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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자르지않고 ,
물에 넣으면 아기는 수영을 할수있다
인중이 깊고 뚜렸하다면 동안
지옥보다 천국의 온도가 더 높다.
갈릴레이는 물속에서 숨쉬는 방법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악용될까봐 알리지않았다.
개미는 2차원 , 사람은 3차원 귀신은 4차원.
흔히 우리는 꿈에서 좋아하는 사람이나 연예인등의 사람들과
뽀뽀하고 접촉을하게된다.
그것을 귀접이라고한다.
무당이 귀신의 모습을 설명할때
눈알은 튀어나오고 , 머리숱도 없고 ,
앙상하고 핏줄이 선명히 보이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즉, 골룸과 비슷한 생김새라 하겠죠.
무당의 관점에서 ,
죽을 날이 멀지않은 사람이 오면
그사람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시력은 원래 7.0..
빛을 받으며 퇴화한다.
미국 경찰들은 코카콜라를 들고다니는데 ,
그이유는 코카콜라가 핏자국을 지우는데
용이하게 사용돼기때문.
코카콜라 원액을 마시면 죽게된다.
코카콜라의 비밀을 아는사람은
같은자리에 있어서도 안돼고
술도 못마신다.
하루에 평균 12명의 신생아가 병원에서 바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손으로는 그림을 ,
또 다른 한손으로는 글을썻다.
말보루회사 사장은 폐암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얼굴은 ,
전생에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
바퀴벌레는 머리를 잘라도 살수있다.
배가 고파서 죽기만 한다.
시리얼은 성욕을 억제하기위해서 만든 음식.
사람이 심해에 들어가면 ,
수압때문에 찌그러져 죽는다.
피가 우리몸을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 1분
하루에 우리입안에 고이는 침의 양 1.8L
한달동안 자라나는 머리카락 길이 ~1.5cm
보통 사람의 머리카락 개수 약 10만개
1분동안 눈을 깜박이는 횟수 25번
우리몸에 있는 세포 수 100조개
체세포 한개에 들어있는 유전자의 길이 2m
우리몸 속에 살고있는 미생물 수 100여종류,100조개
'지금;은 존재하지않는다.
당신이 '지금'이라고 불리는 시간은 1초씩 지나가기 때문
사람들이 개고기를 좋아하는이유는,
개고기가 인육과 제일 비슷한 맛을 지녔기때문.
사람과 가장 가까운동물은 고릴라다.
달의 뒷편은 볼수없다.
베스킨라빈스 사장이 자신의 회사제품을 먹지않는이유는
그것들이 몸에 해롭기 때문
가슴을 성형한 사람이 죽게되어 몸이 썩어사라지면
가슴에있던 보형물만이 남게된다.
히틀러 , 그의 두개골은 여자의 두개골이었다.
미래에는 사람이 컴퓨터만 하고 살아서
자판을 두드리는손가락은 길어지고 발은 작아진다고한다.
머리는 몸의1/2가돼고 , 더 많은 정보를위해 눈도 커진다.
즉 , 외계인의 모습이 돼는것.
어떤 남자가 냉동고에 갇혔는데
그 냉동고에서 얼어죽었다.
하지만 그 냉동고는 망가진 냉동고.
당시 온도는 18도였다.
어떤사람에게 등에 칼을찌르면 30분뒤 죽는다는 영상을보여준뒤 ,
그사람의 눈을가리고 알코올을 묻힌
면봉을 칼이라고 말한뒤 30분후에 그사람은 죽었다.
우리나라는 원래 Corea였다.
1800년의 어느날 , 런던에는 개구리비가 내렸다.
조사한결과 , 개구리알이 수증기에의해 하늘로올라가 ,
하늘에서 부화 , 무거워지자 개구리비가 내린것
사람은 목이 잘려나가도 30초간 의식이 남아있다.
사방이 온통 빨간곳에 사람을 가두면 ,그사람은 미친다.
제채기를 할때는 몸의 기능이 잠시 중단된다...
몸속에 남은 단백질때문에 사람은죽어서도 3일후까지는
손톱 , 발톱 , 머리카락등이 자라난다.
어른이 모유를 섭취하면 배탈이난다.
신사의 나라인 영국에서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
라이터는 성냥보다 먼저 발명된도구.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에 비해 평균 9년정도 오래산다.
중국에는 미국보다 영어회화가 가능한 사람 수가많다.
사막에서 익사하는사람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많다.
NASA에 한국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않는다.
말 하려다가 그만두면 뇌세포가 사멸된다.
목성은 태양처럼 변해간다.
숨겨져있던 고문서 , 성경 , 예언, 옛달력등은
모두 2012년까지밖에 존재하지않는다.
몸이 간지러운데 간지러운곳을 알수없거나
뼈가 간지러운 느낌이든다면 귀신이 자신을 쓰다듬고있는것
바퀴벌레가 먹지못하는것은 존재하지않는다.
쾌락을 느끼면서 자살할수있는방법은 목을매는것.
같은꿈을 3번꾸면 예지몽
사람의 뇌를 완벽히연구할수없는 이유는,
사람의 뇌를연구하는것이 사람의뇌이기때문.
의사들은 초음파만 봐도 아기의 성별을 구분가능하다
다만 아기를 지울까봐 말을 해주지않는것이다.
리모컨을 사용할때 나오는 청백색의불빛은 ,
육안으로는 볼수없지만 ,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서 볼수 있다.
히틀러는 좀비실험에 성공했지만 ,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죽였다.
이상한 문서
1945년 독일 패망 직후, 미국의 OSS는 베를린 시내에 있던
히틀러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의 관저에서 이상한 서류들을 발견했다.
그 중 '화학'과 '마술'이라는 이름의 두 문서에는
훈장을 받은 군인들의 신상과 사진들이 사례연구 형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사망한 후 곧바로 냉동되어져서 베를린의 친위대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들의 시체는 힘러가 비밀리에 추진한 프로젝트에 사용되었다.
