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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 북릉, 왼쪽 멀리는 남덕유산이고 오른쪽은 삿갓봉, 그 앞은 월봉산이다
오늘 아침 산이
물방울
음악이다
세상이 꽃으로 피어난다.
이제
더 갈 데가 없다
―― 이성선(李聖善, 1941∼2001), 「황홀」
▶ 산행일시 : 2018년 3월 17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6명(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인치성, 사계,
진성호, 두루, 구당, 신가이버, 해마, 해피, 무불, 자유)
▶ 산행거리 : 도상 23.7km
▶ 산행시간 : 12시간 5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8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38 -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
03 : 58 ~ 04 : 24 -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유동 마을,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45 - 능선마루
06 : 00 - 969.0m봉
06 : 33 - 1,115m봉, 망월대
06 : 44 - 아침 식사
07 : 23 - 황석산(黃石山, 1,192.5m)
07 : 43 - 황석산 북릉 석문
09 : 00 - 1,255.1m봉
09 : 28 - 거망산(擧網山, 1,184.0m)
10 : 45 - 은신치(隱身峙), ┣자 갈림길 안부
11 : 28 - 1,177.8m봉
11 : 34 - ┫자 갈림길, 왼쪽은 월봉산 1.7km. 직진은 수망령 1.3km
11 : 57 ~ 12 : 34 - 수망령(水望嶺), 점심
13 : 38 - 금원산(金猿山, 1,352.5m)
14 : 22 - 임도, 안부, 정자
15 : 00 - 누룩덤(책바위)
15 : 15 - 기백산(箕白山, △1,330.8m)
16 : 30 - 도수골 계곡
17 : 18 - 용추사 일주문, 산행종료
17 : 34 ~ 19 : 20 - 안의, 목욕, 저녁
22 : 36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
1-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1)
1-3.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2)
▶ 황석산(黃石山, 1,192.5m)
황석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유동 마을 입구에서 오르는 길, 우전 마
을에서 시구목골을 따라 오르는 길, 용추사 입구를 지나 산내골을 따라 오르는 길이 그것이
다. 시구목골과 산내골 코스는 골짜기를 이슥하니 오르다가 황석산 또는 주릉을 거의 다 올
라서서야 시야가 트이는 반면, 유동 마을 코스는 비교적 빠르게 능선마루에 오를 수 있다.
황석산은 주릉이 날카로운 암릉이라 아무리 오지산행이라 해도 섣부르게 새로운 코스를 개
척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캄캄한 밤이다. 우리는 유동 마을 입구로 간다. 두메 님은 버스를
마을 동구 밖 300m 전 들판에서 멈춘다. 아마 마을로 곧장 들어갔다가는 귀 밝은 동네 개들
이 총궐기하여 여간 시끄럽지 않아서 일 것이다. 과연 그랬다.
03시 58분. 차내가 하도 조용하기에 혹시 기상시각이 늦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쪽잠
청하려고 자세를 고치는데 어둠 속에서 04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대간거사 님
이다. 기상! 소리와 함께 차내 불이 눈부시게 켜지고 갑자기 부산해진다. 차문 열고 나서자
대기는 차디차다. 그믐날이니 달은 없다 쳐도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잔뜩 흐린 줄로만 알았
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만경운해의 심해 속이었다.
대로 따라 잠깐 걸어 개들이 요란스레 짖어대는 유동 마을을 지나 산자락 연촌 마을로 들어
간다. 등산로는 뭇 산행표지기들이 다투어 안내한다. 어제 이곳에는 큰비가 내렸다. 등로 옆
계류가 이제야 동안거 마치고 세상에 나와 우렁차게 염불하는 듯 목청 높여 흐른다. 농로도
가파른 오르막이라 금세 땀난다. 산자락 돌아가기 직전 벤치 놓인 쉼터에서 잠시 숨 고른다.
