 논을 여덟 마지기나 샀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때도
그만한 땅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나는 순식 간에 그런 돈을 번 거야."
할아버지는 그시절이 좋았는지
얼굴에 웃음을 띠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한번은 광산 하는 사장이 왔어.
자기 광산에 금이 어디에 많이 박혔 냐고.
그래서 내가 광산 지도를 가지고 오라고 했지.
지도만 보고도
어디에 금이 많이 있는지를 알았으니까.
그 지도를 보면서
이 산 중턱에 올라 가면 바위가 세 개 있을 것이고
그바위를 들어내고 거기서부터 땅을 파 보면
금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어.
내 말은 적중했고
그 사장은 금을 캐서 벼락부자가 됐지.
물론 나에게도 큰돈을 주었어."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할아버지는
소문을 타고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의 소개로 조금씩 관상을 보던 중,
한번은 박홍식이라는
사람의 소개로 백 아무개의 집에 불려갔다.
그는 동대문 일대에서는
가장 부자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
그 집에 도착하자
하인의 안내로 여주인 앞에 서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그때의 .떨리는 심정을 이렇게 전한다.
'관상쟁이는 부자들에게 소문이 나야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나 관상에 관심이 없고
또 운명이 나 팔자를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지.
어쩌다 상을 봐달라는
사람이 있어도 거마비도 시원치 않고,
또 가난하니까 딱히 봐줄 상도 없단 말이야.
그렇다고 복도 지질이
없는 상이라고 하면 싸움이 일어나지.
자연히 돈 없는 사람들은 잘 안 만나게 돼.
그런데 백 아무개는 장안의 거부야.
이런 집에서 불렀을 때 잘 봐서
맞추지 않으면 상쟁이로서의 일거리도 끝이야.
그래 조심스럽게 들어갔 는데,
여주인이 자기가 아니라
딸의 상을 봐달라고 하거든.
딸 앞에서 숨을 죽이며
상을 보니 이 딸이 아기를 갖은 상이라.
시집을 간 것 같지는 않은데 아기는 분명히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주 난처하단 말이야.
딸이 아이를 가졌다고 본 대로 말하면
남의 딸 혼삿길 막아놓는
놈이라고 하인들에게 뭇매를 맞을 것 같고,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됐다가
나중에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면
상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놈이라고 낙인 찍히잖아.
그러면 부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상쟁이 노릇을 할 수가 없으니 이게 진퇴양난이라.
어서 본 대로 말하라는 부인의 재촉에
나는 우물쭈물거리면서
먼산을 바라보고 그냥 씨부렁댔지
. '아기는 있는데 누구의 씬가,
이 집안이 흥하려면 그 씨를 잘 보존해야 하는데...'
내 소리를 못 들었는지
주인 여자가 무슨 소리냐고 재차 물어.
나는 계속 똑같이 씨부렁댔어.
실지로 딸의 얼굴 눈 밑 와잠에 홍기가 있어.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약 2개월 된 아기가 들었거든.
관상쟁이가 그것도 못 볼 수는 없지.
그러나 이것도 말 해야
할 때가 있고 넘어가야 할 때가 있는 거지.
부인이 변변하지 못한 내 말에
눈을 앞뒤로 흘기며
박흥식이 보고 날 데리고 나가라고 하더군.
나도 어려운 자리라서 빨리 피하고 싶었지.
그런데 상 본 값을 못 받아왔잖아.
소개한 박흥식이라는 놈도
무슨 상을 그렇게 보아
사람 난처하게 하느냐고 야단을 치고.
그래서 나도 화가 나서 네가 그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딸의 경도가 언제 끊어졌는지 물어 보라고 했지.
박흥식이는 어떻게 자기가 딸의 경도를 묻겠냐고 또 따져.
그럼 내가 해야 되는 거냐고 나도 소리를 지르니까,
박흥식이가 상황판단을 해보더니 진짜 전화를 해본 거야.
그 부인은 박흉식의 이야기를 고분고분히 듣고는
딸에게 가서 경도가 언제 급어졌냐고 물어왔지.
근데 그 말에 마음이 찔리고
겁에 질린 달이 울먹거리니까 재차 다그친 거야.
혹시 지난달에 자기 집에 왔던 총각하고 잤느냐고.
딸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난리가 났지.
다음날에 박흥식이 다시 전화를 걸어
관상쟁이를 데리고 간다고 하니까 어서 모셔오라고 하면서,
아주 귀빈 대접을 하더니 상좌에 앉혀.
제발 해결방도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그 총각의 집안을 물어보니 괜찮단 말이
야. 딸도 좋아하는 듯하니,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빨리 식을 올리면
가문의 수치는 모면할 것이라 충고해주었지.
그러자 고맙다며 10원짜리로
열장을 세어 봉투에 넣어주더군.
그때 쌀 한가마니가 30원 할 때니까
미곡 세 가마니 값 아닌가. 큰돈이었지.
그 후부터는 내가 약점을 알고 있어서인지,
돈이 떨어질 때마다
그집 에 가서 '이리 오너라' 하면
안주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맞고 집 안의 여러 문제를 상담했지.
그러고는 항상 30원 이상의 돈을 쥐어줬어.
그렇게 해방이 될 때까지 그 집을 드니들었어.
물론 그 집은 나 때문에
해방되고서도 떵떵거리며 살았지.
지금 내 처지를 그때 그 양반들이
알았다면 아마 물심양면으로 도왔을 거야.
요즘은 이기적이라 자신만 알아.
힘들게 병을 고처주었는데도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정부에서 힘깨나 쓰는
놈들이나 국회위원이라는 놈들이나
다들 입을 싹 씻고 모른 체한단 말이야.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별 게 있겠어? 억울하면 출세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