서류를 분석한 결과 문제의 프로젝트가 죽은 군인들을
과학과 마술 등을 이용해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마술'이라는 문서에 있는 사례 중 아돌프라는 이름의 군인 파일의 첫 페이지에는
아돌프가 1944년 1월에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총을 맞고서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지하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페이지에는 분명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던 아돌프가
철제 침대에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는 사진이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아프리카 사람처럼 보이는 한 중년 여인이 이상한 액체를
입에서 연기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OSS 요원들은 문서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힘러의 관저를 지키던 친위대원들을 추궁했다.
그러나 그들은 금고 안에 있던 문서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 후, 마술이라는 문서에서 아돌프의 신체에 각종 실험을 한 결과를 찾아냈다.
그들은 아돌프를 되살려낸 후 신경 반응, 언어구사력이나 명령 복종 여부 등을 테스트했다.
문서에는 테스트를 마친 후 아돌프를 다시 죽여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OSS 요원들은 아돌프가 묻힌 공동묘지를 찾아가 그의 무덤을 파보았다.
문서상으로 죽은 지 일 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체는
전혀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OSS 요원들은 '화학'이라는 이름의 문서도 분석했다.
이 문서는 죽은 이들의 시신을 화학반응을 통해 다시 살려내는 실험이었다.
그들은 실험에 참가했던 친위대 의사들의 소재를 파악했다.
얼마 후 OSS는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의사들 중
몇몇을 찾아 그들에게 이 프로젝트에 관해 물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실험을 했었고, 결과도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대답했다.
이후 OSS는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의사들을 이용해
'펄스폰(Pulse Phone)'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45년 시작된 펄스폰은 주로 고도의 화학 처리를 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종의 좀비 프로젝트였다.
미국은 이 기술을 고급 정보를 보유한 채 사망한 적국의 유명인사들이나
뜻하지 않게 급사한 아군 측 정보요원 등을 되살리는 데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좀비 프로젝트는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푸른 하늘에 흰 물감으로 그린 듯 길게 뻗어 있는 한줄기 구름.
일명 비행운(飛行雲)이라 불리우는 풍경이다.
하지만 일견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풍경 뒤에
무서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그 구름이 비행기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수증기 구름이 아니라
소독차 뿌리듯이 분사되는 화학물질이라면?
설마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비행운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드러내고 있어 충격을 더 한다.
<살포된 후 하늘로 퍼져나가는 켐트레일>
켐트레일의 정체
비행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콘트레일(contrail)'로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통의 비행기 구름이다.
이 구름은 비행기가 약 30000피트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날아갈 때 발생되는 것으로서,
공기가 물의 기포로 압축, 또는 엔진을 통과하면서 얼음 결정체로 되거나,
날개가 공기를 밀어낼 때 발생된다.
이렇게 해서 생긴 구름은 기포가 다시 증발하면서 보통 몇십 초 정도,
길면 10여분 사이에 모두 사라지는 정상적인 자연 현상이다.
그런데 비행운 연구가들이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구름은
이러한 정상적인 콘트레일이 아니라
'켐트레일(chemtrail)'이라는 비정상적인 비행운이다.
켐트레일은 위에서 언급한 콘트레일과 완전히 다른 구름으로서,
콘트레일처럼 짧은 시간안에 사라지지 않고,
양옆으로 서서히 퍼져서 안개구름의 형태로 바뀐다.
실제 관측의 기록을 보면,
이 구름은 하늘 전체로 퍼져 나가 3시간에서 8시간 정도 머물러 있게 되는데
그 구름이 살포된 지역의 하늘은 원래의 푸르른 모습이 사라지고
검고 어두운 회색 빛으로 변하게 된다.
<두 종류의 비행운>
그렇다면 대체 이 켐트레일의 성분이 무엇이건데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일까?
이것은 기름형태의 물질로서 주로 인구 밀집 지역에
살포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생물학적 배경이 밝혀지지 않은
백혈구와 적혈구, 알루미늄,
마이콥플라즈마(mycoplasma: 바이러스와 세균의 중간성질 미생물),
각종 바이러스, 타 알려지지 않은 생물학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채취된 백혈구와 적혈구 사진>
이 켐트레일이 살포되는 지역에서는 호흡기와 관련한 만성질환과
기타 질병들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켐트레일을 살포하는 비행기들은 어떤 표식이나 장식이 없는
흰색 비행기가 대부분인지라
소속은 물론 이착륙 지점이 어디인지도 미궁에 싸여 있어
의구심을 더하게 한다.
<중간에 끊겨진 켐트레일>
밝히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1998년 2월 13일, 미국의 네바다주에 거주하는 라미레즈 산체스씨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가 이상한
액체를 뿌리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이를 뒤쫓다가 그만 그 액체를 뒤집어 쓰게 된다.
그는 그 액체를 비닐에 담아 경찰서로 가져가 신고를 했는데,
테러일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급기야 FBI까지 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FBI요원이 도착했을때에는 이미 산체스씨는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실려간 후였으며,
그후 3일 뒤 숨을 거두게 된다.
탄저병균이 아닌가 의심이 든 FBI는 미육군의 화생방부대를 불러
현장에 즉시 투입을 한 후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문제의 액체는 알 수 없는 종류의 미생물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급기야 국방성의 대테러 수사본부로 넘어가게 되었고,
당시 산체스씨가 본 비행기는 미 공군 소속이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런 사실을 안 FBI는 공군의 관계자에게 연락을 하여
수사협조를 요청하였으나
네바다 지역의 공중은 정부차원에서 벌이는 비밀 작전이라
더 이상의 언급은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계속 그러한 보고가 잇따르게 되고
이를 묵살할 수 없었던 FBI의 내부 관계자가 이를 언론에 공개,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이상한 액체를 뿌리면
신고를 하라는 발표를 하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후 FBI는 그 액체의 성분이
'손상된 오존층을 복구하는 액체일 것 같다'는 발표를 해 버렸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정부 고위층의 '물타기' 전략 음모론이라고 주장했다.
<미 기상위성이 촬영한 걸프전 당시의 켐트레일>
마냥 음모론이 아니라고만 볼 수 없는 사건이 그 후 또 벌어졌으니,
2001년 미국의 제 107회 정기국회 때 올려진 한 건의 법률안 파동이 그것이다.
