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월간바둑 9월호에 실린 서울대학교 정신과학교실 권준수 주임교수와의 인터뷰입니다.
월간지에 실리지 않은 분량까지 합쳐 사이버오로, 야후바둑, 한국기원의 뉴스란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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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취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한국 과학자들의 모습을 잘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대학병원에서‘스텝’이 된 의사들에게 ‘남는 시간’이란 사치에
가깝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20대 중반부터 정신없이 노력해 전문의가 되고 대학병원의 교수가 된다. 교수가 된 다음도 역시
연구의 나날이다. 새벽 6시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해 오후 9시 넘어 일과를 끝내는 시간이 과학자의 길을 그만 둘 때까지 반복된다고 보면 대체로
맞다.
얄팍한 상식과 겨우 얻어들은 지식으로 전문가를 취재한다는 것은 항상 괴롭다. 그러나 한 과학자가 바둑을 주제로 연구결과를
냈기에 약간의 의무감을 갖고 찾아가 봤다. 서울대병원의‘권준수’교수다. 지난 7월 14일 ‘바둑이 두뇌발달을 이끈다’는 제목으로 보도된 이
연구는 권 교수에겐 수많은 작업속의 작은 연구일지 몰라도 바둑계엔 꽤 큰 의미가 있었다. 바둑을 두는 것으로 인해 두뇌기능이 향상된다는 명제에
대한 첫 번째의 과학적인 입증이었기 때문이다.
8월 11일 서울대병원 본관에서 권준수 교수를 만났다. 전날 인터뷰 목록을 메일로
미리 보냈다. 권 교수는 미리 카피해 놓은 질문지를 보여주며 말한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미리 다 써놨어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연구팀에게
지시를 해놨죠.” - 질문지의 반이 전문용어와 함께 빼곡하다. 이번에 할당된 월간지 인터뷰 지면을 용량 초과할 만큼의 긴 답변들이다.
경악이다. 이걸 그대로 적어 옮길 수는 없다. 적어 준 답변을 잽싸게 읽으며 애초의 질문을 약간씩 다르게 다시 던졌다. 절제되고
정제된 답변을 일상의 감정이 실린 구어체로 조금은 바꿀 필요가 있었다.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 바둑, 과학을
만나다
- 중학교 때인가 내IQ를 훔쳐본 친구들이 굉장히 낮게 나온 수치를 보고‘개만도 못한 IQ’라고 놀린 적이 있다. 그래도
대학 졸업하고 한 걸 보면 ‘개’보다는 나았던 모양이다. 흔히들 말하는 '머리가 좋다'는 표현, 의학적으론 어떤 의미인가?
“머리가 좋다는 것은 단순히 지능이 높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IQ는 뇌기능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산수능력과
관련이 있다. SQ(Social), EQ(Emotional), NQ(Network) 등은 인간이 가진 사회성, 감성, 인맥관리능력 등의 다양한
뇌기능을 측정하지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뇌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복잡한 상황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바둑은 여러 이런 문제해결에 대한 최적의 과정을
끊임없이 찾고, 훈련한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뇌 기능 증가, 뇌 발달과 관련해
바둑을 주요 소재로 선택해 연구하신 까닭은? 다른 분야도 뇌 기능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바둑전문가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대부분 프로들이 어린 나이에 바둑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은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이 시기 교육과 훈련을 통해 뇌 기능 및
구조가 크게 변화한다. 이 같은 현상을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 부른다. 이번 연구에 포함된 바둑전문가들의 평균 나이가
17세이며 평균 11년 이상 수련을 받았다. 뇌가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에 장기간 훈련을 받았기에 뇌 발달 연구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두뇌과학’은 융합의 학문이다. 바둑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마인드 스포츠’아닌가. 바둑이 두뇌발달의 연구주제가 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 실제로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둑교실 원장님들은 이 연구로 인해 자신감을 얻었고 보람도 더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바둑이 끼칠 영향이란? 특히 교양부문으로서 꾸준히 배우고 즐긴다고 했을 때의 효과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바둑전문가 집단의 두뇌는 (바둑을 훈련하지 않은)일반인들에 비해 다양한 영역들 간의 상호
연결성이 집중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이들 영역은 집중력, 작업 기억, 수행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의 고급인지기능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바둑을
꾸준히 배우고 즐기면 바둑을 둘 때 필요한 기능들과 관련된 뇌 영역들이 보다 긴밀히 연결될 것이다.”
