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 읽을수록 간결하면서도 재미있는 구약 성경이 한권 있는데, 요나서입니다. 요나서는 예언서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예언서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닙니다.
통상 다른 예언자들은 장황하고도 엄숙하게 하느님의 신탁을 백성들에게 전하는데 비해, 요나 예언자의 신탁의 말씀은 딱 한 마디 뿐입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서 3장 4절)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보통 다른 예언자들은 비록 주님의 명령이 두렵고 떨렸지만, 거부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때로 너무 부담스러워 주님께 따지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지만, 대체로 마지막에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주님께서 전하라고 하는 말씀,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그 성읍을 거슬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나에게까지 치솟아 올랐다.”는 예언의 말씀을 들은체만체 하며, 주님을 뒤로 하고 도망쳐버렸습니다. 부담스런 주님과 엮이지 않으려고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타버린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순종한 요나를 절대로 그만두지 않으십니다. 요나가 탄 배에 철퇴를 내리십니다. 큰 폭풍을 일으켜 배가 거의 부서질 정도가 되게 하십니다. 난데 없는 불행의 원인이 요나였음을 뱃사람들이 알게 되고, 졸지에 요나는 인당수에 재물로 바쳐진 심청이처럼 깊은 바닷 속으로 던져지고 맙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 밤낮을 갇히고 나서야 요나는 참회와 동시에 찬양의 기도를 주님께 바칩니다.
“제가 곤궁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당신께서 바다 속 깊은 곳에 저를 던지시니 큰 물이 저를 에워싸고 당신의 그 모든 파도와 물결이 제 위로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를 구렁에서 저를 건져 올리셨습니다.”(요나서 2장 3~7절)
일종의 사흘간 죽음 체험을 진하게 하고 난 요나는 주님의 크신 자비에 힘입어, 겨우 큰 물고기 뱃속에서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든 요나는 주님께서 주신 신탁의 말씀을 니네베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놀랍게도 요나로부터 전해진 신탁의 말씀에 니네베 주민들은 임금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대신들과 백성들이 참회를 하게 됩니다. 단식과 금육을 실시하면서 크게 가슴을 쳤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좀 웃기은 일인데, 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가축들에게까지도 자루옷을 입혔습니다. 요나의 신탁에 대해 니네베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회개하였으며, 주님으로부터 전격적인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참으로 특별한 요나의 처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즉각적이고 집단적인 회개로 용서받은 니네베 사람들의 모습 앞에 큰 불평을 터트립니다. 이방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의 처신에 분노한 것입니다.
요나의 구원관은 참으로 편협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인들만이 주님의 백성이고 구원의 대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도시 니네베 사람들의 회심과 구원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니네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런 요나를 향해 주님께서는 장엄하게 구원의 보편성을 선포하십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른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서 3장 11절)
우리 주님은 크고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그분께는 요나도 소중했지만 니네베 사람들도 소중했습니다. 그들 역시 당신께서 손수 창조하신 사랑스런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선물로 주실 구원이 혈연이나 지연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재확인하신 것입니다.
요나서는 주님의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한없이 넓고 무한한 표용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선택받았으며 구원의 대상이라고 착각하는 유다인들의 편협된 구원관을 여지없이 파괴하셨습니다.
나도 주님 구원의 대상이지만, 내가 가급적 멀리하고 깊은 이웃, 내가 정말 미워하는 이웃,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하는 이웃도 주님 구원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