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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효봉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염초봉, 백운대
試攀崎嶇石徑斜 험한 산길 더위잡고 오르니 비탈진 돌길이요
漸出濛籠巖嶺隔 점차 몽롱한 곳 벗어나니 바위산이 막혀 있네
俯臨絶谷但蒼茫 깊은 골짝을 굽어보니 아득하기만 하고
上到危巓增跼蹐 높은 정상에 올라 보니 더욱 오그라드네
晴峯距日纔數尋 청명한 봉우리는 하늘과 겨우 두어 길이요
雲棧凌虛幾千尺 허공에 걸친 구름다리는 몇 천척이라
一回徙倚獨嗟咨 한번 올라 배회하며 홀로 탄식하나니
八極須臾可揮斥 잠시나마 팔방을 멋대로 휘저을 만하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성애 (역) | 2019/
―― 이장용(李藏用, 1201~1272)이 백운대에 올라 지은 시다
▶ 산행일시 : 2022년 4월 2일(토), 맑음, 미세먼지
▶ 산행시간 : 8시간 43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8.0km
▶ 교 통 편 : 전철과 택시 이용, 북한산우이역과 도선사 입구 주차장(백운대탐방지원센터) 간은 택시 이용
▶ 구간별 시간
06 : 40 - 북한산우이역
06 : 52 - 도선사 입구 주차장(백운대탐방지원센터), 산행시작
07 : 23 - 영봉(靈峰, 604m)
08 : 06 - 백운대암문(위문 衛門)
08 : 18 - 백운대(白雲臺, 835.6m)
08 : 59 - 용암문(龍巖門), 일출봉(日出峯, 580m)
09 : 16 - 동장대(東將臺, 601.0m)
09 : 24 - 대동문(大東門)
09 : 34 - 보국문(輔國門)
10 : 02 - 대성문(大成門)
10 : 08 - 대남문(大南門)
10 : 15 -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
10 : 19 - 남장대(南將臺, △715.5m)
10 : 54 -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
11 : 05 - 증취봉(蒸炊峰, 593m)
11 : 20 - 용출봉(龍出峰, 571m)
11 : 31 - 가사당암문(架娑堂暗門)
11 : 40 - 의상봉(義相峰, 501.5m)
12 : 24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둘레교
12 : 49 - 서암문(西暗門, 시구문 屍口門)
13 : 35 - 원효봉(元曉峰, 509m)
13 : 44 - 북문
14 : 52 - 백운대암문
15 : 35 - 도선사 입구 주차장(백운대탐방지원센터), 산행종료
2-1. 올해 들어 오늘 아침에 활짝 핀 우리 집 베란다 화단의 애기범부채
2-2. 애기범부채
이른 아침 백운대 가는 길이 조용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어 입산금지 중인데 나만 무단출입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망설인다.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옆 등로 한가운데 야간 입산금지 팻말을 아직 치우지 않았다. 제법 쌀쌀한
아침이라 웃옷을 껴입은 채로 종종걸음 한다. 굵직굵직한 돌길이다. 한 눈 팔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다. 학생으
로 보이는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일출 보러 백운대 올랐다가 내려오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곳 날씨와 일출의 사정을 어떻더냐고 하자, 어제와 오늘 날씨가 맑아 아주 멋진 광경이었다며 어서 올라가
보시라고 한다. 그런데 서둘 필요가 없었다. 해 뜨자 매연인지 미세먼지인지 잔뜩 끼여 원경은 흐렸다. 하루재
쉼터도 텅 비었다. 지근거리인 영봉에서 바라보는 아침 첫 햇살 받는 인수봉의 모습은 어떨까. 다녀오기로 한
다. 영봉까지 0.2km. 그러나 결코 만만하지 않은 거리다. 가파른 돌길 오르막이다. 돌길, 돌계단, 슬랩 덮은 데크
계단을 차례로 오른다. 한바탕 비지땀 쏟아 영봉이다.