- 바둑을 오래 두면, 뇌의 연결성이 강화된다고 하셨다. 바둑을 두었을 때 뇌의 변화를 연구하셨는데, 전문적으로 바둑을
파고든 프로기사와 연구생을 연구대상 으로 고른 까닭이 있었나? 1년 정도 배운 사람들은 어떠할까? “‘네이처’지에 석 달간
저글링(juggling)을 꾸준히 연습한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하였을 때에 뇌에서 움직이는 사물을 인지하는 시각과 공간 영역에서
변화가 관찰되었다는 연구가 발표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특정 훈련은 뇌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여기에 꼭 수년이상의 장기간이 필요치는 않다.
바둑훈련도 1년 정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한다면 뇌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연구에서 10년 이상의 바둑훈련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바둑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바둑을 어떻게 배우셨는지? 바둑친구 등, 요즘에도 두실 시간이 있는지? “바둑은 6,7급 정도로 대학 의예과
시절까지만 두었다. 그 이후로 본과에 들어가고 나서부턴 바둑을 둘 시간이 아예 없었다. 대학에 남지 않고 개업했다면 바둑을 둘 수 있었을
것이다. 전공의 수업을 같이한 사람 중에 홍택유 아마 5단이 있다. 재능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다. 나 같이 재능이 모자란 사람들이 대학에
남는다. 하하 ”
권준수 교수는 96년 미국 하버드 대학 연수에서 뇌 영상술을 접하고 이를 배우게 된다. 2년 뒤 귀국 후 권
교수는 본격적으로 뇌 기능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 당시 정신과는 ‘심리 ’적인 분야로 과학적인 연구가 힘들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권 교수의
연구 논문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는 전환점이 됐다. 권 교수가 한창 연구를 진행하는 게 알려졌을 때에도 어느 저명한 교수가 “정신과에서
(과학적인) 연구 논문을 낼 수가 있네요?”했을 정도니까 두뇌과학, 정신과학에 대한 토대가 이때쯤 한국에 마련됐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권
교수의 연구는 한국 두뇌과학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준이 됐다.
○● 두뇌과학은‘융합’의
학문
- 국민의 10%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10%라면 정말 생각보다 많다. 정신의학의 발전가능성이 앞으로도 상당히
큰 것으로 이해해도 가능할까? 또한 약간 다른 의미지만 바둑과 같은 (마인드스포츠형)레저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는
걸까? “1%보다 훨씬 높다. 평생 3명 중 1명이 질환을 경험한다. 이중 11%정도만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다. 2001년의
8.9% 정도보단 많아졌지만 미국의 90년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의학은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고 국민들에게 다가설 공간이 많다. 뇌 가소성
이야기를 했었다. 근육을 사용하면 근육이 발달하듯이 뇌를 사용하면 뇌가 발달한다. 물리치료나 재활치료의 개념과도 같다. 불안함과 우울함을 느끼는
경우 바둑과 같은 종류의 마인드 스포츠형 레저가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나오고 있어 미래에도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 다른 학문들과 힘을 합쳐 나온 연구결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상의학과 관련이 많은 연구를 하시는 것 같다. 질시를
받으신 적은 없는지? - 정신(두뇌) 과학은 향후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질시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정신과 자체에 특정한 방법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간단히 이번 바둑과 두뇌발달에 대한 연구를 예로 든다 하더라도, 영상의학, 핵의학,
심리학, 해부학 등 다양한 계통의 지식과 도움이 필요하고 인문적으로 바둑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정신(두뇌)과학 자체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의학의 다양한 분야는 물론이고, 분자생물학, 수학, 통계학, 역사학, 철학, 심지어 종교와 명상 침술(한의학)까지도 융합한다. 정신과
물질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이런 융합학문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해나간다. 보통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으로만 이해하는데 신경전달물질이상으로
