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시니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 홍속렬
참 많은 음악을 듣지만 롯시니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듣게 되면 지난 세월 매일 밤마다 3년 동안을 그렇게 뼈에 사무치도록 듣던 롯시니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평생 잊지 못할 음악으로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내포 되어있습니다
늦깎이로 공부를 한 나의 이야기입니다.
중학교만 졸업을 하고 군대 소년병으로 입대한 나의 최종학력은 중졸입니다.
육군대표 감독을 하면서 각종세미나나 기타 지도자 코스에 입학자격은 고졸 이상으로 돼 있습니다.
70년대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스포츠계도 체계가 잡혀 가며 학력문제가 대두 되었습니다.
또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이제 나이가 공부할 나이를 훌쩍 넘긴 나이여서 그리 녹녹하게 공부에 뛰어들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 입시 학원에 가 면담을 했습니다.
내 나이와 또 하고 있는 일이 축구지도이고 그것도 군인 신분이니 가장 좋은 방법은 방송 통신고등학교에 입학 하라는 권유였습니다.
그래 그 이듬해 수원에 있는 수성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공부를 시작 합니다
격주제로 일요일마다 출석 수업을 하고 밤마다 라디오방송을 들으며 공부를 합니다.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에 시그널 음악으로 나오는 곡이 롯시니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입니다.
그래 이 곡은 뼈에 새겼고 내 영혼에 새겨집니다.
수학은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어 포기를 합니다. 다른 학과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습니다.
당시 꿈은 육군사관학교가 목표였고 그 다음이 사범학교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집안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소년병으로 군 입대를 해서 군에서 축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나며 계급은 육군 상사 직책은 육군대표 축구감독
최종학력이 중졸이니 세미나와 코칭 스쿨에 입학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 학교에 입학을 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입니다
밤마다 수업을 하는 일이 보통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또 담임선생님이 나이 많은 나를 배려 해주셔서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졸업할 때는 사모님이 나오셔서 수원의 유명한 불 갈비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만학을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고맙고 감사한 선생님이셨습니다.
졸업을 하고 체육대학에 입학을 합니다.
대학진학을 위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손자 같은 아이들과 함께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하니 내겐 놀라운 일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에게 지금도 감사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며 나는 체육교사 자격증과 함께 이젠 떳떳하게 지도자의 반열에 서서 선수를 지도하게 되어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다 갖춘 그야말로 만학으로 성공한 한 사례가 되겠지요.
시방도 롯시니의 음악이 나오면 라디오를 듣고 공부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 하며 살아온 지난날들 아니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먼 지구 반대편에서 선교사로서 놀이가 없는 이곳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해 가르치고 내가 겪은 인생의 고달픔과 아픔을 이 아이들에게 발견하고 내 아픔처럼 이 아이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품고 사랑으로 가르치며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노력을 경주 하고 있습니다.