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모 방송 동물프로그램에서 본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복길이라는 개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길의 견주는 큰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키우는 개가 주인을 아주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키운지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곁에 오기는 커녕 가까이 가기만 해도 매우 사납게 저항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복길이는 사실 유기견입니다. 버려진 채로 산을 헤매다가 덫에 걸려 신음하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발견하고 구조한 개입니다. 아무리 유기견에 덫에 걸려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너무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덫에 걸렸던 당시 주위에 검은 개 한마리가 같이 있었다는 주변인들의 말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그 검은 개와 복길이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견주는 결국 방송사에 문제해결을 요청했고 전문가가 출동하고 난 뒤 그 문제의 행위에 대한 진단이 나왔습니다.
복길이는 유기견이지만 검은 개와 같이 산주위를 떠돌았습니다. 하루 하루 먹을 것을 찾는 것이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옆에 검은 개가 같이 있어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검은 개는 복길이가 덫에 걸린 뒤에도 떠나지 않고 복길이 옆을 지켰지만 복길이가 인근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고 구조되자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로 거기에 복길의 이상행동의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 주인에게 버림받고 덫에 걸린 복길이는 오로지 그 검은 개만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구조된지 일년이 지났지만 그 검은 개의 흔적을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진단이 나오자 처방에 들어갑니다. 인근에서 검은 색의 개를 구해 복길이와 같이 지내게 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복길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급기야 검은 개 옆에 있게 됩니다. 마음의 문을 열었고 비로소 안도감을 얻은 것입니다. 검은 개가 주인에게 친근하게 지내는 것을 본 복길이도 주인에게 곁을 허락합니다. 주인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일년만에 일입니다.
저는 이 방송을 보면서 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복길이는 전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을때나 덫에 걸렸을 때나 구조된 뒤에도 새 주인을 공포스럽게 판단하면서 정말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구조해서 밥 잘 주면 고분고분 잘 따를 것이라고 단순하게 지레짐작한 것이죠. 하지만 복길이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복합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물에게 트라우마는 어디나 존재합니다. 식물도 곤충도 미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이나 사람에게만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말과 글을 통해 트라우마를 전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그런 과정이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해결이 어렵습니다. 동물들은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이따금 복길이처럼 이상행동을 통해 발견되고 방송 등을 통한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처방이 내려질 경우가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트라우마 해결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간들도 이상행동을 행하지만 대부분이 그냥 견디고 이겨내기만을 기다립니다. 또한 트라우마를 겪는 당사자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장애를 드러내는 것을 그냥 정신병자 취급을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원래 그런 트라우마를 겪는 것이고 트라우마를 잘 이겨내지 못하면 정신적 미숙아 취급을 받으니 쉽게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트라우마는 정도가 깊어지고 나중에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하면 대단한 정신적 상처를 생각하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정신적 또는 마음의 상처를 모두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몸의 조그만 상처도 모두 상처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겪는 모든 마음의 상처를 포함합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겪게되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학교폭력, 언어폭력, 성폭력 등 다양한 상처가 존재합니다. 태어나기전 어머니의 뱃속에 태아생태에서도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임신 상태에서 어머니가 겪는 수많은 정신적 상처가 상당 부분 아이에게 전달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임신상태때부터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숙명같은 것입니다.
부모나 형제 그리고 이웃들이 무심코 행하는 언어 또는 행동적 폭행이나 생활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모두 트라우마로 남게 됩니다. 무의식세계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말입니다. 멀쩡한 모습과 나름 괜찮다는 학벌과 부족함이 없는 가정에서 자라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그 내면속에는 숱한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통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뭔가 독특한 상황에 접하게 되면 내면 깊숙히 존재하던 트라우마가 정체를 드러내고 요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언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현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무한경쟁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인물들이 후에 사회에서 큰 일을 할 경우 극단적인 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대형 갈등과 대립도 바로 정치 사회의 리더격인 인물들이 극하게 일을 추진하고 또 그것에 극하게 저항하면서 벌이는 이른바 개혁을 빙자한 트라우마 표출 경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성격이 강하거나 뭔가 잘 참지 못하거나 화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는 사람들의 심리속에는 반드시 관련 트라우마가 존재합니다. 특히 어릴 때 겪었던 스트레스로 인한 트라우마는 평생을 가게 됩니다.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학교 폭력, 성폭력 뿐 아니라 어릴 적에 부모로 부터 공부에 대한 강요를 받았거나 형제자매중 특정 아이에게 향한 편애로 인한 트라우마 그리고 신체적 결함 등은 평소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특정한 사안에 봉착했을 때 무심코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교류에서 위안을 얻고 학습을 통해 성숙하고 종교를 통해 교화되면서 그 트라우마들이 더 깊은 속으로 가라앉을 뿐이지 트라우마는 결코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번 거울에 상처가 나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미세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거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작은 상처를 그냥 무시하면서 살 뿐 그 희미한 자국은 어딘가에 남아 있는다는 말입니다. 음주나 흡연을 많이 하거나 무분별한 이성교제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가 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극복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트라우마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거나 웬만한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무덤덤해지는 그런 멘탈을 키우는 것이 방법이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 비해 멘탈이 강한 사람은 정신적 맷집이 강한 것입니다. 어떤이는 약간의 더위에도 심하게 반응하지만 어떤 이는 아주 더운 환경에도 잘 견디고 땀도 잘 안흘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그렇지만 어떻게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아주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는 부모도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은 그런 트라우마를 결코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정신분석학자나 정신과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 자신도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경우 성장하면서 다른 트라우마와 결합을 하면서 더욱 그 정도를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물리적 결합보다 화학적 결합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개 복길이의 경우처럼 겉으로는 그 문제점을 발견해 내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맛이는 음식 제공하고 편안 잠자리를 준다고 그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이런 저런 숱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것이 바로 인생사라는 것입니다.
2024년 3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