인수봉의 준수한 모습은 여전하다. 도봉산 만장봉 주변과 우이암, 오봉이 옅은 실루엣으로 이 또한 가경이다.
왜 영봉이라고 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수봉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뭇 산의 암벽을 오르면서 목숨을
잃은 등반가들의 추모비를 이 산 주변에 세웠다. 그 영령들에게는 인수봉을 바라보는 명당이 아닐 수 없을 게
다. 그래서 영봉(靈峰)이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추모비가 철거되고 없다. 예전에 추모비를 보면서 숙연해짐
은 물론 내 스스로 산행의 발걸음을 다듬곤 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인정할 리가 없다. 거기에는 노브랜드인 산이다. 영봉 갔다 온 사
이에 하루재에서 백운대 오르는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모였다. 대개 젊은 축이다. 운동화 신고도 바윗길을 거침
없이 오른다.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인수암에서 올려다보는 인수봉이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너
른 암벽을 오르려는 등반가가 보이지 않는다. 봄철 해빙기라서 등반금지 중이다. 인수암 문설주에 새긴 ‘相中無
佛, 佛中無相’이 무슨 뜻일까?
상(相)으로 보면 부처를 볼 수 없고
부처에게는 상(相)이 없다.
상(相)은 모습, 모양, 형상, 상태 등을 말하고, 또한 관념이나 의식에 형성된 특징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즉, 상(相)이란 외형적, 피상적인 것, 굳어진 생각 등을 뜻한다고 한다.
소곤소곤 법문하는 계류 물소리를 들으며 바윗길을 오른다. 백운산장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다. 백운산장
옆 밤골 가는 소로도 위험하다며 막았다. 아마 인수봉을 오르려는 암벽꾼들의 출입을 막았으리라. 가파른 돌길
과 슬랩은 계속 이어진다. 더러 데크계단을 새로이 설치한 곳도 있다. 숨이 거칠어 백운대암문(위문)이다. 백운
대까지 0.3km다. 오늘 거기의 조망이 어떨까? 어느 가을날에는 용문산까지 보았었다.
백운대 오르는 바윗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숱한 세월동안 많고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닳고 닳아서다. 매사
불여안전이다. 핸드레일 붙잡고도 조심한다. 백운대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여자 친구에
게 하는 말, 지금도 영하네. 그 소리를 들으니 바람 불지 않아도 쌀쌀하다. 그렇다고 웃옷을 더 입으면 덥고 벗
으며 춥다. 햇볕에 나가면 덥고 그늘에 들면 춥다. 속도전 하기는 좋다. 줄지어 오른다.
3. 영봉에서 바라본 아침 첫 햇살 받은 인수봉
4. 영봉에서 바라본 도봉산 오봉
5. 영봉에서 바라본 도봉산
6. 만경대
7. 인수암에서 올려다본 인수봉, 봄철 해빙기 암장등반 금지로 오르는 사람이 없다.
8. 미세먼지가 심하다. 앞은 불암산, 그 뒤는 천마산
9. 앞은 수락산, 오른쪽 멀리는 천마산
백운대. 미세먼지가 나쁘다. 조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 건너편 불암산과 수락산도 흐릿하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주금산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연릉의 봉봉이 고도(孤島)로 장관일 뻔했다. 태조 이성계가 실제로 이 백운대에 올
랐을까 의문이다. 태조가 태조의 신분으로 넝쿨을 움켜쥐며 올랐다는 말이 빈말로 들린다. 이 암벽에 무슨 넝쿨
이 있었을까 해서다.
引手攀蘿上碧峰 넝쿨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一菴高臥白雲中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걸려 있네
若將眼界爲吾土 눈에 보이는 곳 우리 땅으로 한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초나라와 월나라의 강남땅도 그 속에 있으려만
다시 백운대암문이다. 이제 북한산성 11개 성문의 일주를 시작한다. 북한산성에 13개 성문이 있지만 중성문은
산성 안쪽에 있고 대서문은 예전과 달리 의상봉에서 성곽 따라 그리로 내리는 길이 막혔다. 그래서 두 개의 성
문을 빼고 11개 성문을 지나려고 한다. 말이 성문일주이지 실은 북한산 일주산행이다. 더하여 북한산을 심춘순
례(尋春巡禮)하려고 한다. 아울러 안양 수리산과 천마산에서 흔하게 보는 바람꽃과 복수초, 노루귀는 없을까 주
의 깊게 살피려고 한다.
