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내부에는 당대 최고 문인들의 글씨와 시문 현판이 빼곡하게 내걸려 있어 '현판의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정면 외부 '경포대(鏡浦臺)'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유한지(兪漢芝)의 넷체(예서체) 작품이며, 누대 내부 상단에 걸린 현판은 숙종 때의 제필로 전해진다.
현판을 유심히 보면 앞의 ‘第一’ 두 글자와 뒤의 ‘江山’ 두 글자의 서체가 서로 다르다. 원래 주지번이 쓴 글씨 중 ‘第一’ 두 글자를 분실(훼손)하여 후대에 누군가가 잃어버린 글씨를 다시 써서 메워 넣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대로 ‘강산’을 잃어버려 후인이 써넣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첫댓글 경포호 북안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경포대(江陵 鏡浦臺)는 조선시대의 누각으로,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명승지이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이 방해정(放海亭) 뒷산의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다.
조선 중종 3년(1508년)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세가 좁다" 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현재의 건물 골격은 영조 21년(1745년) 부사 조하망(趙夏望)이 응향각(凝香閣)을 헐어내고 개축·중건한 모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평범한 누각처럼 보이지만, 내부 마루 바닥의 높이를 3단계로 차등 형성하여 경포호와 동해 방향의 조망성을 극대화한 독특한 평면 배치를 갖추고 있다.
경포호수와 인근의 송림, 멀리 보이는 동해 바다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배산임수형 자연 경관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경포대 내부에는 당대 최고 문인들의 글씨와 시문 현판이 빼곡하게 내걸려 있어 '현판의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정면 외부 '경포대(鏡浦臺)'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유한지(兪漢芝)의 넷체(예서체) 작품이며,
누대 내부 상단에 걸린 현판은 숙종 때의 제필로 전해진다.
율곡 이이(李珥)가 10세 때 지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시문인 《경포대부(鏡浦臺賦)》 현판, 조선 숙종의 어제시(御制詩) 현판, 강릉부사 조하망의 상량문 등 수많은 시인묵객의 시판(詩板)이 보존되어 있다.
‘제일강산(第一江山)’ 현판은 누각 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명물 현판 중 하나로, 글씨의 출처와 구성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일강산’ 편액은 원래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로 전해져 내려온다.
일설에는 당대의 전설적인 명필 양사언(楊士彥)의 글씨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현판을 유심히 보면 앞의 ‘第一’ 두 글자와 뒤의 ‘江山’ 두 글자의 서체가 서로 다르다.
원래 주지번이 쓴 글씨 중 ‘第一’ 두 글자를 분실(훼손)하여 후대에 누군가가 잃어버린 글씨를 다시 써서 메워 넣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대로 ‘강산’을 잃어버려 후인이 써넣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였던 서거정(徐居正)이 경포대의 뛰어난 경치에 감탄하며 “경포대의 아름다움은 천하 제일(天下第一)”이라 칭송했던 데서 ‘제일강산’이라는 상징적 수식과 현판 표현이 비롯되었다.
경포대는 예로부터 '다섯 개의 달이 뜨는 풍류의 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늘에 뜬 달
잔잔한 경포호수 위에 비친 달
동해 바다 물결에 비친 달
마주 앉은 이의 술잔에 담긴 달
그리고 사랑하는 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