그 당시 하원 의원인 데니스 J 쿠키니치(Dennis J. Kucinich)가
'우주공간 보존법안'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들고 나왔는데,
이 법안에는 켐트레일을 우주 무기로 분류하여
그것을 지구내에 반입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섞여 있었으며,
이 법률안은 다시 재정비를 거쳐 2002년에 국회의원
총 9명이 공동으로 재차 법안을 상정하였다.
민간 차원에서도 켐트레일의 정체를 밝히려는 연구가 활발히 지속됐는데,
급기야는 미국의 한 민간단체가 부시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그러한 행위를 중지하라는 서한을 보내게 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프간 내전 당시의 켐트레일 살포장면>
켐트레일 살포 이유와 해결책
켐트레일을 왜 살포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유해하다는 것은 이제 공식적인 일이 됐으며,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세계의 유명한 흉가 BEST
옛 스페인 총독의 유령이 상주하는 푸노의 흉가
페루의 유서 깊은 도시 푸노의 아름다운 티티카카 호반에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레모스 흉가가 있다.
타운 센터 요지에 있는 옛 스페인 건축 양식의 낡고 폐허가 된 이 벽돌 건물은
과거 17세기 스페인의 페루 총독 콘데 데 레모스가 거주했던
저택이다.
콘데 데 레모스 백작은 스페인 왕국이 남미 식민지에
파견한 용맹스러운 장군이지만
무척 포악하고 잔인한 식민 통치자로 역사에 남은 사람이다.
그가 푸노에 부임하게 된 이유는
푸노에서 가장 큰 금광이 발견되고 이주민이 대거 모여들어 신도시가 건설되고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금광은 1657년 호세와 가스파르 살세도 형제가 발견해
대규모 금광을 개발하고 아울러 스페인풍의 신도시를 건설했다.
이 도시가 바로 오늘날의 푸노다.
살세도 형제는 금광으로 돈을 너무 많이 벌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부자로 성장했고
부를 기반으로 거주민들과 함께 이권을 지키고 자신들이 개발한 금광 마을을
스페인 식민 통치 세력으로 부터 독립시키려고 시도했다.
푸노 마을이 금광 마을로 급성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갈수록 몰려들고 주민이 10,000명을 넘자
스페인은 금광 마을의 독립을 우려해 푸노에 군대를 파견해
금광을 무력으로 탈취하라고 총독에게 지시했다.
살세도 형제는 총독이 군대를 몰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막대한 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식량을 비축해 마을을 요새화하고 총독군에게 저항했다.
이 전투에서 총독 산티스테반 백작이 전사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스페인 정부는 콘데 데 레모스 백작을 새 총독으로 푸노에 파견해
폭도를 제압하고 살세도 형제를 처단할 것을 지시했다.
콘데 데 레모스 총독과의
전투가 시작된 지 몇 주 후
비축 식량이 모두 바닥이 나자
살세도 형제는 총독과 합의하에 마을의 노약자 가족들을
금광 밖으로 내보냈으나
총독은 금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온 노약자들을 금광 입구에 세워놓고
모두 총살시키는 잔혹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에 격분한 살세도 형제와 저항군들은 총독에게 격렬히 저항했으나
끝내 탄약이 완전히 바닥나고 말았다.
총독은 금광에 엄청난 양의
연료를 살포해 금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산채로 태워 죽였고
이 와중에 금광 밖으로 탈출한 호세를 체포해
주민들 앞에서 공개 처형했다.
전설에 따르면 총독은 잔인하게 죄없는 수많은 푸노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계속 저질러 저승에
못가는 저주를 받아
아직도 17세기에 그가 살다 죽은 집에 갇혀있다고 한다.
'공포의 집'으로 불리는 이 저택은 수백 년간 여러 사람이 용기를 내 구입해 살아봤지만
밤마다 총독 유령이 눈을 부릅뜨고 나타나 놀래키며
쫓아버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바람에 얼마 못 견디고 달아났다.
일부 주민들은 용기를 내 집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어깨를 누르는 것을 체험하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 집에서 버티고 살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액운과 질병으로 고생하다 죽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이 집에 기거한 사람은 용기를 내 신혼여행을 총독 집으로
온 항해사 부부였는데
그들은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총독 유령이 나타나 겁에 질린 나머지
인근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로 달려가
배를 타고 도망갔으나 총독이 호수까지 쫓아와 배를 뒤집는
비람에 익사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현재 총독 집에는 아무도 무서워 들어가지 못하며 이 때문에
이 흉가가 오늘날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흉가 중 한 곳이 됐다.
몬테 크리스토 저택에 출몰하는 귀신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주니에는 오늘날 호주에서 가장 귀신이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유명한 몬테 크리스토 저택이 있다.
1884년 윌리엄 크롤리가 건축한 빅토리아조 양식의 2층 저택에는
1910년에 병으로 사망한 크롤리의 귀신과 23년 후 집에서
사망한 그의 부인이 귀신으로 출몰하고 있는데
현 주인 레지널드 라이언은
1963년 6월 3일, 이 집을 구입해 원 상태로 복원했고
오늘날 매년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귀신을 체험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저택을 지은 윌리엄
크롤리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레지널드와 그의 가족, 그리고 방문자들이 이 집에서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귀신 출몰 사례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집에 발산되는 기괴한
광채
레지널드에
따르면 집을 구입할때 흉가 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하는데
그가 처음 목격한 초현상은 안개낀 오후에 외출에서
돌아오다 집 안으로 부터 밝은 광채가
모든 문과 창문들 틈새로 발산되는 것을 본 것이고
당시 차를 타고 집에 가까이 접근하니 빛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이힐 발자국 소리
날씨가 화창한 날 1층 베란다에 나가 의자에 앉아 바느질을 하던 레지널드는
누군가 2층 베란다에서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걷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집에 아무도 없어서 놀란 그는 누구냐고 소리쳤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어 급히 2층으로
뛰어올라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유리창에 나타난 귀신 얼굴
레지널드는 두 딸들이 밤마다 잠을 자려고 하면
2층 방 창문 밖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이 방안을 들여다 본다며
소리쳤다고 말했는데
딸들 말로는 창문에 나타난 뒤 얼마 후 공기중으로 사라진 괴 남성이
얼굴에 짧은 구레나루 수염이 있고 작업복을 입은 젊은이고
나중에 너무 자주 나타나 딸들이 그를 무시하고
상관하지 않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몬테 크리스토 저택>
날아다니는
귀신
몬테 크리스토 저택에 귀신이 출몰하는지
모른 레지널드 부인의 사촌 존과 그의 부인이 집에 머물때
온 몸이 흰 사람이 허공에 뜬채 방 안에 나타나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닫힌 창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격한 뒤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몸이 없는 귀신
존과 그의 부인이 머물렀던 방에서 잠을 자려고 한 레지널드의 친구 마리오는
몸통이 없는 여인의 머리 귀신이 침대 근처에 나타난 것을 목격했다.
