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서 대화체 묘사부분에 대하여-/정임표
수필의 묘사를 대화체로 쓰면 아니된다는 금기는 그 대화체가 허구적 글쓰기가 될 우려성이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중 인물의 대화에서 오래 전의 이야기를 대화체로 쓰면 허구적 글 쓰기가 될 우려가 매우 농후 합니다. 그러나 전 후 내용으로 보아 최 단시간에 경험한 주고 받은 대화라면 허구가 아닐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대화체가 많이 나오는데 이게 허구적 방법을 차용한 소설 작법 태도라고 보아서 작가는 수필이라 이름 붙였지만 평론가는 소설이라고 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오늘 주고 받은 대화라도 꼭 녹취록 처럼 써야 될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건 작가의 양심에 맡길 뿐이고, 독자들이 이건 허구다 아니다를 스스로 판단할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관촌수필>>은 수필과 소설의 경계에 선 작품. 문학계에서는 이를 '연작 소설'로 분류함.)
허구적 차용이라는 논란 때문에 순수 수필작법에서는 "과거의 대화는 간접화법이나 요약문으로 처리하는 것을 권장"하는데, 김귀선 작가의 작품 < 이팔청춘 소년들아->는 최근 참깨 수확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고 전후 문맥으로 보아 허구가 아니라는 판단을 합니다. 그 판단의 근거는
"태풍 예보에 우리는 점심도 미룬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깻단을 안아 트랙터 바가지에 담으며 형부가 말했다. "왜정 때는 정오가 되면 ‘꽝’ 하고 대포를 쐈다네. 시계가 없으니까 대포 소리로 알려주는 거지." 라는 문장입니다.
작품 속의 현재 배경이 태풍이 온다는 뉴스에 허겁지겁 점심도 먹지도 못하고 참께 수확을 하는 장면이 글의 배경입니다. 밥 때가 넘어가도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 없는 환경이니 자연스럽게 옛날에 점심때를 알리던 오포소리가 생각이 난 형부가 오포 이야기가 나왔고 오포 이야기가 서사의 주가 되었다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작품 속의 화자(형부)가 어린날을 회상하는 장면 묘사 대화 그 자체는 그대로 사실일 확률이 100% 입니다. 작가는 글에 생동감을 주려고 그날 있었던 대화 그대로를 옮겨 놓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글 욕심이 일어나면 대화체가 아니라도 특정 부분에서 극적 감동을 위해서 필요한 장면을 보충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기기 어려워 허구적 장면을 그려놓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건 거짓을 쓴 것이라서 표절보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니 작가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관촌수필은 오래전의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재구성하여 대화체로 쓴 부분이 많이 있는데 이건 소설작법 태도로 보는 것이 정확한 평론입니다. 비디오 아트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꾸밈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으니 태생적으로 모든 문학예술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겠지요.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표현하면 엄밀히 따지면 말이 안되는 비문이자 허구적 표현이지만 은유적 표현으로 꾸밈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대화체 묘사든, 간접화법을 사용한 은유적 묘사이든 문학에서 묘사의 중요성은 일백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대화체 묘사라고 전부 허구는 아니며, 허구적 진실 도입에 관한 토론은 묘사와는 다른 토론과제로 다루어야 합니다. 독자인 나는 김귀선 작가의 작품 < 이팔청춘 소년들아-> 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고 이 글의 제목을 "오포소리"로 하는 게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결국 우리 수필은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멀어지는 추억을 불러내어 부활 시켜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유한 인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팔청춘 소년들이 그걸 알리가 없으니 창을 하는 작가의 입에서 저절로 한가락 옛 민요가 흘러 나올 법 합니다. 평자인 제가 쓴 <대지의 항구> 처럼(2026. 9. 17.)
첫댓글
아마도 세월호 참사 직후 한 사건이었던 듯한데,
누군가 자식 잃은 부모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미개하다' 고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반발을 샀습니다.
현재 이 카페에서 보이는 범몽 선생님의 맹활약을 두고도
혹시 내가 뭐라고 하는 게
과거 그 인간의 망발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제가 반성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럽니다.
'아무개 선생님이 왜 저러실까? 혹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졌을까?'
이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가정1.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해결하지 못한 내부 문제가 한 가지 이상 있는 모양이다.
가정 2.
선생님은 도인이다. 그래서 하수가 고수를 이해할 수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가정1이라면 본인이 해결해야 하고,
가정2라면 하수는 역량이 부족하니 당장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가 싱거운 소리도 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이런 것.
선생님은 '성냥팔이 소녀'가 아니고 '수필팔이 할배'인 듯함.
아니야,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을 좋아해서
수필도 단계를 밟아서 공부해야 성취가 있다고 하니까,
"선생님은 다단계 피라미드 사, 사... 아, 사기꾼이 아니고, 사랑꾼!"
김인기 선생님의 통찰력에 감탄^^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해결하지 못한 내부 문제가 한 가지 이상 있는 모양이다." 이게 정답입니다. 해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지요? 공적 조직에서 책임을 맡은 분들이 솔선수범은 커녕 거의 사깃꾼이거나 사이비라는 분노가 있지요.
그걸 척결하려니 국민의식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종교도 자기 집단만의 천년왕국을 꿈 꾸니 천년왕국을 꿈꾸지 않는 <문학>이 적격인데 글 배운다는 분들의 생각과 의식이 소승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으니 후학들 역시 배울게 없어서 미당 선생님 말씀 그대로 "세상은 갈 수록 험악 하더라"가 되는지라 늙어가면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해 요즘은 영 잠이 안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내가 토해낸 글들을 정리해서 남이사 보든 말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수필작가도 있었다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아듀~ 할 것입니다. 아무리 개똥에 구불러도 이승이 더 좋다고들 하지만 소풍 온 세상에 온갖 오물들이 가득하니별로 소풍다니고 싶지도 않네요^^
나라 꼬라지도 그렇고 결국은 인간의 문제이니 인문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개똥이든 소똥이든 그냥두면 누군가가 치우겠지요. 똥 치운 수필 올릴테니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