가파른 사면을 돌아가는 축축한 산길이다. 돌길이 미끄럽다. 바위 슬랩 조심스레 지나고 곧
추선 오르막이 시작된다. 멀리 선두(대간거사, 진성호)의 헤드램프 불빛이 혜성처럼 보인다.
산 너머 사라진다. 거칠게 내뿜는 숨은 짙은 안개가 되어 앞길을 가리니 숨을 내쉴 때는 고개
를 옆으로 돌린다. 등로는 능선을 잡았는가 하면 사면을 가로지르곤 한다.
가파르고 낙엽이 수북한 사면이다. 저 밑은 헤드불빛이 닿지 않는 깊은 골짜기다. 낙엽이 덮
은 빙판에 미끄러질라 걸음걸음 재며 간다. 골짜기 너덜을 건널 때는 물길을 등로로 잘못 알
고 오르다 잡목 숲에 막히고 온 사면을 쓸어 길을 찾는다. 넙데데한 사면의 등로도 아주 흐
릿하여 꼭 붙들고 가기가 쉽지 않다. 엉뚱한 데를 한참 누비다가 구불대며 오르는 등로와
만난다.
발아래 보석이라도 흩뿌려놓은 것처럼 헤드램프 불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건 서리가 내
려서다. 장관이다. 고개 들면 나뭇가지 또한 빛난다. 움트는 상고대 눈꽃의 결정이다.
능선마루. 969.0m봉 아래다. 긴 어둠 속 된 오르막은 끝났다. 헤드램프 소등한다. 한 피치
길게 오르면 갈림길인 969.0m봉이다. 우리는 이제 막 운해 위로 머리를 내민다. 다른 세상
이다.
2. 해뜨기 직전, 장엄한 순간이다
3. 해뜨기 직전
4. 1,115m봉 망월대에서 바라본 덕유산 쪽, 멀리 오른쪽은 무룡산이다
5. 1,115m봉 망월대에서 바라본 황석산
6. 황석산 동벽
7. 멀리 오른쪽은 덕유주릉 무룡산이다
8. 상고대 눈꽃
급하다. 잰걸음 한다. 1,115m봉 망월대 오르기 전 전망대가 경점이다. 뒤돌아보면 발아래 창
파는 넘실대고 동녘 붉은 띠는 하늘과 운해를 경계한다. 황석산은 온통 하얀 눈꽃 소복으로
단장하였다. 기백산이, 지리산 천왕봉이 물수제비뜨면 닿을 듯 가깝다. 일부는 아예 해돋이
까지 볼 요량으로 더 머물고, 일부는 저 앞의 경치가 궁금하여 줄달음하여 나아간다.
1,115m봉을 등로 따라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고 망월대를 뒤편에서 오른다. 암봉이다. 또 다
른 장관이 펼쳐진다. 지우천(智雨川) 깊은 골은 운해가 들어찼다. 그 끝 덕유주릉 무룡산이
피안이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바로 여기다. 어떻게 이런 경치가 연출되었을
까? 어제 많은 봄비가 내렸고 그 습한 기운이 새벽녘에 바람 불고 급강하한 기온으로 얼어붙
었다는 게 대체의 의견이다.
황석산 오르기 전 안부께에서 아침 식사한다. 황석산 암릉을 오르고 내릴 일을 생각하여 덕
산 명주인 탁주 분음을 삼간다. 사방을 둘러보면 일목일초가 눈꽃 활짝 핀 화원이라 이런 호
강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하니 셰프 신가이버 님이 김치 넣고 팔팔 끓인 오뎅탕이 여느 때와
같지 않은 별맛일 수밖에. 얼큰한 국물까지 비운다.
눈이 잠시 쉬도록 만경운해가 소강한 숲속 길을 지나고 황석산성을 넘는다. 황석산 정상은
그 서벽에서 데크계단을 오른다. 예전에는 손맛 좀 즐길 수 있는 슬랩이었는데 등로를 정비
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산을 버려놓았다.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건너편 괘관산과 백
운산은 이중의 안개가 감싸고 있어 더욱 기묘하다.