담력이 센 마리오는 무슨 귀신이 몸통도 없냐며
하찮게 생각했는데 그러자 귀신은
사라졌다고 한다.
집 안에서 목격된 작업복 귀신
아래층 홀에서 파티를 하던중 막내딸에게 남동생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말한 레지널드는
딸이 크게 놀란채 돌아와 계단으로 올라가던 도중 작업복을 입은 귀신이
남동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봤다고 말하며
흥분해 딸을 달래는데 진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호주 최악의 흉가로 알려진 몬테 크리스토 저택에 나타나는 귀신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무해한 귀신이 출몰하는 맥파이크 흉가
미국 일리노이주 앨턴에는
1869년 당시 부유하고 저명한 기업가이자 정치가였던 헨리 G. 맥파이크가 건축한
15에이커 대지에 방이 16개인 대형 저택이 있는데
오늘날 이 저택은 미국 중서부 제일의 흉가로 유명하다.
밤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희뿌연 물체들이 나타나는
맥파이크 흉가가 다른 흉가들과 다른 점은
그곳에 출몰하는 귀신들이 원한을 가진 귀신이나 자살자의 원귀가 아니고
과거에 집에서 살던 거주자들의 귀신들로 전혀 해를 끼치지 않다는 것이다.
맥파이크 저택에는 깔깔 웃은 어린이 귀신과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집 안에서 뛰노는 귀신,
그리고 거실을 오가는 귀신 등 여러종류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여러차례 귀신 소리가 녹음됐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귀신들이 촬영됐다.
맥파이크 흉가는 7년전 지하실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흉가를 투어하는 사람들을 쫓아오는 귀신이
선명하게 비디오로 촬영돼 수차례 TV쇼에 방영돼 화제가 됐고
오늘날까지 수백여건이 넘는 귀신이 계속 목격되고 있어서
관광명소로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지하실과 집 안의 어두운 지점에서
출몰하는 맥파이크 흉가 귀신들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목격된 귀신들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귀신이 출몰하는 맥파이크 흉가>
폴 라이칭거의 귀신
폴 라이칭거는 1936년에 맥파이크家로 부터 저택을 구입해
1945년 사망할때 까지 이 집의 여러 방을 주민들에게 임대하면서 관리했던 사람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죽은지
모르는 듯 매일 밤 집 안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집을 살펴보고 수선을 하는 등
여러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창문가에 서서 집 밖을 내다보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그는 1930년대 풍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데 그가 죽고나서 집을 구입한 새 주인은
귀신을 쫓기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했으나
라이칭거를 포함해 과거에 집에서 살았던 주민들의 귀신이 계속 나타나자
1950년대에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사라의 귀신
사라는 과거에 맥파이크 저택에 살았던 하인 귀신이다.
사라가 특이한 점은 다른 귀신들처럼 인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상관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과 달리
목격자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만지거나 껴안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사라를 목격한 사람들 중 다수는 그녀의 귀신이 나타나기
전에 특이한 소리가 난다고 증언했는데
전문가들은 그녀가 바로 1999년에
지하실에서 촬영된 귀신으로 보고있다.
1950년대 이래로 버려진 채 방치된 저택은
너무 오래돼 언제 무너질지 몰라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으나
최근 이를 새로 구입한 주인은 거액을 들여 맥파이크 귀신 집을 재건축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관광명소와 주택임대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공사가 완공되면 앞으로 누구라도 맥파이크 저택을 방문해 귀신
출몰 현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계속 발견되는 정체 불명의 유골들
<마야의 문명지인 메리다에서 발견된
해골>
1991년, 남미의 고고학 발자취를 조사하러 멕시코와
페루를 방문했던 고고학자 로버트 코놀리 교수는,
마야의 문명지인 멕시코 메리다시를 방문하였다가
마야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던 어느 이상한 해골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해골들은 1970년대 메리다 지방을 방문하던 관광객들에게서 발견되었으며
해골들은 발견 당시 상당히 작은 키에 팔이
무릎 밑까지 오는 이상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원래 고고학과 UFO, 외계인등에 관심이 많았던
코놀리는 박물관의 가이드로부터
'잉카의 문명지인 페루에도 이상한 해골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페루로 떠나게 되었다.
<발견당시의 메리다 해골>
1970년대 메리다의 해골을 발견한 멕시코시티의 퀴엔데즈가족은,
고대 마야의 문명지에 있던 한 동굴을 들어갔다 '
반듯하게 누워있던' 2개의 이상한 유골들을 발견하게 된다.
곧장 사진을 찍고, 배낭에 2개의 해골들을 넣은 뒤 산
밑으로 내려온 로페즈 퀴엔데즈는 '이게 뭐냐'며
베낭에 있는 해골들을 그곳 원주민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상당히 무서워하며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별의 아들' 머리이니, 당장 그 분의 머리를 다시
동굴에 가져다놓지 않으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
이라는 경고를 했다.
위의 해골들과 유골들은 1980년대초,
멕시코의 메리다주 원주민 정벌 당시 압수한 뒤
1990년초부터 메리다주의 마야 박물관에 보관을 했다.
