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밤낮없이 이 섬을 지키고 살아요. 내가 늙어 세상을 떠나더라도 누군가는 섬을 지키고 살 것 아니요."
여수의 독도로 통하는 수항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곽후방(83) 할머니의 말이다. 할머니는 지난 세월 살아온 날이 한이 됐는지 기자와의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연신 눈시울을 적셨다. 특히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안함과 애틋함이 눈물로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11년째.
지난 10일, 마을 전체 가구 수는 2가구. 80대 노인 3분이 모여 사는 외로운 섬 수항도에 다녀왔다. 수항도는 비렁길로 유명한 여수시 금오도 대유마을 앞에 보이는 외딴 섬이다.
수항도에는 나룻배가 없다. 이곳에 가려면 여천동 여객터미널에서 내려 유송리 대유마을까지 가야 한다. 대유마을에서 수항도 까지는 직선거리로 1km가 안 되는 거리다. 뱃길로는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배가 없으면 갈 수 없는 천 리 길이나 다름없다. 또한 수항도의 면적은 1만6천여 평으로 독도 크기의(5만6천여 평) 약 1/3정도인 섬이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69년경부터다. 태초 천안 김씨 덕순이라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다 살기 좋아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다가 금오도 대유마을로 이주했다. 이후 창원 황씨 등이 들어와 2대를 이었고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이섬이 얼마나 명맥을 이을지 의문이다. 섬주민들이 여든의 나이를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섬에 닿으니 외지인 반겨주는 녀석 있었네
수항도(水項島)의 본래 이름은 '섬목섬'이다. 이 섬의 이름은 수항도라는 뜻을 가진 '작은 버들개' 마을 앞의 '물목섬'의 이름이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되면서 바뀌게 됐다. 섬 모양도 특이하다.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항아리를 닮았다고 해서 수항도라 불린다. 이 섬은 바다를 밑천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돈목섬' '물목섬'이라고도 불린다.
수항도에 들어가는 배를 구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여수에서 배를 타고 40여 분을 달리자 수항도 방파제에 도착했다. 파도에 쓸린 작그마한 방파제는 젊은 사람조차 내리기가 힘들다. 군데군데 파도에 패인 방파제 때문에 잘못했다간 돌 틈 사이로 빠지기 십상이라 조심조심 오르내려야 한다. 방파제를 보면서 이곳 낙도에는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리니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놈이 있다. 바로 '복구'라는 개였다. 복구는 처음 본 사람을 반겼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개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나 보다. 이후 복구는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복구를 따라 걸으니 첫 집이 나온다. 바로 곽후방 할머니의 집이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는 밭에서 마늘을 캐느라 손길이 바쁘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서 여수에 있는 막내딸의 집에 머물렀다 왔더니 지심(잡초)이 사방에 널려 있고 마늘도 다 썩어 버렸다"고 걱정이다. 이후 한참을 오르니 정상에 두 번째 집이 나타난다. 이곳은 이도기(82) 할아버지가 사는 집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할아버지 내외는 이날 병원 차 여수에 나가셨단다.
곽후방 할머니 "자식들아, 휴가 때 좀 왔다가거라"
곽씨 할머니는 허리가 불편하다. 허리를 다친 것은 40대 중반 무렵. 보리비늘을 쌓다가 떨어져 허리를 못 쓰게 됐단다. 이후 뒤늦게 병원에 다녔으나 허사였다. 할머니는 꾸부정한 허리를 붙잡고 다녔다. 또한 할머니의 자녀는 4명이다. 아들 둘은 서울에 살고 있고, 딸들은 뭍에서 살고 있다. 자식들 중에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보냈다는 막내딸이 할머니를 많이 도와준다고 자랑이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여기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이 뭐예요?
"좋은 것은 없고, 늙어서 섬에서 자식들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래도 우리 자석(자식)들은 성 안 가시고 즈그 아버지가 시킨 대로 커 줘서 고맙지. 즈그 아부지(아버지)가 고등학교는 마쳐줄 테니까 그 이상은 군대 갔다 와서 야간 대학교를 댕기면서(다니면서) 느그들이 자립하라고 했는데 아들이 큰 회사에 들어갔어요, 가장 걱정은 작은아들이 몸이 아파서 늘 걱정이요...(눈물)"
현재 여수시에 속하는 섬 중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섬은 5개다. 그곳은 대·소늑도, 금죽도, 광도, 그리고 수항도다. 수항도를 제외하고는 오지의 섬들이다.
하지만 수항도는 금오도와 가까운 거리인데 아직 자가발전기에 의지하고 있다. 이 섬에 전깃불은 하루 2시간 정도 볼 수 있단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자가 발전(5kw)에 의존하다 보니 냉장고, TV는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그나마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는 이곳의 유일한 남성인 할아버지만 가동할 수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디젤 발전기는 하루에 2시간 정도 가동되는데 발전기를 돌리는 시간에만 전기를 쓸 수 있다. 21세기 문명의 이기에 살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도 19세기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가뭄이면 바다 건너 물 구해오는 사람들
할머니의 가장 큰 소원은 전기를 맘껏 써보는 것이란다. 그런데 얼마 전 낙도 봉사단의 도움으로 할머니 집에 태양광 시설(2kW)이 설치됐다. 자가발전 없어도 2시간 정도는 전기를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래도 이것으로 냉장고를 돌리기는 무리란다. 할머니는 "태양열이 지금 4판인데 8판을 돌리면 냉장고도 돌리고, 불도 많이 볼 수 있지만..."이라며 말을 잊지 못한다. 오늘처럼 할아버지가 여수라도 나가고 없으면 발전기를 돌릴 사람이 없다. 또 기름도 배달할 사람도 없으니 태양광을 추가로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수항도는 물사정 역시 별로 좋지 않다. 식수는 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사용한다. 빨래는 염기가 많아 빗물을 받아 해결하고 있다. 섬이 작다 보니 가뭄이라도 들면 물사정이 좋지 않아 바다 건너 대유마을서 물을 실어와 식수와 빨래를 해결한다. 이 때문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빗물을 받기 위해 약 50드럼 정도 들어갈 있는 저장고를 만들었다. 이후 비가 올 때 빗물을 받다 빨래를 해 입고 소독약을 넣어 생수로도 사용한단다.
할머니는 또 "배 닿는 방파제가 너무 작아서 파도가 센 날이면 배를 댈 수가 없고,방파제를 오르내리는 계단이 없어 나이 든 사람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선창(방파제)하고 손 봐주고, 태양열 전기 (시설) 한 판만 더 설치해주면 소원이 없겠네"라고 불편한 점을 털어놨다.
섬사람들이 그리워 하는 건... '사람 냄새'
인적없는 수항도를 뜨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타본 사람만이 그 내면의 고통을 안다. 외로움을 낙(樂)으로 삼고 묵묵히 섬마을을 지키고 계신 이곳 어르신들. 사시사철 바람 소리, 파도소리를 벗 삼아 살아가는 수항도 주민들의 평균 나이는 80세가 넘는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은 듯하다. 섬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 냄새다. 하루라도 빨리 뭍사람들에게 사정이 알려져 남은 여생을 전깃불이라도 맘껏 보고 살 수 있게끔 온정의 손길이 닿았으면 한다. 마지막 수항도를 떠나면서 할머니께 자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아이고, 내 자식들아 사랑한다. 순성아! 보고잔께(보고 싶으니까) 휴가 때 한 번 꼭 왔다가라잉~!" |
|
첫댓글 아직도 이런 곳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