황석산. 천지의 정중앙이다. 북으로는 덕유주릉이, 남으로는 지리주릉 장릉이 길게 둘렀다.
거기서 보면 여기도 고도일 것이다. 황석산은 왜군의 정유재란 때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황석산 동벽의 피바위는 그때 부녀자들이 뛰어내려 피로 적신 바위라고 한다.
존재 곽준(存齋 郭䞭, 1551~1597)의 경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金沔)이 의병
을 규합하니 평소에 친히 지내던 교분으로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선조30) 정유재
란 때 안음 현감으로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호남의 길목인 황석산성(黃石山城)
을 지키던 중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두 아들 곽이상(郭
履常)ㆍ곽이후(郭履厚)와 함께 전사하였다.(「간송록」에서).
9. 앞 왼쪽은 아침 첫 햇살 받는 황석산 동벽
10. 멀리는 지리주릉, 앞은 황석산 동벽
11. 황석산 주릉
12. 황석산 주릉
13. 황석산 남봉(1,109.6m)
14. 괘관산, 안개가 이중으로 끼었다
15. 우리가 올라온 황석산 동릉
16. 진성호 님, 뒤는 황석산 남봉(1,109.6m)
▶ 거망산(擧網山, 1,184.0m)
황석산 북릉은 ‘절대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세워 막고 있다. 북쪽 등로는 곳곳이 빙판이라 아
무렇지 않던 길도 오늘 아침은 대단한 험로로 변했다. 아까부터 저기를 어떻게 지날까 내심
걱정하였는데 이 팻말과 금줄로 마음고생을 던다. 방금 올라 온 데크계단을 내린다. 황석산
서쪽 사면을 길게 돌며 둘러보니 역시 소로는 절대 출입금지라며 막았다.
황석산 북봉(1,230m) 가는 길은 날이 무딘 암릉이다. 왼쪽 사면으로 우회길이 보이지만 직
등한다. 그리고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뒤돌아 황석산의 명암(明暗)의 침봉을 자세히 뜯어본
다. 전후좌우 상하 눈 닿는 곳마다 절경이다. 사뭇 발걸음이 더딘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석
문 지나고 완만하게 내린다. 황석산 북봉은 인적이 없는 사나운 암릉이라 직등하기 어렵다.
왼쪽(서쪽) 사면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가 크게 돌아 넘는다. 곳곳의 슬랩은 맑은 얼음으로
코팅이 되었다. 고정밧줄은 얼어서 몽둥이로 변했다. 앞사람이 전달한 주의환기를 뒷사람에
게 인계하며 내린다. 암릉 못지않게 재미난 길이다. 함양팔경(상림사계, 금대지리, 용추비경,
화림풍류, 칠선시류, 서암석불, 덕유운해, 괘관철쭉)에 버금 갈(신가이버 님은 제1경이라고
극구 주장했다) ‘모닥꽈당’도 구경했으니.
황석산 북봉을 돌아 넘고 잔봉우리 오르락내리락한다. 절경은 소홀함이 없다. 옅은 안개 속
꽃길을 간다. 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춘일낙상(春日落霜) 상고대 눈꽃이 지는 송이 송이와 그
소리가 우박이 쏟아지는 것 같다. 송한필(宋翰弼,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학자 · 문인)의
읊은 「우연히 시를 짓다(偶吟)」가 바로 이 경치이다.