<메리다의 해골 스케치>
그렇다면, 이 별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해골들의 원천은 어디였을까?
혹시 이들은 요새 지구에 자주 출현하는 외계인의 부류인
'그레이'의 자손들이 아니었을까?
<고대 잉카의 문명지인 페루에서 발견된 해골>
1990년대초, 처음으로 잉카의 문명지인 이카시를 방문하게된 코놀리는
맨처음으로 메리다 박물관의 가이드가 가르쳐준 잉카 박물관을 찾아갔다.
잉카 박물관 깊숙한곳에 보관되고 있던 이상한 해골들의 모습을 목격한 코놀리는
'이번에는 해골이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로 퍼졌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더욱더 놀라워 했다.
<잉카에서 발견된 다른 해골>
하지만 이 해골들은 고대 마야 지방의 해골들과는 다르게,
모두 다 '신이 아닌 인간들'이었다.
이 들 유골의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해골 부분 밖에 없는 관계로
몸의 외관을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잉카지방의 사람들은 코놀리에게 위의
해골들에 관한 역사를 알려주었다.
위의 해골들은 'Binding'이라는 '머리를 줄로 감는 기술'을 이용,
새로 태어나는 어린이들을
'잉카의 신과 비슷하게 보이게 하려고' 머리를 줄로 묶어 키워
위와 같은 모습의 해골들이 현재 남아있게 되었다고 했다.
간혹, 위의 긴 해골들의 주인들은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뇌가 텅 빈 머리속을 돌아다니다 함몰이 되어 많이 죽었다고들 한다.
<키가 3미터인 자이언트 전설이 있는 미국의 숲에서 발견된 50cm 해골>
미국의 네바다주 러브락시에는
오래 전부터 원주민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키가 3미터가 넘는 빨간머리의 거인종족들'에 관한 전설이 있다.
1911년, 러브락시에 광산을 만들던 인근의 광부들은
러브락시에 있던 어느 이름 없는 산에서
입구와 출구가 없는 어느 이상한 동굴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깎아 만든것 같은' 형체로 남아있던 동굴을 조사하던 광부들은
동굴안에서 빨간 머리를 가지고 있던
이상한 거인들의 미라들을 수두룩하게 발견했다.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한 광부들은
워싱턴에서 왔다는 고고학자들이 그 미라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가버리는 광경을 목격한 뒤,
다시는 그 미라들에 관한 소식을 들을수가 없었다.
위의 사진은, 몇년 후 같은 동굴에서 발견이 된 길이 50cm의 해골이다.
위의 미라는 1932년, 와이오밍주에서 금을 찾아 해매던 광부들에 의하여
위의 거인들과 같이 동굴안에서 발견이 되었다.
이 미라가 발견이 되었던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키가 약 40cm정도 밖에 안되는 소인들'에 관한 전설이 있었으며
위의 미라는 실제로 앉은 키가 약 20cm밖에 안되었다.
1979년, 뉴욕의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던
이 미라의 X-Ray를 찍어본 고고학자들은
조그만 미라의 몸 속에 완벽한 뼈의 구조와 내장이 보존이 되고있던
사실을 밝혀낸 뒤 큰 충격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흡혈괴수 스낼리개스터
미국 매릴랜드주 프레드릭 카운티에는 스낼리개스터 라고 불리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흡혈 괴물 전설이 전해온다.
저지 데블이 목격된 뉴저지주와 나방 인간이 목격된 웨스트 버지니아주,
그리고 개구리 인간이 목격된 오하이오주에서도 목격된 스낼리개스터는
츄파카브라 처럼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행 괴수가 전깃줄에 걸어놓은 소의 사체>
1909년초 미들타운 소재 벨리 레지스터 신문은
수백년전 초기 정착민들이 목격한 용을 닮은 공포스러운 모습의
흡혈 비행괴물 스낼리개스터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초록색 몸에 비늘이 있고 날개가 달려 공중을 비행하며
어린 아이들을 잡아가고 농가에서 기르는 가축을
습격해 잡아먹는다는 전설이 전해온
스낼리개스터를 1909년에 목격한 주민 제임스 하딩에 따르면
괴수는 호랑이와 흡혈귀를 합친 것 같았고 몸집이 크고 털이 많았는데
큰 날개와 날카로운 긴 부리, 그리고 강철처럼 단단한 발톱을 가졌으며
흰 눈밭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간담을 서늘케 하는
괴성을 지르며 날아갔다고 한다.
저지 데블과는 달리 스낼리개스터는 가축만이 아닌 사람도 해치는 괴수인데
피해자 빌 지퍼슨은 스낼리개스터가 목을 공격하고 피를 빨아먹어 죽었고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는 스낼리개스터가 한 여인을 잡아먹으려다
사람들이 달려들자 날아갔다.
스낼리개스터는 샵스버그에 사는 알렉스 크로우의 농장
헛간에 알을 낳은 것이 사람들에게 발견돼
알을 인큐베이터로 부화시키려고 했으나
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부화되지 않았다.
<흡혈괴수 스낼리개스터>
농장 헛간에서 잠을 자다가 주민들에게 발견되면 성을 내며 괴성을 지르고 날아가는 등
농장을 자주 찾아온 스낼리개스터는 주민들이 총을 쏘자
오랫동안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1932년 11월 발티모어 썬지는 희미한 괴수 사체 사진과 함께
프레드릭 카운티에 다시 나타난
스낼리개스터의 죽음에 관해 보도했다.
스낼리개스터는 오랫동안 숲 속에서 살다가 다시 나온 듯
마을 상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워싱톤 카운티에 있는 위스키
밀주 농가의 냄새를 맡고
헛간에 내려 2,500 갤론 짜리 큰 위스키통에서 끓던 매시를 마시다가
술에 취해 통에 빠져 죽었는데
괴수의 사체는 마침 밀주업자 단속차 헛간을 급습한 수사관들에게 발견됐고
수사관들은 괴수의 사체를 500파운드어치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켜 산 속에 매장했다.