나타나는 뇌의 병이다. ‘융합‘의 방법으로 이런 새로운 발견을 이끌 수 있었다. 유전자지도를 그렸던 게놈프로젝트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간의 뇌 기능을 맵핑하는 브레인맵(International consortium for Brain Mapping)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연구를 위한 학회가 이미 구성돼 활동 중이다. 넓게는 인간의 종교 현상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두뇌과학은 종교와 철학의 영역에
있던 인지와 의식의 문제를 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신체 분야는 과거보다 많이 규명이 돼 있지만 아직 두되는 그렇지
못하다. 21세기는 두뇌과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 2008년 국제 정신약물학회의(CINP)
평의원회 위원이 됐다. 이게 뜻하는 바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도 됐었다. 한국의 어떤 가능성 때문인가? “정신과 학회가 따로
있는데 이곳은 다소 정치적이다. 반면 정신약물약회는 상당히 학술적인 곳이다. (이런 활동은) 한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뜻한다. 어마어마한
다국적 제약회사를 예로 들까? 국제적 신약 등을 개발할 때 한국에서의 임상실험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임상을 진행해야
하는데 자금이 엄청나게 든다. 최근에 한국에서의 임상실험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지만, 한국에 다국적 제약회사와
같이 뛰어난 바이오, 제약기업이 들어설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국제정신약물학회(CINP)는 소속 정회원
1000명이 직접투표로 5명의 평의원회 위원을 선출한다. 2008년 권준수 교수가 선출된 것은 한국인으로선 최초였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국제학회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다.
○● 느림의 미학 - 한국 프로기사들은 흔히
징크스 같은 게 있다. 두통이 있는 사람도 있다. 중국 프로들도 승부에 집착이 심하니까 모르긴 해도 이런 게 있을 것 같다. 이런 직업적
(이창호 9단처럼) 두통 같은 것이 떠나지 않는다면, 어떤 대처방안이 있을까? “취미로 즐기는 것과 직업으로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용수철은 늘어났다가 줄어들곤 한다. 이를 계속 당기고 있으면 손을 놔도 용수철이 늘어나서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긴장상태를 너무
오래 지속하면 (두뇌가) 이 늘어난 용수철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면 원래의 정상상태로 가지 못하고 항상 긴장성 두통이 지속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새로운 시도를 싫어하는 경향의 사람도 있다. 항상 접하던 환경이 바뀌거나
하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사람들이다. 조그마한 변화도 싫어하게 된다. 오랜 세월 같은 훈련을 반복한 바둑전문가 집단은 여러 폐쇄적인 특징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전문가집단에도 그런 일이 많다. 당연히 어떤 불안으로 특정행동을 지속하거나 하는 일종의 강박도 많이 나타날 수
있다. 대처 방법은 가장 일반적인 것들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규칙적인 생활이다. 그 다음은 가벼운 야외활동, 명상, 종교, 운동, 아,
연애도 도움이 된다. 이창호 9단이 결혼한다고 나왔던가? 아마 여러 가지로 호전이 됐을 것이다. 사회성도 더 좋아졌을 것이다.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 한국의 자살률이 몹시 높다. (자살은 사회과학의 고전적인 주제다. 자살률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와 같은 고도의 위기 상황에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전 세계 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 것이다.)
과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살은 정말 큰 문제다. 원래도 높았었는데, 최근 2~3년간 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게
됐다. 사회전체가 급격한 변화를 겪다보니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가 급증한 것이다. 외국에선 10년이 지나도 주변 환경이 거의 그대로인데, 한국은
10년의 변화가 하루에 일어날 정도다. 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바둑에서도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있지 않나. 바둑에서 한 수를 둘 때 항상
생각하고 참을성을 키우는 것처럼 조급증을 줄여야 한다.”