어제 밤비에 꽃이 피고 花開昨日雨
오늘 아침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네 花落今朝風
가련하다 하루 봄날의 일이여 可憐一春事
비바람 속에 피고 지고 往來風雨中
등로 약간 비켜 있는 1,255.1m봉도 암릉 암봉이다. 직등한다. 일대경점이다. 괘관산의 이중
안개는 아직 그대로다. 지리주릉, 백운산, 백두대간, 할미봉, 덕유주릉, 금원기백을 보고 또
본다. 내리막은 암릉보다 더한 험로로 변했다. 노골적인 빙판이다. 눈길 골라 지친다. 이 다
음은 첨봉 2좌를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고 길게 내려 초원의 ┣자 갈림길 안부다. 거망산 정
상 130m. 내쳐간다.
싸리나무 숲에 스러지는 눈꽃을 바라보며 거망산 정상을 오른다. 예전의 아담한 정상 표지석
을 돌탑 위에 얹어놓고 그 자리에 큼지막한 표지석을 세웠다. 우리나라 산하 어느 곳인들 전
쟁의 상흔이 스미지 않은 곳이 있을까? 거망산은 산청 출신의 정순덕(鄭順德, 1933~2004)
이 6·25 때 빨치산 여장군으로 불리며 활동하던 무대였다. 정순덕에게 붙잡힌 국군 1개 소대
가 무기를 빼앗기고 목숨만 건져 하산한 사건이 최근에야 밝혀졌다고 한다.
오래 휴식한다. 도대체 입이 쉴 틈이 없다. 이번에는 사계 님이 오뎅탕을 끓인다. 구당 님이
새벽부터 고전이다. 시력이 나빠서 산길 가는 데 여태 무진 애를 쓰더니만 혼자서 즐기다가
적당히 하산할 터이니 아무 염려하지 말라는 전언이다. 해피 님이 기꺼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겠고 나서니 적이 안심이다. 나중에는 산정무한 님까지 동행하여 은신치에서 탈출하였다.
17. 황석산
18. 황석산
19. 황석산 주릉, 앞은 황석산 북봉
20. 멀리 왼쪽은 백암봉, 운해 건너는 금원산과 기백산(오른쪽)
21. 상고대 꽃길, 벚꽃이 활짝 핀 것 같다
22. 상고대
23. 거망산 가는 길, 상고대 눈꽃이 점점 스러진다
▶ 금원산(金猿山, 1,352.5m)
거망산을 넘고 비슷비슷한 표고의 봉봉을 오르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암릉이 나오면 직등
하여 가련일춘사(可憐一春事)를 굽어본다. 1,115.3m봉 넘고 다소 완만해진 사면에 괜히 들
렸다가 눈에 밟힌 더덕에 저도 죽고 나도 죽어난다. 다리 힘까지 풀린다. 비칠거리며 뚝 떨어
져 바닥 친 안부가 은신치다. ┣자 갈림길이 나 있다.
내린 것처럼 오른다. 되게 가파르다. △1,116.9m봉 정상 직전에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 큰 부조다. 물 한 방울이 넘치는 것. 한 걸음에 지친다. 삼각점 보기를 포기한다.
완만하고 길게 오른다. 1,177.8m봉을 넘으면 왼쪽으로 부목재, 월봉산 가는 갈림길이 금방
이다. 수망령까지 1.3km. 줄곧 통나무계단 내리막이다. 지겹도록 내린다. 긴 시간을 엇박자
걸음해서인지 나중에는 평지에서도 절뚝이는 계단걸음 한다.
거목의 낙엽송 숲 지나고 내린 안부는 수망령이다.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 삼거리다. 우리말
로 물바라기고개다. 고갯마루 양쪽으로 수량이 풍부한 내계와 지우천을 굽어보고 있을 뿐 아
니라 고갯마루 바로 옆에는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는다. 고갯마루에는 정자가 있다. 승용차
몇 대가 갓길에 주차한 것은 금원산 등산객이 있어서다. 그늘에 들면 춥고 햇볕에 나오면 덥
다. 정자 반그늘에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진성호 님의 부침개로 배를 채우니 보온통의 밥
이 남고, 잔반을 모아 우리 곁을 배회하는 땅딸이 유기견에 준다.