용암문 가는 길. 돌계단 0.1km 내리고 갈림길에서 데크로드 따라 만경대 서벽을 돈다.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뒤
돌아보면 백운대의 범접하기 어려운 맹주의 위용에 압도당하고, 그 왼쪽 옆의 염초봉은 위병인 듯 사납다. 이를
다독거리기라도 하는 듯 원효봉은 더없이 부드러운 모습이다. 노적봉은 여기서 볼 때는 노적가리라기보다는 천
도(天桃)의 모습이다. 가파른 슬랩을 데크계단으로 덮은 건 아주 예전의 일이다.
옆구리봉인 노적봉은 들르지 않는다. 탐방로가 아니라고 막아놓았으므로. 노적봉 안부 지나면 둘레길 닮은 평
탄한 산허리 도는 길이라 줄달음한다.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용암문. 암봉인 용암봉과 일출봉 사이에 있는 성
문이다. 용암문은 암문(暗門)이 아니라 암문(巖門)이다. 원래는 용암암문(龍巖暗門)이었다고 한다. 일출봉은 용
암봉의 병풍바위를 또 보기 위하여 들른다. 성곽 길로 간다. 병풍바위를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굳이 성곽 위로 올
라갈 필요가 없다. 조금 더 올라가면 만경대 동벽과 잘 보인다. 영봉과 도봉산 연봉은 덤이다.
오를 때 가쁜 숨을 내릴 때 고르곤 한다. 동장대(601.0m)를 여태 시단봉(柴丹峰)으로 알았는데, 탐방로 안내도
를 보니 동장대에서 약간 더 간 580m봉을 시단봉이라고 한다. 시단봉은 해돋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쪽은
금줄 치고 막았다. 580m봉을 등로 따라 오른쪽 산허리 길게 돌아 넘으면 대동문이다. 대동문 주변은 산꾼들의
쉼터인데 코로나 영향으로 폐쇄하였다. 코로나가 등산문화마저 바꾸어버렸다. 붐비던 도시가 갑자기 폐허로 변
한 듯하여 쓸쓸하다.
칼바위능선 갈림길인 580m봉을 내리면 보국문이고, 보국문에서 성곽 길 따라 한 피치 오른 615m봉은 드문 경
점이다. 보현봉 남릉을 줄기차게 내리다가 멈친한 형제봉이며, 그 오른쪽 뒤로 차례로 보게 되는 백악산, 인왕
산, 안산은 소백의 구봉팔문을 연상케 한다. 내 화계사에서 칼바위를 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저기를 갔었다. 하
루 일당은 충분히 빠진다. 남산과 관악산은 홍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라 안타깝다.
10. 왼쪽 뒤는 도봉산, 오봉 뒤로 사패산도 보인다
11. 만경대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본 백운대
12. 노적봉, 노적봉은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산으로 보인다
13.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14. 오른쪽 뒤는 인수봉
15. 앞 왼쪽은 영봉
16.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에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
대성문. 성곽 계단 길 따라 오르는 658.7m봉은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그런데 이게 조삼모사 격이다.
완만한 내림이라 당장은 달콤했는데, 내리막을 한데 모아 대남문을 한 번에 오르려니 벅차다. 대남문 근처에 있
던 야호샘은 잘 있는지 소식이 없다. 문수봉도 오르지 않는다. 어째 해장국에 선지 빼고 기름 빼는 것 같다.
예전에는 문수봉을 넘어 청수동암문으로 내리는 길을 막았는데, 청수동암문에서 보니 성곽 길이 풀렸다.