1976년에는 워싱톤 포스트가 스낼리개스터를 포함해
매릴랜드주에 출몰하는 여러 미확인 괴수들을 찾는 캠페인을 벌였으나
다시 발견되지 않았는데 주민들은 괴수가 아직도
발티모어 깊은 숲 어디엔가 살아있을 것으로 믿어
어두운 밤에 외출하는 모험을 하지 않으며
밤에 양조장이나 가축 우리에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어느 비행 괴수가 전신주 위에 올려놓은 사슴의 사체>
오늘날 지역 주민들이 전설속의
용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가고일과 유사한 미확인 괴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스낼리개스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저주를 싣고 달리는 유령열차
니콜라이 고골리(1809 ~ 1852)
러시아의 리얼리즘 소설가
1998년 9월 25일 러시아 정부 공식기관지인 '로시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1911년부터 러시아와 동유럽 등지에서 목격된
예즈드-프리즈락(Poyezd-Prizrak)이라 불리는 유령열차에 관한 기사였다.
포예즈드-프리즈락은 다른 지역의 유령열차와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유령열차들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 반면에
포예즈드-프리즈락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치여서 다치거나 죽게 했고
때때로 실종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사에서 '로시스카야 가제타'는 문제의 유령열차가
러시아의 디킨스로 불리는 니콜라이 고골리(Nikolai Gogol)의 저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골리는 '외투', '죽은 혼' 등의 작품으로 친숙한 러시아의 대문호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가 왜 유령열차와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고골리는 1809년 우크라이나 소로친치(Sorochintsi)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던 그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면서 19세기 러시아 최고의 문학가 중 하나가 된다.
일상에선 보기 힘든 비상식적인 등장인물들,
그들이 벌이는 희한한 사건과 그로테스크한 결말 등
독특한 작품세계로 사랑을 받았던 고골리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오랫동안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던 고골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치료도 거부하다가 죽었다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931년 그의 시신이 묻혀 있던 모스크바 세인트 다니엘 사원의 공동묘지가 철거되면서
고골리의 죽음은 미스터리에 휩싸이게 된다.
이장하기 위해 관을 열어본 군인들이 그의 관 오른쪽 벽에서
손가락으로 할퀸 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증거의 정황상 고골리는 산 채로 생매장 된 것이 분명했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관 속의 시신에 머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조사 결과 누군가 관을 꺼냈다가 다시 묻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1909년 사원의 묘지 관리인들이 유품수집가인 바크흐루신(Bakhrushin)에게 매수되어
고골리의 해골을 그에게 판 것이었다.
해골리 팔리고 2년 후인 1911년,
고골리의 친척이자 해군장교인 야노프스키(Yanovsky)는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바크흐루신을 찾아가 해골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 유골을 되찾았다.
당시 크림반도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야노프스키는 고골리의 해골을 다시 안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 모스크바로 가는 이탈리아군 장교에게 해골이
든 상자를 주며 모스크바 시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 안, 캄캄한 터널을 지날 즈음
장교 일행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해골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한 손에 램프를 들고 다른 한 손에 해골을 든 채 승객들을 놀래킨 것이었다.
한참을 장난치던 그들은 승객들의 비명에 무심코 해골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해골은 사라지고 한 남자가 잘린 목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기차가 멈춰 섰고 해골을 들고 있던 장교는 정신없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터널 밖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치다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본 그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터널 안에 서 있던 기차가 안개에 휩싸이더니 그만 눈앞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기차 안에는 승객과 승무원을 합쳐 106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중 두 명만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무사했고 다른 승객들은 기차와 함께 사라졌다.
이후 기차는 실종 당시의 모습 그대로 러시아와 유럽 등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령열차 포예즈드-프리즈락의 전설이 탄생한 것이다.
그후 유령열차의 전설이 퍼지면서 이 미스터리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들 중 하나인 보리스 타라카노프(Boris Tarakanov) 박사는 조사 도중
이 기차를 현지 관광사에 빌려준 이탈리아 밀라노의 철도회사 사네티(Sanetti)사가
1841년에 멕시코 칸쿤(Cancun) 근처에 있는 한 정신병원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편지에는 유럽에서 기차로 왔다고 주장한 104명의 환자들이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차와 함께 행방불명되었던 승객들의 행적이 발견된 것이다.
문제의 기차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을 알게 된 그는 멕시코를 방문해
환자들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했으나 병원이 이미 폐쇠됀 후라
당시의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유령열차의 비밀 또한 병원 자료와 함께 안개 속으로 가려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 기차는 계속 세계 전역에서 목격되고 있었다.
조사 결과 타라카노프 박사는 유령열차에 일련의 규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열차가 때로는 이틀 연속으로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1991년 9월 25일,
유령열차가 우크라이나 폴타바(Poltava)에 있는 철로에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한
과학자들은 유령열차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도착해 열차를 기다렸다.
밤을 새우며 기다리던 과학자들 앞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유령열차.
과학자 중 하나인 키예프(Kiev) 과학원의 레스차티(Leschatiy)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차의 세번째 칸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잠시 후 기차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유령열차는 그 뒤에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95년 7월 14일 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는 레이더기지 책임자로 근무하던 안톤 그나튜크 준위가 유령열차를 목격했다.
이튿날 아침에 도착하는 기차를 기다리던 그는 역무원의 양해를 얻어
정차해 있던 기차의 승객칸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열차가 있는 곳으로 가던 중 다른 기차들에 비해 오래돼 보이지만
깨끗한 구식 열차를 발견한 그는 그 열차의 문을 열려고 손을 댔고
곧바로 강한 전류에 감전되어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기차는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2001년 7월 14일
투르크메니아에서는 철로는 검사하던 역장 하무랏 베르디예프가 기차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그는 사고 당시 기관사의 부주의 로 뒤에서 오는 기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은 조금 달랐다.
목격자들은 무척 오래돼 보이는 기차가 비어 있는 철로에 갑자기 나타나 역장 쪽으로
접근했고 역작은 기차에 치이지도 않았는데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가
넘어져 숨겼다고 주장했다.
유령열차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냈다.