수망령에서 금원산 정상까지 오르막길 2.3km. 단숨에 오른다. 가파를만하면 통나무계단을
놓았고, 평지 진창은 야자매트로 덮었다. 통나무계단은 높고 폭이 길어 걷기에 불편하다. 주
로 갓길로 간다. 처음에는 가뜩이나 부른 배에 숨이 차서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를 되
뇌다 보니 호흡과 규칙적인 스텝을 밟게 되고 무한동력이 생긴다. ‘핵소 고지(Hacksaw Ridg
e, 2016)’에서 데스몬드 도스가 ‘한 사람만 더, 한 사람만 더’ 하면서 75명의 생명을 구한 것
처럼.
금원산 정상. 수망령에서 한 시간 걸렸다. 금원산은 많은 등산객들이 올랐다. 대부분 유안청
폭포 쪽에서 올랐다. 그늘에 들어 눈 긁어모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 이 산의 작명
유래는 옛날 이 산속에 금빛 나는 원숭이가 날뛰므로 한 도사가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
에 따라 금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산중턱에 그 바위가 있어 금원암 또는 원암(猿巖)
이라고 한다.
고서에서 금원산을 검색하면 동계 정온(桐溪 鄭蘊, 1569~1641)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다. 동계의 고향은 금원산 아래인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천 마을이다. 그는 병자호란 때 인
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고향에 실려 갔는데, “임금이 욕을
당하였는데 신하로서 죽는 것이 이미 늦었으니, 다시 무슨 마음으로 보통 사람 축에 끼어 백
성 노릇을 하겠으며 처자식의 봉양을 받아먹겠는가”하고 금원산 골짜기로 들어가 풀을 덮어
지붕을 삼고는 그 집을 구소(鳩巢)라 하며 산을 일구어 조를 심고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24. 백두대간 백운산
25. 황석산 주릉의 서쪽 사면
26. 멀리 가운데는 지리주릉의 반야봉, 앞은 괘관산
27. 앞은 기백산, 그 뒤는 수도산, 오른쪽 멀리는 가야산
28. 멀리 가운데는 덕유주릉의 백암봉, 그 앞 오른쪽은 금원산
29. 멀리 왼쪽은 남덕유산, 오른쪽은 무룡산, 가운데는 삿갓봉, 그 앞은 월봉산
30. 왼쪽 암봉은 백두대간 할미봉, 그 너머 멀리는 운장산
▶ 기백산(箕白山, △1,330.8m)
기백산 가는 길. 잘 다듬었다. 데크계단 길게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다. 동남진 하여
1,315m봉을 오르는 숲속 길은 잔설이 남았거나 빙판이다. 오가는 등산객들과 내 먼저 수인
사하며 지난다. 완만한 길이라 줄달음한다. 길게 내린 안부는 임도가 지나는 쉼터다. 기백산
정상까지 2.2.km. 스퍼트 낸다. 느슨한 오르막인 1,282.3m봉을 간단히 넘고, 기백산의 하이
라이트 구간인 누룩덤을 지난다.
누룩을 층층 쌓은 것처럼 생겼다는 이 누룩덤을 여러 지도에서는 책바위라고 한다. 첫째 누
룩덤은 직벽이라 감히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누룩덤
에서는 고민한다. 인치성 님을 비롯한 선두그룹은 직등했다. 위험구간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올라도 후회, 오르지 않아도 후회할 것. 대간거사 님의 직등하자는 부추김을 물리치고 오른
쪽 사면 주등로를 따라 돌아 넘는다.