- 돌연 죽고 싶을 정도로 심심하다거나,
뭐하려고 사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거나. 무력해지고, 당장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거나, 사는 건지 죽은 건지 모르겠는 그런 상황, 그럴 때 어쩌면
좋을까? "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경우다. 예를 들어 10년간 항상 같은 일상을 반복해 온 사람이면 어떨까? 만족이
떨어지겠지. 사람은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될 때 만족을 느끼는데, 이게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새로운 자극들은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킨다.
삶의 활력을 찾아주는 것이다. 자 이런 질문을 해보자.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할까? 행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새로운
자극이 없고 목표가 없어지면 안정된 삶이라도 우울증 같은 것이 찾아온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삶이 정말 힘들면 심심해서 죽고 싶은
그런 마음은 아예 안 생긴다. 이런 건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기도 하다.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즐거움과 활력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을 동시에 느껴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기도 한다.“
○● ‘권준수’를 말한다. 과학자는 매력이 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는 삶의 이치,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존경을 받는 것은 대체로 그러한 이유가 있다. 과학자의 전공이 의학인
경우에는 더욱 매력이 커진다. 그의 목적은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의사(醫師)에는
선비사(士)가 아닌 스승 '사(師)'자가 들어가 있다. 의사에게 검진을 받을 때 보통 ‘의사 선생님’이라고 한다. 두 번씩이나 ‘선생님’을
호칭하는 극존칭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 박사님, 교수님 중에 좋아하는 호칭은
있는지? “박사님은 학술적인 것이고 교수님은 대체로 권위적인 느낌이 난다. 선생님이라는 말 속에 존경심도 있고, 친근감도 녹아
있다. 선생님이라 호칭해주는 것이 좋다.”
- 술도 잘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 의사들의 인턴,
레지던트 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한데, 그런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나? “옛날에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땐
잠잘 시간조차 없었다. 일을 시키거나 명령을 내리지 않는 10분이라도 있으면 그 때 얼른 쪼그려 자는 게 하루잠의 전부였다. 술 먹을 시간이
있었겠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수련의들은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 술은 좀 더 나중에 먹게 됐다. 병원에서 홍보팀장을 잠시 맡았을 때처럼 더
많이 마실 때가 있었다.”
- 정신과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몹시 쾌활하고 개방되어 있고 말도 잘하고 상담도 잘하고, 그렇다고
들었다. 권 교수님 같은 경우 다른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멋진 의사, 기분 좋은 명의' 등으로 소개한 것을 봤다. 이런 특징은 어떤 직업적
요인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일종의 선입관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말도 잘하고 다 쾌활하고 그럴 것이라
여기지만 정신과 의사는 ‘입’이 아니라 ‘귀’로 먹고 산다. 가령 상담하러 온 환자는 의사의 명쾌한 말 한마디로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의 말 한마디로 증세가 호전될 정도면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 그런 식의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가령 장애아를 낳아 우울증을
겪는 산모를 예로 들어보자. 그 어머니의 고통을 어떻게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그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게 첫 번째다.
모든 환자를 대하는 첫 번째가 들어주는 것이다. 의사가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환자들이 처한 상황자체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 많다. 어쩌면 해결자체가 불가능하다. 비관적인 면도 인정한다. 우리가 처한 삶의 많은 부분이 고통의 바다다.”
- 현대 의학 드라마를 보면, 스텝(교수)이 되기 위한 경쟁, 스텝이 되고나서의 경쟁, 그런 게 엄청나게 치열한 것으로 많이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도 상당히 그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맨 날 다른 사람의 정신건강만 주로 보시는데, 반대로 교수님이 그런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누구와 상담하시나? 어떻게 푸시는지?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뚜렷한 방법은 없다. 내 성격이다.