일부 학자들은 처음 기차가 사라진 지역에서 1908년에 일어났던
진도 7.5도의 강진으로 인해 강력한 전자기장이 발생해 기차가 시공을 초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열차가 사라진 것이 지진이 일어난 3년 후라는 점과 당시
당시 다른 열차들은 무사히 그 지역을 통과했다는 것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초과학적인 현상에 의해 기차가 시공을 초월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초과학적인 현상이 정확하게 어떠한 현상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로시스카야 가제타에 실린 기사는 다시금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도 포예즈드-프리즈락의 존재를 믿는 주민들은
늦은 밤에는 절대로 철로 위를 걷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의 일부를 바꾸는 생체 실험
앨런 폴섬의 소설「모레」에는 냉동된 히틀러의 머리를 젊은 청년의 몸에 이식해
나치의 부활을 꿈꾸는 조직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 소설은 죽은 사람의 머리를 산 사람의 몸에 이식한다는 발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또 몇년 전에는 개에게 물려 얼굴 일부를 잃은 여성이 죽은 사람의 얼굴을 이식받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체 일부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맞바꾸는 실험은 오래 전부터 연구되어 왔다.
1997년 7월 28일 모스크바 국립공과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아이반 코로노브는
논문을 쓰려고 국립도서관 컴퓨터로 관련 자료들을 열람하다
자신이 조회한 전문적인 의학 단어가 얼마전 비밀이 해제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생명공학 관련 파일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료의 이름은 '알라스토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신을 의미한다.
자료를 대충 뒤적이고 있는데 서류 뒤쪽에서 사진 1장이 떨어졌다.
원래 셰퍼드의 몸에 보다 작은 종류의 개의 머리가 하나 더 달린 모습이었는데
2개의 머리가 모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놀란 그는 서류를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사진 몇 장이 더 붙어 있었다.
모두 현실에서 보기 힘든 괴상한 사진들이었다.
머리가 2개 달린 원숭이, 개의 머리를 가진 고양이 등등.
그리고 목에 선명하게 꿰맨 자국이 남아 있는 한 노인이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물을 마시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자료에는 이들이 모두 사망한 뒤 다른 생명체의 몸통에 머리를 이식해 살아난 생명체라고 쓰여 있었다.
정신없이 자료를 읽어나가던 코로노브는 이 모든것이 나치의 생체실험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치의 생체실험 자료가 어떻게 소련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계속된 것일까?
1945년 1원 27일, 폴란드의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한 소련군은
아우슈비츠지방에서 대규모 수용소를 발견했다.
항복한 독일군들을 상대로 어떤 목적의 수용소 인지를 추궁했지만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침국만 지키고 있었다.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그곳이 유태인들과 나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련군은 수용소를 조사하다 이상한 실험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실험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폴파한 상태여서 실험도구와 재료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문서들은 무사했다.
이 문서는 맹겔레의 생체실험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맹켈레는 1943년 아우슈비츠수용소에 부임한 뒤
이 곳에 갇힌 사람들에게 생체실험을 해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그는 특히 쌍둥이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쌍둥이들 중 한명의 신체를 잘라 다른 쌍둥이에게 이식하거나,
쌍둥이들의 혈액을 서로 바꿔 넣어보기도 하고,
또 쌍둥이들끼리 강제로 성교를 하게 해
쌍둥이가 태어나는가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는 수백쌍의 쌍둥이들을 실험에 이용했고,
실험이 끝난 후에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모두 살해한 후 시체는 소각했다.
소련군이 아우슈비트에서 발견한 서류가 바로 멜겔레가 기록한 생체실험 자료들이었던 것이다.
이 자료들을 계속 연구한 결과 소련은 생명공학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이러한 자료를 발견한 코로노브는
작은 개의 머리가 이식된 세퍼드의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생명공학관련 싸이트 게시판에 올렸다.
이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이메일과 게시판을 통해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그가 찾은 자료 역시 사라져 버렸다.
1954년 2월 3일 옛 소련 모스코바 외곽에 위치한 생물학 연구소에서는
과거에 철저한 비밀에 가려져 사람들의 접근이 일체 금지된 비밀 연구소 소장 데미코프가 독재자 스탈린이 죽자
미국과 유럽의 기자들을 초청해 과학 기술의 우수성을 선전할 목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한 의술을 공개했다.
<블라드미르 데미코프 박사>
데미코프가 기자들 앞에 데리고 나온 동물은 작은 강아지가 어깨 위에 달려있는 매스티프 개인데
기자들은 강아지가 몸이 반으로 잘린 뒤 상반신이 매스티프의 목에 이식돼
두 마리의 개들이 한 몸통을 각기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크게 놀라고 말았다.
데미코프의 조교들이 우유를 가지고 나오자
이를 각기 맛있게 먹은 개들은 머리가 두개였지만 음식을 먹으면 배가 같이 불렀는데
두 개들은 정신이 멀쩡한 것 처럼 보였고 작은 개는 다른 사람들이 만지려고 하면
사납게 으르렁대며 손을 물려는 자세를 취했다.
데미코프는 매스티프 개가 처음에 당황하여 목에 달려있는 강아지를 털어내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으나
곧 적응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키메라犬을 데리고 다니는 데미코프 박사>
이들의 혁명적 의술은 2차대전 후 냉전으로 인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소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미국 정부는 뛰어나고 야심찬 뇌수술 전문의 로버트 화이트 박사에게
데미코프의 의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을 발명하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 후 화이트 박사는 클리브랜드주 오하이오에 있는 병원에
특별 연구소를 설립하고 각종 동물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1966년 데미코프 박사의 연구소로 초청돼
그들이 어떻게 죽은 개들을 되살리고 머리가 잘린 개가
몸 없이 단순한 기계로 계속 살 수 있으며,
그리고 몸의 상체나 머리 부분 이식에 성공할 수 있는지
생체 대체 접합술 등 이식 관련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3년간 연구에 몰두한 화이트 박사는
신장과 달리 두뇌와 심장, 폐 등 몸의 다른 부위는 거부 반응없이
이식 즉시 신체에 잘 적응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는 두마리의 원숭이를 데려다 머리를 자른 뒤 한 마리의 원숭이 머리를
다른 원숭이의 몸에 이식하는 수술을 시도해 성공했다.
