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시집 제목인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이 한 문장은 한동안 대한민국의 화두처럼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순간의 장면으로 정의 내려진 ‘너’와 ‘나’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까? 잘 익혀낸 한 상으로 마주한 병어, 아귀, 우럭을 통해 모든 생명의 가치는 역시 ‘속’에서 찾아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병어회(찜)
목포에서는 오늘도 크고 작은 장이 설 것이다. 먼 바다에 나가 잡아온 신선한 생물을 손질하는 정확하고 빠른 손길과 부지런한 걸음으로 새벽을 깨워 장에 나서는 걸음. 목포의 매일 반복되는, 그러나 늘 신선한 풍경이다.
어느덧 ‘목포맛길’ 연재의 종착지에 도달했다. 아무래도 이날이 아쉬워 목포 시내를 하염없이 걷다가 별스넥 식당을 우연히 마주했다. 다음 날 약속을 정해놓은 식당인지라 이 우연이 참 반가웠다. 목포를 다니다 보면 지금도 ‘스넥’이라는 상호를 쓰는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스넥’의 뜻을 묻자 별스넥 사장님과 전영자 전남문화관광해설사가 입을 모아 일러준다. 소주방, 선술집 등 부담 없이 술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을 목포에서는 스넥이라고 했다고. 아마도 간단한 식사나 간식 거리를 뜻하는 스낵(snack)에서 온 말인 듯싶다. 아름다운 용모의 사장님은 ‘스넥’ 앞에 밤하늘의 찬란한 별을 가져다 썼다. 목포와 병어 하면 고유명사처럼 따라오는 별스넥의 탄생기다.
처음 만난 병어는 동그랗고 작은 눈이 순진해보였다. 처음 먹어 본 병어회는 순진하지 않은 듯 녹아내렸고, 고추 양념한 조림은 또 다른 인상을 심어주었다.
주방에서는 갓 잡아온 병어 손질이 한창이다. 그옆에 몸체가 엄청나게 큰 덕자(큰 병어)도 시선을 끈다. 흰살 생선인 병어는 살이 연하고 지방이 적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납작하고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이며, 동그랗고 작은 입에 몸 전체가 벗겨지기 쉬운 잔비늘로 덮여 있다. 잔가시도 많지 않아 손질도 간편하고 사계절 잡혀 언제나 신선한 상태로 맛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병어회는 배 부분이 제일 맛있어요.”
초록의 식물로 가득한 별스넥에 있노라니 마음이 더욱 여유롭다. 사장님의 손맛과 감각이 음식 맛을 보지 않아도 그려진다.
사장님이 거듭 권하는 뱃살과 매운 기 없앤 양파를 상추 위에 올린다. 뜨신 밥 한술과 쌈장에 마늘, 참기름, 통깨, 파를 썰어 버무린 양념까지 곁들여 한입 가득 넣는다. 고소함의 극치가 입 안에 들어찬다. 두툼하고 달달한 햇감자가 포슬 포슬 익은 병어조림은 또 어떻고! 참으로 실한 생선 살과 감칠맛 돋우는 얼큰한 국물에 손에서는 숟가락이 떠나질 않는다. 이 맛에 병어, 병어 하는구나.
아귀탕(찜)
아귀는 참 못생긴 생선으로 유명하다. 그 이름에서도 외형을 짐작할 수 있는데, 불교에서 아귀(餓鬼)는 살아서 탐욕이 많던 자가 사후에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귀신을 가리킨다. 아귀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큰 대가리와 상대를 집어삼킬 듯 큰 입에 뾰족한 이빨이 듬성듬성하니 옛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법하다.
“아귀는 이빨이나 뼈가 억센 부분이 많아서 기계 대신 일일이 손으로 손질해요. 그래야 부위별로 다양한 맛을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아귀를 잡고서 그냥 버렸다고 해요. 사람뿐만 아니라 생선도 외모로만 판단해서는 안 돼요. ‘오래 보아야 예쁘다, 아귀도 그렇다’네요.
복어촌 사장님이 큰 상 위에 아귀찜과 맑은 탕을 놓으며 친절한 설명을 더한다. “겨울에 잡은 1년 치 아귀를 급랭해서 사용해요. 제일 살이 탱탱하고 맛있을 때죠. 여름 아귀는 살이 퍽퍽해서 8월에 잡은 아귀는 판매하지 않아요.”