열심히 하는 것 외에 그 이외의 것엔 관심이 없다. 겉보기와 달리 내가 좀 게으르다. 잠자는 게 취미고, 시간 내서 운동을 하려하는데 어렵고
쉽지 않다. 전에는 술도 좀 먹었는데 지금은 많이 먹지 않는다.“
- ‘허준’이란 드라마가 가끔
리메이크씩 되는데 항상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의사란 직업에 사람들이 많은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매력이 뭘까? ”의사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궁극점이 바로 생명인데 이를 다룬다. 당연히 그에 대한 관심도 높고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존경심은 예전과 달리 점점 낮아지고 있다.“
- 의학을 진로로 결정한 어떤 배경이
있으신지, 그 중에서 다시 정신과를 택하게 된 이유가 또 있는지? 선생님이 전공을 택할 당시에는 외과와 내과가 특히 더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밀양에서 태어나고 대구에서 공부했다. 마침 정치가 어지러울 때였는데(10,26등) 집에서 뚜렷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의대를 권유해 가게 됐다. 하하. 원대한 포부가 있던 건 아니고. 내가 정신과를 택할 때만 해도 정신과는 인기 좋은 전공은
아니었다. 의대생은 의대 본과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여기서 (의대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기질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강한 사람들이 내 이전엔 정신과를 많이 택했었다.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게, 약간 염세적이기도 하고 내성적이기도 했다. 삶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관심,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같은 그런 성향이
있었다.”
- 어떤 기사에선 선생님이 주임교수가 된 것이 세대교체를 뜻한다고도 나왔었다. 또 선생님의 연구가 한국 정신의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올랐다고도 평가했다. "나 이전까진 주로 심리치료를 많이 택했다. 96년 하버드대학
연수에서 ‘뇌 영상술’을 배워 오면서 많은 연구를 하게 됐다. 논문도 많이 썼다. 이게 신기해 보였던지 어느 저명한 교수님이 ‘정신과’에서도
논문(정신과에서 과학적인 입증이 가능한)이 가능한 거였어? 라며 놀라워했다. 내 이전에 정신의학에 심리적이고 인문적인 관심이 많았다면 내
이후엔 좀 더 학문적인 뇌 연구에 관심이 많아졌다. 내 업적의 수준이 높다고 말하긴 그렇다. 또 최근엔 다른 대학에서도 두뇌과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나의 연구가 혹은 우리세대의 연구가 한국의 정신의학이 연구를 해나가는 방법을 과거보다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 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 어떤 의사, 혹은 어떤 과학자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후배들에게
비록 의사가 아니었어도 열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적당히 즐기면 사는 그런 것 보다, 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그런 사람으로 기억 됐으면 좋겠다. 업적을 떠나, 뭘 하든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둑이 한국에서 수 천 년을 살아남아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까닭은 분명 인간의 내부에 존재할 것이다. 우석훈 박사는“천 년
전에 즐기던 놀이 중 지금 우리가 즐기는 놀이는 바둑 말고 딴 게 있나요? 다른 거 찾기는 힘들죠? 분명 바둑만의 미덕이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었다. 21세기의 우리는 그 ‘미덕’을 과학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둑이 과학을 만났다. - 바둑을 두면
두뇌 기능이 발달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결론이었으나 과학적 규명소식이 알려졌을 때 바둑교실 현장에서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
우리는 바둑의 한 가지 미덕을 과학적으로 새로 발견한 것이다. 권준수 교수는 그 미덕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한국 바둑의 역사에 새겨질 것 같다.
○●권준수 권준수 (59년생) 서울대 의대 졸업, 동대학 박사,
교수 1994년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교수 1996년~98년 미국 하버드대학 정신과학교실 연수 2008년~(현재) :
국제정신약물학회(CINP) 평의원회 위원 現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장
SCI논문
150편, 국내논문 147편 등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 정신의학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연구는 핵의학, 영상의학, 해부학 등의 관련 학문은 물론 철학 심리학 역사학 한의학 등 거의 모든 방면에 걸친 관심과 협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모든 학문 간의 융합’정신이 중심에 있다.
[취재 : 최병준,
김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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