대간거사 님은 그러는 나를 위로(?)하려고 그랬는지 직등하려다가 뒤돌아 내리고 역시 오른
쪽 주등로를 따라 돈다. 한 피치 잠깐 오르면 사방 훤히 트이는 기백산 정상이다. 기백산은
기박산(旗泊山) 또는 지우산(智雨山)이라고도 하는데, 산봉우리의 괴암이 키와 같다 하여
‘키 기(箕, 곡식을 까부는 데 쓰는 기구)’자를 써서 기백산(箕白山)이라고 한다. 괴암은 누룩
덤을 가리키지 않을까 한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기산 21, 2002 재설.
예전에 상고대 님이 기백산 하산 길에 손맛을 다수 보았다는 곳을 예의 살펴 내리기로 한다.
인적이 뜸한 등로다. 쭉쭉 내려 고도를 1,000m대로 낮추고 오른쪽 생사면을 더듬는다. 그런
데 이건 산죽 밭이라 그들만의 강고한 결속으로 다른 식물은 뿌리 내리고 살아갈 틈이 없다.
가도 가도 산죽 숲이다. 이따금 드러누운 고사목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오지를 만들
어 간다.
도수골로 내리고 등로와 만난다. 기백산을 오르는 일반등로 중 하나다. 골 울리는 계류와 함
께 간다. 계류는 포말을 만들며 우리보다 더 시끌벅적하니 간다. 기백산을 오르는 다른 등로
와 만나고 박석 깔린 대로다. 등로는 계류를 벗어나 야트막한 능선을 가로 넘는다. 일주문이
가까웠다. 양지바른 산자락에서 봄을 본다. 생강나무 꽃이 방긋 피었다.
용추사가 가까운 지우천 옆 도로와 만나고 그 아래가 멋들어진 필치로 ‘德裕山長水寺曺溪
門’이라 쓴 용추사 일주문이다. 장수사는 용추사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환속한다.
31. 멀리 가운데는 지리주릉의 반야봉, 그 앞은 괘관산
32. 기백산
33. 왼쪽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 그 앞은 황석산, 오른쪽 앞은 거망산
34. 기백산 누룩덤(책바위)
35. 금원산 주릉
36. 기백산 정상에서, 뒷줄 왼쪽부터 두루, 무불, 한계령, 모닥불, 신가이버, 해마, 인치성,
진성호, 사계, 앞은 왼쪽부터 대간거사, 자유
37. 생강나무 꽃
첫댓글 거창 山山山
볼 때마다 환상입니다....
멋집니다...
산진이형이 암릉을 직등하지 않고 우회하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유. 늙었나. ㅋㅋ. 우야튼동 눈이 호강한 날이었네요. 행운은 우연치 않게 찾아오는가 봅니다. 좋네유.
사진 한장 한장이 예술입니다. 올해 사진 컨테스트 경쟁작에 출품해 보세요.
달력사진이 나왔네여~ㅎ
정말 환상적인 장면들이네요~
아휴~~ 배아파!!!ㅋㅋ
상고대가 덮힌 능선에 발아래 가득찬 운해, 장관이네요. 이런 풍경 아무나 아무때나 볼 수 없을텐데,
몇년전 아내와 같이 이 구간을 갔을 때 황석산 북릉 우회길이 있는지도 모르고 북릉을 넘어가는데,
5월이라 춥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얼어붙었던 기억이 납니다....수고하셨습니다.
아주 경치가 예술입니다...역시 고생길은 피하는게 상책이여
눈은 호사를 누리고~ 다리는 미끌에 후덜덜 !!
현지서 본 느낌 그대로 조망을 담아내신
악수형님, 고생하셨습니다 !!!
황거금기의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거친 숨결이 생생히 느껴지는 산행기의 명작입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을 정성껏 만들어 주시는 악수형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안녕하시죠. 보고싶은 얼굴들이 많네요 ㅠㅠ 여전히 산엔 열심히 다니시고...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 어느해 겨울인가 얼어붙은 황석산 암릉을 오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산에 다니시길 빕니다.
반갑네. 정말.
하늘재 님도 안 오고, 하나늘 님도 안 오고
산행 재미가 예전만 못해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절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