청수동암문 지나면 본격적인 험로가 시작된다. 오르내리는 굴곡이 심한 암릉이거나 바윗길이다. 남장대부터 가
파르고 긴 슬랩을 오른다. 남장대는 △715,5m봉으로 삼각점은 ‘서울 22, 1988 재설’이다. 남장대를 기점으로 다
른 산을 간다. 보는 경치도 다르고 길은 험로로 바뀐다. 가깝게는 장쾌한 의상능선과 튼튼한 장벽인 문수봉 남
릉이 볼거리다. 남장대 내리는 길은 철난간 붙들고 내리는 긴 슬랩이다.
나한봉(羅漢峰, 665m)은 새로이 단장하였다. 옛날 치성(雉城)을 복원하였다. 치성은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
출시켜 밖으로 내어 쌓은 구조물로, 적군의 접근을 초기에 관측하고, 전투할 때 접근하는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
서 격퇴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 시설물이다. 치성의 ‘치’는 꿩이라는 뜻인데, 성곽 구조물의 생김새가 꿩의 머리
처럼 돌출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역할이 몸을 숨기고 적을 살피는 꿩의 습성과 비슷하
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때 축성한 북한산성에 이렇듯 치성도 있고, 성랑지를 143곳이나 두었으면서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다음 암릉 암봉인 나월봉(羅月峰, 635m)도 오른쪽 암벽 자락으로 돌아 넘는다. 도중의 반침니를
오르지 않지만 직등하기보다 더 까다롭다. 땀 뺀다. 험로는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의상능선에서 나월봉을
내리는 이 길고 가파른 슬랩이 가장 험로가 아닐까 한다. 특히 여기를 오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헉헉댄다.
나의 진행방향이 역방향이다. 나 홀로 수많은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대부대를 연달아 마주치곤 하니 번번이 지
체한다. 역시 북한산은 날 궂을 때 와야 한갓져서 좋다. 바닥 친 안부는 부왕동암문이다. 암벽연습장 옆의 슬랩
오르고 철모바위를 돌면 증취봉이다. 증취봉 내리는 길도 막힌다. 나는 용혈봉에서 용출봉을 바라보기를 좋아
한다. 용출봉의 단아한 모습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큰 바위 얼굴』과 흡사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잠깐 트래버스 하여 내리던 용혈봉의 오른쪽 암벽에 널찍한 철계단을 놓았다. 한 피치 슬랩 덮은 철계단 오르
면 용출봉이다. 용출봉을 내리면서 바라보는 의상봉과 원효봉은 쌍둥이를 닮았다. 둥그스름한 봉우리 모양도
그렇지만 조각조각 암벽으로 모자이크해 놓은 것까지 닮았다. 의상봉을 오르고 내리는 등로는 발에 흙 한 톨이
묻을까 싶은 바윗길이다. 의상봉을 내릴 때 손맛 보던 슬랩은 철계단을 놓아 아무 재미없다. 그래서다. 날렵한
일단의 등산객들은 옛길 더듬으며 손맛을 즐긴다.
예전에는 대서문을 성곽 길로 갔었는데, 지금은 그 길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정표 방향표시대로 간다. 북
한산성탐방지원센터 가까이에 오른쪽으로 북한산 둘레길이 있다. 둘레교 넘고 내시묘역길을 간다. 원효봉 서릉
의 성곽 길은 막았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0.8m를 둘레길로 돌면 ┣자 갈림길이 나온다. 원효봉 1.6km.
널찍하니 잘 다듬은 길이다. 완만하다. 내 처음 가는 길이지만 아마 서암문(시구문 屍口門)으로 이어지리라. 그
랬다. 0.4km. 15분 걸려 서암문을 들어간다.