아귀찜을 먹을까, 탕을 먹을까 고민하지 마세요. 둘다 꼭 맛봐야 해요. 복어튀김·무침·냉채는 무엇을 시켜도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특히 아귀맑은탕은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목포 사람들에게는 ‘내 영혼의 수프’ 같은 것일까? 맑은 탕을 수저로 떠먹다 그릇째 들고 마셨다. 칼칼하고 개운해 속에서 엉긴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채소와 해산물을 푹 고아 만든 육수의 역할 덕분이리라. 고춧가루는 압해도, 소금은 신안 천일염을 사용한다는 복어촌의 아귀찜도 맛본다. 아무래도 내가 먹고 있는 것은 생선 이상의 것 같다. 어떤 부위는 쫄깃한 돼지비계 같기도 하고, 또 어디는 갈비를 뜯어먹는 것같아 식감이 재밌다.
양념을 어느 정도 남겨둔 후 볶음밥도 요청한다. 아삭아삭한 콩나물과 살짝 누룽지가 된 아귀찜 볶음밥은 또 다른 별미다. 아귀는 조기, 병어, 도미, 오징어, 새우 등을 통째로 삼켜서 완전 용해시킬 정도로 소화력이 뛰어나다. 아귀를 먹었으니 나도 소화력이 강해지려나? 목포9미를 눈앞에 두고 소화 걱정은 아무쪼록 넣어둘 일이다.
우럭간국
고백 아닌 고백을 하자면 취재를 하러 가는 날까지도 아귀하고 우럭의 명칭이 자꾸 섞여 나왔다. 두 단어가 모음 ‘ㅇ’으로 시작한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공통점도 없는데 말이다. 결론은 아귀와 우럭을 모두 맛보고 난 뒤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됐다는 것. 이름이 아닌 맛으로 차이를 구분하게 됐다니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허름한 골목 어귀에 26년 요리고수 배미숙 사장님이 만선식당을 지키고 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만선식당의 우럭간국은 술을 마시고 난 뒤 혹은 술과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우럭은 간 기능 향상을 돕고 국물은 술맛까지 살린다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고 긴 1층 식당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테이블마다 우럭간국을 놓고 해장이라도 하는 듯 얼큰한 추임새가 이어진다. 벽에는 누구누구 왔다 감, 사장님 손맛 못 잊음 등등 만선식당의 우럭간국을 먹고 난 뒤 감흥을 쓴 메시지가 적혀 있다. 이날 목포의 햇살은 눈부시고 바닷 바람은 시원했다. 옥상에 널어놓은 우럭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게 꾸덕꾸덕 말려지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양도 3일이면 다 쓴다고. 아, 그러고 보니 아귀와 우럭이 아주 조금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대가리가 크다.
“우럭을 다른 생선처럼 손질하면 먹을 게 별로 안 나와요. 시어머님과 첫 장사를 할 때부터 우럭을 반건조해서 사용했 는데 우럭 그 자체로 먹기도 좋을뿐더러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보관하기에도 편했죠. 우럭을 대가리째 넣고 푹 끓이면 뽀얀 국물이 나오는데 고춧가루 한 톨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있어요.”
#목포 #원도심 #골목 #바다 #우럭간국 #만선식당 제가 무엇을 말하려 함일까요? 꼭 다시 가고 싶단 말이지요.
무, 소금, 마늘, 홍고추, 청고추 등 최소한의 양념만으로도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맛이라니! 왜 식당의 손님들이 국물 한 술뜨고 ‘하-!’를 잊지 않는지 알겠다. 우럭은 영양가가 높은 생선이다. 피로해소, 간 기능 향상, 노화방지에 효능이 있으며 반건조하여 그 맛과 영양이 더 풍부하다. 언젠가 다시 만선식당을 찾을 땐 꼭 반주 한 잔 곁들이며 우럭간국을 즐기리.
목포9미 으뜸 맛집 - 병어회(찜), 아귀탕(찜), 우럭간국
목포는 항구도시이자 맛의 도시다. 목포9미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진지하기만 하다. 목포시에서 는 목포의 맛을 지키고 더욱 널리 알리고자 ‘2019 목포으뜸맛집’을 선정했다. 맛, 서비스, 분위기, 향토성, 청결(위생), 운영자 철학 등 6개 항목으로 구분하고 점수를 매겼다. 이번 편에서는 병어회 (찜), 아귀탕(찜), 우럭간국 전문식당을 간추려 넣었다. 목포 현지인들은 우스갯소리로 “목포에 와서 맛없는 음식을 먹었다면 정말 재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어디를 가든 우수한 식재료로 좋은 맛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돌다리는 두드려야 맛이니 ‘목포맛길’ 여행 시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