<데미코프 박사가 만든 것으로 확인된 키메라犬>
당시 머리가 이식된 원숭이는 의식이 회복되자 화를 내며
연구원들이 입에 댄 손가락을 깨물려고 했는데
이같은 연구 결과를 일반에 공개한 화이트 박사는
데미코프나 그의 그동안 동물생체 실험과 이식수술 성공 사례를 전혀 모르는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끔찍한 머리대체 수술에 대해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결국 연구비가 중단되고 살해 협박까지 받은 박사는
경찰에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 보호를 요청한 뒤 관
련 연구를 포기하고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계속 후진들을 양성했는데
데미코프 박사는 1998년에 타계했고
화이트 박사는 40년간 케이스 웨스턴 리서브 대학교 의대 교수로 활동하다 최근 은퇴했다.
이같은 연구는 1940년대 이래 계속되고 있는데
현재 세계의 과학자들은 첨단 유전공학 기술 및 선진 의술을 사용해
신경을 되살리는 기술을 개발하여 머리가 잘려 새 몸에 이식되는 사람의 완전한 의식을 되살리고
신체 거부 반응 없이 자유자재로 정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미확인 수중물체 USO
USO(unidentified submarine object)는 "미확인 수중 물체"란 뜻이다.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한 흑해 노르웨이 근해는
과거에서부터 숱하게 USO가 목격된 해역이다.
이 핵잠수함은 미국 또는 영국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형 비밀 수중 물체에 부딪혀 침몰했다는 것이다.
당시 쿠르스코호 근처에 접근하는 대형 수중 물체를 육안으로 파착한 러시아 정찰기는
쿠르스크호에 무선으로 경고하였으나 소나에도 감지되지 않던 정체불명의 잠수체를 피하려던
쿠르스크호는 그만 그 괴물체와 충돌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아주 빠르고 핵잠수함만큼이나 거대한 그 물체가
사고 후 인근 노르웨이의 앞바다를 거쳐 영국해역 쪽으로 사라졌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부터 북유럽의 바다에서 목격되고 알려진 USO는 처음 발견당시
독일의 잠수함으로 오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의 패전 후 독일군의 비밀문서를 접한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은 전쟁 중
독일 해군측에서도 USO를 목격하였으며,
이를 연합군의 비밀무기로 간주했던 기록을 발견하고 USO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노르웨이의 정부에서 2000년 비밀공개법에 의해 공개한 문서에는
1946년부터 1970년대까지 오슬로시를 비롯한
노르웨이 근해에서 발견된 USO에 관한 다양한 목격사례들이 등장한다.
다음의 목격사례는 노르웨이의 학자 올레 자니 브래니씨가 정부에서
공개한 문서를 토대로 작성한 USO의 과거 노르웨이 출몰사례들 중의 일부와,
노르웨이의 USO 조사협회에서 작성한 조사 자료들의 일부이다.
1946년~1959년 노르웨이의 정부 공개자료
1946년 7월 18일,
노르웨이의 남동쪽 모사강에는 미확인 고스트 로켓이
하늘에서 날아와 물속으로 추락을 하였다.
당시 강에서 수영하던 사람들과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강한 휘파람 소리와 같은 굉음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하늘에 나타난 V1 로켓형체의 시가형 비행물체는 강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굉음과 물기둥을 만들고, 수심이 깊은 물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인 뒤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를 목격하고 겁에 질린 시민들은 군인들을 불러 문제의
로켓이 떨어진 강을 조사토록 부탁하였지만,
노르웨이의 해군측은 강바닥을 조사한 뒤 수중물체는 물론
로켓의 잔해조차 없다는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1959년 12월 23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근처 바다에서 작업을 하던 어부들은
하늘에 빨간색의 불빛이 나는 정체불명의 비행물체를 목격하게 된다.
문제의 비행물체는 해안 쪽으로 접근하는 듯 보이더니 바다에 추락하여 사라졌는데,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비행물체가 물에 충돌하기 직전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하였다는 증언을 하였다.
1972년~1990년 노르웨이의 USO 협회자료
1972년 11월 22일
노르웨이의 앞바다에서는 미해군과 영국해군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이
수십척의 군함을 동원하여 훈련 중 우연히 수심을 누비는 USO를 발견했다.
레이더에 잠수함과 비슷한 모습의 USO가 포착된 시각은 11월 22일 오후 4시 39분,
군함에서 잡아낸 USO의 엔진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커다란 소리였고
항해속도도 놀라운 속도였다.
나토군의 함정들은 물체가 자신들의 배 밑으로 지나갈때 여러개의 기뢰를 발사하려 하였지만
물체는 물속에서 무려 100노트가 넘는,
당시 잠수함들이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를 내며 도망가 끝내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USO를 공격하려는 동시에 모든 군함의 전자장비가 멈춰버려서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했다.
실로 놀라운 속도이며, 그 당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잠수물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다.
<1962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잠수체와 승무원 그림>
1990년 9월 19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근처 앞바다에서는
노르웨이 최강의 구축함 스타벤져가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던
USO를 음파지기로 발견하고 함대 전체에 비상을 거는 사건이 발생한다.
스타벤져호는 세계의 해군이 사용하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USO는 계속하여 스타벤져를 향해 다가왔고, 다발의 어뢰와 로켓 그리고 기뢰등을 발사하여
배를 보호하려던 노르웨이의 해군은 핵 잠수함같이 생긴
거대한 물체가 생각도 못할 속도로 움직이며,
모든 무기를 다 피하고 구축함을 가로질러 먼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2000년 노르웨이의 바다 속에서 폭발음 감지>
오늘날에도 전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USO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말 아직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다지만
특히 저 넓고 넓은 미지의 바닷 속은 인간이 알고 있는 부분이 1%나 될련지 모르겠다.
혹시 저 깊은 해저의 외계인이 보낸 잠수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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