17. 앞 오른쪽은 보현봉, 왼쪽은 백악산, 인왕산, 안산
18. 앞 왼쪽부터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 소백산 구봉팔문을 생각나게 한다
19. 문수봉 남릉, 왼쪽 뒤로 멀리 내민 봉우리는 보현봉
20. 노적봉이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21-1. 용혈봉에서 바라본 용출봉
21-2. 용출봉에서 바라본 의상봉
22. 의상봉과 원효봉
23. 원효봉, 왼쪽 능선의 서암문에 등로가 있다
서암문에서 원효봉 오르는 가파른 계단 길 1.2km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멀리서 보던 원효봉의 원만(圓滿)하
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원효암의 스님들이 대단하다. 이런 험로를 걸어서 오르내려야 하니 말이다. 원효암
에서 바라보는 의상봉은 아까와는 다른, 도력을 드러내지 않은 범봉(凡峰)의 모습이다. 핸드레일 붙잡고 되똑한
암봉 넘어 원효봉이다. 정상은 너른 공터와 너른 암반이다. 여기서 보는 인수봉, 염초봉, 백운대, 노적봉은 또 다
른 모습이다. ‘相中無佛, 佛中無相’이다.
노적봉이 천도와도 다르고, 맹주를 대하여 납작 엎드린 모습도 아니고, 홀로 오연히 우뚝 서서 하늘을 받친 천
주(天柱)의 모습이다. 옥오재 송상기(玉吾齋 宋相琦, 1657~1723)의 「북한산 유람기(遊北漢記)」가 맞았다.
“밤에 별관에서 묵고, 아침에 일어나 노적사를 구경하였다. 이 절도 새로 지었는데 노적봉 아래에 있다. 평소에
이 봉우리를 볼 때도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하다 여겼는데, 이 자리에 와서 직접 보니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되
었다. 대단히 높은 바위 봉우리가 땅에서 우뚝 솟아 하늘을 찌를 듯하여 발붙일 곳이 없으니 보는 사람마다 자
기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였다. 소동파가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은 다만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
북문. 염초봉 가는 길은 막았고, 초소를 새로 설치하였다. 마음고생 던다. 그리로 인적이 번듯하고 아무런 장애
가 없다면 나도 갈까 말까 얼마나 망설였을까. 서슴없이 발길 돌려 돌길을 내린다. 도중에 대동사 가는 길은
‘탐방로 없음’이라고 안내했으나 나는 알고 있다. 대동사와 그 아래 상운사가 뜻밖의 고적한 절이고 그리로
가면 백운대를 오르는 주등로와 더 빨리 이어진다는 것을.
서두에서 말했듯이 북한산에서도 바람꽃과 노루귀 등이 없을까 걸음걸음 살폈다. 없다!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천년고찰인 대동사와 상운사의 뜨락과 그 옆 골짜기에도 없다. 현호색이 무리지어 내 섭섭함을 달랜다. 백운대
오르는 길. 또 역방향의 진행이다. 나 홀로 끝없이 이어지는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가파른 너덜길이다. 지치고
허기진다. 김밥 한 줄과 비상식인 샌드위치 한 곽이 오늘 먹을거리였다. 내 옆에서 휴식하는 등산객 일단이
인절미 투정하는 것을 보니 더 허기진다.
기고 또 긴다. 백운대암문. 오후 들어 조망이 트이기라도 하면 아주 녹아나겠구나 하고 걱정했다. 백운대를 다
시 올라 천지를 둘러보아야 하므로. 그런데 살았다! 오전과 다를 바 없이 미세먼지가 가시지 않아 여전히 원경
은 흐리멍덩하다. 하산하는 등산객들 무리에 섞인다. 앞지를 수도 없다. 점점 더 길어지는 행렬이다.
도선사 입구 주차장. 도선사에서 신도 두 분을 태우고 나오는 택시에 한 자리가 비었다. 내 자리다. 올 때는
세 사람이 각각 2천원이었는데 갈 때는 1천원이다. 집 근처 삼겹살집에서 아내 불러 소주 한 잔 해야겠다.
24. 앞 안부는 북문, 왼쪽 멀리는 오봉이다
25. 상장능선 상장봉
27. 노적봉, 대단한 첨봉이다
28. 제비꽃
29. 현호색, 상운사 근처에 무리지어 피었다
30. 노랑제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